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움이 많았다. 프리미엄 전략? 많은 사람이 비웃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기다렸다. 인도 진출 15년, 결국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는 인도시장에서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세계 최고 수준의 LCD·LED TV를 앞세워 12억 인구의 인도에서 희망의 싹을 틔웠다. 소니를 넘어섰고 모바일폰 세계 1위인 노키아도 삼성의 스마트폰에 시장을 양보했다. ‘삼성’의 질주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신정수(56) 삼성전자 전무(서남아 총괄)는 인도시장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만큼 변화와 발전이 빠르게 진행 중인 국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도에는 5000만~1억명에 달하는 개발도상국 수준 이상의 소비계층과 8억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하루 1~2달러로 생활하는 최하위 계층이 공존한다. 수도인 델리에도 구걸하는 걸인(乞人)들이 사는 길 건너편에 숙박비만 하루 300달러가 넘는 초호화 호텔과 최고급 쇼핑몰이 즐비했다. 델리에서 만난 한 교민은 인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도를 허접한 국가로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 1000달러가 인도의 모든 것을 설명하진 못해요. 12억 인구가 만드는 시장과 잠재력이 있죠. 예를 들어 인도에는 IIT(델리공과대학)에 떨어져서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에 간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이 나라가 경쟁력이 있다는 얘깁니다.”
IIT 떨어져 MIT 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는 1995년 8월 국내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인도시장에 진출했다. 델리에서 남동쪽으로 25㎞ 지점에 있는 산업도시 노이다에 부지 3만6300평을 마련하고 컬러TV 공장을 건설했다. 외국 기업이 독자적인 생산법인을 만들 수 없었던 당시 인도법에 따라 현지 기업인 비데오콘과 합작 형태로 법인을 설립했다. 삼성전자는 연간 40만대 규모로 시작한 컬러TV 생산 능력을 점차 60만대 수준으로 늘려 나갔다. 1998년 12월에는 연간 3만대 규모의 전자레인지 생산 공장도 세웠다. 삼성전자가 인도에 내디딘 첫발은 이처럼 소박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현재 인도의 전자제품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서 있다. 특히 LCD·LED TV 같은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세계적인 전자기업인 소니(SONY)의 추격과 경쟁을 가볍게 물리쳤고, 삼성전자보다 먼저 인도시장을 점유했던 LG전자와도 점차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인도시장에서 프리미엄 기업, 프리미엄 제품의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했다. 삼성전자 인도 현지법인에서 전략기획 부문을 담당하는 설훈(40) 차장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이 합쳐진 결과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부터 발효된 한·인도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 관계, 포괄적인 의미의 FTA)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불어닥친 2008~09년에도 인도는 6% 이상의 견고한 성장률을 보일 정도로 성장이 빠른 곳이다. 모바일폰 분야에서도 조만간 시장점유율 50%인 노키아를 제치고 삼성이 1위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인도에 2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델리 인근 도시 노이다와 인도 남부의 산업도시 첸나이에 각각 가전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노이다 공장은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화기 등을 만드는 복합 공장으로 운영되고 있고 첸나이 공장에서는 에어컨, TV 모니터, 세탁기가 생산되는데 올해 말에는 냉장고 공장도 준공될 예정이다.
삼성전자 인도법인은 앞으로 5년간, 매년 50% 이상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연간 성장률 50%? 과연 가능한 수준일까. 그러나 삼성전자 서남아 총괄을 맡고 있는 신정수 전무는 자신감을 보였다.
“얼마 전만 해도 삼성의 프리미엄 전략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도시장이 곧 폭발적인 증가를 보일 것이라고 판단한 삼성전자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과감하게 저기술·저부가가치 상품 라인을 없애거나 줄이고 프리미엄, 고부가가치 상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꾼 것이 지금은 매출, 브랜드 이미지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제3, 제4 공장도 지어야 할 겁니다.”
LCD·LED TV 시장점유율 1위
인도의 수도 델리 중심가에 자리한 삼성전자 매장에서 LED TV를 시청하는 인도 사람들.
시장을 세분해 보면 삼성전자의 독주는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40인치 이상 대형 LCD TV 시장에서 위력적이다. 삼성전자는 40인치 이상 LCD TV 시장에서 수량 기준으로 43.4%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2위인 LG전자(24.8%), 3위인 소니(24.1%)의 2배에 가깝다. 금액 기준으로 봐도 삼성전자는 44.3%로 소니(26.9%), LG전자(22.6%)를 압도한다. 초고부가가치 시장으로 평가되는 46인치 이상 LCD TV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아예 50% 이상의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인도 LCD TV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로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찌감치 ‘볼록TV’로 불리던 브라운관(Curved CRT) TV 판매를 중단하고 LCD 및 PDP TV 시장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양극화하는 인도시장의 흐름을 읽은 결과다. 삼성전자 측은 이를 두고 “프리미엄 제품 ‘씨 뿌리기’가 성과를 낸 결과”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는 인도 전역에서 운영 중인 300곳 이상의 단독 매장과 6만여 곳에 달하는 판매대리점을 LCD TV, PDP TV 중심의 고급 매장으로 바꾸는 매장 고급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최근에도 델리 등 주요 도시의 매장에서 LED TV를 출시, 프리미엄 TV 시장의 선도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7년 인도 남부의 첸나이 공장이 완공된 이후엔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남부시장 공략도 가능해졌다.
