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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료품 재벌이 세운 캘리포니아 ‘보물섬’

노튼 사이먼 미술관

식료품 재벌이 세운 캘리포니아 ‘보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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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직접 정치에 나서진 않았지만, 정계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그의 반대와 방해로 재선에서 탈락한 공화당 상원의원이 있을 정도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이던 로널드 레이건은 훗날 사이먼을 비롯한 캘리포니아 재벌들의 후원으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재벌의 힘은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이먼은 아내와 이혼 후 1971년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 제니퍼 존스(1919~2009)와 재혼한다. 존스에겐 세 번째 결혼이었다. 존스는 1940, 5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로 활약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도 받은 바 있다.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모정’과 ‘무기여 잘 있거라’는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했다.
사이먼은 재혼 후 사업보다는 미술관 운영에 전념했고,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여러 교육기관에 임원으로 참여하며 사회봉사 활동을 많이 했다. 그의 사후에는 제니퍼 존스가 미술관 운영을 전담했다. 그는 미술관을 증·개축하며 미술관 전체를 새롭게 단장했다. 존스는 영화 ‘로마의 휴일’ 주인공인 그레고리 펙, NBC TV 유명 뉴스앵커 톰 브로코 등 유명인사들을 미술관 이사로 참여시켜 이들을 미술관 발전에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드가 작품 100점 넘게 소장

식료품 재벌이 세운 캘리포니아 ‘보물섬’

에드가르 드가의 ‘Little Dancer of Fourteen Years’(1878~1881).

노튼 사이먼 미술관에는 유럽 최고 작가들의 주옥같은 작품이 즐비하다. 사이먼은 특히 렘브란트, 루벤스, 쿠르베, 드가, 로댕, 피사로를 좋아했기에 미술관에서는 이들의 작품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사이먼의 안목이 어느 수준인지 짐작할 만하다.
그는 인상파 화가 드가(Edgar De Gas·1834~1917)를 유달리 좋아했다. 미술관에는 드가의 작품이 아주 많고, 걸작도 여러 점 눈에 띈다. 사이먼은 1955년부터 1983년까지 30년 가까이 드가 작품을 꾸준하게 구입했는데, 조각품이 87점이고 그림 등이 40여 점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을 텐데도 이렇게 많이 구입한 것을 보면, 드가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듯하다.
드가는 무희들을 즐겨 그렸다. 여인의 누드도 많이 그렸다. 특히 목욕하는 여인이나 목욕을 갓 마친 여인을 화폭에 담았다. 방금 목욕을 끝낸 여인만큼 풋풋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어디 있을까. 여인의 살 냄새와 비누 향기가 콧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은 순간이다. 옛 대중목욕탕 시절, 막 목욕을 마치고 발그스레한 얼굴로 목욕탕 문을 나서는 젊은 여인의 모습은 아직도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목욕 후 몸을 말리는 여인(Woman Drying Herself After the Bath)’은 나의 상상을 그대로 묘사해준 고마운(?) 그림이다. 그런데 당시 유럽에서는 집에 욕실이 따로 없었던 모양이다. 목욕하는 곳에 침대가 있다. 침실에 물을 떠다놓고 대야에 물을 부어 목욕을 한 것 같다. 오른쪽에는 벗은 옷들이 걸려 있다. 목욕을 하면서 문을 열어둔 것도 특이하다. 개방적인 시절이었거나, 집에 혼자만 있었던 모양이다.
드가는 무희가 춤추는 모습에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체의 움직임에 관심이 생겼고, 그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래서인지 인체의 근육과 움직임을 매우 역동적으로 표출한 조각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직접 발표한 조각 작품은 오직 한 점뿐으로 ‘14세의 무희 소녀(Little Dancer of Fourteen Years)’다(나머지 작품은 그의 사후 공개됐다). 이 작품은 미국 주요 미술관이 거의 다 소장하고 있는데, 노튼 사이먼도 놓칠 리 없다.
이 작품의 모델은 마리(Marie van Goethem). 1881년 6회 인상파전(展)에 처음 선보였는데, 매우 복잡한 평가를 받았다. 유리통 속에 넣어 전시됐는데, 매우 추하고 의학용 복제품 같다는 혹평이 대부분이었다. 머리와 얼굴이 원시인 같다는 말도 나왔다. 드가와 마리의 관계에 대해서도 억측과 논쟁이 난무했다. 이 작품은 본래 왁스로 만들어졌다. 드가가 사망한 후 부인과 딸이 이 조각을 동(銅)으로 주조하기로 하고, 1920년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개의 동 작품을 주조했다. 이렇게 해서 여러 미술관이 동일한 작품을 소장하게 됐다. 리본과 스커트는 별도로 만들어 붙였기 때문에 미술관에 따라 제각각이다.
식료품 재벌이 세운 캘리포니아 ‘보물섬’

드가의 ‘Woman Drying Herself After the Bath’(1876~1977).


‘인상파 리더’ 피사로

드가는 프랑스 파리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변호사가 되길 원했다. 그는 아버지 뜻대로 파리에서 법대에 진학했으나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다. 21세 때 당시 최고의 고전주의 화가이던 앵그르를 만나고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1870년 보불전쟁이 터지자 30대 중반이던 드가는 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눈을 다쳐 평생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 후 미국 뉴올리언스에 잠시 체류하다 1873년 파리로 돌아왔다. 이듬해 시작된 인상파전의 창립 멤버였지만, 그 자신은 인상파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사실주의자(realist)라고 불리길 원했다.
드가는 은둔의 삶을 살았다. 예술가는 혼자 지내야 하고, 사생활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외관상으로는 평온한 인생을 산 것처럼 보이지만, ‘홀아비 염세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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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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