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외환위기·2008 금융위기와 양상 달라 우려
“코스피-환율은 역의 상관관계” 공식도 깨져
외환 당국, 28년 만에 최대치 달러 풀었으나 역부족
전선 업계 등은 ‘에스컬레이션(원가연동형) 조항’으로 방어
“한국 정부 세제개편안, 원화 약세 심리 완화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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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새해부터 기업을 들썩이게 하는 숫자 두 가지가 있다. 코스피와 환율이다. 둘은 함께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있다. 코스피는 1월 들어 거의 매일 약 100포인트씩 오르던 가운데 22일 5000을 넘겼다. 환율도 이에 버금간다. 원달러 환율은 1월 20일 달러당 1480원가량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22일 1479원을 넘어서며 최고치를 찍은 환율은 12월 24일부터 외환 당국이 개입하면서 연초 50원가량 떨어졌다. 하락 국면에 들어서나 했던 환율은 1월 중순 1450원을 회복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1500원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던 많은 전문가의 예상이 현실화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높은 코스피는 기업과 경영인으로선 반가운 일지만, 고환율은 큰 부담이다. 환율은 서로 다른 국가의 화폐 사이에 형성되는 교환 비율이다. 원달러 환율은 우리 돈인 원화와 미국의 달러화 사이의 교환 비율을 말한다. 시장에서 원화, 달러가 얼마나 융통되고 그에 따라 얼마만큼의 희소가치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환율은 시소를 탄다. 만약 원달러 환율이 높으면, 달러가 귀해졌고, 우리 원화 가치는 약해졌음을 의미한다. 지난 1년간 이런 상황이 지속됐고, 떨어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코스피-환율은 역의 상관관계” 공식도 깨져
환율이 높으면 기업은 여러 문제를 겪을 수 있는데, 특히 수입 원자재 가격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이 가격이 크게 오르면 기업들의 지출 및 비용 부담이 커진다.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미국으로부터 달러로 구입하는 기업이라면, 수입 비용이 크게 오르는 폭탄을 맞는 것이다. 이는 해당 제품의 시장가격마저 올리고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이외에도 환차익을 고려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로 된 투자금을 회수해 갈 수도 있고, 해외 현지에서 공장을 짓고 있는 기업이라면 그 비용이 높아져 경영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환율 부담이 각종 사업 계획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다.우리 경제사(史)에서 환율이 높았던 시기는 더러 있었다.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장중 원달러 환율 최고치가 1995원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1570원까지 올랐다. 현재 1500원에 도달해 가는 액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과거의 고환율과는 다른 양상을 지금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서로 ‘역(逆)의 관계’에 있는 코스피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위험신호’로 지적된다.

1월 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31(0.03%) 포인트 상승한 4,552.37로 장을 마감했다. 뉴스1
하지만 지금 이 공식이 깨진 탓에 기업도, 전문가들도 난감해하고 있다. 코스피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해도 원달러 환율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현상이란 분석이 주를 이룬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방식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환차익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반도체·배터리 분야에서 독보적 영향력을 키울 한국 기업들에 투자하는 것이 큰 수익으로 이어질 거라 판단해 환율 변동에도 투자금을 유지한다.
하지만 이보다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가 코스피와 환율 간 공식마저 깨뜨렸단 분석에 더 힘이 실린다. 미국 정부의 예측불허 행보가 이어지면서 환율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1월 4일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압송한 다음 날에도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5.3원 오른 1447.1원을 기록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접수하고 석유를 독식할 가능성이 생기면서 시장에 풀린 달러의 거취에 변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월 3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 “한국의 원화 가치가 상당히 저평가돼 있다”며, 그 요인으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하드파워(경성권력)’ 사용을 꼽았다. 달러화 패권 유지를 위해 군사력, 경제적 수단으로 다른 국가에 의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취지다. 로고프 교수는 “하드파워의 영향은 예상보다 훨씬 광범위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외환 당국이 환율을 낮추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음에도 흐름을 바꾸지 못한 사실도 환율에 대한 국제 정세의 영향력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에 이른 현실을 방증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12월 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우리 외환보유액은 4280억5000만 달러였다. 11월 4307억 달러에 비해 26억 달러 감소했다. 이는 역대 12월 기준 두 번째로 큰 감소 폭이다.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년 12월 기록한 40억 달러 감소 이후 28년 만에 최대치기도 하다. 환율을 낮추기 위해 적지 않은 달러를 시장에 풀었음에도 상승을 막지 못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뾰족한 수 없는 기업들…새해 경기 전망도 ‘부정적’
고환율 앞에 선 기업들은 자력으로 해결할 뾰족한 수를 찾기 힘들어 고민이다. 직접 환율을 내릴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사실상 이들에는 없다. 자구책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업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주요 기업들은 매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경영진 등이 부서별로 회의하는데, 이때 환율 동향을 체크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 임원들 개개인별로는 아침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미국 외신과 환율 동향을 먼저 찾아보는 게 일상이 됐다. 4대 그룹(삼성, 현대차, SK, LG) 등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은 지난해 연말 경영진이 모여 글로벌 전략회의를 하며 새해에 추진할 경영 전략을 짰는데, 이때도 환율이 주요 의제였던 것으로도 전해진다.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현황을 짚어보고 차후 상황을 예상해 볼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단 뾰족한 방안은 도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상황에 따라 환율에 적절히 대응하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방지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기업들보단 원자재 가격에 따라 재정의 변동성이 큰 중소기업들의 속이 더 타 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기업들의 불안감은 새해를 맞아 진행된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2월 국내 제조기업 2208곳을 대상으로 2026년 1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77이 나왔다. BSI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기업들이 향후 경기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낮으면 부정적으로 본다는 걸 의미한다. BSI는 2021년 3분기 이후 18분기 연속 100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고환율과 고비용의 영향으로 기업들이 새해 초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당찬 목표 아래 새로운 도약을 꿈꿔야 하는 시기에 기업들은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환율로 지난해 실적이 악화됐다”고 답한 기업은 전체의 38.1%에 달했다. 특히 원부자재 수입 비중이 큰 내수기업(23.8%)과 수출업체(14.3%) 피해가 큰 것으로도 나타났다.

