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금강송숲 지관서가’에서 맞이한 병오년 새해

[체험기] 금강송 아래 1박2일 북 캠프…1년을 건너 새해로 가는 마음들

  • 허문명 출판국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6-01-1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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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유일 금강송 숲에서 만난 독서와 사유의 공간

    • 한 해를 보내는 서른 명의 삶

    • “애썼다”는 말이 필요했던 시간들

    • 책장 사이로 내려앉은 밤, 숲의 리듬으로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8시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경북 영주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 2시가 되어 울진의 소나무 숲 깊숙이 위치한 ‘금강송숲 지관서가’에 닿았다. 울진 금강송 숲은 한국을 대표하는 숲이지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유산’에 가까운 공간이다. 줄기가 곧고 단단해 뒤틀림이 없어 ‘금강석처럼 강하다’고 해 이름 붙여진 ‘금강송(金剛松)’ 밀집 지역이기 때문이다. 

    금강송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춘양목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궁궐, 사찰, 왕릉 건축에만 쓰인 최고급 목재였기에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을 국가가 직접 관리했다. 무단으로 벌목하면 중죄로 다스렸다. 일제강점기에도 비교적 훼손이 적었다. 숲이 일반에 개방된 것도 최근 들어서다. 

    울진 금강송숲 지관서가는 재단법인 ‘止觀(지관·전 플라톤 아카데미)’이 기획하고 SK가 재원을 지원하며, 지방자치단체가 공간을 제공해 탄생한 인문 공간 중 하나다. ‘지관’이란 멈추어 바라본다는 뜻. 2021년 울산대공원 지관서가를 시작으로 안동·수원·평택 등 현재 전국 11곳에 세워졌고, 울진의 경우 9번째 결실이다.  

    지방 소멸에 따른 인구 감소와 문화 기반 취약으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생활문화 생태계의 단절과 사회적 고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서와 사유 문화를 확산하겠다는 취지다. 여기에 잠들어 있던 공공공간을 시민에게 다시 돌려주고, 동서양 고금의 인문 정신을 바탕으로 ‘읽고, 사유하며, 만나서 대화하는 문화’가 지역에서 다시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울진의 경우 금강송 에코리움 단지 안에 있던 금강송 테마전시관 2층 공간을 활용해 북 카페와 서재를 꾸몄다. 지관서가는 지역마다 각각의 도서 큐레이션 콘셉트가 있는데 이곳은 ‘숨과 쉼’이다. 둥근 건물 그대로 동선을 살린 내부에 들어서면 ‘홀로 있음과 관조’ ‘물러섬과 관찰’ ‘상처와 애도’ ‘사랑과 연결’ ‘균형과 조화’ ‘예술과 창의’ 등의 제목으로 큐레이션된 다양한 도서를 만날 수 있다. 



    한 해를 보내는 서른 명의 삶

    국내 유일 금강송 대규모 군락지인 경북 울진 금강송 숲에 자리한 지관서가. 울진=허문명 기자

    국내 유일 금강송 대규모 군락지인 경북 울진 금강송 숲에 자리한 지관서가. 울진=허문명 기자

    재단법인 지관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2025년 12월 연말 1박2일 일정으로 울진군(군수 손병복)과 함께 북 캠프를 열었다. 신청자를 모집해 서울·대전·안동·제주 등 전국에서 30여 명이 모였다. 

    서가에 도착해 숲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평균 수령이 150~200년, 일부는 300~500년 된 소나무가 빼곡했다. 인공 조림이 아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림이다 보니 경외감마저 들었다. 이 서늘하고 곧은 기운 속에 들어앉아 있는 지관서가는 책과 사색, 그리고 명상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름을 뽐내며 곧게 뻗어 있는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공간은 온전히 자기 안으로 집중시키는, 책 읽는 명상 공간이었다.

    각자 짐을 풀고 서가 한가운데 마련된 인문 공간에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했다. 30여 명의 눈빛에는 낯섦과 기대, 그리고 이색적인 공간에서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해를 맞이한다는 설렘이 교차했다. 이윽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속에 품어온 ‘올해의 생각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입을 뗀 이는 50대 여성 참가자였다. 최근 20년 넘게 일해온 직장 생활을 마쳤다는 그는 ‘안정과 불안’이라는 철학적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1년은 안정과 불안의 경계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끊임없이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엔 이 불안이 조직 없이 홀로 서야 한다는 두려움인 줄 알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정과 불안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가? 뭔가에 집착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하자, 이것이 제가 찾은 답입니다. 언젠가 한 어린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원래 불안이 인생의 디폴트 컨디션 아닐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큰 깨달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2026년의 테마를 ‘기록’으로 정했습니다. 닿을 수 없는 것보다 이미 내게 있는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고 기록하려 합니다.”

