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호

꼼꼼 시승기

저속에도 강력 파워 ‘친환경 자부심’은 덤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

  • 제주=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입력2016-05-04 14: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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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기가스 ‘제로’, 달리는 ‘음악감상실’
    • 리튬이온배터리 24분 급속 충전
    • 1회 충전 주행거리 180km…국내 최장
    • 2016 국제전기차 엑스포 첫 공개, 6월 양산
    제3회 국제 전기차 박람회 취재차 제주를 방문한 건 3월 23일. 제주공항에서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로 가는 길 창밖 풍경이 아름다웠다. 제주는 육지보다 몇 주 이른 시기에 벚꽃을 피워 올렸다. 봉오리들이 도툼하게 물이 올랐고, 양지 바른 곳 나무들은 이미 화려한 꽃을 앞다퉈 피워댔다.

    제주에선 전기차도 다른 지역보다 일찍 ‘개화’했다. 전기차 등록대수가 서울(1316대)보다 많은 2368대에 달하고, 급속 충전 시설도 49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GS리테일이 자사의 편의점과 슈퍼마켓에도 충전시설을 갖추겠다고 밝힌 마당이라 여건은 더 좋아질 듯하다.

    국제 전기차 박람회에선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IONIQ electric), BMW i3, 기아차 쏘울, 닛산 리프, 르노삼성 SM3, 파워프라자 라보피스 등이 출품돼 전시와 시승행사를 함께 진행했다. 제주도는 올해 국내 전기차 보급물량 8000대의 절반인 3986대를 보급할 계획인데, 4월 초까지 1527건의 공모를 받았다.



    “시동 걸린 게 맞나요?”

    전기차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활기를 더해간다. 세계 최대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는 지난 연말 한국법인을 설립했다. 최근엔 보급형 테슬라 모델3(1회 충전으로 320km 주행)를 내놓으며 1주일 만에 32만5000건의 사전계약을 접수했다. 한국 소비자의 주문량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말에나 출시되는 것을 감안하면 전기차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삼성SDI는 지난 1월 한 번 충전하면 600km를 달릴 수 있는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개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현재 국내 전기차 가운데 1회 충전으로 가장 먼 거리(180km)를 달릴 수 있는 차는 현대차의 ‘아이오닉 일렉트릭’이다.



    중문관광단지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시승하기로 했다. 이성호 현대차 과장의 안내를 받아 예약 시승차의 스마트키를 받아들자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평소 ‘친환경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일상생활은 친환경과 거리가 있었다. 1995년 지인에게서 중고차를 물려받은 이후 ‘건강한 BMW(자전거·지하철·걷기, Bicycle·Metro·Walk)’ 대신 안락한 자가 운전을 선호했으니 스스로 내세운 철학을 정면으로 거스른 셈이다. 지구의 미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의 주범 중 하나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임을 알면서도 온실가스를 펑펑 내뿜는 자가용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니 ‘배기가스 제로’ 자동차에 잠깐이나마 몸을 맡기는 건 개인적으로 꽤나 인상적인 설렘의 순간이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외양은 자그마하니 귀엽다고 할까. 준중형 아반떼 크기 정도의 콤팩트카 느낌이었다. 전기차는 전면 그릴이 독특하다. 그곳이 깔끔하게 막혀 있다. 우주선 앞쪽 같기도 하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공기를 받아들여 공랭식으로 엔진을 식히기 위해 그릴이 뚫려 있다. 전기차는 그럴 필요가 없는 데다 공기저항도 줄일 수 있어 앞부분을 막았다.

    그 아래쪽으로 모터가 열을 받는 정도에 따라 자동 조절되는 액티브 에어플랩이 장착돼 있다. 차체 바닥이 균일하지 않으면 공기 흐름이 큰 저항을 갖게 되는데,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언더커버를 씌워 이를 최소화했다. 또한 달리는 차와 부딪친 공기가 꼬이면서 발생하는 와류현상을 막기 위해 에어커튼을 정면 양쪽 가장자리에 달았다. 막혀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다.

