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호

고래 춤추게 하는 울산 앞바다에 다산의 비밀이 있다

[새 연재 | 마마&파파 만드는 이경호의 버스토리(birth+story)]

  • 이경호 마마파파&베이비산부인과의원 원장

    입력2026-02-11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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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여성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스트레스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아 임신이 더 잘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Gettyimage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여성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스트레스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아 임신이 더 잘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Gettyimage

    울산은 필자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다. 열아홉에 고향을 떠나 어엿한 전문의가 될 때까지의 약 19년을 제외하면, 거의 평생을 울산에서 산 셈이다. 서울에서 의대를 나왔으니 수도권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말도 종종 들었다. 더 많은 기회와 더 큰 무대가 주어질 거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전국의 도시를 놓고 봐도, 울산만큼 살기 편하고 아름다우며 미래를 함께 그려볼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바다와 강, 산업과 일상이 한 도시 안에서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곳이 흔치 않아서다. 이는 꾸밈없는 내 생각이자, 오랜 시간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고향에 대한 ‘격한’ 자부심이다.

    울산을 좋아하는 데에는 나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울산 여성들이 유난히 낙천적이고 화통하다는 점이 그 첫 번째다. 사람의 성격은 타고난 기질 위에 환경이 덧입혀지며 만들어지는데, 울산은 환경이 꽤 괜찮다. 차로 30~40분이면 바다가 나오고, 조선·자동차·석유화학 산업 덕분에 일자리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삶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가능성이 낮은 도시는, 사람을 불필요하게 예민하게 만들지 않는다. 울산이 다른 지역에 비해 출산율이 높은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2024년 기준 전국 평균 출산율은 0.748명이며, 울산광역시(0.859명)는 세종시(1.028명)에 이어 전국에서 2번째로 출산율이 높은 지역이다. 

    심리적 안정 돕는 낙천성

    울산 시민 다수는 임금근로자이며 그중 상당한 비율이 대기업 제조 현장의 노동자다. 그래서 울산의 행복은 일확천금이 아니라,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라는 고정수입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일을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구조적 안정감이 사람을 밝게 만들고, 울산 사람을, 특히 울산 여성을 더 화통하게 만드는 듯하다. 

    필자는 울산에서만 23년째 난임 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의학적 통계로 명확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난임 시술, 즉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시술을 받은 뒤 임신에 성공하는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게 느껴질 때가 많다. 막연한 자신감이라기보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렇다. 그 배경에 울산 여성 특유의 낙천성과 심리적 안정감이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낙천적 여성이 임신에 유리한 이유를 분석하면 이렇다. 임신은 호르몬의 작용으로 이뤄지며 동시에 스트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정서적 불안과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고, 이는 배란과 착상에 관여하는 여러 호르몬의 균형을 쉽게 흔든다. 반대로 낙천적인 사람은 상황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실패를 일시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만큼 몸이 긴장 상태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마음이 느슨해지면 자율신경이 안정되고, 생식호르몬이 작동하기 좋은 환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결국 낙천성은 임신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임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돕는, 가장 현실적 조건 중 하나다.



    울산의 난임 치료 성공률이 높은 또 다른 이유는 지역의 특수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울산은 바다가 도시 바로 곁에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야와 숨이 트이는 공간으로 나갈 수 있는 도시다. 스트레스에 늘 짓눌리지 않고, 한 번쯤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이다. 몸이 불안하면 호르몬이 흔들리고, 마음이 조급하면 임신은 더 멀어지는 법이다. 해안과 맞닿은 개방된 자연환경이 정서적 긴장을 낮추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는 점은 진료 현장에서 자주 체감된다. 예로부터 바닷가 여인들의 수태율이 높았다는 말은 과학적 결론이라기보다 삶의 환경에 대한 오래된 관찰에 가깝다. 숨이 트이고 긴장이 덜한 공간에서 몸은 임신에 조금 더 우호적으로 반응한다.

    2025년 7월 12일 울산 남구 장생포 남동쪽 13km 해상에서 참돌고래떼 200여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울산 남구도시관리공단

    2025년 7월 12일 울산 남구 장생포 남동쪽 13km 해상에서 참돌고래떼 200여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울산 남구도시관리공단

    생태적 번식에 유리한 조건 

    바다 환경만 해도 그렇다. 울산의 앞바다는 국내에서도 드물게 고래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고래는 환경 조건이 까다로운 동물로, 먹이가 풍부하고 이동 경로가 열려 있으며 지나치게 소란스럽지 않은 바다에서만 새끼를 낳고 키운다. 수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먹이인데, 울산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해역으로 먹이 자원이 풍부하고, 생태적으로도 번식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바다다.

    고래는 자궁으로 새끼를 잉태해 낳고 젖을 먹여 키우는 포유류로, 사람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임신 기간은 1년 이상으로 길고, 한번 새끼를 낳으면 몇 년 동안 다음 임신을 하지 않을 정도로 극도로 절제된 생식 전략을 택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이 고래를 ‘정력이 좋다’고 느끼는 이유는 압도적 몸집과 이미지 때문이지, 실제로는 성적 활력보다 환경과 안정, 그리고 타이밍을 훨씬 더 중시한다. 한번 임신이 되면 끝까지 품고, 끝까지 키운다. 그래서 고래의 생식은 정력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과 여유의 문제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출산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분위기다.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불안정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자식을 낳는 문제보다 낳은 뒤 키우고 책임지는 과정에 대한 부담이 지나치게 개인에게 전가된 사회구조 역시 한몫하고 있다. 고래가 새끼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바다를 고르듯, 인간 역시 출산보다 ‘그 이후의 삶’을 먼저 계산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수도권만을 고집하는 수많은 젊은이에게 울산이 가진 싱그러움과 넉넉한 일자리라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적극 알리고 싶다.

    난임 의사로서 필자는 환자들에게 종종 이런 덕담을 건넨다.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도 몸도 자연에 잠시 맡긴 채, 바다 한번 보고 오라”고 말이다. 임신이 잘되는 몸이 되려면 애써 움켜쥐기보다 내려놓는 연습이 먼저다. 비틀스의 ‘렛 잇 비(Let it be)’가 전하듯,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잠시 멈추고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길 때, 몸은 비로소 제 리듬을 되찾는다. 임신은 준비된 몸과 편안한 마음 위에 조용히 찾아오는 축복이기 때문이다.

    강조하건대, 자식은 애물단지도 아니요, 전생의 빚쟁이도 아니다. 낳아 기르고 가르치는 데는 분명 시간과 품이 들고, 때로는 말 한마디에 속이 뒤집혀 열통이 터질 만큼 부모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면 자식은 결국 부모의 삶을 이어받아 세상으로 나아가는 ‘제2의 나’가 된다. 오늘의 부모를 대신해 내일의 사회를 떠받치고, 인류 공동체에 기여할 일꾼으로 성장한다. 그렇기에 자식은, 부모로서 등골을 빼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시간과 수고를 기꺼이 들일 가치 있는 보물 같은 존재다. 

    이경호
    ● 1966년 울산 출생
    ● 1990년 고려대 의대 졸업
    ● 1994~1998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전공의
    ● 1999~2000년 제일병원 복강경수술 전문 펠로(fellow) 
    ● 2000~2003년 미즈메디병원 난임 전문의 
    ● 2003~마마파파&베이비산부인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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