시장을 내다본 ‘프리미엄 전략’
삼성전자의 돌풍은 모바일폰 부문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 집약된 터치폰(‘스타’)과 현지 전력 사정을 반영한 태양광 충전 휴대전화 ‘크레스트 구루’가 호평을 받으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또한 옴니아2, 갤럭시 같은 스마트폰도 인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프리미엄 휴대전화 시장에서 쌓은 리더십과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8.4%(2009년 1월)에 불과했던 인도시장 휴대전화 점유율을 불과 10개월여 만에 15%로 2배 가까이 끌어올리는 깜짝쇼를 연출했다.
한낮 기온이 40℃를 넘나들던 6월7일, 기자는 델리 중심가에 자리한 삼성전자 매장을 방문했다. 휴대전화와 가전제품을 모두 취급하는 곳이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매장에선 한 달 평균 30만달러 이상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고가 상품으로 분류되는 40인치 이상 크기의 LED TV가 매달 150대 이상 팔린다고 매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에 들여온 3D TV도 반응이 좋다고 덧붙였다.
프리미엄 전략을 쓰는 브랜드답게 가전 매장에는 브라운관 TV, 단문 냉장고 같은 저가형 가전제품이 아예 없었다. 매장에서 만난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상위 1%의 인도 사람들을 위한 상품만 팔고 있다”고 강조했다. 델리 남쪽에 위치한 신도시 구르가온의 쇼핑몰에서도 프리미엄 전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 매장은 경쟁사인 LG전자, 파나소닉 같은 브랜드의 매장과는 진열된 상품 자체가 달라 보였다. LCD TV 등 고가 상품의 종류가 월등히 많았다. 우리나라의 어느 삼성전자 매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1인당 GDP 1000달러인 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매장에서 만난 한 인도인은 “LCD TV를 사려고 매장에 들렀다. 삼성제품이 다른 브랜드보다 10~20% 비싸지만 품질과 디자인이 다른 기업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 사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공격적 마케팅, 현지화 전략의 중심에는 삼성전자가 인도에서 운영 중인 2개의 연구개발(R·D)센터가 있다. 인도 남서부에 위치한 벵갈루루와 델리 인근 노이다에 있는 이들 센터의 연구인력만 4200명에 달한다. 특히 노이다 R·D센터에는 디자인연구센터도 운영되고 있어 인도시장 공략을 위한 전초기지 구실을 한다. 외국 기업 중 인도에 이 정도 규모의 연구센터를 보유한 기업은 삼성이 유일하다. 이는 삼성전자가 인도의 중요성을 그만큼 높게 보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연구가 한곳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2개 R·D센터에 연구인력만 4200명
그러나 삼성전자가 지금처럼 인도에서 자리를 잡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각종 사고로 사업 자체를 접어야 할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2005년에는 거래선에 문제가 생겨 인도에서의 사업을 통째로 접는 문제를 고민했다. 그러나 삼성은 포기하지 않고 인도시장을 공략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 기업인들의 기질이 충분히 발휘됐다. 설훈 차장의 말이다.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노력
“인도에서 사업을 하면서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인도를 이해하지 못해 생긴 일이었죠. 게다가 인도는 무엇이든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나라입니다. 중국과 비교하는 사람도 많은데, 인도는 중국과 여러 점에서 다릅니다. 중국의 경우 인구와 산업이 특정지역에 몰린 반면, 인도는 전국에 고루 분포해 있습니다.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가 35개밖에 안 됩니다. 선진 유통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죠. 85% 이상이 길거리에서 유통되는 식입니다. 한국 사람 특유의 도전정신이 아니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많은 일본 기업이 인도에서 실패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최근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의 성과에 자극받은 일본 기업들의 공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소니, 파나소닉 등은 아시아 시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인도 시장에 엄청난 물량공세를 해 삼성전자를 긴장시키고 있어요. 소니가 인도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LCD TV 시리즈인 ‘타이거 시리즈’는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상품입니다.”
글로벌 브랜드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인도에서 문화, 교육, 스포츠, 사회 복지 등에 관한 종합적인 사회공헌 활동 프로그램인 ‘삼성 희망 프로젝트(Samsung Hope Project)’를 가동해 존경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삼성전자는 인도 정부와 공동으로 인도 국민에게 존경받는 대문호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를 기리는 ‘타고르 문학상 (Tagore Literature Award)’을 제정, 얼마 전 첫 수상자 6명을 배출했다. 삼성전자 인도법인의 한 관계자는 “6월 초 이들 수상자가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왔다. 삼성전자 공장에도 이들을 초청해 선진기술을 경험하게 하는 자리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외에 인도 현지 NGO와 협력해 삼성전자의 생산시설이 있는 노이다와 첸나이 지역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위한 취업 교육 지원, 뭄바이 IT 교육센터 건립도 준비 중이다.
체육 분야에서도 이미 올림픽 때마다 인도 국가대표 선수단을 후원해왔으며, 올해 10월 델리에서 개최되는 영연방(Common Wealth) 게임, 아시안게임 등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 육성을 위한 지원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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