    이성호 과장은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외관 디자인은 공기역학 성능에 최적화한 실루엣, 공기 흐름을 형상화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디자인됐다”며 “그 결과 공기저항계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0.24CD(Co-efficient Drag)를 실현해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승 구간은 왕복 4km. 시승 신청자가 워낙 많아 당일 신청한 경우 4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엔진 소리는 들리지 않고 ‘띵띵…’ 하는 소리만 난다. 어이쿠, 안전벨트 경고음이었다.

    “그런데 이거, 지금 시동이 걸린 건가요?”

    계기판에 불이 다 들어왔고 액셀러레이터도 밟았는데 소음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차가 너무 조용하다 보니 주변 보행자가 이를 의식하지 못할 수 있어 녹음된 엔진음 재생장치를 차량 외부에 장착하도록 규정할 정도다. 그래도 내부는 정말 조용해 음악을 감상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꿈의 연비’

    운전석 계기판 클러스터 왼쪽엔 파워, 에코, 차지(Charge) 등 주행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표시등이 있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으면 차지 상태가 돼 배터리가 충전된다.


    현대차가 공표한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평균연비는 국내 도입 전기차 가운데 최고 수준인 5.9km/kWh. 시승 중 스크린에는 평균 8.3km/kWh으로 표시됐는데, 7단계까지 있는 에코 드라이빙 모드 중 높은 단계로 운행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행 모드는 에너지 절약형인 에코 모드, 일반적인 노멀 모드, 에너지를 충분히 쓸 수 있는 다이내믹 모드 등으로 전환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는 여느 차와 비슷하지만, 전기차 관련 정보를 모아둔 ‘EV’를 누르자 충전소 위치가 가장 가까운 곳부터 나타났다. 배터리 잔량이 부족하면 자동으로 충전소를 안내한다. 제주는 전국에서 전기충전소가 가장 많은 곳이라 디스플레이는 ‘현위치 주변 전기충전소’가 64건(관속충전시설 포함)이라고 안내했다.

    리어뷰 미러에 비친 후방 유리가 상하로 분리돼 있어 처음엔 어색했다. 트렁크 리드 부분이 유리를 위아래로 나누는데, 이는 자동차 지붕의 70~75% 높이에 달한다. 후방 차체가 이 높이일 때 공기저항이 가장 적기 때문에 연비 향상을 위해 이런 디자인이 적용됐다고 한다. 익숙해지면 큰 문제가 없을 듯했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중문색달해변으로 향하는 대로로 들어섰다. 시승할 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액셀러레이터를 마음껏 밟을 때다. 액셀러레이터에 조금 힘을 주자 스포츠카처럼 차가 확 튀어나가는 느낌이다. 전기차들은 초반 토크가 강해 가속페달을 조금만 세게 밟아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이날 오전 다른 회사의 전기차를 시승하던 운전자가 같은 상황에서 가로수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이성호 과장은 “시승자들에게 거듭 주의를  준다”고 귀띔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모터 토크는 최대 295Nm으로 내연기관차로 치면 30kgfm 수준이다. 최대 출력은 88kW(120ps)로 동급 최고 수준의 동력 성능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는 10.2초(노멀 모드 기준)가 걸린다. 내연기관차보다 조금 더 걸리는 편인데, 이는 전기차가 변속기나 더블클러치 등을 쓰지 않고 감속기를 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전기차 모터의 회전수가 워낙 높기 때문에 이를 보정해 차의 실제 속력에 맞춰야 하다 보니 모터의 회전속도를 줄이는 감속기를 쓰는 것이다.

    변속기 기능은 스틱 형태가 아닌 전자식 버튼(SBW, Shift by Wire)이 맡는다. SBW 바로 뒤에 손을 올려둘 수 있는 팜레스트가 있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러 기어를 변속할 수 있다. 쉽고 빠르고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하다. 센터 콘솔엔 스틱을 없앤 만큼의 공간이 확보돼 신발을 놓아둘 수 있을 정도다.

