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호

계엄 선포한 尹, 몽테스키외 삼권 분립 언급 자격 있나 

韓 전제정으로 돌리려 했던 계엄, ‘법의 정신’과 반대 행보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6-01-31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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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남용 전제정 극복하려했던 몽테스키외

    • ‘삼권 분립’ 통해 자유 민주정 꿈 꿔

    • 美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통해 구체화된 삼권 분립 원칙

    • 입법‧사법‧행정부 중 두 곳이 특정 정파에 장악되면 문제

    • 민주당 입법‧행정 장악한 韓도 삼권 분립 위기

    • 이 위기 촉발한 것이 尹의 비상계엄 선포

    • “실패하면 반역”인 군사정변, 법적 책임져야

    “몽테스키외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 분립을 주장한 바 있는데, 미국 헌법은 이를 토대로 해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제를 창설하고, 대통령의 권한, 의회의 권한과 역할의 상호 관계, 그리고 사법부의 기능과 역할을 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월 13일,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 중 배보윤 변호사가 한 말이다. 윤 전 대통령의 구형을 위한 결심공판에서 문득 역사와 정치철학 강의를 시작한 것이다.

    배 변호사는 또 “우리 헌법의 대통령제 또한 이와 같은 원리에 입각해서 제도를 도입하여 현행 헌법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몽테스키외와 삼권 분립을 언급한 이유는 명백했다. 삼권 분립에 의해 대통령의 권한이 규정되어 있고, 그 속에는 계엄령 발동권이 있으므로, 그것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정치적 판단’이라는 논리를 펴기 위해서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내란 우두머리 혐의 2차 결심공판에 출석해 배보윤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공 영상 캡처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내란 우두머리 혐의 2차 결심공판에 출석해 배보윤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공 영상 캡처

    배 변호사의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몽테스키외, 그리고 그의 논리를 이어받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펼친 주장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는 계엄에 찬성하지 않았다. 의회를 향해 총구를 들이대고 헌정 질서를 중단시키는 독단적 권력 행사를 옹호하지 않았다. 그의 저서 ‘법의 정신’은 오히려 그런 전제군주의 행태가 왜 잘못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책이다.



    ‘법의 정신’에 펼쳐진 논의를 바탕으로 ‘페더럴리스트(연방주의자) 페이퍼’를 쓰고 미국 연방 헌법 제정에 일조한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연방 헌법은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명시했지만, 그 맥락은 윤 전 대통령 측의 주장과 전혀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와 그로 인한 후폭풍으로 대한민국의 삼권 분립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좌우하는 권력은 독단

    ‘법의 정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목은 제1권 제2부 제11편, 삼권 분립에 대한 고찰이다. 국가 구조와의 관계에서 정치적 자유를 구성하는 법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입법‧사법‧행정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자유란 법이 허용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다. 여기서 핵심은 ‘법이 허용하는’이라는 제한이다. 자유는 법의 한계 안에서 성립한다. 그러므로 법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집행하고, 어떻게 해석할지의 문제가 자유의 수호에 있어서 중요해진다.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정치 제도를 고안한다는 것은 결국 법을 어떻게 다룰지 미리 정하고 지키는 문제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남작(통칭 몽테스키외)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남작(통칭 몽테스키외)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여기서 몽테스키외가 정치를 바라보는 기본적 관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몽테스키외는 정치 체제를 크게 셋으로 나눈다. 첫째는 전제정이다. 한 사람이 법과 제도 없이, 공포의 힘으로 다스리는 체제다. 둘째는 군주정이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전제정과 같지만, 그래도 법이나 귀족 같은 중간 권력에 의해 제한된다. 셋째는 공화정이다. 인민 전체가 주권을 갖는 민주정, 혹은 소수가 가지는 귀족정으로 구분되며, 민주정은 덕성에, 귀족정은 절제에 의존한다.

    이 모든 정치 체제 중 권력이 ‘제한’되지 않는 것은 전제정뿐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가 발전하면서 전제정은 자취를 감췄다. 한 사람의 힘이나 카리스마에 기반한 공포로 모든 이를 움직이기에는 국가의 단위가 커졌기 때문이다. 민주정이나 귀족정뿐 아니라 심지어 군주정에서도 권력에는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다. 조선의 임금이 끝없이 상소문을 받고 부하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현실 속의 모든 정치 체제는 권력의 제한이 따른다. “정치적 자유는 오직 제한된 정체(통치 형태)에서만 볼 수 있다”고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제한된 나라에 정치적 자유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몽테스키외는 지적한다. 논리적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다. 권력에 제한이 있다는 것은 정치적 자유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그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법의 정신’ 속 몽테스키외의 말을 들어보자.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려면, 필연적으로 권력이 권력을 제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 누구도 법이 강제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강요당하거나 법이 허용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당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 구조가 구성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 구조가 바로 삼권 분립이다. ‘법의 정신’ 속 내용을 더 살펴보자. “같은 사람 또는 같은 행정 단체에 입법권과 집행권이 결합하여 있을 때,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재판권이 입법권이나 집행권과 분리되지 않을 때도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군주가 스스로 법을 만들고 집행하거나, 재판관이 법을 만들어서 재판을 해버리는 등의 일이 벌어진다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좌우하는 권력은 독단적으로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몽테스키외의 삼권 분립이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법을 만드는 자와 집행하는 자, 그리고 해석하는 자를 구분함으로써, 원시적인 전제정을 배제하는 논리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영역을 존중해야 하듯, 행정부 역시 입법부의 역할과 기능을 존중하고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삼권 분립 없이는 자유도 없다

