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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발견, 인간의 마음을 향한 첫걸음

무의식의 발견, 인간의 마음을 향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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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발견, 인간의 마음을 향한 첫걸음

‘꿈의 해석’<br>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798쪽, 1만8000원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인간의 정신을 이성의 산물로 믿어왔다. 적어도 19세기까지는 과학과 합리성으로 세계를 인식하려 했다. 서양철학은 인간의 가장 탁월한 특성으로 성찰하는 능력과 사고, 합리성을 꼽았다. 지식과 판단의 주인은 명징한 ‘의식’이라고 계몽철학자들은 설파했다. 꿈에 대한 생각도 이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꿈은 신비한 예언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로 이해했다. 꿈을 꾼 사람의 정념이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로 여겼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꿈은 기껏해야 꿈을 꾼 이에게 그가 지은 죄를 보여줄 뿐”이라고 가르쳤다.

19세기 말 혜성처럼 등장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런 서구 지성계를 단숨에 뒤집어놓았다. 프로이트가 20세기의 문을 여는 순간 세상에 던진 ‘꿈의 해석’(원제 Die Traumdeutung)은 가히 혁명이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무의식’ 세계의 발견을 선언한 것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인간중심주의를 일거에 무너뜨린 사상사적 전환점이 됐다. 무의식은 꿈이나 최면, 정신분석 등에 의하지 않고선 의식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은 의식의 작은 세계를 품는 더 큰 세계’라고 표현했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통해 성적(性的)이고 무의식적인 쾌락의 원리와 의식적인 현실의 원리를 보여준다. 그는 노이로제 환자들이 들려준 1000개 이상의 꿈을 해석한 뒤, 표출되는 생각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자아’에 동조하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아에 의해 억압된 ‘이드(id)’의 욕망에 관한 생각이다. 정상인은 두 정신을 조화시키지만, 신경증 환자는 두 정신 간의 조화를 상실한 인간이라고 프로이트는 진단한다.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처음 도입한 개념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들이 아버지를 시기하고 어머니에게 갖는 성적인 사랑의 감정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꿈을 인용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있는 무의식적 소망과 오이디푸스 신화를 연결했다. 그는 인간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성적인 정념의 지배를 받으며, 의식은 이런 정념을 아주 희미하게만 알 뿐이라고 믿는다. 그런 성적 활동의 기본 동력을 ‘리비도(libido)’라고 불렀다.

리비도는 생체 에너지의 하나인 성적 에너지다. 꿈이라는 폐쇄된 지각에 투영된다. 섹시한 꿈을 꾸면 몽정으로 나타나는 것도 리비도다. 불안한 꿈은 성적인 내용을 가진 꿈이므로 그에 속해 있는 리비도가 불안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분석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야말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여겼다. 아들이 아버지를 넘어서지 않으면 아들은 아버지의 세계에 머물고 말기 때문이다.



꿈의 동기는 소망

프로이트는 성인의 꿈 대부분이 성적인 재료를 다루고 있으며, 이게 꿈의 해석 원리와 완전히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언니의 외아들이 관 속에 누워 있는 광경을 본 여자의 꿈은 그녀가 어린 조카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연인과의 재회를 소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팡이·나무줄기·우산처럼 기다랗게 생긴 것, 칼·단도·창같이 길고 뾰족한 무기는 남자의 성기를 대리한다. 작은 궤·상자·장포(長砲)·난로·동굴·배·그릇들은 여체의 상징으로 쓰인다. 층계·사다리·발판이나 그런 곳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행위는 성행위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몸에 걸치는 것 가운데 여성의 모자는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꿈에서 어린아이와 놀거나 업어주는 것은 흔히 자위행위의 상징이다. 또 거세의 상징적인 표현은 대머리나 머리를 자르는 일, 이가 빠지는 일, 목을 베이는 일 등이다. 꿈속에서 음경의 상징이 둘 이상 나오는 경우에는 거세에 대한 항의로 보아야 한다. 꽃의 상징은 여성의 처녀성, 강간과 관련된 것들을 내포한다.

꿈의 동기는 소망이며, 꿈의 내용은 소망 충족이라고 프로이트는 단정한다. 이 말이야말로 프로이트의 꿈 해석을 다른 것과 다르게 만든다. 꿈은 과거의 체험을 압축한다. 꿈은 왜곡되어 나타난다. 꿈은 상징으로 이루어진다. 꿈은 미래 아닌 과거를 알려준다. 꿈은 억눌린 소원의 성취다.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뿌듯해했다. 그만큼 이 책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꿈의 해석은 마음 생활 속의 무의식적인 내용을 알아내기 위한 대도(大道)이다”라고 쓴 대목에서 프로이트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길이 꿈의 분석에 있음을 깨닫는다. 1900년에 초판이 나온 뒤 1929년 8판에 이르도록 개정판을 낸 이 책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저작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꿈의 해석’에 목적이 있지 않다. 꿈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투시하는 데 있다. 어제 꾼 꿈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그의 주관심사가 아니다. 꿈의 발현에 있어 무의식이 작용한다고 하는 것도 그의 독특한 주장은 아니었다. 이 책은 심리분석 이론과 실제 적용에 대한 기본적 특징들을 제시해준다. 예를 들면 꿈의 성적 특성,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리비도, 소원충족 이론, 자아와 무의식으로 분열된 심리, 노이로제, 상징적 암호화, 억압이론과 실제 증세들, 의식화 방법 같은 것들이다. 그는 “꿈에 의해 전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검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책의 출간은 정신분석이 독립적인 분과학문으로 자리 잡게 해준 분기점이 된다. ‘꿈의 해석’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정신분석학 입문’과 함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대표하는 저술이다.

프로이트의 주장은 모든 혁명적 이론이 그렇듯 처음에는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그때까지 인간 존재의 주변에 밀쳐두었던 무지, 비합리성, 섹스에 주의를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다르게 보면 ‘자아가 자신의 집 주인이 아니다’라는 말과 다름없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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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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