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판 위키피디아의 경우 생존 인물과 관련한 글을 고칠 때는 경험이 많은 편집자의 내용 승인 후 글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브리태니커의 전문가 제도를 일부 수용한 것이다. 또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문구는 다른 색깔로 차별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위키피디아를 운영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비영리재단 위키미디어는 “영향력이 높아진 만큼 신뢰성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조치가 왜 논란이 되고 있을까. 위키피디아를 지탱해온 정신, 좀 더 넓게 보면 인류의 새 문명인 인터넷 정신에 일대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정보의 자유로운 생산과 유통을 이상으로 탄생했고 이는 개방, 공유, 참여라는 이른바 웹 2.0(웹의 두 번째 버전)으로 또 한 번 진화한다. 위키피디아가 어떤 곳인가. 웹 2.0의 상징 같은 곳이다. 유명한 미디어 학자 돈 댑스코트는 집단적 지성의 힘으로 성장하는 위키피디아를 사례로 들며, 새로운 인터넷 경제 시대 ‘위키노믹스 시대’가 도래했다고 설파했다.
위키피디아 논란은 인터넷을 둘러싼 해묵은 질문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인터넷은 자정 능력을 가진 공간인가 아닌가.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 제한은 정보의 창조를 위축시키는가 아닌가. 인터넷의 정보는 무조건 정확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객관성이라는 것은 실제 존재하는가 등등.
이를 물리학의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으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이 법칙에 따르면 모든 물체는 자연 상태에서 질서정연하게 있기보다는 흩어지는 경향이 있다. 물리학에선 이를 무질서해진다, 곧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한다. 무질서라는 말 자체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물리학에서 보면 자유분방한 상태, 즉 자연스러운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와 같은 인터넷도 보편성을 추구하는 물리학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자연상태로 두면 무질서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완전한 질서가 좋은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얼린 물이 고정돼 있는 것처럼 인터넷을 질서정연하게 만든다는 것은 역동적인 정보 생산을 위축시킨다. 서울대 물리학과 최무영 교수는 “소리가 너무 정연하면 단조로워 지겹게 되고, 너무 무질서하면 소음이 되며 ‘적당히 복잡할 때’ 음악이 된다”고 했다.
위키피디아 문제도 극도로 증가하는 엔트로피는 낮추되, 적정한 수준의 복잡성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최적의 엔트로피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개방을 표방한 인터넷 시대의 최대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