    중년이 넘어 경북 안동에 안착했다는 중년 부부는 비움의 미학을 전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편안한 동쪽’ 안동으로 왔습니다. 집은 예천, 사무실은 안동, 창고는 예천인 기묘한 생활이죠. 가난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삿짐이 너무 많아 놀랐습니다. 짐을 정리하며 몸은 고생했지만, 요즘은 조금 게으르고 여유로운 생활이 선물 같습니다. 아내와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마시고, 천년 숲을 맨발로 걷고, 히말라야 록솔트를 넣고 반신욕을 즐기는 일상이 참 좋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한 해를 회고하는 단어들이 퍼지면서 낯섦과 긴장의 기운은 온기를 찾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의 진솔한 회고가 이어졌다. 

    “올해 저를 많이 흔든 일들 중 하나는 어렵게 애를 써서 일궈낸 일이 누군가에 의해 쉽게 가로챔당한다고 느낄 때였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에 담담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릅니다. 그럼에도 저를 웃게 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동료의 ‘아재 개그’에 깔깔댔고, 다른 사람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왔을 때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 또 있어요. 저 자신을 위해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25m를 한 번에 완주하고 ‘헤드업(head up) 자유형’을 스스로 터득했을 때, ‘아, 살만하다’ 싶었습니다. 동료애를 느낄 때 올라오는 행복감도 저를 살게 합니다.”

    잔잔한 박수가 흘러나왔다. 닉네임을 ‘생선’이라고 소개한 여성 참가자가 말을 받았다. 

    “아이들이 선생님이라 부르다가 ‘생선님’으로 불러줬는데 제가 해산물 킬러이기도 하고 해서 닉네임을 정했습니다(웃음). 저는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다처럼 많은 것을 품어내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순간순간 찾아오는 체력의 한계, 감염병에 취약한 몸, 그리고 관계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기복은 늘 힘들게 합니다. 새해에는 그런 나의 나약함마저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 나를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생각은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입니다. 20년 내내 이 생각에 붙들려 살아온 것 같습니다. 20대는 취업, 30대는 결혼과 육아, 40대는 경력 단절 여성으로 다시금 일하며 티칭과 코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꿈속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맡은 역할 속에서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건강, 올곧은 마음가짐, 그리고 끊임없이 쌓아가는 지식인 것 같습니다. 2026년에는 또 어떤 배움으로 성장해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건강. 건강, 또 건강입니다. 잘 먹고, 잘 쉬고, 오래도록 나답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애썼다”는 말이 필요했던 시간들

    진솔하고 잔잔한 이야기가 공간에 채워지자 낯섦과 긴장은 따뜻한 훈훈함으로 바뀌어갔다. 또 다른 여성 참가자가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2025년 저를 가장 오래 붙잡고 힘들게 한 생각은 감정에 대한 것입니다. 버로 억울함입니다. 이 감정이 처음 생긴 것은 아닙니다. 한 2년 전쯤인가, 어떤 사건이 생기면 마음속에 억울함이 일어나고 그 감정이 오래 남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갱년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어떤 사건이 있어도 그것에 감정이 생기거나 혹은 생긴 감정이 오래 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냥 해결하면 되지 뭐’ ‘그냥 일어난 일이지 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면 되는 거지 뭐’ 하고 지나갔었습니다.

    그러나 2025년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생기면 모든 감정은 다 ‘억울하다’로 결론이 났습니다. ‘나한테 이런 일이 왜 생기지?’ ‘회사가 어떻게 이래’ ‘어떻게 내 매니저는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지 않지?’ ‘팀원들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지?’ 하고 억울함이 쌓여갔습니다.

    퇴근 후에도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표정은 굳어갔습니다. 감정을 겨우겨우 떼어놓으면 다시 또 나에게 달라붙고, 또 떼어놓으면 또 달라붙고…그렇게 저는 지난해를 억울함이라는 감정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 감정이 가라앉으면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은 내가 있습니다. 인정받으려고 애쓰고, 사랑받으려고 애쓴 만큼 억울하다는 감정이 더 크게 올라왔습니다. 그 많은 자기 계발 책을 읽고도 아직도 이러고 있는 제 모습에 스스로 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2026년을 시작하기 위해서, 죽어라 애쓴 저 자신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면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향한 응원과 격려로 이어졌다.

    1년 동안 애쓴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써온 이도 있었다.

    “올 한 해 많이 힘들었지? 얼마 전 OB 모임 송년회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키워드로 선택했던, 그야말로 ‘고군분투’했던 시간이었어. 낯설고 간지럽겠지만 오늘은 자책과 비난이 아닌 칭찬과 인정이 가득한 말을 들려주려 해.

    너는 언제나 옳아. 그러니까 의심하지 마. 더 좋은 선택을 하고 싶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잘 해내고 싶어서 종종거리며 최선을 다한 너를 인정해. 열심히 잘 살아왔어. 그걸로 충분해.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얼마나 믿는지 알지? 너는 어느 자리에서나 자기 몫을 넘치게 하며 그 자리를 빛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야. 

    ‘열심히’를 붙들고 살아온 너를 인정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나태해지지 않으려 노력해 온 그런 너를 말이야. 그게 너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믿고 그렇게 살아온 거지? 그래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잖아. 너의 그 마음도 인정해. 그걸 붙들고 애쓰며 살아온 그 모든 시간을 인정해. 

