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호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증세 논의하자”

원유철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입력2015-04-23 15: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성완종 파장으로 개혁 추진력 걱정…연금개혁 ‘올인’
    • 담뱃값·연말정산, 타이밍 놓쳐 혼란
    • 정부·청와대 헛발질에 당 부담 컸다
    • 사드 배치 찬성…5·24조치 전향적 자세 촉구할 것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증세 논의하자”
    원유철(53)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의 목소리는 확 바뀌어 있었다. 4월 12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잔뜩 풀이 죽은 듯 힘이 없었다. 나흘 전 국회 본관 정책위의장실에서 만났을 때의 우렁찬 음성이 아니었다.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빈소에 조문하고 올라오는 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비보를 접하고 당혹스럽고 걱정이 많이 됐다. 아무래도 우리의 개혁과제 추진동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개혁과제는 국민이 동의하고 공감해야 하는데 그런 힘이 안 실리면 큰 어려움이 따른다.”

    4선(경기 평택갑)의 원유철 의장은 2월 2일 유승민 의원과 새누리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경선에 출마, 이주영-홍문종 의원을 19표 차이로 꺾고 새 지도부에 입성했다. 박근혜 정부 3년차 집권여당 컨트롤타워로서, 삐걱대던 당정청(黨政靑) 관계에서 ‘당 중심 국정운영’을 약속한 그였기에 언론의 관심은 컸다. 당 지도부와 대통령비서실장, 국무총리가 비슷한 시기에 물갈이되면서 당정청은 모처럼 웃음꽃을 피웠고, 당과 대통령 지지율도 함께 올랐다. 그런 상황에서 대형 악재가 터진 것이다.

    “(성 전 회장과) 의정활동을 함께한 사람으로서 안타깝지만, 신속하게 검찰 수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 정책위의장으로서 많은 사람과 만나 의견을 조율한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만큼 4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을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정무형 정책위의장’



    ▼ 어려운 시기에 정책위의장이 됐는데.

    “원내대표-정책위의장 선거 때 당은 위기상황이었다. 대통령과 당 지지율은 모두 바닥권이었다. 우리 당 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위기의식 속에 유승민 원내대표와 나를 선택했다.”

    ▼ 당청 관계나 대국민 소통 부재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상대(이주영-홍문종)에 비해 친박(親박근혜) 색채가 옅은 게 득표에 도움이 됐다는 평이다.

    “지지율이 떨어진 건 담뱃값, 연말정산, 건강보험료 같은 국민과 밀접한 정책이 입안부터 발표까지 혼선을 빚고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은 정책이라고 판단해도 국민과 함께하지 못하는 정책, 국민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정책은 당과 정치권에 위기를 가져다준다는 걸 똑똑히 알게 됐다. 나는 ‘정책형’은 아니고 ‘현장형’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시대정신이란 게 있듯이 정무형 정책위의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했다.”

    ▼ 정책위의장이 정책형이 아니라니….

    “현장 목소리를 청와대와 정부에 전하라는 거다. 정책은 당 전문가들에게 자문하면 된다. 그래서 당선되자마자 50여 명으로 매머드급 정책위원회를 꾸렸다. 김무성 대표에게 말했더니 ‘그렇게나 많으냐’고 하기에 ‘내가 모르는 게 많은 데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나성린, 이만우 의원 등 경제 전문 의원들과,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9명의 의원을 부의장으로 뒀다. 나는 일종의 코디네이터인 셈이다. 임명장 수여식을 하는데 공간이 부족해 의원총회장에서 했다.”

    ▼ 경선 때는 ‘당이 중심이 돼 살아 있는 정책을 내보이겠다’고 했다.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보완, 건강보험료 정산은 ‘살아 있는 정책’인가.

    “정책도 타이밍인데 그걸 놓쳤다. 찬반(贊反) 문제를 떠나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환급 문제 등이 함께 몰아치면서 가뜩이나 힘든 서민이 화가 났다. 제때 설명이 안 돼 ‘세금폭탄’으로 느끼게 한 거다. 4월 건강보험료 정산은 우리(신임 지도부)가 일시납이 아닌 할부로 낼 수 있도록 하면서 그나마 성난 민심이라는 ‘뇌관’을 제거할 수 있었다. 연말정산도 세금이 늘어난 근로자의 세 부담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한중 FTA 가서명 연기 요청

    정부는 지난해 연말정산을 설계할 때만 해도 급여 5500만 원 이하인 경우 세금이 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독신자와 맞벌이 부부, 3자녀 가정 등 일부 가구에선 오히려 늘었다. 반발이 거세자 정부와 여당은 소득세법을 개정해 근로소득자 541만 명의 세금 부담을 덜게 했다.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는 전년도 보수를 기준으로 일단 부과한 뒤, 매년 4월 실제 보수에 따라 보험료를 재산정하는 방식으로 정산한다. 4월에 이미 납부한 보험료 차액을 정산하는 연말정산을 하는데, 최근 당정은 이를 할부로 납부할 수 있도록 했다. 내년부터는 ‘당월보수 당월부과’ 방식으로 바꾼다. 원 의장은 이 말을 하는 것이다.

