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11월 8일, 미국 국민은 538명의 대통령선거인단을 뽑는다. 이 가운데 270명 이상을 확보한 후보가 차기 대통령에 오른다. 전 세계가 이날을 주목한다. 힐러리의 인기가 다시 상승세를 타고, 트럼프의 막말이 논란을 낳으면서 미국 대선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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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당선되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여론 기류로 볼 때 아직까지는 클린턴 전 장관이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샌더스 의원의 추격세가 만만치 않다.
‘e메일 늪’에서 탈출?
최근 미국 사회에선 샌더스의 급부상이 화제다. 개천에서 용 난, 미국식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대표 사례이기 때문이다. 1941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페인트 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81년 무소속으로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선거에 도전해 당선된다. 이후 시장 4선, 연방 하원의원 8선을 거쳐 무소속으로 출마해 연방 상원의원에 올랐다. 현재 재선이다.놀라운 사실은 그가 좌파(민주사회주의)라는 점이다. 시카고대 시절 학생운동에 뛰어든 이후 베트남전 반대, 인종차별 철폐, 노동운동 등 줄곧 사회주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사회주의자가 드문 미국 사회에서 74세라는 고령에도 출마해 혁명을 외친다. 1%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99%는 정치참여마저 배제된 상황을 타개하려면 단순히 한 번의 선거 승리에 그쳐서는 안 되며 정치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출마 이유다. 정책 면에선 부의 재분배와 중산층 부활을 강조한다.
미국 사회의 빈부격차가 크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외면당했을 것이다. 2015년 4월 말 출마선언을 했을 때 그의 지지율은 8%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극심한 양극화에 지친 시민들은 이후 그에게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샌더스 의원은 네거티브 선거전도 거부했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겐 장관 재임 시절 개인 e메일 서버 사용, 1만2000여 개 e메일 메시지 삭제가 가장 큰 악재다. 그러나 샌더스는 민주당 대선후보 1차 토론회에서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창 이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 샌더스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을 앞서기도 했다. 그러니 굴러들어온 호재를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역전의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이후 클린턴의 지지율은 회복세를 보였고 샌더스와 격차를 다시 벌려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좌파 미국 대통령의 탄생 가능성은 사라진 걸까. 더 두고 볼 일이다.
‘미국판 허경영’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파리 테러에 이어 캘리포니아 주 샌 버나디노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도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총기 규제를 강력히 요구해온 민주당과 클린턴에게는 유리한 변수다. 클린턴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연일 ‘테러에 대응하는 것과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충돌하지 않는다’ ‘테러와 총기 휴대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하면서 공화당 후보자들에게 공세를 편다. 악재가 사라진 클린턴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민주당이 양자 구도인 반면에 후보가 난립한 공화당의 양상은 훨씬 복잡하다. 2015년 12월 4일 CNN-ORC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36%,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16%, 벤 카슨 경선후보 14%,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12% 순으로 ‘1강 3중’ 양상이다.
트럼프가 대선 본선에서 승리한다면 초유의 ‘막말왕’ 미국 대통령이 탄생하는 셈이다. 트럼프는 출마선언 직후부터 지금까지 막말과 말실수를 거듭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미국판 허경영’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적지 않은 전문가는 트럼프 열풍이 오래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엔 미국 언론도 그를 거부하려는 조짐을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2015년 11월 24일 사설에서 트럼프의 무슬림 혐오 발언에 대해 “그의 인종주의적 거짓말로 도배된 또 다른 한 주를 겪었다”고 했다. 1950년대에 매카시즘을 유발한 조지프 매카시의 발언과 그의 발언을 비교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도 11월 23일 사설에서 “트럼프는 거짓말을 퍼뜨리고 두려움에 호소하며 증오를 부추겨 주목을 받으려는 자기도취적 불량배”라고 비판했다. 참다 참다 폭발한 것 같은 논조였다.
도대체 트럼프는 어떤 발언을 내놓았을까. 그는 멕시코 이민자를 가리켜 “강간범” “마약 중독자”라고 했다. “9·11테러 당시 뉴저지에서 환호하는 무슬림을 봤다”고도 했다. 장애인 기자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 내기도 했다. 여성 앵커 메긴 켈리에겐 “켈리의 눈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아마 다른 어디에서도 피가 나오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삼성과 LG 제품을 미국에 팔면서 돈 한 푼도 안 들이고 주한미군으로 안보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사회에서 비주류이지만 비중이 늘고 있는 히스패닉, 무슬림, 아시아계, 여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일삼고 있다.
백인 주류의 욕구 분출?
이 때문에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거부반응이 상당하다. 공화당의 중앙당 격인 전국위원회의 공보 담당 리즈 메어는 트럼프 반대 단체를 결성했다. 다른 대선 후보들은 직접 나서는 대신 측근을 동원해 트럼프를 맹렬히 비난한다. 예를 들어 마르코 루비오 후보의 정책보좌관 맥스 부트는 “트럼프는 파시스트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쏘아붙였다. 젭 부시 후보의 국가안전보좌관 존 누난도 “트럼프의 주장은 파시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나치를 연상케 하는 트럼프 혐오 광고를 실었다. 이런 거부반응에도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난 트럼프의 지지율은 견고하다.그렇다면 막말하는 트럼프가 공화당의 지지율 1위 후보 자리를 계속 지키는 까닭은 뭘까. 그의 말은 미국 백인 주류사회의 억눌린 욕구를 어느 정도 분출해주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무슬림? 진짜 답 없다.” 많은 미국인이 외부 시선 때문에 이렇게 대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속으론 이렇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트럼프가 이런 속내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니 은연중에 트럼프에게 끌리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의 막말은 고도로 계산된 행위다. 트럼프의 주 표적은 젭 부시, 루비오, 카슨,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힐러리 클린턴이다. 대체로 정적을 목표로 삼았고 ‘말폭탄’을 인터넷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널리 퍼뜨린다. 더욱이 트럼프는 같은 공화당 후보들을 훨씬 자주 공격했다. 젭 부시는 ‘허약’, 루비오는 ‘재수 없는 자’, 칼 로브는 ‘광대’라고 낙인 찍었다. 이런 점은 트럼프가 공화당 1위 후보가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트럼프는 미국 주류 언론을 집중적으로 비난했다. 이것도 대중에게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고 한다.
