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이란 게 참 이상하다. 본업보다 취미를 더 열정적으로 하니 말이다. 학창시절 운 좋게 여러 악기를 만져볼 수 있었던 그는 본업을 만화가로 정한 뒤에도 클래식 음반과 책들을 하나 둘 사 모았다. 그림 그리는 실력은 큰돈을 벌 때보다 공연장에서 음악가들과 가까워지는 수단이 될 때 더 만족스러웠다. 고전음악은 이제 팔순을 넘긴 그의 장수비결이자 변치 않는 동무다.
1960년대 CF계에 애니메이션 바람을 일으켰던 그가 10여 년 전부터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1990년대부터 ‘지그재그 변주곡’ ‘지휘자들의 익살’ ‘음악가를 알면 클래식이 들린다’ 등 클래식 관련 책을 여러 권 냈을 정도. 몇 해 전부턴 일산의 고전음악 카페 ‘돌체’와 양수리의 카페 ‘왈츠·닥터만’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음악 해설도 하고 있다.
그가 30년 넘게 살고 있는 마포의 2층짜리 단독주택 거실엔 CD와 LP판, 각종 클래식 관련 책들이 벽을 두르고 있었다. 하나 둘 모은 CD가 4000여 장, LP판이 2000여 장, 녹음 테이프가 1000개가량 된다. 두꺼운 클래식 개론서에서부터 여러 음악가의 악보집까지…. 대학시절부터 꼬박 60년간 모은 것이다.
신 화백이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마다 음악 해설을 하는 일산의 음악 카페 ‘돌체’를 찾아 공연 포스터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클래식 중에서도 실내악, 특히 현악 4중주를 즐겨 듣는 신 화백은 음반 7000여 장을 소장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즐기는 생활이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오래된 전축에 아끼는 음악가의 LP판을 올려놓고 크림을 타지 않은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인다.
대화 도중에도 아끼는 음악가의 연주를 잠깐씩 들려주고, 책들을 꺼내 보이며 음악가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는 그의 모습엔 고매한 교양인의 거드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만화가이다 보니 음악가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알아요.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책을 썼는데, 전문가들도 가끔 내 책을 재밌게 읽었다고 해요. 하지만 난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죠. 내가 설사 연주자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 화백은 함북 회령이 고향이다. 그는 경성중학교 시절 스쿨밴드에서 여러 악기를 다뤄봤다. 바이올린, 트럼펫, 클라리넷….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어수룩하게 익혔지만 대학 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발판이 됐다. 서울대 예과에 진학한 그는 의대, 공대, 자연과학대 학생들이 모여 만든 서울대 사이언티스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제2 바이올린을 맡았다. 비로소 전공자의 지도를 받았고, 베토벤과 하이든 교향곡 중 비교적 쉬운 곡들을 연주했다.
신 화백의 스케치북은 공연장에서 그린 연주자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벽에 걸린 그림들은 그가 공연장에서 한 스케치를 확대하고 채색해 완성한 작품들이다. ‘돌체’ 김종수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신 화백(오른쪽).
신 화백은 여전히 담배와 술을 ‘적당히’ 즐긴다. 운전면허가 있지만 자동차 없이 생활하는 그는 어딜 가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집 근처 공원에서 부인과 산책하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한다. 세월이 흐르고, 지인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면서 그는 부쩍 ‘음악 좋아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음악에 대한 조예는 그가 만화가로 성공하는 밑거름이 됐다. 만화영화는 아이디어와 그림 실력, 음악적 소질과 과학적인 지식, 이 4박자가 맞아야 하는 분야다. 그리고 만화가라는 직업은 그를 ‘운 좋은 음악애호가’로 만들었다. 그는 러시아의 보로딘 4중주단, 영국의 린제이 4중주단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우정을 나누고 있는데, 그 계기가 바로 그림이었다. 공연장에서 즉석으로 연주자를 스케치한 그림을 보여주면 음악가들은 너나 없이 좋아라했다.
신 화백이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담배를 여러 개비 피우고, 술 약속을 잡는 전화 통화에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 그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절제된 생활은 아닌 듯싶다. 순전히 좋아서 매달려온 그것, 변치 않은 소리로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을 만든 음악가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