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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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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IMF 체제에서 아내가 처음 한 말은 ‘생활비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잘려나간 비용이 외식비와 음식물비였다. 먹고 마시는 비용의 최소화가 당시 아내가 설정한 절약 목표다. 다음으로 아내가 선언한 것은 정말 뜻밖의 내용이다. ‘아이들의 과외비만은 절대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못났지만 내 자식만은…’ 하는 마음으로 한낱 유전적 숙주로서의 삶을 자처하는 이 땅 모든 부모의 마음도 결코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모름지기 사람은 어려울 때일수록 ‘물건’은 안 사도 ‘꿈’은 산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미국 군수산업 다음으로 거대한 산업규모를 자랑하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도 대공황기였다. 오늘날 할리우드의 영화는 공황기의 어렵고 남루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피땀이 밴 임금을 먹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절망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면서 영화 속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은 꿈을 샀다. 그레고리 펙 같은 이름 없는 미국의 신문기자가 유럽 소공국의 공주와 사랑을 나누고 게리 쿠퍼와 같은 노동자도 금노다지를 발견해 일확천금의 갑부가 되는 꿈을 그들은 영화에서 산 것이다. 춤, 노래, 그리고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주요 주제인 최근의 인도 영화가 하층 카스트인 천민계급의 열렬한 성원(?)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도 어려울 때일수록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그 꿈을 향한 구원의 출구가 지난 대통령선거 아니었을까. 혹자는 지난 선거를 세대간 갈등양상이라고 입방아에 올리지만 실은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미래에 절망한 이 땅의 젊은 세대가 탁 막힌 현실의 장벽을 부수고 솟아오르고 싶은 열망을 그렇게나마 반영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의 신분상승은 거의 불가능하다. 주경야독하며 일류대학 나와 사회지도층이 된다는 말 또한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천에서도 용이 나와줘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프랑스혁명도 시대를 거스르며 제3신분인 평민의 권리를 제약하고 귀족의 권한을 강화한 데서 촉발됐다. 출구가 막힌 사회는 절망하는 사회다. 프랑스혁명은 출구 막힌 사회에서 피지배계급이 짓밟힌 꿈을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찾아낸 사건이다.

서울대 신입생의 절반이 재력이 몰려 있다는 서울지역 학생들이고 그 중 상당수가 강남 출신이라는 통계만 보더라도 모든 국민에 균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헌법의 정신이 무색해진다. 높은 청년 실업률, 일류대 장벽과 학벌사회에 가로막혀 끊임없이 패배자가 되어가는 젊은이들, 심지어는 지방대 졸업자라고 신입사원 면접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의 벽 앞에서 그들은 좌절했고 허탈한 가슴을 수없이 쓸어내렸을 것이다.

낙담한 그들에게 대통령선거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그리하여 상고 학력의 역경을 딛고 우뚝 선 노무현 후보의 모습에서 이 땅의 젊은이들은 희망을 읽었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노무현 후보를 통해 대리구현한 것이다. 요즈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 있는 로또 복권열풍을 가만히 뒤집어보면 지난 대통령선거 양상과 전혀 다를 바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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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사종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장 sjhong5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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