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인생 항로가 달라졌다” 코로나 청년 세대의 절규

[사바나] 격변의 시기 보낸 청년 4人의 바뀐 삶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04-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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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생 53.7% “코로나 이후 진로 변경 고민”

    • “정규직 하려고 퇴사했다가 다시 계약직”

    • ‘士자’ 붙은 직업 구하려 법학전문대학원 진학

    • 취직 대신 대학원 진학하려한 영화감독

    • 동기‧선배 얼굴도 못보고 軍 입대한 ‘프레시맨’

    • 성장기에 두 번 ‘사회적 충격’ 겪은 세대

    • 좌절·우울감 막을 장기 대책 필요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지난해 10월 17일 서울 종로구 대신고교에서 치러진 지방공무원 7급 공개·경력 필기시험장으로 응시생들이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17일 서울 종로구 대신고교에서 치러진 지방공무원 7급 공개·경력 필기시험장으로 응시생들이 들어가고 있다. [뉴스1]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첫 구절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도래한 2020년 청년세대가 겪은 청춘의 한 시기는 길었다. 

    정규직 취업을 바라며 퇴사했던 비정규직은 다시 비정규직 자리로 돌아갔다. 단편 영화제 경쟁부문에 당선돼 성공적인 데뷔를 했던 감독 지망생은 새 영화를 만드는 대신 대학원 원서를 썼다. 힘든 입시 생활을 지나 캠퍼스 생활을 꿈꿨던 20학번은 군에 입대해 진로를 고민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에 그들이 꿈꿨던 계획은 어그러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인생 항로를 수정해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9개월 만에 다시 비정규직으로…

    “6개월마다 재계약이 될까 매번 조마조마했어요. 2년간 일했던 회사를 나오며 이제는 계약직 대신 정규직으로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지난해 일을 그만둘 때쯤 코로나19가 터졌어요.”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A(29) 씨는 지난해 3월을 이렇게 회상했다. 2년 간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 면접을 봤으나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비자발적 실직자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일을 그만둔 지 1년 미만(2020년 12월 기준) 비자발적 실직자는 219만6000명으로 전년도(147만5000명)와 비교해 48.9% 증가했다. 비자발적 실직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직장 휴·폐업, 명예퇴직, 정리해고, 계약 만료 등으로 일을 그만둔 이들을 뜻한다. 

    A씨는 계약 만료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었다. 퇴직금을 받았고, 6개월간 월 170만 원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회사를 나올 때만해도 해가 바뀌기 전에 정규직으로 다시 취직하겠다는 꿈을 꿨다. 토익공부를 하고 온라인 글쓰기 강좌도 들었다. 

    실직에 있어 비정규직이 취약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코로나19가 지속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실직 격차’는 더 벌어졌다. ‘직장갑질 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코로나19 1주년을 맞아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실직한 비율은 17.2%. 비정규직 실직 경험률(36.8%)은 정규직 실직 경험률(4.2%)보다 8.8배 높다. 같은 기관이 조사한 지난해 4·6·9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실직 경험률 차이는 각각 2.4배, 6.6배, 7.3배로 높아졌다. 

    문제는 이들이 다시 돌아갈 자리 역시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A씨는 퇴사 후 6개월간 30곳에 지원했지만 단 두 회사에서 서류 통과 연락을 받았다. 이 중 최종 합격을 통보한 회사 역시 계약직 일자리다. A씨는 일자리를 더 알아보다가 지난해 12월 한 회사에 다시 취직했다. 2개월 계약직이었다. A씨는 “실업급여가 끊어지니 다시 계약직이라도 구해야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제로’ 공약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비정규직 숫자는 늘었다. 2월 16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경제활동인구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4년간 비정규직 근로자는 96만 명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53만 명), 이명박 정부(47만 명)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A씨의 말이다. 

    “주변에도 비정규직으로 일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기대는 점점 줄어든다. 코로나19가 끝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대한 ‘불평등의 기원’을 쓴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정규직 증가 상황이 가속화될 것이라 진단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정규직 증가 문제는 지금보다 10년, 20년 뒤를 걱정해야 한다. 정규직으로 취직한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일의 숙련도가 높아진다. 반대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청년들은 일을 제대로 배우는 기회를 얻지 못해 제대로 된 ‘커리어’를 쌓기 힘들다. 민간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야 해결될 문제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단기 공공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 수당을 지급하는 미봉책에 그친다.”


    공무원·전문직 찾는 청년들

    2월 17일 경기 수원시 경인지방병무청에서 입영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2월 17일 경기 수원시 경인지방병무청에서 입영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1학년 때 4학년 선배들은 ‘1년 정도 준비하면 좋은 데 취직하더라’라고 했어요. 그런데 4학년이 되고 보니 인턴 일자리조차 구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서울 소재 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4학년 김모(23) 씨의 말이다. 2019년 가을학기부터 2020년 봄 학기까지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3월 말 귀국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귀국 후 김씨는 동기들의 ‘달라진 진로’를 보고 취업시장 분위기를 감지했다. 회사 취직 대신 공무원이나 전문직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늘었다. 김씨는 “감정평가사, 회계사, 변호사 등 이른바 ‘사(士)자’가 붙은 직업이면 뭐든 해보려고 한다. 문과인데도 약사가 되기 위해 약학전문대학원 입시 공부를 하는 동기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도 졸업 후 기업에서 마케팅 직군으로 일하는 게 목표였으나 현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진학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대학생 10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53.7%는 “코로나19 이후 진로 변경에 대한 고민을 해봤다”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열 학생들의 ‘진로 변경을 고민’ 응답은 64.5%로 전체 계열 중 가장 높았다. 대학생들이 진로를 고민하는 이유로는 ‘일자리 수요가 줄 것 같아서’(28.9%), ‘전문성을 갖춰야 할 것 같아서’(24.5%)라는 응답이 많았다. 

