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경제 코로나19 이전에도 건설 투자로 2% 성장 사수
세계경제 전망…스티글리츠·로고프 U자, 루비니 I자
韓경제, 생산·소비·수출 등 모든 실물 부문 타격
디플레이션 징조…고용은 IMF 수준 감소할 듯
2000조 원 넘는 부동산 금융부채, 경기 침체 뇌관
3월 13일 인적이 뜸한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상가에 휴업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1945년 이후 세계경제가 경기침체(recession) 상황으로 정의되는 경우는 대체로 2% 이하의 경제성장률을 보일 때였다. 세계경제는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 1990년대 자산과 부동산 경기침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침체 상황
3월 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머리를 감싸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날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내렸음에도 미국 증시의 주요 지수는 오히려 하락했다. [AP=뉴시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돈 경우는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5.5%, 오일쇼크가 있었던 1980년 –1.7%,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0.8% 등 세 차례 있었다. 지난해 1%대 성장의 위기에 처했지만 4분기에 건설 투자가 영향을 미쳐 2% 성장률을 사수했다. 즉 한국 경제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침체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위기 시나리오는 알파벳 모양에 빗대 LUVI로 정리할 수 있다. L자형은 경기가 하강한 후 장기 침체로 돌입하는 상황을 뜻한다. U자형은 경기가 하강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상승하는 경우인데, 급하강 후 천천히 반등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V자는 경기가 가파른 침체를 보였다가 급반등하는 경우다. I자형은 더블딥(Double Dip·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을 일부 포함하지만, 대체로 변곡점 아래로 추락하는 경제 상황을 나타낸다.
이에 더불어 나이키형 곡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용어다. 당시 경기가 급격히 주저앉으면서 전문가 사이에서는 V자형과 U자형 반등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빠른 회복인 V자나 느리지만 뚜렷한 성장인 U자형 모두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추세선의 꼬리 부분이 서서히 상승하는 모양을 놓고 나이키형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코로나19에 따른 세계경제 시나리오를 두고도 전문가마다 LUVI로 전망이 갈린다. V자로 보는 전문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전 의장인 벤 버냉키와 세인트루이스 연준 총재인 제임스 불러드, 골드만삭스 등의 투자은행(IB)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연율 기준으로 1분기 -9%, 2분기 –34%로 제시했다. 실업률도 올해 중반 15%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했으나 코로나19의 확산세 약화, 미국의 공격적인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에 힘입어 경제가 빠르게 살아나면서 3분기에는 미국 경제가 연율 기준 19% 성장률을 기록하리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비대면 접촉이 많은 제조업이 서비스업보다 빠른 반등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2%로 제시했다.
스티글리츠·로고프 U자, 루비니 I자
스티글리츠 교수는 2분기 말까지 코로나19가 사라진다고 확신할 수 없으며, 상황이 여름까지 이어지면 가계와 기업이 빚을 갚지 못해 파산에 직면하는 ‘금융 정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로고프 교수도 항공, 호텔, 금융 부문 등의 소규모 기업이 큰 피해를 보고 있으며, 3분기 V자 반등은 어렵다고 예측했다.
S&P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기존 1.0~1.5%에서 0.4%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률은 -1.3%, -2%로 예상했고, 미국의 경우 2분기에 경제성장률 –12%를 기록하리라 전망했다. 또 미국의 2분기 실업률은 10%, 특히 5월 13%로 정점을 찍으리라 내다봤다. 이후 미국 경제는 3분기에 반등한 후, 4분기에 성장세가 다시 둔화하는 나이키형이 되리라 전망했다. 즉 3분기의 급성장은 코로나19로 줄었던 수요가 일시적으로 강하게 나타난 결과로, 장기간 이와 같은 추세가 지속될 수는 없다고 보는 셈이다.
I자형을 주장하는 대표적 전문가는 뉴욕대 경영대 교수이자 닥터 둠(Dr.Doom)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교수다. 루비니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경제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대공황(great depression)보다 더 강력한 대공황(greater depression)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루비니 교수는 그 근거로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대공황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2008년 위기나 1920년대 말 대공황 당시 주식시장이 50% 폭락하고 경제성장률이 10% 이상 감소하는 데 3년이 걸린 반면,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는 단 3주 만에 미국 주식시장이 35% 가까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즉 루비니 교수는 소비, 투자, 수출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에 I자형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 등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가장 중요한 열쇠는 코로나19 방역이라고 봤다.
