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영계곡. 해발 1000m가 넘는 통고산의 온갖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합류한 물이 우르릉 쿵쾅 소리를 지르며 내달린다. 수백 평은 됨직한 너럭바위들도 그런 물의 기세에 하얗게 질린 듯 말을 못한다.
백사장에 점점이 박힌 망양정의 해당화
하늘이 맑고 푸르면 바다 또한 쪽빛으로 여유롭게 가라앉는다. 두둥실 흰구름이 먼바다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하늘의 구름인지 바다의 구름인지, 하늘이 바다인지 바다가 하늘인지 모호해지고 갯바위에 오르면 하늘과 바다가 한몸이 되어 품안 가득히 달려든다.
관동제일경, 바다와 소나무의 조화
경북 울진 망양정(望洋亭)에 섰다. 옛사람들은 하늘과 바다가 하나되어 눈 가득 듦으로써 그 안에 빠져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는 묘책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소나무와 해당화가 바로 답이었다.
정자 바로 밑으로 붉은 옷 푸른 모자 장송(長松)을 심어 바다와 하늘을 단번에 보는 시선을 차단했다. 그래도 한눈에 안기려는, 일렁이는 바다에 넋을 앗길세라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해당화가 삐죽 고개를 내밀게 모래밭을 꾸몄다.
자, 이러니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푸르름 일색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또 찌푸린 날이라고 해서 하늘과 바다가 함께 잿빛으로 찡그리며 포효하는 모습만 보는 것도 아니다. 기품 있게 쭉쭉 뻗은 소나무 무리와 백사장에 점점이 박힌 여리여리 붉은 해당화들이 바다와 하늘을 가르며 한편으론 감싸안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관동의 명승을 꼽은 팔경 중 두 곳이 울진에 있다. 망양정이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월송정(越松亭)이다. 둘 다 출렁이는 바다를 내려보며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자들이다. 동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굽어보는 망양정은 관동팔경 중에서도 으뜸 경치라 하여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친필 편액을 하사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해변 정자 월송정은 만 그루가 넘는 빽빽한 송림에 둘러싸여 있다.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낮엔 백사장에서 활쏘기를 하고 밤엔 소나무 밭 위로 덩실 떠오른 모양의 정자에 올라 달을 농하며 시를 읊었다는 곳이다. 떠오르던 달이 정자의 팔작지붕에 걸려 밤새 씨름하다가 새벽에야 겨우 바다로 돌아가곤 했다고도 한다.
숙종 임금은 월송정에 올랐다가 그만 그 절경에 질리고 말았던 것 같다. 흥분한 기운을 감추지 않고 시를 지어 정자에 바쳤다.
‘화랑이 놀던 자취 이제 어디서 찾을 건고/ 일만 그루 푸른 솔이 빽빽한 숲 이룬 곳에/ 눈앞 가득한 모래밭은 백설마냥 희구나/ 정자에 올라 바라보니 흥겨웁기 짝이 없네.’
임금의 어제(御製) 시는 월송정의 자랑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260여 년이 지난 1980년, 대대적 복원공사를 통해 옛 모습을 되찾은 월송정에 당시 대통령 최규하씨는 붓으로 쓴 ‘越松亭’ 현판을 내려보냈다. 임금과 대통령이 보낸 글자의 수에서 그들의 멋과 정취, 그리고 재임기간까지 상정해보는 것은 월송정을 찾는 또 다른 재미다.
불영계곡의 물소리는 깊고 웅장하다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리는 불영사 계곡도 1984년 울진-영주간 36번 국도가 확장 포장된 뒤에야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서면 하원리까지 15km에 이르는 이 협곡은 신선이 구름을 타고 노닌 곳이 예구나 싶을 정도의 선경이다. 왕피천이 심하게 휘돌며 급한 물살을 이루고 주변 산을 깎아먹으면서 만든 100m쯤 높이의 기암절벽이 돌고돌아 끝도 없이 이어진다.
해발 1000m가 넘는 통고산의 온갖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합류한 물이 우르릉 쿵쾅 소리를 지르며 내달리고 수백 평은 됨직한 너럭바위들도 그런 물의 기세에 하얗게 질린 듯 말을 못한다. 워낙 계곡이 깊고 물소리 또한 웅장해서인가, 새들조차 계곡으로 내려갈 엄두를 못 내고 길가 전봇대에 몰려 앉아 천리 땅 끝을 망연히 내려본다.
우리의 화백도 불영계곡의 웅장함에 넋을 놓았다. “어떤 붓으로도 이 깊고 푸르고 무겁고 듬직하며 상상을 끊는 절경을 다 그려내진 못할 것”이라더니 “멋진 바다에 멋진 내륙의 협곡까지 왔으니 작업일랑 나중에 생각하고 그냥 쉬었다 갑시다” 하며 붓을 내린다. 문득 우리의 화필기행도 이 울진에서 끝날 듯한 예감이 든다.
절집 연못의 자라들은 비구니의 심성을 닮은 듯하다
애초 절터 연못에 있는 아홉 마리 용을 쫓아내고 절을 지어 구룡사로 불렸으나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항상 못에 비치는 걸 보고 불영사로 개명했다고 한다. 부처 형상이 비친 그 연못엔 어른 팔뚝보다 큰 비단 잉어들이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다. 연못 안 바위섬에는 자라 수십 마리가 떼지어 올라앉아 여름 햇볕을 즐긴다.
자라들은 이따금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관광객들 사이로 기어다니기도 하는데 전혀 겁이 없다. 한마디로 여유만만이다. 번뇌를 벗어던진 비구니들의 깨끗한 심성에 감화되어서일까, 손으로 잡아도 발버둥치지 않는다. 세상 밖에서야 지지고 볶으며 싸움을 하건 말건 산사의 오후는 잉어와 자라와 사람과 산새 같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울린 가운데 빠르게 저물어간다.
죽변항의 새벽은 경매사의 손종 소리와 함께 열린다
과거에는 중매인들이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값을 불렀으나 요즘엔 작은 목판에 백묵으로 가격을 적어 경매사에게 보여주는 간편한 방식으로 바꾸었다. 경매사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건을 제시하면 중매인들은 다른 사람이 볼세라 목판을 가리고 바삐 가격을 적는다.
경매사가 한 명 한 명씩 중매인의 목판을 가져가 가격을 보는 사이 일부 중매인은 경매사 표정을 읽고 한번 썼던 가격을 재빠르게 고쳐 제출하는 등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목판을 다 보고 난 뒤 경매사는 선창이 쩌렁쩌렁 울리게 “00번 경매인, 15만3000원이요”라며 낙찰되었음을 알린다.
깊은 산속 노송 아래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염소떼
“바다와 계곡, 산과 강의 절경이 교향시처럼 어우러져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고장”이라고 자랑하는 곳이 울진이다. 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넋을 앗긴 뒤 이튿날 죽변항의 새벽을 여는 보통사람들의 활기찬 사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교향시의 한 부분으로서 손색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