    그런데 있잖아. 이제 그걸 놓아줘도 괜찮아.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거, 별일 생기지 않는다는 걸 믿어봐. 너를 조금 더 편하게 놓아줘. 그래도 괜찮아. 다른 사람에게 하듯 너에게 조금만 관대해져도 괜찮아. 덜 열심히 해도 너 미움받지 않아. 니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쌓은 게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있지? 그렇지 않아. 어떤 일이 일어나든,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매 순간 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게 설사 비효과적 선택이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진다 해도 네가 잘못된 건 아니야. 그 선택을 위해 네가 최선으로 고민한 거 알아. 그런 의미에서 너는 항상 옳아. 다른 사람들이 너를 믿어주는 것만큼만이라도 너를 믿어보자. 그럼 아마 너는 너의 최고의 편이 될 거야. 잊지 마. 다른 사람을 대하듯 너를 대하는 거! 네가 최고야. 너를 응원한다. 언제까지나.”

    참가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책장 사이로 내려앉은 밤, 숲의 리듬으로 

    2025년 12월 31일 오전 울진 지관서가 북 캠프 참가자들이 숲 트레킹을 하고 있다. 울진=허문명 기자

    2025년 12월 31일 오전 울진 지관서가 북 캠프 참가자들이 숲 트레킹을 하고 있다. 울진=허문명 기자

    현장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다양하고 절실해졌다. 

    “한 해 정말 힘들었습니다. 장인 장모 친부모가 모두 입원하셨어요. ‘이렇게 고생하실 거면 빨리 돌아가시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못된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봉급쟁이로 살다가 이제 은퇴 2년 차인데 겨우 몸이 익숙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자유로움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생활의 자유보다 마음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깨달은 한 해였습니다.”

    “저는 현금 20억 원을 갖고 있는 자산가입니다. 병이 들어 꼼짝 못하면 간병비가 매달 300만~400만 원은 든다고 하니 그 돈이 안 들어가면 20억 원 갖고 있는 자산가나 마찬가지 아닌가요(웃음). 댄스를 시작한 지 3년 됐는데 그 덕에 고혈압·족저근막염 약 다 끊었습니다. 아들이 중2인데 너무 힘듭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으로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몸이 건강해지니 아이도 사랑의 눈으로 봐졌습니다.”

    “목공일을 하고 있는데 버려지는 목재, 자투리 목재에 다시 쓰임을 불어넣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기계 작업을 하다 손을 다쳐 수술하고 재활하느라 상반기를 보냈습니다. 몸을 쓰고 싶어 목공 일을 시작했는데 몸이 다치고 나니 몸 쓰는 일의 한계도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쓰는 일이 하고 싶어져 추억이 있는 물건을 영상과 글로 기록하는 되살림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대화는 마무리 국면으로 가고 있었다.  

    “3년 전 꼭 이맘때 큰 수술을 했어요. 3개월마다 정기검진을 했는데 이제 1년마다 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3년 전 수술 날짜가 잡혔고 친구들이 송년회에 오라고 했는데 나가지 못해 눈물이 났어요. 늘 당연하게 느끼던 일상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서 러닝을 시작했어요. 작년에는 생애 처음으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태어나서 그런 격려와 응원을 처음 받아봤습니다. 일상을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짜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남들이 우울증이니 공황장애니 하는 말을 들으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1년 전 제가 잠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지인의 남편이 돌아가셨어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마라톤이 나를 살렸습니다. 동생과 약속해서 힘겹게 대회에 나갔는데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니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마음을 여는 자기소개와 회고가 끝나고 재단에서 준비한 저녁 도시락이 나왔다. 

    ‘공간’이 주는 사유의 힘

    울진 금강송숲 지관서가 내부 모습. 독서와 명상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울진=허문명 기자

    울진 금강송숲 지관서가 내부 모습. 독서와 명상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울진=허문명 기자

    각자 방에 짐을 풀었지만 사람들이 서가로 하나둘 모이면서 서가는 다시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자리를 잡고 독서에 몰두했고, 누군가는 서가에 놓인 책들을 오래 둘러봤다. 서가 중앙에 놓인 큰 테이블에서는 옹기종기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수다방이 펼쳐지기도 했다. 

    울진도 그렇지만 각 지역에 생기고 있는 지관서가를 둘러보면 ‘공간’이 주는 사유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너나없이 힘들고 어려운 속세를 잠시 떠나 편안함과 평안함이 배어 있는 에너지 장으로 간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굳이 종교시설을 찾지 않아도 책과 명상을 통한 자기 자신과의 대화로 쉼표를 찍는 곳, 숲의 기운으로 둘러싸인 금강송숲 지관서가에 앉아있다 보면 저절로 안도감이 생겼다.

    맑고 깨끗한 공기 속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몸도 마음도 개운했다. 오전에는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말을 주제로 한 임정혁 큐레이터의 미술작품에 대한 강의도 이어졌다. 동해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참가자들의 표정에는 잔잔한 연대감이 일었다. ‘아,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구나, 그리고 다들 애쓰며 살고 있구나. 나도 힘을 내야겠구나’ 하는 연대감 말이다. 지관서가 공간과 대화의 힘이 주는 사유의 힘이 바꾼 1박2일 특별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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