    최고속도는 165km. 그러나 시승 구간이 정해져 있는 데다, 여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런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곳이 없어 아쉬웠다. 속도계 오른쪽엔 남은 전기로 갈 수 있는 거리가 표시된다. 1회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는 180km. 국내 전기차 중 최장 거리다. 28kWh의 고용량 리튬이온폴리머배터리가 장착돼 급속 충전엔 24분(100kW 급속 충전 기준), 주로 집에서 하는 완속 충전엔 4시간 25분이 걸린다.



    회생제동장치의 ‘마법’

    내리막길에선 회생제동장치를 활용해봤다. 회생제동장치는 친환경자동차의 핵심기술로, 브레이크를 밟을 때 모터가 발전기 노릇을 하는 것이다. 배터리 소모를 줄이고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회생제동 기능을 운전대의 패들 시프트를 통해 구현했는데 0~3단계 사이에서 설정할 수 있다.

    2km 전환점에서 화려한 동백꽃 그늘 아래 차를 세워두고 차 이곳저곳을 다시 살펴봤다. 먼저 보닛을 열고 엔진룸을 점검했다. 전기차 앞 트렁크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납축전지다. 엔진과 모터는 수랭식이다. 아이오닉은 지난 1월 나온 하이브리드, 6월에 나올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 함께 적용할 수 있도록 엔진룸이 설계됐다. 엔진룸은 내연기관차보다 덜 복잡할 뿐 아니라 빈 부분도 보였다. 충전 단자는 2곳으로 운전석 방향 2열 뒤편에 급속 충전구(DC차데모(CHAdeMO, 급속 충전기 규격) 방식), 1열 앞쪽에 완속 충전구(AC단상, 5핀)가 있어 충전 방식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엔진의 열을 회수해서 실내를 따뜻하게 하는 히트펌프도 눈에 띈다. 냉방 때는 기존 에어컨 가동 방식대로 냉매 순환 과정에서 주위의 열을 빼앗아 차가운 공기를 만들지만, 난방 때는 기체 상태의 냉매가 액체로 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차량 난방에 활용하는 기술이다. 기존 전기차가 난방 때 별도의 고전압 전기 히터를 사용하는 데 비해 히트펌프 시스템에선 냉매가 순환할 때 얻는 고효율의 열, 그리고 모터와 인버터 등 파워트레인 전장부품에서 발생하는 폐열(廢熱)까지 사용해 난방장치를 가동하므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운전석에만 부분적으로 냉난방할 수 있게 해주는 ‘운전석 개별 공조(Individual ventilation)’ 시스템도 적용됐다. ‘공조’는 공기 조절을 뜻한다.

    차 안에선 스마트폰을 무선 충전할 수 있다(아이폰은 아직 무선 충전이 지원되지 않아 코드로 연결해야 충전할 수 있다). 준중형 차엔 잘 적용되지 않는 퀼트형 가죽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헤드라이닝, 보조매트 등 내장재에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고 한다.

    기자의 시승 체험기가 너무 개인적인 것은 아닐까 해서 다른 시승자들의 의견도 들어봤다. 대체로 비슷했다. 다음은 제주도민 강현우(34) 씨의 시승 소감이다.  



    “충전소 더 늘어나면…”

    “무엇보다 소음이 적어 마음에 들었다. 일반 가솔린차보다 저속에서 힘이 좋은 것도 좋았다. 물론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큰 장점이다. 다만 아직은 충전시설이 충분치 않아 어려움도 있고, 보조금을 받아도 동급 가솔린 차보다 가격이 비싸 고민스럽다. 더욱이 아파트에 살면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완속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다니, 충전소가 좀 더 늘어날 때까지 기다려볼 생각이다.”

    전기차 공모에 참가했다는 중년 남성 김모 씨는 “배기가스가 없으니 친환경적이라 좋고, 올해 보급대수가 많다고 해서 신청했다. 여성스러운 디자인의 쏘울보다는 아이오닉 일렉트렉이 내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아 구매하려 한다”고 말했다.

