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단 있어야 범죄수익 환·몰수 가능
現 몰수추징, 들키지 않은 수익 숨기란 신호
해외에선 수사와 동시에 재산 몰수
국내에도 관련 법 개정안 많지만…
[Gettyimage]
올림픽 펜싱 은메달리스트 남현희 씨의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 씨(가운데)가 11월 3일 오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서울동부지법으로 출발하고 있다. [동아DB]
물론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제도가 있다. 현행법상 한국은 보이스피싱, 전세 사기 등 조직적 금융범죄나 마약범죄는 기소 전 몰수 추징이 가능하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수익금을 숨겨두고 해외로 도주하거나 사망한다면 범죄수익 환수가 어려워진다. 법조계 관계자는 “범죄자가 수천억 원의 범죄수익을 얻고 사망해 버리면 남은 가족들에게는 좋은 조상으로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를 막기 위해 검찰은 ‘독립몰수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독립몰수제는 수사가 시작되면 기소나 판결과 무관하게 미리 범죄수익으로 추정되는 금액을 몰수하는 제도다. 범죄자가 해외로 도주하거나 사망해 재판 진행이 불가능할 경우에도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
범죄수익 초장에 못 찾으면 환수 어려워
기소 전 몰수추징과 독립몰수제는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크다. 법조계 인사의 설명에 기소 전 몰수추징은 수사기관이 법원에 몰수를 요청하고 법원이 이를 허가해야 비로소 몰수가 가능하다. 몰수가 결정되면 이 재산은 동결된다. 이 기간 범죄자는 수사기관이 몰수한 재산에 손을 댈 수 없게 된다.수사기관 관계자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때 수사기관이 찾아내지 못한 범죄수익이 있다면 이를 찾아내기는 더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재판이 진행되며 범죄자가 다른 수익을 숨길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렇게 숨겨진 재산을 추후에 발견한다고 해도 몰수 재판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이 관계자는 “추가 범죄수익을 찾는 수사가 진행되기 전에 이미 범죄자들은 관련 수익을 감춘 상태일 것이니 몰수할 수 있는 범죄수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 추정했다.
몰수 결정이 내려진다고 해서 전액 몰수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인용을 받은 범죄수익금 추징·보전액은 2020년 2조9170억 원, 2021년 5조9543억 원, 2022년 3조4480억 원이다. 올해 6월까지 추징보전액은 5조2216억 원. 하지만 환수된 범죄수익금은 2020년 1476억 원(5.1%), 2021년 1763억 원(2.9%), 2022년 1201억 원(3.5%), 올해 상반기는 696억 원(1.3%)에 그쳤다. 3년 6개월간 추징보전액은 17조5409억 원, 환수액은 5136억 원으로 환수율은 2.9%에 그친다.
범죄수익 은닉 차단 독립몰수제로 가능
반면 독립몰수제는 재판과는 무관하게 수사와 동시에 범죄수익으로 추정되는 재산을 몰수 대상으로 본다. 따라서 범죄자의 사망, 해외 도피 등으로 재판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다.이 같은 이점 때문에 미국과 독일에서는 독립몰수제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형법에 “기소나 유죄판결이 없어도 몰수 요건을 갖추면 몰수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독일 형사소송법에는 독립몰수에 대한 세부 절차도 마련돼 있다. 미국은 ‘민사몰수제’를 통해 피고인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불법 또는 범죄와 개연성이 있는 재산을 몰수한다.
법조계에서는 진작 독립몰수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2020년 논정법치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시절 법원에 낸 ‘독립몰수·추징제도에 관한 연구’ 용역보고서에서 독립몰수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논문에서 이 처장은 “범죄자에게 유죄판결을 하지 못하는 경우 범죄수익 차단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와 같은 공백 해결을 위한 입법적 해결 방법으로 독립몰수제를 제안했다.
국회도 독립몰수제 관련 입법에 나섰다. 20대 국회부터 독립몰수제를 기초로 하는 여러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개정안의 골자는 대동소이하다. 범죄인이 아닌 제3자가 범죄수익금을 취득한 경우, 범죄인이 사망한 경우, 몰수의 요건을 갖춘 상태에서는 공소제기를 하지 않거나 유죄판결이 나오지 않더라도 몰수·추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박성진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는 지난해 2월 발표한 ‘독립몰수제도 도입에 관한 최근 입법동향 및 개선방안’ 논문을 통해 “사회적 요구 및 국제기준 등에 비추어 독립몰수제 도입을 더욱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임을 부인할 수 없다”며 “독립몰수제가 성공적으로 도입돼 범죄수익이 결코 범인의 품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관련 법 개정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뉴스1]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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