2025년 12월 24일 정부의 외환 수급대책 발표 이후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 가운데 이튿날 서울 명동 환전소 전광판에 환율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 뉴스1
전선 업계 등은 ‘에스컬레이션 조항’으로 방어
고환율을 대하는 표정은 업계별로 다소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우려는 환율에 따라 변동성이 큰 업계를 중심으로 짙다. 주력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주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회사라면 환율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데, 전반적으로는 현재 기업들의 동향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풀이된다.다만 일부 기업들은 고환율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믿는 구석’이 있다고 한다. 바로 ‘에스컬레이션(원가연동형)’ 조항이다. 에스컬레이션 조항은 물가, 환율 등 외부에서 변수가 발생해 원재료의 가격에 변동이 생기면 거래 대상이 되는 물품의 단가도 이와 동반해서 달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마치 서로 다른 사람이 각자 다른 높이의 계단에 서 있더라도 같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처럼, 재료 가격과 물품 단가가 함께 오르내린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특히 전선 업계에선 통상적으로 거래 계약을 체결할 때 당사들 간 합의로 이 조항을 반드시 계약서에 넣는다. 전선은 구리 등 원자재, 부자재 가격의 변동이 늘 심해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기업 입장에선 리스크를 안고 있다. 재료 가격이 바뀌어 제조 비용은 올랐는데, 똑같은 가격을 받고 팔면 손해가 막심할 수 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션 조항이 이를 해소해 주는 보호막 구실을 한다. 고환율로 수입하는 재료의 가격은 오르겠지만, 그만큼 제품의 판매 가격도 자동으로 올라 기업으로선 손해를 입을 일이 없어진다. 도리어 이 조항 덕분에 해당 기업들의 매출이 늘어날 여지도 있다.
또 다른 일부 기업들은 협력사, 고객사 등과 환율 변동성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관계 재정립에 나선 것으로도 전해진다. 특히 한미 정부의 상호관세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미 투자를 약속한 우리 기업들은 달러 관리 방향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현지에 달러를 풀고 생산시설을 짓기 위해선 많은 달러가 필요한 까닭에 그간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내부에 축적해 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고환율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어 달러를 계속 가지고 있을지, 처분할지 등을 고민해 봐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우리나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은 약 537억44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전월에 기록한 443억2500만 달러보다 약 21% 늘어난 것이다.

‘2025년 12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80억5000만 달러로 직전 달 대비 약 26억 달러 감소했다. 1500원을 위협한 고환율에 외환 당국이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섰고,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도 가동된 영향이다. 사진은 1월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는 모습. 뉴시스
미지근한 정부에 우려…“더 공격적 조치 필요”
기업들은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고 있지만, 정부의 적극적 움직임을 원하고 있다. 환율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요소기 때문이다. 정부의 외환시장 운영 방침에 따라 환율은 잡힐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번 고환율도 전례를 참고해 결국 정부가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공감한다.기업의 바람과 달리, 지금 정부는 환율에 대해 미지근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고환율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이뤄진 확장적 재정 기조에 따른 결과라는 비판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일부 정부 책임자들이 지금의 외환시장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심의 눈초리가 적지 않다. 정부 부처들은 각자 주요 기업의 관계자들을 불러 환율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해 12월 18일에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대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고환율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후 재계에선 정부가 환율 안정화를 위해 대기업들로부터 달러를 걷는다는 이야기가 돌며 비판을 사기도 했다. 당시 각 사에서 내놔야 하는 달러의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됐지만, 실제 정부의 ‘달러 수거’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정부는 각종 세제 지원을 통해 국내로 달러 유입을 유도하는 방안들을 내놨다. 지난해 12월 24일에는 ‘국내투자·외환안정 세제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기업들이 해외 자회사로부터 달러로 된 수입 배당금을 받으면 전면적으로 과세하지 않겠단 내용도 포함시켰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욱 공격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캐슬린 오 모건스탠리 수석 한국·대만 이코노미스트는 ‘원화 반등-최근 외환 조치의 해석’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단기적으로 원화에 대한 약세 심리를 완화하는 데는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더 지속적 원화 강세 흐름을 위해서는 국민연금 등 구조적 정책에 대한 후속 조치(환헤지 비율 확대, 해외 투자 비중 조정 등)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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