    2024년 12월 3일 밤을 다시 떠올려 보자. 외적이 침입하거나 사실상 전시에 가까운 내란 상황이 벌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대를 보내서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했고, 선관위를 기습했으며, 그 외 일부 민간인도 체포하려 했다. 이는 대한민국을 군주정 수준으로 끌어내리고자 한 것이다.

    몽테스키외의 삼권 분립을 거론하며 계엄이 ‘정치적 행위’이므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그런 면에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계엄은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행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다. 그마저도 입법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보았기에 우리의 헌법은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했다. 그 계엄에 법적 정당성이 없다면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을 펴낸 것은 1748년의 일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5세라는 전제군주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몽테스키외가 민주정과 공화정의 가능성을 논했지만,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요원해 보였다.

    17세기 중반을 넘어서며 역사의 수레바퀴가 갑자기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13개 주가 독립을 선포하고 영국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법의 정신’을 교과서처럼 읽던 미국 계몽주의자가 모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 나섰다. 그들이 몽테스키외의 논의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치열한 논의가 생생하게 담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를 살펴보자.

    미국은 새로운 헌법을 만들 때 영국의 법과 제도를 참고했다. 미국의 독립 혁명가가 스승으로 삼고 있는 몽테스키외가 영국 헌법을 깊이 연구하고 모범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권 분립을 다루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논고 제47번에서 제임스 매디슨은 “영국 헌법이 몽테스키외에 대해 갖는 의미는, 호머(호메로스)가 교훈적인 서사시 작가들에 대해 갖는 의미와 같다”며, 현실에 존재하는 권력 분립의 사례인 영국을 참고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그 한계를 짚는다.

    논고 제47번은 “영국 정치체제를 보면 입법부, 집행부, 사법부가 결코 서로 완전히 분리되거나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 국면에서 저자 매디슨은 ‘입법권과 행정권이 분리되어 있지 않거나 사법권이 입법이나 행정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면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는 몽테스키외의 유명한 말에 추가적인 해석을 가한다.

    “그(몽테스키외)가 말하고자 했던 의미는, 입법‧사법‧행정 각 부들이 서로의 행위에 대해 어떠한 ‘부분적 작용’을 가해서도 어떠한 ‘통제’를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다만 한 부의 ‘모든’ 권한이 다른 부의 ‘모든’ 권한을 소유한 바로 그 세력에 의해 행사될 경우 자유 정체의 근본 원칙이 파괴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에 작성된 글답게 문장의 호흡이 길지만, 그 내용은 분명하다. 입법, 사법, 행정의 3부가 서로 권한이 조금씩 중복되고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권력 간의 상호 통제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언제 삼권 분립의 위기를 논할 수 있는가. 가령 입법부의 모든 권한을 어떤 세력이 쥐고 있고, 그 세력이 행정부의 모든 권한을 휘두를 때, 그럴 때 우리는 행정부가 입법부를 견제하지 못하고 입법부 역시 행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입법부가 특정한 정파나 정치 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는데 사법부 역시 같은 세력에 의해 전적으로 휘둘리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패하면 반역”인 계엄, 사법처리 피할 수 없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삼권 분립은 위기에 빠져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그에 우호적인 야당들이 국회 의석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행정부의 권력까지 민주당에 넘어가 있는 것이 2026년 한국 정치 지형도이니 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있다. 채널A 캡처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있다. 채널A 캡처

    대한민국의 삼권 분립은 위기에 빠졌다. 문제는 그 위기를 누가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책임론을 따지자면 원인은 분명하다. 윤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 때문이다. 그는 행정부가 가진 합법적 권한으로 입법부의 권한을 통제하고 사법부의 심판을 통해 정치권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들을 배제하는 정도를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늦은 밤 군대를 동원해 국회의원을 체포하고 국회를 정지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대한민국을 전제정으로 되돌리려 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 행위가 ‘정치적 판단’이나 ‘통치행위’ 같은 말로 용납될 수 있을 정도로 정치가 낙후되어 있는 국가 또한 아니다. 야당뿐 아니라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까지 나서서 계엄 해제에 찬성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군사 정변이란 무엇인가. 1980년 12월 12일 밤 군사 정변을 저질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말마따나,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다. 윤 전 대통령은 군사 정변을 저질렀고 실패했다. 탄핵을 당하고 사법 절차에 의해 처벌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본인이 아니라 변호인이 한 말이지만 몽테스키외를 운운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항변할 일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다. 본인이 내린 잘못된 판단에 대해 국민의 용서를 구하고, 남은 지지자들이 헌정 질서를 수긍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역사적 소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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