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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而不和’ 넘어 ‘和而不同’의 시대로

진보는 도덕적 우월감 버리고, 보수는 권력 강박증 벗어나라

‘同而不和’ 넘어 ‘和而不同’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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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주의자들은 ‘정의의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합의에 이를 때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同而不和’ 넘어 ‘和而不同’의 시대로
어느 사회나 이념적 갈등구조가 있게 마련이지만, 참여정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불거진 보수와 진보의 갈등 양상은 해방 공간을 떠올리게 할 만큼 격렬하고 살벌하다. 보혁(保革) 양세력은 국가보안법 개폐, 행정도시 이전, 사학법 개정, 과거사 규명, 부동산 규제 등 각종 정책에서 격돌했고, 최근 ‘강정구 파동’에서도 충돌했다. 이제 진보와 보수는 국가 기념일 행사도 한자리에서 갖지 않는다. 3·1절이나 광복절에도 ‘그들만의 기념식’이 열릴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논쟁이 벌어지면 흙탕물 싸움만 할 뿐, 심판관이 없다. 설사 경륜과 식견을 갖춘 원로(元老)가 바른말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별꼴 다 본다’는 식의 천박한 반응만 쏟아지고, 귀에 쓴 말은 아예 들을 자세가 돼 있지 않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권력을 빼앗긴 이후 끊임없이 울분을 토로해온 보수주의자들에게도 귀책사유가 있다. 하지만 더욱 큰 책임은 권력을 갖게 된 진보주의자, 특히 386세대에 있다. 진보세력이 그동안 박해를 받았다 해도 일단 권력을 잡았으면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강자(强者)가 된 것이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그들의 몫이다. 묵은 한(恨)을 접고 화해와 용서의 리더십을 표방했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신(新)정치’가 도래했을 텐데, 그렇지 못한 탓에 갈등정치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이념 과잉에다 아마추어리즘 정치, 포퓰리즘적 방식에 따른 새판짜기 시도는 보수주의자들을 놀라게 했고 또 격분케 했다.

진보는 앞을 향해 나아가고 모험을 감수하자는 비전인데, 정작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미래는 내다보지 않고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를 바로 세우자”고 주장한다. 이것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엄명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상기시킨다. 한국의 진보는 무엇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보는가. 복수심 때문에 뒤를 돌아보는 것이라면 롯의 아내처럼 소금기둥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12척의 배’에 목맨 진보주의자들



12척의 배로 130여 척의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 권력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은유법이 된 것은 이른바 ‘신성모독’과 유사하다. 명량해전처럼 통쾌한 영웅담도 없거니와, 문제는 진보세력이 이 영웅적인 성공담을 곧잘 자신들의 미약한 힘과 자의로 규정한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위력과 대비하면서 그 의미를 천민화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은유법이 기발한 ‘정치적 상상력’보다 천박한 ‘꼼수’로 느껴지는 이유는 보수주의자들을 ‘경기의 상대자’로 생각하기보다 ‘항복을 받아내야 하는 왜적’ 정도로 낙인찍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을 미워하고 억압하는 것으로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은 얼마나 낡은 계급정치 패러다임의 잔해인가. 그것은 가난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처지를 더욱 옹색하게 만들고 가진 자들을 소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물론 정치공동체에서 통합이 만능은 아니며 ‘통합의 질(質)’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정치의 주요 기능이 적어도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느낌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또 그것이야말로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하고도 상충하는 갖가지 이해관계와 견해를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예술(art of the possible)’로 지칭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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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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