2009년 2월호

소유와 쇼핑

  • 입력2009-01-30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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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봤어? 그 남자 태그호이어 카레라 차고 있더라.”

    “지난번에 렉서스 타고 온 사람 기억나?”

    브랜드란 이런 것이다. 태그호이어, 렉서스, 샤넬과 에르메스가 한 인간의 몸과 영혼을 대신한다. 그의 이름이 개똥이든, 그의 꿈이 원시림에 사는 나비를 연구하는 것이든, 느리기가 나무늘보 꼬리도 못 따라가는 정도든 중요하지 않다. 그는 스포티하며 시크한 태그호이어이며, 날쌔고 빈틈없는 렉서스인 것이다. 이른바 ‘명품’에 눈이 튀어나올 만한 돈을 지급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악어 한 마리의 등에서 가방 손잡이 한 개만한 면적의 가죽만 채취했기 때문에, 청춘을 바느질 땀에 다 바친 장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대를 이어 물려줄 만큼 견고하기 때문에 수백, 수천만원을 지급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그래서 이런 일도 생긴다.

    “목걸이 정말 예쁜데, 어느 브랜드야? 샤넬? 까르티에?”

    “명품 ‘다미아드베어’ 거야.”



    “그게 무슨 브랜드야? 국산인가? 뭐니뭐니 해도 알아주는 걸 사야지! “

    목에 힘을 줄 만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동창회에 나갔던 다미아드베어 고객 A씨는 ‘촌스럽게도’ 샤넬밖에 모르는 친구들의 수준을 한탄하면서도 은근히 후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A씨가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다미아드베어에 전화를 해서 고민을 털어놓자 다미아드베어사는 내부 회의 끝에 자사 홈페이지 시작 화면에 A씨가 구매한 다이아몬드 목거리 사진을 ‘대문짝스럽게’ 올려놓는 서비스를 해준다. A씨는 이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당장 인터넷 좀 찾아보라는 말로 실추된 위신을 찾을 것이다(이 이야기는 실화지만, 다미아드베어란 브랜드는 실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VIP마케팅의 딜레마가 있다. 럭셔리브랜드 혹은 명품브랜드들은 그들의 고객이 브랜드의 전통과 역사를 좋아하지, 단지 고가에 대한 허영심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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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전통을 가진 브랜드라도 고객이 속한 사회, 혹은 속하기를 원하는 계층에서 알아주지 않으면 소비자는 구매를 꺼린다. 어느 정도는 이름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럭셔리브랜드는 고객의 리스트를 비밀로 하면서, 그 브랜드가 얼마나 대단한 전통과 심미적 취향을 갖고 있는가, 어떤 유명 인사들이 고객인가 알리고자 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멤버십 잡지에만 광고를 싣거나 일종의 공인인 연예인을 활용하는 전략을 쓴다. 만약 A씨가 “이 목걸이 ‘엄마가 뿔났다’에서 장미희가 건 거야”라고 한마디 할 수 있었다면 그처럼 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럭셔리브랜드들은 A씨 같은 고객을 위해 사회적인 비판과 악플 백만개쯤 감수하고 ‘안티’ 마케팅을 벌이기도 한다. 최근 롯데백화점이 내놓은 ‘울트라 리미티드 에디션’이 바로 그것이다. 백화점 측에서 40억원대 요트, 29억원대의 옐로 다이아몬드, 6억원대 시계, 7000만원대 만년필 등으로 구성한 울트라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자 언론에서는 경제적 암흑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물건들을 ‘세상에 이런 일이’ 식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사람들은 눈호사, 귀호사라도 누릴 요량으로 눈을 비비고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피아제’니 ‘드비어스’니 ‘S.T.듀퐁’ 같은 이름을 발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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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럭셔리브랜드 홍보담당자는 “백화점이 내놓은 아이템 중 일부는 전세계에 한 개 또는 수십 개 한정 생산되므로 사실 광고나 홍보에 부적당한 아이템들이다. 그러나 유명한 아이템에 쉽게 지갑을 여는 고객들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시계 지난번 ‘울트라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신문에 나와 난리가 났던 바로 그 제품’이라고 말하며 과시하기 위해서다. 또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낯선 브랜드가 광고 한 번 하지 않고 단숨에 명품으로 알려지는 효과도 있다”고 말한다.

    이 팸플릿에서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은 대한민국 다이아몬드 봉황 국새다. 정부 국새 제작자인 민홍규씨가 현 대한민국 국새를 납품하기 전에 만든 ‘원형본’이라고 한다. 40억원으로 가격이 책정된 이 제품이야말로 ‘이게 바로 그거’라고 자랑하기 위한 목적 외에 다른 용도를 생각하기 어렵다. 진정 ‘울트라’하고 ‘리미티드’하지만 나 같은 쇼퍼홀릭은 별로 탐나지 않는 아이템이다.

    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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