‘공화당 내 진보’
트럼프의 막말 행진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가 공화당 후보가 된다면 막말을 접을까. 견해는 갈린다. 그의 막말이 그의 성격이나 말버릇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대선 본선에서도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 반면 그의 막말이 전략적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면 본선에선 달라질 수 있다. 그는 아마 본선에서 대중의 카타르시스(대리만족)를 위해 강한 어투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 입국 불허’ 같은 국제사회의 공분을 살 만한 막말은 자제할지 모른다. 지금까지 고도로 잘 계산한 막말로 공화당 1위를 먹었다면, 앞으로도 잘 계산한 말을 한다면, 트럼프는 미국 대선에서 진짜 일을 낼지도 모른다.공화당의 고민은 트럼프와 양자 구도를 형성할 만한 강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때 벤 카슨이 제2의 흑인 대통령 가능성을 보이며 돌풍을 일으켰다. 2015년 10월 몇몇 여론조사에서 여러 차례 1위에 오르며 트럼프를 위협했다. 하지만 막말과 비전 부족으로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말았다. 카슨의 막말은 트럼프와 유사하게 이민자에 대한 것이 많다. 이민자를 개에 비유하면서 “주변에 미친 개들이 활보하고 다닌다면 당신도 그런 개들을 좋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게 결정적이다.
문제는 그가 흑인이라는 점. 백인 트럼프가 그런 막말을 하면 백인 중산층이 환호한다. 하지만 흑인인 카슨이 똑같은 막말을 쏟아내면 백인 중산층은 냉담해한다.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이다. 흑인 사회도 백인 중산층 의식을 가진 카슨을 낯설게 여겼을 것이다.
카슨의 대안으로 떠오른 사람이 히스패닉, 그것도 미국과 오랫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한 쿠바 출신 마르코 루비오 후보와 테드 크루즈 후보다. 초선 상원의원이자 44세로 나이도 같은 두 사람은 TV 토론에서 맹활약하며 지지율을 높여가는 중이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루비오를 젭 부시 후보를 대신할 공화당 주류파의 대표 주자로 꼽으면서 크루즈와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의 거품이 곧 꺼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전제로 한 관측이다. 현재 카슨과 더불어 이 두 사람이 ‘3중’ 구도를 형성 중인데, 두 사람의 상승세를 고려할 때 향후 공화당 내 경선 구도는 ‘1강 2중’ 구도로 변할 수 있다. ‘1강 2중’ 구도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폴리티코의 예상처럼 ‘2중’이 ‘2강’으로 전환될 수 있다.
오차범위 내 접전
루비오와 크루즈 중 한 사람을 꼽으라면 루비오가 트럼프의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최근 TV 토론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루비오와 크루즈는 이민자 출신이지만 이민정책에서 상반된 입장을 보여 왔다. 크루즈가 공화당 내 주류에 코드를 맞춰 불법 이민자에 대한 불관용 노선을 취하는 반면 루비오는 이민자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 관점을 유지해왔다. 그는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100만여 명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이민 개혁을 추진할 때도 이를 지원했다. 그는 ‘공화당 내 진보’라고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이런 점으로 인해 본선에선 중도 표를 얻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민주당 1위 클린턴과 공화당 ‘1강 3중’의 가상 양자대결 결과는 어떨까. 의외로 백중세다. CNN 조사에선 클린턴-트럼프 49%-46%, 클린턴-크루즈 50%-47%, 클린턴-카슨 47% -50%, 클린턴-루비오 48%-49%로 나타났다. 카슨이나 루비오와의 양자대결에서 클린턴이 오히려 패하는 것으로 나오는 점이 눈에 띈다.
퀴니피악대 여론조사에선 클린턴-트럼프 47%-41%, 클린턴-크루즈 47%-42%, 클린턴-카슨 46%-43%, 클린턴-루비오 45%-44%다. 클린턴이 공화당 ‘1강 3중’ 모두에게 우세한 면모를 보인다.
그렇다면 민주당 내에서 클린턴과 양자 구도를 형성한 샌더스와 공화당 ‘1강 3중’의 양자대결은 어떨까. 의외로 샌더스가 강세다. 샌더스-트럼프 49%-41%, 샌더스-크루즈 49% -39%, 샌더스-카슨 47%-41%, 샌더스-루비오 44%-43%다.
누가 민주당 후보로 나서든 전반적으로 공화당 후보에 비해 강세를 보인다. 하지만 미미한 차이다. 우리로 치면 대부분 오차범위 내 접전인 셈.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더구나 캠페인은 시작도 안했다. 판세가 앞으로도 몇 번 요동칠 게 뻔하다. 지금 1위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기 어렵다. 2016년 2월 1일 아이오와 주 코커스(당원대회)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