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산 제조자인 배일주씨.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천지산(약품명 ‘테트라스’)이다.
그후 9년. 천지산이 돌아왔다. 몇 년 전부터 이따금씩 언론을 통해 재기의 움직임을 내비치던 천지산은 이제 완연한 부활의 날갯짓을 하며 대중의 전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맨 먼저 특허 인정
천지산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은 특허출원과 임상시험이다. 특허출원은 1998년부터 시작했는데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최근 유럽 14개국에서 특허가 나옴으로써 천지산 특허가 등록된 나라는 미국을 비롯해 모두 23개국으로 늘었다.
2003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의 승인을 받은 임상시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임상시험 허가가 났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았음을 뜻한다. 1999년부터 3년간 원자력의학연구원, 바이오톡스텍 등에서 전(前)임상시험(동물시험, 시험관 시험, 독성시험)을 거친 천지산은 2005년 5월 중순 현재 임상 1상시험을 ‘거의’ 마치고 2상시험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거의’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시험은 끝났지만 일부 자료를 분석하는 작업이 미처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1상시험을 주도한 서울아산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시험결과는 배일주씨를 비롯한 천지산 연구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상시험 보고서는 상반기 중 식약청에 제출될 예정인데, 지금까지의 진행경과에 비춰보면 돌발변수가 없는 한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따라서 천지산은 늦어도 올 하반기 초엔 2상시험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1상시험은 약물의 체내 반응과 적정용량을 찾는 시험이다. 약의 효능, 즉 항암효과를 검증하는 것은 2상시험이다. 그런데 천지산의 항암 기능은 1상시험에서도 부분적으로나마 입증된 것으로 알려져 2상시험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다.
일반 의약품은 장기적인 부작용을 점검하는 3상시험을 거친 후에야 시판할 수 있다. 하지만 천지산처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암치료제는 2상시험을 통과하면 곧바로 판매가 허용된다. 천지산 연구진은 2상시험 기간을 1년으로 잡고 있다.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 중 천지산은 공인된 약품으로 일반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비소의 독성을 거꾸로 이용
‘신동아’는 천지산의 1상시험 완료에 맞춰 그간의 진행과정 전반에 대해 취재하면서 제조자인 배일주씨와 연구에 동참해온 의대교수들, 투자회사 대표, 식약청 관계자 등을 인터뷰했다. 배씨가 작심하고 인터뷰에 응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지만, 더욱 뜻 깊은 것은 그동안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던 의학자들의 등장이다. 이들의 연구는 민간요법 차원에 머물던 천지산을 현대의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임상시험을 통과해 시판이 되면 천지산은 최초의 국산 항암제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선플라주’(SK케미칼) 등 기존 약물의 분자구조를 변형한 ‘응용 항암제’가 개발된 적은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분자구조를 가진 국산 항암제로는 천지산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배일주씨는 “비소가 탁월한 항암효과를 낸다는 사실은 이미 FDA(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인정됐기 때문에 비소화합물인 천지산이 실패할 확률은 0%”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주사제가 아닌 경구제라는 점도 천지산의 상품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간 개발된 항암제는 대부분 주사제다. 주사제는 해당 부위에 직접 자극을 주는 효과는 있지만 입원을 해야 하는 등 사용이 불편한 점이 흠이다. 이에 비해 경구제는 환자가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천지산이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세계 최초의 비소화합물(As4O6·육산화비소) 항암제라는 점이다. 비소(As)는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독성을 갖고 있어 일반 의약품으로 쓰이는 것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천지산의 주성분인 육산화비소는 각종 실험을 통해 독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