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호

[신동아 만평 ‘안마봉’] 잊힐 만하면 터지는 ‘선결제 먹튀’ 사건

  • 황승경 예술학 박사·문화칼럼니스트 lunapiena7@naver.com

    입력2026-01-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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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혜

    ⓒ정승혜

    선결제 먹튀 사건’이 또 터졌다. 새해에 큰 맘 먹고 운동·공부를 하려고 선결제한 이용자들은 잇따른 생활형 민생 사기 사건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난해 12월 부산 북구의 한 대형 스포츠센터는 수억 원대 이용료를 선불로 받은 뒤 공지 없이 폐업하고 업주는 잠적했다. 폐쇄 직전까지 회원권과 수강권을 판매하면서 회원 수백 명이 피해를 봤고, 관할 구청은 직권으로 폐업 처리를 했다. 

    앞서 11월에는 예치금을 내고 학습 목표를 달성하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 ‘파트타임스터디’가 파산 절차를 진행하며 소비자 수천 명이 돈을 떼였다. 

    ‘선결제 먹튀 사건’은 5년간 1000건에 달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5년 8월까지 폐업 관련 선불 거래 피해 구제 신청 건수는 총 987건. 피해 금액은 2억1294만 원에 이른다. △헬스장(351건) △필라테스(334건) 등 체육시설업이 가장 많았고, △학원(83건·2538만 원) △상조서비스(72건·2360만 원) △미용실(43건·888만 원)에서도 발생했다. 

    문제는 피해 접수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53건이던 접수 건수는 2024년 358건으로 7배 가까이 증가했다. 피해자가 소비자원에 신고하는 비율이 10%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피해 건수는 수천 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선불금 먹튀’  사건은 피해 복구도 쉽지 않다. 소비자원은 중재 역할을 하는 곳인 만큼 사업자가 폐업하면 조율할 상대도 사라진다. 경찰도 마찬가지. 사기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은 할 수는 있으나 금전적 보상은 민사로 해결해야 한다. 

    마침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부산 북구을) 스포츠센터 사건을 계기로 ‘체육시설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체육시설 사업자에게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폐업 시 지방자치단체가 즉각적인 소비자 보호 조치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국내 회원권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는데 관련 제도는 여전히 피해자 신고에 의존하는 만큼 빠른 법적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

    1933년
    잊히지 않는 사형수의 ‘칼 들튀’ 사건

    사형수 착수패검절취 도주(死刑因 着守佩劍窃取 逃走)- ‘신동아’ 1933년 2월호

    사형수 착수패검절취 도주(死刑因 着守佩劍窃取 逃走)- ‘신동아’ 1933년 2월호

    1933년 1월 16일, 평양 재판소 유치장에서 살인강도범 심종성이 탈주했다. 그는 1931년 평양에서 일어난 ‘정육점 부부 살해·강도’ 사건 피고인으로, 항소심 공판을 마친 뒤 유치장에 인치된 상태였다. 심종성은 간수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칼을 들고 달아났고, 흉기를 소지한 채 도주했다는 사실은 즉각 비상사태로 이어졌다. 흉악범의 ‘칼 들튀’ 사건이었다. 

    경찰은 경계망을 확대하고 범인의 사진을 인쇄·복사해 시내에 배포했고, 인근 경찰서는 일상 업무를 중지하고 총동원 체제에 들어갔다. 도시는 범인이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속에서 긴장에 잠겼다.

    이 사건이 불러온 공포는 단순히 흉기를 든 범인의 도주 때문만은 아니었다. 1930년대 조선의 치안은 이미 불안정한 상태였다. 세계경제 대공황 여파로 생활고가 심화됐고, 도시와 농촌을 가로지르는 유랑과 빈곤, 소규모 범죄가 늘어났다. 동시에 식민지 권력은 독립운동과 사상 범죄를 억압하기 위해 강력한 경찰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치안의 초점은 언제나 ‘치안 유지’라기보다 ‘통치 질서의 안정’에 맞춰져 있었다. 일상 범죄 앞에서 경찰의 무력함이 드러날 때, 시민이 느끼는 불안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탈주 이후 심종성은 산간과 농촌을 오가며 도주를 이어갔고, 포승줄과 수갑을 풀고 이동한 정황이 전해졌다. 경찰은 오인 체포와 허탕을 반복하며 수색을 계속했고, 곳곳에서 “닮은 사람을 봤다”는 소문이 퍼졌다. 결국 탈주 8일 만에 평원군 일대에서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사건이 남긴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동아일보’ 1933년 1월 20일 조간 2면. 평양 재판소 탈주범 심종성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며 아직 검거되지 않은 상황과 치안 불안을 강조했다. 이후 연속 보도에서 경찰의 오인 체포와 허탕 수색을 비판하고, 사건 장기화에 대한 시민 공포를 지속적으로 다뤘다. 특히 22년 경력 간수 부장의 관리 부실을 타박하며 탈주 원인을 질타해 치안 당국의 무능을 부각했다.

    ‘동아일보’ 1933년 1월 20일 조간 2면. 평양 재판소 탈주범 심종성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며 아직 검거되지 않은 상황과 치안 불안을 강조했다. 이후 연속 보도에서 경찰의 오인 체포와 허탕 수색을 비판하고, 사건 장기화에 대한 시민 공포를 지속적으로 다뤘다. 특히 22년 경력 간수 부장의 관리 부실을 타박하며 탈주 원인을 질타해 치안 당국의 무능을 부각했다.

    ‘동아일보’가 범인의 얼굴 사진을 공개적으로 보도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였다. 탈주범은 더는 법정 안 피고가 아니라, 시민 모두가 경계해야 할 위험 대상으로 전환됐다. 얼굴이 반복 노출될수록, 범인은 인간이라기보다 ‘배제해야 할 위험’으로 인식됐다. ‘신동아’ 1933년 2월호에 실린 만평은 이러한 인식 변화를 한 컷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만평 속 범인은 사람이 아니라 개로 그려진다. 입에는 칼을 물고 있고, 포승줄을 든 간수는 놀라 그만 몸이 얼어붙었다.

    이 만평에서 범인을 개로 형상화한 것은 단순한 비하나 조롱이 아니다. 개는 이성을 잃은 폭력, 통제되지 않는 위험을 상징하는 존재다. 인간의 얼굴과 이름, 사연을 지운 채 칼을 문 짐승으로 그려 넣음으로써 범인은 즉각 제압돼야 할 공포 자체로 변한다. 

    특히 만평은 범죄 동기나 경위보다 ‘칼’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는 범인의 내면보다, 언제든 다시 행사될 수 있는 폭력의 가능성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선택이다.

    포승줄을 든 간수의 모습 역시 의미심장하다. 간수는 권력의 얼굴이 아니라, 뒤늦게 작동하는 질서의 상징이다. 이미 한차례 균열이 발생한 뒤에야 쫓기 시작하는 통제의 양상은, 사건 이후 총동원 체제로 전환된 조선의 치안 풍경과 겹쳐진다. 이 만평은 범인을 붙잡는 장면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왜 이런 공포가 발생했는가’라는 질문을 묵묵히 남긴다.

    탈주 사건은 끝났지만, 만평은 그 이후를 말한다. 1930년대 조선 사회에서 범죄는 더는 개인의 일탈로만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든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으로 환원됐고, 언론은 그 공포를 가장 직관적인 이미지로 치환해 독자 앞에 내놓았다. 칼을 문 개는 그렇게 한 탈주범의 초상이 아니라, 1933년 조선 사회가 느낀 불안과 치안의 균열을 응축한 상징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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