    대학생들이 기업 취직 대신 공무원이나 전문직 진로를 결정하는데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달라진 채용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2019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수시채용으로 신입사원을 뽑기로 한 데 이어 LG그룹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시채용으로 전면 전환했다. SK그룹은 정기 공채를 단계적으로 줄여 수시채용으로 전면 전환할 예정이다. 

    통계로도 수시채용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2월 22일 취업정보사이트 ‘캐치’가 대기업과 중견기업 1468곳을 대상으로 상반기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상반기 채용 계획을 확정하지 않은 기업이 89.3%였다. 이중 수시 채용을 진행하겠다는 기업은 55%에 달했다. 

    수시채용은 사업부나 팀별로 필요한 인원이 발생할 때 공고를 내 직원을 뽑는다. 자격증이나 어학성적보다 각 부서에서 필요한 인재를 뽑기 때문에 인턴 등 관련 업무 경험이 중요해졌다. 

    김씨는 “수시채용이 일반화되며 대학생들은 취직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정보도 얻기 힘든 상황이다. 시험만 합격하면 자격증이 부여되는 전문직 시험에 매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언제 새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요”

    지난해 2월 영화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의 새역사를 썼지만 코로나19로 관객수는 전년 대비 4분의 1토막이 났다. 2013년부터 연간 2억 명 이상을 유지한 연간 관객수가 지난해 5962만 명으로 줄었기 때문. 

    영화감독 B씨도 지난해 호재와 악재를 동시에 겪었다. 그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주관하는 독립예술영화제작지원 사업에 당선돼 받은 지원금으로 단편 영화를 제작, 지난해 6월 제19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해 상영작으로 뽑혔다. 21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은 것. 미장센 단편영화제는 상업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의 등용문 역할을 한다. 영화 ‘군도’와 ‘공작’을 만든 윤종빈 감독, ‘추격자’ ‘곡성’으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이 이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상업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꼭 수상하지 않더라도 영화 상영 후 진행되는 뒤풀이에서 자연스럽게 업계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다. 유명 감독들도 영화제에 참석해 후배들을 응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 탓에 영화제는 온라인에서 진행됐다. 당연히 뒤풀이 자리도 없었다. 기회를 얻지 못한 B씨는 지난해 12월 대학 졸업 2년 만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대학원) 과정에 입학 원서를 썼다. 학내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는 대학원에 진학하는 게 새 영화 제작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원 불합격 통보를 받은 B씨는 영상제작업체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그는 다시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사업에 당선돼야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유씨는 “영화 시장은 기존에도 어려웠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산업 침체로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코로나19는 독립영화 시장에도 영향을 줬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2020년 한국 영화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제작편수 대비 개봉영화는 2019년 88.3%에서 2020년 67.1%로 줄었다.


    한 번도 학교를 가본 적 없는 학번

    캠퍼스가 아닌 군대에서 스무 살을 보낸 김모(20) 일병은 ‘한 번도 학교를 가본 적이 없는 학번’이라는 소리를 든는다. 

    지난해 2월 부산의 한 대학 작업치료학과에 합격한 김 일병은 캠퍼스 생활을 앞두고 기대에 들떴다. 고향인 경남 창원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할 예정이었다. 동아리에서 악기를 배우고 학교 동기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게 그가 바라던 새내기의 삶이다. 

    하지만 그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1학년 1학기를 경험했다. 코로나19로 수업은 전부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동기들을 실제로 만난 것은 전공수업 대면시험이 이뤄지는 중간·기말고사 때가 전부였다. 

    “집에서 침대에 누워 있다가 휴대폰을 켜서 수업을 들었어요. 강의에 집중하기도 어려웠죠. 저녁에는 동네 친구들과 술을 마셨어요. 인생에 한 번뿐인 새내기 시절을 이렇게 보내게 된 걸 서로 한탄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이 생활도 지루해지더라고요. 군대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지난해 7월 휴학을 결정했다. 비대면으로 낮아진 강의 질도 휴학에 영향을 미쳤다. 김 일병은 “작업치료학 전공 수업에서 인체 모형을 실제로 봐야 하는데 2D 온라인 화면으로 보다 보니 수업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막상 군대를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김 일병과 같은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 김씨는 지난해 9~10월 입대를 희망했지만 선착순 신청에서 밀려 12월 1일 입대했다. 

    최근 모집병 경쟁률도 높아졌다. 병무지원포털에 게시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3월 입대하는 공군 일반기술·전문기술병 경쟁률은 7.1대 1이었다. 지난해 같은 달 입대 경쟁률은 5.2대 1이었다. 3월 육군 동반입대병 경쟁률도 2020년 3.8대 1에서 10.1대 1로 뛰었다. 

    현재 김 일병은 군대에서 자신의 전공인 보건계열 외 다른 진로를 고려하고 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이다. 김씨는 “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이 복학생이 되는 건데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E)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청년과 코로나19’(Youth and COVID19) 보고서는 1990년과 2005년 사이 태어난 이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자신의 성장기에서 동시에 맞았다고 강조한다. 세계적 위기가 만들어낸 경제사회적 파장이 청년 세대 향후 고용과 건강 측면에서 장기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인생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 좌절감이나 우울감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코로나19 이전에도 청년 취업률이나 카드 연체율, 주거 빈곤율 등 악화한 수치가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이 더해진다면 이른바 ‘코로나 세대’가 겪는 문제는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에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비정규직 #대학생 #청년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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