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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혜(歸去來兮) 자, 돌아가자

전주 한옥마을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귀거래혜(歸去來兮) 자,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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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혜(歸去來兮) 자, 돌아가자

전주를 찾는 여행자의 다수는 여성이다.

이를 한눈에 완상할 수 있는 곳이 작은 둔덕, 오목대다. 고려 말, 왜구의 주력 부대가 경상도 상주 지역을 완파하고 함양에 집결한 후 남원 땅으로 밀려들어올 때 삼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 이성계가 운봉 넘어 황산 서북에서 적을 섬멸한 일이 있었으니, 황산대첩이라 한다. 대첩을 이룬 이성계가 전주에 와서 여러 종친이며 신하들과 승전고를 울리며 자축한 곳이 오목대다. 이곳에 올라 북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완만하게 펼쳐진 전주의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올해 3월, 정년퇴직한 이병천 씨가 한옥 게스트하우스 ‘귀거래사’를 마련한 곳은 오목대 바로 아래. 단아한 2층 구조로 정성껏 빚은 이 집에서 고개를 조금만 올려다보면 오목대를 포함해 전주의 수려한 풍광을 엿볼 수 있다.

“왕조 문화를 빼놓고 전주를 말하기는 어렵다. 전주 이씨, 이성계, 경기전 같은 정통 왕조 문화에 종택 가옥인 학인당이며 전주향교, 한벽루 같은 선비 문화가 몇 걸음 걸을 때마다 나타나는 전통적인 도시다. 그러나….”

이병천 씨는 이 대목에서 잠깐 숨을 골랐다.

“그러나 왕조 문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왕조 문화는 그 자체로 충분히 귀중한 문화유산이지만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요즘 문화콘텐츠다 스토리텔링이다 이런 말이 유행인데, 재해석이란 그런 ‘상품화’를 넘어서는 작업이다. 단순히 옛것을 구경거리로 맵시 있게 재현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 원형의 재현과 정신의 재창조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 전주는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

아닌 게 아니라 조선을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경기전을 거점으로 해 근대 문화유산의 백미로 꼽히는 전동성당, 옛것의 우아함을 간직한 한벽루, 전주 정신의 외형적 상징에 가까운 학인당, 그리고 가람 이병기 같은 근세기 큰 인물의 단정한 집들을 둘러보면 이병천 씨가 말하는 무한한 가능성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여봐란 듯이 남을 압도하는 그런 구경거리가 아니라 단단하면서도 우아한, 고즈넉하면서도 기품 있는 그런 문향이 전주의 골목마다 흐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번잡한 도시로 급변하는 것도 사실이다. 1977년 한옥마을보존지구로 지정된 후 전통한옥지구, 전통문화지역, 전통문화구역, 전통문화특구 등의 명칭으로 여러 번 바뀌었다가 2002년 10월 전주한옥마을이라는 명칭으로 결정된 곳이다. 교동(校洞), 풍남동(豊南洞) 일대 약 25만1856㎡(7만6320평)에 700채가량의 전통 가옥이 몰려 있어 결정된 이름이다.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의연하다 松菊猶存

이곳을 연간 500만 명 이상이 찾는다. 어떤 점에서 보면,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지만, 자칫하다가는 매우 빠르고 조급한 패스트시티로 변질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2014년 8월 현재, 한옥마을 구역 내의 상업시설이 무려 366곳을 넘어섰을 정도다. 한 집 걸러 하나씩 카페, 음식점, 찻집, 공예품점, 선물가게 등이 들어서는 중이다. 그나마 전주시가 건축물 높이와 층수를 하향 조정하고 담, 대문 간판 등에 관한 기준 규격을 마련했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서울의 홍대 앞이나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전주상업마을’이 되기 십상인 곳이다.

“그런 점이 있다. 벌써부터 한옥마을 복판 땅값이 평당 수천만 원이다, 이런 풍문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있다. 전통이니 한옥이니 문화니 하는 얘기는 뒷전이고 일단 가게를 얻어 젊은이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나 조잡한 액세서리 내다 팔고 뜨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 바람에 집주인들은 세를 올려 받는 중이고. 그렇기는 해도….”

이 대목에서 이병천 씨는 다시 한 번 숨을 골랐다.

“근데, 문화가 어디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신이라는 게, 아무리 상업 시설이 들어선다 해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사람 발걸음 소리가 줄어들 것이다. 무성하던 나뭇잎이 시들어도 나무의 가지와 줄기는 사계절을 버티는 법이니, 지금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것뿐이다. 전주의 문화와 정신, 그 줄기가 어디 딴 데로 가기야 하겠는가.”

그래서 내가 물었다. 왕조 문화? 왜 21세기 대명 천지에 왕조 문화를 그토록 칭송하는가. 기본적으로 이 한반도에 남은 모든 유무형의 문화유산은 어떤 의미로든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기에 보존하고 연구하고 재해석해야 한다. 전곡리의 구석기 문화에서 서울 경복궁의 왕조 문화, 경북 영주의 선비 문화, 산하 도처의 건축 문화, 광주광역시 시민항쟁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소중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전주는 경기전이나 오목대 같은 조선 시대의 왕조 문화만이 아니라 근대 문화유산도 풍부하다. 이에 대한 재해석 혹은 특히 근대 문화유산의 민중적 요소를 더욱이 강조해야 할 곳이 전주 아닌가, 그런 물음이었다. 이병천 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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