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명사 에세이

정치인의 성대

  • 최홍식 |연세대 의대 교수

    입력2017-04-10 10: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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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비인후과 의사다. 후두질환과 음성장애가 전공으로, 음성클리닉을 운영한다. 환자 가운데 직업적으로 목소리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성악가, 가수, 교사, 학원 강사, 성직자, 성우, 연극인, 아나운서, 정치인 등의 직종에 종사하는 분에게 건강한 성대(聲帶) 기능을 유지하는 건 퍽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20여 년 사이에 흥미로운 변화가 두 번 있었다. 음성클리닉을 방문하는 환자 수가 이전에 비해 갑자기 늘어난 사회현상 말이다.

    첫 번째 현상은 20여 년 전 수년에 걸쳐 발생했는데, 우리 사회에 ‘노래방 문화’가 급격히 보급되면서 생겨났다.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너무 과하게 노래 부르며 놀다 성대를 혹사해 혹(성대 폴립)이 생겨 쉰 목소리가 남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노래방 기계의 발달로 노래를 부른 뒤 점수가 공개되면서 남의 점수보다 자기가 부른 노래의 점수가 낮은 것에 실망해 음성클리닉을 찾아 발성 훈련 받기를 원하는 환자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두 번째 현상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로 인해 발생했다. 우리 국가대표팀이 기대 이상의 4강 기적을 이뤄내는 동안 길거리 응원이 성대하게 펼쳐졌고, 많은 사람이 거리와 경기장에서 소리치며 응원했기 때문이다. 그 직후 우리 음성클리닉을 찾은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기억이 새롭다.





    ‘광장 정치’의 목소리

    사람의 목소리는 성대에서 주로 만들어진다. 폐로 흡입된 공기를 성대 쪽으로 지속적으로 보내면서 양쪽 성대를 가운데로 모아 적절한 틈을 만들어주면, 성대 점막 사이로 지나는 공기가 점막을 닫았다 열었다 하는 주기적 개폐운동을 시작하고 그것을 유지하면서 ‘성대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성대음이 소리의 통로인 ‘성도(소릿길)’에서 적절히 공명과 조음(調音) 현상으로 말소리 혹은 노랫소리를 만들어낸다.

    잘 훈련된 성악가나 가수, 아나운서들의 목소리가 성대에서 만들어지고 조음, 공명되는 현상을 음성클리닉의 여러 장비로 기록해놓은 것이 많은데, 정말 신기하고 놀라울 만큼 일반인에 비해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 감탄을 금하지 못할 정도다. 나는 나한테 검사받는 유명 성악인이나 가수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자료를 받아놓은 경우가 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실 수 있는지요? 선생님의 발성 때 보이는 성대의 미세한 움직임에 관한 동영상을 교육용으로 학생들에게 공개해도 좋을는지요? 이게 유명인의 성대인데 여러분도 잘 훈련받으면 이런 발성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고 공개해도 될까요?”

    대다수 대상자가 기꺼이 허락해 많은 자료를 보유하게 된 것이 우리 음성클리닉의 자랑이며, 학생 및 전공의 교육에 아주 귀중하게 사용되고 있다.그동안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로 대변돼온 국민 정서의 극명한 이분화가 걱정이다.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 염려되고, 잘 해결되길 기도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음성클리닉 환자의 폭주가 예상돼 걱정되기도 한다. 바로 ‘광장 정치’ 때문이다. 수많은 대중 앞에서 큰 소리로 자기 생각을 표출하고 호소하려면 아무리 좋은 마이크와 앰프 시설이 갖춰져 있어도 오랜 시간 큰 소리를 내야 하므로 성대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참석한 많은 군중도 흥분하면 큰 소리를 지르게 되니 성대에 무리가 오게 된다.

    나는 음성클리닉을 찾은 수많은 정치인의 성대를 관찰한 적이 있다. 이번 탄핵 사태에 이어 치러질 대선이 있기에 정치인들의 성대 관리가 벌써부터 걱정된다. 그들의 성대를 진찰하고 관찰할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마음속으로 해왔다.
    ‘이분이 정치를 하면서 이 성대를 통해 진정 백성을 위한 목소리를 내면 좋겠습니다. 거짓 아닌 진실을 외치는 파수꾼 역할을 감당하길 바랍니다.’



    세종대왕의 성대 닮기를…

    5월이면 ‘스승의 날’로도 정해진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맞게 된다.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정치지도자로 공인받는 세종대왕은 수많은 업적을 쌓았기에 가장 큰 스승으로도 섬김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위대성은 ‘정말로 백성을 사랑한 정치지도자’라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종이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이 잘살게 되길 바라면서 그들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훈민정음’의 창제야말로 최대 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훈민정음 모음(홀소리)과 자음(닿소리)의 글 모양을 만들기 위해 조음 시 성대와 성도의 모양을 수도 없이 반복해 상상하고 소리 내어 보고 그림으로 그려보길 반복했을 세종임금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분은 발성 시 성대 모양을 얼마나 보길 원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시경과 엑스레이 장비 등을 가지고 가서 그분의 의문을 풀어드릴 수 있을 텐데….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어쨌든 현시대 우리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도 세종성왕의 마음을 헤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백성을 사랑하고 좋은 정치를 펼치기 위해 수많은 경연(經筵)을 신하들과 진행하며 사회를 보고, 본인의 정치적 견해를 설파했을 세종의 성대를 닮아가는 정치인들이 되기를 올봄엔 특히 기대해본다.





    최홍식

    ● 연세대 의대 졸업
    ● 한국음성과학회 회장, 대한음성언어의학회 회장
    ● 現 연세대 의대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과장,
    후두음성언어의학연구소 소장,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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