    “국민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것은 시대별로 차이가 있다.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쳐 지금의 국민은 실사구시 차원에서 어떤 정책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를 살핀다. 품격 높은 ‘명품 정책’을 내놓고 승부를 거는 ‘정책 정당의 시대’에 본격 진입한 거다. 나는 이러한 여론을 정부에 전하고, 국민이 충격을 덜 받도록 타이밍을 조절해야 한다. 이번에 (연말정산 보완 등) 뒤치다꺼리하면서 많이 느꼈다. 그런 점에서 매머드급 정책위원회를 잘 활용할 생각이다.”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증세 논의하자”

    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정국 현안을 논의했다. 악수하는 원유철 정책위의장.

    ▼ 국민 눈높이도 높아졌고 당으로서도 민감한 시기다.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다(웃음). 사실, 4월에 건보료 문제도 있었지만 통행료 인상 등 각종 공공요금 인상 요청도 많았다. ‘타이밍을 봐야 한다’며 시기를 조절하자고 했다. 처음 공개하는 얘긴데, 정책위의장이 된 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가서명을 한다고 하기에 설 연휴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많은 사람이 귀성하는 설 직전에 가서명을 하면 중국 농산물 수입 문제 등으로 여론이 좋을 리 없지 않나. 좋은 뜻이라도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그래서 설 연휴가 지난 2월 25일 가서명했다.”

    ▼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나.

    “현장에서 나온 정책, 특히 민생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교섭실장 등에게 내가 직접 설명하고 가서명을 연기한 거다. 연기를 한 게 오히려 협상력을 높여 우리 의견을 관철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들었다.”

    부담 안고 연금개혁 하는 이유

    ▼ 담뱃값 인상이나 연말정산 문제도 논의했나.

    “말씀하더라. 난 대통령께서 모르는 줄 알았다. 대통령께서도 ‘정책이 굉장히 중요하다’ ‘국민의 도움을 받고 공감을 얻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통령도 생각은 같았다. ‘당정청은 삼위일체’라면서, 정책협의회를 구성해 자주 만나 협의하고 조율하자, 혼선을 일으키지 말자고 했다.”

    ▼ 그간 당정청 관계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정부와 청와대의 헛발질에 당의 부담이 컸는데, 지금은 삼각편대를 잘 이뤘다. 당정청의 한쪽이 무너지면 전체가 욕을 먹는다. 욕은 주로 당이 먹고, 선거로 심판받는다. 그래서 삼각편대는 서로 호흡을 맞춰 비행해야 한다. 이미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도 두 차례 했고, 고위당정회의도 했다. 비공개 회의도 많이 했다. 과거처럼 혼선을 빚거나 조율에 어려움을 겪는 건 없을 거다. 건보료 부과 문제도 잘 협의해 ‘할부 납부 시스템’을 만들었다.”

    ▼ 4·29 보궐선거도 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책은 신중할 수밖에 없을 듯한데.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은 공무원 연금개혁에 사실상 ‘올인’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보전액만 매일 80억 원씩, 내년부터는 매일 100억 원씩, 연간 3조7000억 원의 세금이 들어간다. 김영삼(YS) 대통령 시절부터 추진했지만 역대 정권은 하지 못했다. 그걸 하려니….”

    ▼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활동은 종료됐다. 국회공무원연금개혁특위 시한은 5월 2일까지 연장했는데.

    “솔직히 걱정된다, 정치하는 처지에서. 현실적으로 공무원과 그 가족은 꽤 많고, 지역에선 대부분 오피니언 리더다. 그러니 굉장히 부담스럽다. 그러나 개혁을 안 하면 국민, 공무원 모두 장기적으로 큰 손해다. 나라 전체가 부도나면 연금은 받을 수 없다. 공무원은 국가 운영의 중심이니 정부가 주도하는 공무원 연금개혁을 결국은 이해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정치권도 연금 문제를 매듭지으면 공무원의 명예를 드높이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

    ▼ 결국은 돈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134조5000억 원의 공약 가계부를 지킬 수 없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어려운데 세금을 올려서 되겠나. 경제활성화 관련법이 속히 통과돼 경제가 좋아지면 늘어난 세금으로 해보고, 안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 ‘해보는 데까지’가 어느 선인가.

