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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같은 40년 사랑 저 동백처럼 붉었다

가왕(歌王)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불같은 40년 사랑 저 동백처럼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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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같은 40년 사랑 저 동백처럼 붉었다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조선비치호텔 앞 화단에 동백꽃 수천 송이가 피었다.

불같은 40년 사랑 저 동백처럼 붉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악보.

동백꽃은 한국인에게 슬픔의 역사다. 빈한하고 억눌려온 한국인을 위로하는 매개체가 된다. 동동구리무와 함께 1960~70년대 가난한 이 땅의 여인들이 숨겨두고 아끼며 바르던 머릿기름이 바로 동백기름이고, 사람 키 높이의 동백 숲은 가난한 남녀가 몸을 숨기고 사랑을 나누기에 딱 좋은 공간이다.

서양에서도 장미만큼이나 사연이 많은 꽃이 동백이다. 그래서 뒤마는 일찍이 1848년에 ‘춘희(椿姬)’ 즉 ‘동백아가씨’라는 사회 고발 성격의 소설을 발표했고, 베르디는 이를 토대로 비운의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가슴에 동백꽃을 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작곡했다. 미당 서정주는 ‘선운사’라는 짤막한 시에서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만 목이 쉬어 남았다”고 하지 않았나.

색감이 워낙 눈부셔서 ‘빨갛게 멍이 들었다’는 표현까지 등장하는 동백꽃이 만발한 동백섬도 한때는 그림의 떡이었다. 동백섬은 섬이 아니다. 오랜 세월 모래가 쌓여 해운대 백사장과 연결돼 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간첩 침투를 핑계로 웨스틴 조선호텔 뒤편을 시작으로 섬 전체를 군사지역으로 묶어놓아 부산시민들조차 동백섬의 실체를 모르고 지냈다. 권위주의 시절, 서울에서 온 고급 관리나 장성들이 조선비치에 묵으며 동백섬에서 낚시를 즐기는데, 수확이 엄청나다는 소식을 간혹 풍문으로 들을 정도였다. 그래서 해운대 청사포 쪽에서 출발하는 관광유람선을 타고 먼 발치서 바라보던 동경의 섬이었다.

가장 눈부신 순간 스스로 목을 꺾다

민주화 이후 섬은 완전히 개방됐고, 둘레길까지 조성돼 여행객들의 단골 산책로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실제로 3, 4월 동백섬에서 보는 꽃의 위력은 대단하다. ‘아주까리 동백이 제아무리 예뻐도 내 사랑만 못하다’는 말에서 외려 동백꽃의 고혹적인 색감을 짐작할 수 있겠다.



동백꽃은 과거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천대를 받았다. 동백은 질 때 꽃봉오리 전체가 몽땅 떨어지는 묘한 특징이 있다. 그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사람 목이 단칼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해서 사대부 가문에선 아예 집 안에 들여놓지 않았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문정희의 시 ‘동백꽃’의 첫 구절처럼 그 뇌쇄적인 아름다움에 비해 어느 날 순식간에 후드득 떨어지는 모습이 허탈하다 못해 너무 허망스러워 지배계층의 외면을 받아온 비운의 꽃이다. 그래서 조선의 기득권 세력은 예상치 못한 불길한 일들이 갑자기 생기는 것을 ‘동백꽃 춘(椿)’자와 ‘일 사(事)’자를 조합해 ‘춘사(椿事)’라고 표현했다.

일본의 지배계급도 극히 꺼리는 꽃이 동백이다. ‘라 트라비아타’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로 입지를 굳힌 것도 동백의 그런 숙명이 그네들의 할복 정서와 근접해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동백섬과 이어 있는 해운대 백사장 입구에 들어서면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가 반긴다. 노래의 배경이 해운대이기 때문이다. ‘부산을 가꾸는 모임’이 1994년 자체 기금으로 해운대 송림공원에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를 세웠다. 높이 2.6m의 노래비 상부는 청동판에 부산을 상징하는 파도와 갈매기, 오륙도를 형상화했고, 하부 대리석에는 노래 가사를 2절까지 새겼다. 이 일대 투숙객들이 새벽 산책길에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이 노래비다.

백화제방의 계절

부산은 한국의 대중가요, 나아가 대중문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골 배경이다. 광복, 6·25전쟁, 1·4후퇴 등 한국 현대사의 굴곡 속에 온갖 애환을 간직한 추억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미군 구호물자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북 피난민들이 대거 내려오면서 갖가지 상처와 슬픔을 담아낸 사연 많은 도시다.

영화 ‘친구’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1000만 관객 영화 10편 중 3편이 부산에서 나왔다. ‘해운대’ ‘변호인’ ‘국제시장’이다. 해운대의 마천루 신시가지는 이미 서울 강남을 능가하지만, 달동네 감촌동 비석마을은 여전히 1960년대 모습이다. 바다를 가르는 광안대교의 불빛, 초대형 크레인이 즐비한 하역항부터 서울사람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독특한 냄새의 돼지국밥까지 부산은 한국의 대중가요, 대중문화가 좋아할 요소를 골고루 지녔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사실 특별한 계절감이 없다. 단지 첫 구절이 “꽃피는 동백섬에”로 시작되기에 봄에 좀 더 자주 등장할 뿐이다. 가사의 서정성이 빼어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기억하기 쉬운 곡조와 향토적인 노랫말 덕분에 반주나 마이크 없이도 누구나 쉽게 시작하고 따라 부를 수 있다.

짬뽕 국물에 숟가락 서너 개를 걸쳐놓고 부르던 이 노래는 이제 세월을 이어, 세대를 넘어 불린다. 나이테 많은 거목처럼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명작의 위엄을 더해간다. 빨갛게 멍든 동백꽃이 가장 화려한 순간 몸통째 뚝뚝 떨어지며 여기저기 순간 소멸하고 있다. 동백꽃이 다 떨어지면 봄도 절정을 넘기게 된다. 열어놓은 창틈으로 스며드는 온갖 꽃향기에 정신이 아찔하다. 절정의 봄 속에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우리가 있다. 백화제방(百花齊放)의 계절이다.

신동아 201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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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故 권태균 | 前 신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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