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곳간 앞에서 곡식을 말리는 필자
먹던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고 함께 밥을 먹는데, 우리 동네 처녀가 논에 풀을 뽑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그 소리에 손님들이 돕겠다고 나서고. 논주인 처녀는 논 꼴이 창피하다며 사양하고. 손님들은 귀농한 사람끼리 그걸 이해 못하겠냐고 하고. 결국 바짓가랑이 걷어붙이고 함께 논에 들어갔다. 그 논이 바로 우리 집 아래라 김 매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찌나 듣기 좋은지. 서로 인연이 닿든 아니든,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부럽다. 우리 부부가 도시에서 사귈 때와 달리, 함께 일하면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면, 일 마치고 밥 한 끼 따뜻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행복을 찾아서
귀농하고자 하는 이들 가운데 처녀 총각이 꽤 있다. 한창 나이이기도 하고 ‘노’자가 붙은 처녀총각이기도 하다. 마을 빈집을 빌려 혼자 살면서 힘닿는 만큼 농사를 짓고. 홀가분해서 그런지, 이웃집 일을 돕는 여유가 있다. 집에 돈 안 들고 먹을거리 자급하니, 생활비 얼마 안 든단다. 일년에 한두 달 일하여 벌어 쓰니, 일년 대부분을 농사하면서 자유롭게 산다. 그 자유가 신선하다.
며칠 전 젊은 새댁이 아이랑 왔다. 언뜻 보면 처녀같이 고운 나이다. 도시에 살다 올 여름 시골로 내려왔단다. 남편과 아이 둘 모두 네 식구가, 마을 빈집을 빌려 이사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이야기를 한다. 아이도 지렁이 이야기, 강아지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 아직 농사계획은 세우지 못했다는데, 그러면 어떡하나 마음이 불편할 듯한데, 그런 기색은 없고 편안해 보인다. 앞날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 하루하루에 만족하는지. 구멍가게 하나 없는 시골집.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에 둘러싸여 사는 생활,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집을 거저 빌려준 집주인에 감사하고. 마을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예뻐하시는 이야기를 한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 어린아이를 둔 젊은이들도 귀농을 한다. 그것도 교통도 불편한 산골에 있는 시골집으로. 수도꼭지에서 더운 물이 나오는 아파트를 떠나, 겨울이면 행주가 얼어붙는 시골집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아간다.
나이 든 어른들은 귀농하면 어찌 먹고 사느냐, 돈 걱정부터 하곤 한다. 우리가 귀농하던 몇 해 전에는 더욱 그랬다. 이 사회에서 떨어져 어디 무인도라도 가는 것 마냥 받아들이는 분도 많았다. 그 사이 사회가 다양하게 바뀌고, 또 귀농하는 이들이 늘어나 전국 곳곳에 귀농학교가 열린 지 몇 년. 이제 젊은이들은 귀농을 ‘어려운 결단’이 아닌 ‘행복을 위한 선택’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막상 부닥쳐 살아보면 어려움이 많겠지. 하지만 도시를 떠나 이곳으로 들어오며 ‘과연 살 수 있을까?’ 두려워하던 내 모습과 견준다. 그런 나도 이렇게 사는데 기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땅에 탄탄히 뿌리내릴 수 있지 않을까!
마을 빈집에 살 때였다.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 두 분이 싸우신다. 가만 보니 한 분은 가로등을 켜자고, 다른 한 분은 그걸 끄자고. 마을 옆에 논이 있다. 논주인 할머니는 불을 끄자고. 집주인 할머니는 불을 켜야 한다고.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