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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정책, 패러다임을 바꿔라

‘약소국 현실주의’극복하고 ‘세계질서 관리’ 나서야

한국 외교정책, 패러다임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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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정책, 패러다임을 바꿔라

동티모르의 평화유지를 위해 파견됐던 상록수부대 1진 대원들의 귀환 환영식. 상록수부대 파병은 한국의 국력이 성장함에 따라 높아지는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 요구에 적극 대응한 사례다.

그러나 관성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우선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한국은 부강한 나라인데도 한반도를 넘어서는 역할과 책임을 짊어지려 하지 않는, 이기적인 국가라는 비난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이 협소한 시각과 소극성을 고집하면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당할 날이 곧 닥칠 수 있다. 이제는 국력에 맞게 경제원조, 분쟁해결, 평화유지, 국제질서 유지, 인류 보편의 가치 증대에 기여할 시기가 온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한국의 국익(國益) 범위가 한반도에서 세계시장으로 넓어졌다.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불안요인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국의 국익에 영향을 준다. 중동의 불안이 한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 동남아시아 테러사태가 한국 경제와 재외국민에게 끼치는 영향, 미국의 안보 및 경제 불안이 한국의 금융·자본시장에 끼치는 영향 등이 그것이다. 미국에만 의존해 앉아서 기다리기에는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1997년 금융위기 때 미국이 보인 소극적 태도,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방적인 한미동맹의 재조정 과정,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의 북폭(北爆) 계획 등을 봐도 알 수 있듯, 미국이 항상 우방으로서 한국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한국과 자국의 이익이 상충할 경우 한국의 이익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최전방기지로서 한국의 가치는 과거와 달리 급격히 떨어졌음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지만 미국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할 시기는 지나갔다. 이제는 우리의 국가적 목표가 무엇인지 재확인하고, 국가적 능력과 외교환경 역시 엄밀하게 파악해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 최적의 외교수단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다. 외교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연성 권력(soft power)의 중요성

외교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현재도 ‘국가의 안정과 번영’이라는 국가 목표가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시대가 요구하는 안정과 번영은 예전처럼 특정체제의 안정이나 국가적 부(富)의 증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계화 시대를 사는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윤택한 생활을 더욱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국가 이익의 개념이 ‘국민 이익’의 개념으로 전환하고 있다.



한편 우리의 능력은 국력과 환경에 좌우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력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상승했다. 경제 총량에서는 세계 11위이지만, 우수한 인적자원과 문화력, 기술 능력과 혁신 능력, 애국심, 위기극복 능력 등을 포함하면 국력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여기에 우수한 한미연합 군사력을 포함하면 한국은 이른바 ‘10걸 국가’로 진입할 수 있다.

변화한 외교환경은 한국의 국력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냉전종식 이후 강대국들은 세계화라는 바다에서 모두 한 배를 타고 서로 협조하며 풍랑을 헤쳐 나가고 있다. 서로 경쟁하긴 하지만, 이는 배에서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지 상대방을 배에서 밀어내려는 경쟁이 아니다. 주요 강대국간에 상호공존의 신뢰는 이미 쌓였으므로 공존의 규칙을 누구에게 유리하게 하느냐를 두고 겨루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 군사력이나 강압적 압박을 사용하는 것은 한 배 타기를 거부하는 것이므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외톨이가 되는 외교적 실패로 연결된다.

따라서 국력의 의미에선,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경성 권력(hard power) 못지않게 상대방의 호감을 빼앗아오고 자발적으로 협조하도록 만드는 연성 권력(soft power)이 중요해졌다. 이미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기본가치로 하는 강대국 사이에는 무력을 통한 갈등해결이 아니라 협상과 협의를 통한 갈등해결이 외교의 주요 패턴이 됐다. 19세기적인 세력균형보다는 다양한 사안별로 국가간 연합을 달리하는 사안별 연합이 주요한 외교패턴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러므로 19세기 세력균형의 사고로 가상의 적(敵)을 규정해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경성 권력의 균형전략을 취한다면, 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외교다.

이 같은 요인을 고려할 때 한국은 미국을 포함한 다른 강대국과 함께 경쟁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좀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외교를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량과 주변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한국 외교의 비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세계질서 관리연합’의 일원으로

한국 외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추구하는 방향은 간명하다. 이전의 패러다임은 한국을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종속변수로 놓았고, 따라서 한국 외교는 미국에 수동적이고 반응적(reactive)이었다. 이제는 여타 강대국과 함께 같은 배를 타고 세계의 질서를 관리하는 독립변수로 한국의 위치를 바꿔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다른 강대국과 함께 해결하는 세계질서 관리연합의 주도적 일원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이 세계질서의 관리를 위한 분업구조에 주도적인 일원으로 참여하려면 먼저 우리가 어느 범위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외교자원을 활용해야 하고 또 어떠한 외교기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구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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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gnl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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