    “지난해 예산이 380조 원 정도인데 복지 예산이 115조 원 정도다. 이러한 복지 예산을 일제 점검해 예산 누수, 중복지출 등을 확인해 5월에 논의할 거다.”

    ▼ 홍준표 경남지사는 무상급식비 지원을 중단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반가운 ‘애드벌룬’인가.

    “예전엔 가끔 통화했는데 최근에는 일절 못했다. 단체장이 ‘문제가 있다’고 선언하고 새 해법을 제시한 건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본다. 다만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이라 4·29 재·보궐선거 이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그는 ‘지상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지옥을 만들 수 있다’는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글귀를 인용했다. 무상은 좋은데, 현실적으로 안 되니까 잘못하면 지옥으로 갈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개헌 논의는 시점 늦춰야”

    ▼ 최근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원 의장의 지역구인 경기 평택에 사드 배치가 논의 중인 미군기지가 있는데.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주한미군과 그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커티스 스카파로티 주한미군사령관 말에 동의한다. 사드 배치를 통해 북한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키운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수단으로 검토해야 한다.

    북한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지력은 2가지다. 도발 전에는 우리 탄도미사일로 선제 타격하는 킬체인(Kill-Chain) 시스템으로 대비하고, 도발 후에는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로 방어할 수 있다. 그런데 킬체인과 KAMD는 2020년 중반에야 완성되는 데다, 북한 핵 미사일 위협을 완벽하게 방어하려면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고, 안보는 죽고사는 문제다. 사드 포대 추가 배치에 따른 비용 문제는 앞으로 논의해봐야 한다.”

    ▼ 남북관계는 더 꼬여가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메시지에 대해선 전적으로 찬성한다. 북한 정권이 가변적이고 폐쇄적이라 대통령의 제안이 수용되지 않아 안타깝다. 기본적으로 대북정책은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핵 문제에는 단호하고 강력하게 대응하되 인도적 교류와 경제협력은 함께해야 한다.”

    ▼ 천안함 폭침 후 대북 제재조치인 ‘5·24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에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다. 5·24 조치를 북한인권법과 함께 논의하니까 진전이 안 됐다. 이를 분리해 곧 당에서 의견을 낼 거다. 대북송금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면 홍역을 치른다. 그러나 막후 협상도 필요하다. 심층적으로 내부 토론을 거쳐 의견을 내겠다.”

    ▼ 개헌 논의는 어떤가.

    “나는 예전부터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7년 체제’는 현재의 헌법정신과 시대적 상황, 변화 욕구를 새로 담아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휘발성이 강해 자칫 당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킬 수 있다. 대통령은 ‘경제가 우선’이라고 하고, 일부 의원은 ‘개헌 논의는 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분란만 일으키고 성과를 거두지 못할 거라면 꺼내도 소용없는 것 아닌가. 개헌 논의는 필요하지만 시점은 늦추는 게 좋겠다.”

    허기, 패기, 끈기

    ▼ 4선이라는 선수(選數)에 비해 전국적인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스스로 부족한 걸 느낀다. 국회 국방위원장과 경기도당위원장을 할 때 경쟁자들에게 사전 동의를 얻고 무투표 위원장이 됐다. ‘무혈입성’을 했더니 내 이름을 알리는 데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정치, 노자의 무위(無爲)정치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정치를 하고 싶다. 사실, 욕심만 내고 자리만 차지하면 국민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잘 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보다는 계단을 오르면서 보이는 것들을 챙기고 싶다. 자리만 높아지면 뭐하겠나. 그런데 ‘계단형’으로 살다보니 19대 의원 하면서 최고위원 경선,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가 다 떨어졌다. 이번에 정책위의장 경선에서도 떨어졌다면 아내에게서 ‘삼진 아웃’ 될 뻔했다(웃음).”

    풍채 좋고, 성격도 원만해 보이는 원 의원은 언뜻 보면 부잣집 큰아들 인상이지만, 어린 시절 배고픔을 달고 살았고, 청소년기에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허기를 달랬다. 대학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군정종식’ 구호에 매료돼 무작정 통일민주당을 찾아간 게 정치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는 저서 ‘나는 오늘도 도전을 꿈꾼다’에서 1991년 무소속 최연소(28세) 도의원이 돼 4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자신의 삶은 ‘허기와 패기, 끈기의 연속’이었다고 썼다. 그런 그가 위기의 새누리당에 ‘용기’를 보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