최근 유수의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평균 0.6%로 전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1.4%, 유로존 -3.1%, 중국 2.3%, 일본 –2.2%다. 이들 기관은 한국 경제성장률을 1% 내외로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중국에서 시작돼 2월 20일경부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이를 고려해 투자은행들은 한국 경제의 1분기와 2분기 성장률을 낮게 보고, 3분기와 4분기 성장률은 높게 예측하고 있다. 2020년 3월 현재, 한국 경제 올해 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0.9% 수준이다. 구체적으로는 최하 0.3%(골드만삭스)에서 최고 1.5%(UBS)의 분포를 띠고 있다. 2021년 전망치의 경우 최하 1.5%(BoA)에서 최고 3.2%(시티, 골드만삭스)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충격 이어지면 모든 실물경제 부문 타격
한국 경제의 L자형 장기침체 가능성은 매우 높다. 코로나19 충격이 2분기 말까지 지속되면 생산, 소비, 순수출, 물가, 고용 등 모든 실물경제 부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월 산업활동 동향에서 산업생산지수는 2월 20일 이후 본격화한 코로나19 탓에 제조업 –4.1%, 서비스업 –3.5%를 나타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69.9%) 이후 최저 수준인 70.7%로 집계됐다. 소매판매도 빠르게 줄고 있다. 의복 등 준(準)내구재 –17.7%, 승용차 등 내구재 –7.5%, 화장품 등 비내구재 –0.6% 등 모든 판매액이 감소세인 탓에 전체 소매판매액 지수가 전월 대비 –6.0%, 전년 동월 대비 –2.3%를 기록했다.특히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기점이 2월 20일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이날 신규 확진자 36명이 발생하면서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즉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2월 중에는 약 10일간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3월의 경우 한 달 내내 코로나19 상황에 직면한 터라 반영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3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단순 계산하면 2월의 3배인 –18%로 예상할 수 있다. 신용카드 승인액 역시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는데, 1월에 설 연휴 기간이 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2월에 전월 대비 -32%로 집계됐다.
코로나19가 2분기에 일정 부분 안정화 단계에 들어가면 그간 눌려 있었던 소비가 일시적으로 확대돼 3분기 통계에 반영될 수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월 막바지 10일을 반영할 경우 민간 소비는 1분기 약 9조 원 감소, 2분기 약 34조 원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비평활화(consumption smoothing·향후 소득 감소로 소비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소득이 많을 때 소비를 줄여 많은 저축을 한다는 이론) 때문에 코로나19 이전을 밑도는 소비 패턴으로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소비 감소가 코로나19가 끝나고 L자형 불황이 예상되는 국내 경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뒤 오버슈팅(경제에 충격이 가해져 물가나 환율 등이 일시적으로 폭등·폭락하는 현상)으로 경기 하락 폭이 일시적으로 더 커지고, 경기 진폭도 확대될 수 있다.
이미 디플레이션…취업자 수 110만 명 감소 예상
코로나19 사태와 경기 불황으로 인해 3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 상가에 임대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물가와 고용 지표도 심상치 않다. 경제 전반의 종합적 물가수준을 나타내는 GDP디플레이터는 코로나19 이전 이미 5분기 연속(2018년 4분기~2019년 4분기)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3월 소비자 물가는 1% 가까이 상승했으나,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계절 요인 등 주변 환경에 민감하지 않은 물품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물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0.4%를 나타내고 있다. 즉 이미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물가가 지속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하는 현상) 상태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산업생산지수와 고용동향 등을 고려하면, 올해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110만 명 정도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에는 전년 대비 취업자 수가 127만6000명이나 감소한 바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전년 대비 취업자 수가 8만7000명 줄어들었다. 업종별로 보면 운수창고업 –23만7000명, 음식숙박업 –15만7000명, 여행사를 포함하는 사업시설 등 임대사업 –15만3000명, 여가 관련 서비스업 –12만7000명, 보건복지 분야 –9만 명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추계된다.
종사상 지위별로 보면 임금근로자 –79만 명, 비임금근로자(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 등을 포괄) –31만 명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의 감소 비중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제 근로자와 비전형 근로자(파견, 용역, 특수형태근로 등)의 취업자 수 감소 폭은 도드라질 것으로 보인다. 연령대별로 보면 40대와 청년층에서 취업자 수 감소 폭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실물시장에서의 생산 및 소비 감소는 부채(負債)를 타고 금융시장으로 전이된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1791조 원)는 93%로 세계 7위다. 기업부채(1927조 원)는 101.1%로 세계 17위 수준이다. 부채 증가 속도는 최상위권에 속한다. 실물경제가 위축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연체가 발생하면 당연히 부채라는 뇌관이 터지게 된다. 2000조 원이 넘는 가계와 기업의 부동산 금융부채는 대규모 경기침체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라도 버블(거품) 상태에 있는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정책을 펴야 한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도 큰 변수다. 주식 및 채권시장 등에서 아직 큼지막한 수준으로 외국인의 자금이 빠져나가지는 않고 있으나,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후폭풍으로 예상보다 큰 충격을 받으면 외국인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장기 침체 대비 정책수단 고려할 때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경제에 닥칠 미래는 코로나19의 지속 기간, 특히 해외에서의 지속 기간에 달려 있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면 그만큼 소비는 일시에 증가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산업구조 등을 고려할 때 과거처럼 2% 이상 성장하기는 어렵다.장기 침체에 대비하려면 1990년대 이후 일본과 미국의 경기 대응을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은 확장적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쓰고도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행한 산업구조 조정 등에 힘입어 2010년대 경기 호황을 누렸다. 현재 한국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리스크 대비에 몰두하고 있으나 코로나19가 지나간 뒤 다가올 장기 침체를 염두에 두고 각종 정책을 펼쳐야 할 때다.
김상봉
● 1975년 출생
● 서강대 경제학과 학·석사, 미국 Texas A&M대 박사
● 現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 저서 : ‘브런치타임 경제뉴스’ ‘중급 행동경제학’ ‘거시경제학’ ‘EXCEL을 활용한 경제경영통계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