    시승을 마친 뒤에 또 한 번 놀라운 경험을 했다.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타고 가속, 제동, 변속까지 자동으로 수행하는 것을 지켜봤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보여준 간단한 주차 시범이지만 자율주행 기능은 제대로 작동했다. 들고 탄 커피가 채 식지 않을 만큼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지 않아 다가올 자동차의 미래를 떠올리게 했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입력하기만 하면 사람은 뒷좌석에 편안히 앉아 독서를 즐기거나 퍼빙(Phubing, 주변을 무시하고 스마트폰에 빠져들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혹은 인공지능(AI) 자동차의 미래가 이미 내 옆으로 다가선 것을 확인한 하루였다.  

    아이오닉 일렉트릭 이모저모▼ 10년, 20만km 보증 혜택가(價) 2000만 원대 ▼
    친환경차 전용 모델 아이오닉의 두 번째 차량인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6월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제주 국제 전기차 박람회에서 곽진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장은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단 한 번의 충전으로 제주 일주도로를 거의 완주할 수 있을 정도로 긴 주행거리를 자랑한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전기차에 특화한 ‘아이오닉 일렉트릭 컴포트(comfort) 프로그램’을 통해 충전, 정비, 방전 등 전기차와 관련한 고객의 불안감을 최소화해 전기차 대중화를 선도할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은 △홈 충전기 설치 관련 상담과 유지, 보수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지원하는 ‘홈 충전기 원스톱 컨설팅 서비스’ △충전소의 위치 및 이용 상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모바일 서비스 △구매 후 3년 내 최대 2회 방전 시 인근 충전 시설로 이동할 수 있도록 무료로 지원하는 긴급 충전 지원 서비스(제주도에서 시범운영)를 제공한다.

    또한 현대차는 △국내 출시 전기차 중 최고 조건인 ‘10년 20만km’ 보증 △전국 최대 정비 네트워크를 활용한 전기차 전담 정비 거점 구축, 전기차 전담 정비 인력 육성, 전기차 전담 정비 거점 내 충전기 설치 등의 고객 관리 서비스도 실시한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에는 일반 강판보다 가볍지만 2배 이상의 강도를 지닌 초고장력 강판이 53% 적용됐고, 충돌 시 에너지를 흡수하고 승객실의 변형을 억제하는 기능을 갖췄다. 또한 7에어백(운전석, 동승석, 앞좌석 사이드(2), 전복 감지 대응 커튼(2), 운전석 무릎)과 앞좌석 어드밴스드 에어백 시스템을 모든 모델에 기본 적용했다.

    이 밖에도 △차량이나 보행자와의 충돌이 예상되면 차량을 제동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자동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AEB) △방향지시등 조작 없이 차선을 이탈할 경우 경고는 물론, 스티어링휠을 제어해 차선 이탈을 예방하는 주행 조향 보조 시스템(LKAS) △후측방에서 고속으로 접근하는 차량, 출차 시 측방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파악해 경고하는 스마트 후측방 경보 시스템(BSD) 등 다양한 안전사양을 적용했다.

    3월 4일 마감된 제주지역 1차 전기차 민간공모에서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전체 신청 차량의 65% 점유율로 7개의 공모대상 차종(승용 기준) 중 1위에 올랐다. 3월 18일부터 시작된 2차 공모에서도 1000여 명이 신청했다.

    전장 4470mm, 전폭 1820mm, 전고 1450mm, 휠베이스 2700mm 크기의 차체를 갖춘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주력인 N트림이 4000만 원, Q트림이 4300만 원으로 책정됐다. 판매가는 세제 혜택(개별소비세 200만 원, 교육세 60만 원 한도 감면)을 적용한 것이다. 올해 실시 중인 전국 지자체별 전기차 민간 공모에서 정부 지원금 혜택을 받으면 2000만~2500만 원(N트림 기준)에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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