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고치려다 오늘의 현실에 맞닿는 ‘시간 여행’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 보여준 시간에 대한 세계관
시간은 다루는 대상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흐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기꺼이 살아내는 삶의 태도

밤 골목에서 마주 선 팀과 메리. 사랑은 미래를 앞당기는 사건이 아니라 같은 속도로 걷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IMDB
영화 ‘어바웃 타임’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설정은 얼핏 보면 후회를 지워주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방향은 다르다. 이 작품은 과거를 고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후회가 더는 삶을 끌고 가지 않게 되는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시간 여행’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게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사랑을 위해 시간을 쓰기 시작하다
영화의 배경은 영국 남서부의 조용한 해안 마을. 바닷바람이 잦고 날씨는 대체로 흐리다. 이곳에선 인생이 단번에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고, 아주 사소한 선택들이 서서히 삶의 결을 바꾼다. 이 마을의 리듬은 이 이야기가 특별한 모험담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살아내고 있는 일상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임을 보여준다.이곳에서 팀 레이크(도널 글리슨)는 가족과 함께 살아간다. 그는 특별한 재능도, 단번에 시선을 끄는 매력도 없다. 파티에선 늘 어색하고, 농담을 건네도 타이밍을 놓친다. 그러나 팀은 자신의 모습에 분노하거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을 극적으로 바꾸려 하기보다 주어진 조건에서 관계를 유지하며 하루를 통과하려는 사람에 가깝다.
팀의 가족 파티는 늘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다. 엄마는 엉뚱한 농담을 던지고, 여동생은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집 안은 끊임없는 말소리로 채워진다. 이 장면들에서 시간은 결코 정돈된 형태로 흐르지 않는다. 대화는 자주 엇갈리고, 완벽한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어긋남 속에서 가족이라는 시간의 본질이 드러난다. 팀은 이 공간에서만큼은 시간을 되돌려 ‘더 나은 장면’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가족과의 시간은 고쳐야 할 오류가 아니라 감당해야 할 현실이기 때문이다.
스물한 번째 생일 밤, 팀은 아버지(빌 나이)에게서 집안의 비밀을 듣는다. 이 집안 남자들은 모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중요한 것은 비밀의 내용보다 전달 방식이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극적으로 꾸미지 않는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집안의 생활 규칙을 설명하듯 담담하게 말한다. 시간 여행은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일상의 한 조건으로 제시된다.
아버지는 능력의 사용법보다 먼저 태도를 가르친다. 인생을 통째로 바꾸려 하지 말 것, 욕심을 앞세우지 말 것, 대신 사소한 실수와 후회를 바로잡는 데에만 쓰라는 조언이다. 아버지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기보다 이미 시간을 충분히 살아본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시간을 다시 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며 살아간다.
팀은 곧 이 능력을 시험해 본다. 어두운 옷장 안에서 눈을 감고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면 시간이 되돌아간다. 이 장면엔 화려한 효과도, 과장된 연출도 없다. 옷장은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라기보다 잠시 자기 마음속으로 숨어드는 좁은 공간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시간 여행은 언제나 이렇게 조용하고 개인적으로 이뤄진다.
팀이 이 능력을 가장 먼저 사용하는 이유는 사랑이다. 런던으로 이사한 뒤 그는 불 꺼진 식당에서 메리(레이철 매캐덤스)를 만난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는 대신 목소리와 말투, 말에 대한 반응으로만 상대를 느끼게 되는 공간. 두 사람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시작한다. 이 장면은 영화가 말하는 사랑이 외모나 조건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어떻게 함께 통과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어둠 속에서의 만남은 단순한 분위기 연출이 아니다. 포크가 접시에 닿는 소리, 잠시 말을 고르는 시간, 웃음이 나오기 직전의 짧은 침묵 같은 순간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이때 팀은 평소보다 훨씬 편안해 보인다. 다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평가받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쓰이지 않는 이 만남이 영화에서 가장 솔직한 시작으로 남는다.
여러 번의 되돌림, 그리고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삶
이 평온은 오래가지 않는다. 팀은 친구 해리(톰 홀랜더)의 실패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하지만 메리의 연락처는 사라진다. 이때 팀은 깨닫는다. 한 가지를 바로잡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면 그와 연결된 다른 순간들까지 함께 바뀐다는 사실을. 시간은 필요한 부분만 골라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이후에도 팀은 여러 번 과거로 돌아간다. 처음엔 손에 쥐는 결과가 나쁘지 않다. 사소한 실수를 고치면 하루가 매끄럽게 흘러가고, 관계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회의에선 할 말을 이미 알고 들어가고, 어색한 침묵은 피하며,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말은 미리 지운다. 이 시기의 시간은 아직 친절하다.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얻을 수 있었을 결과들이 실제로 손에 들어온다. 시간은 노력에 응답하는 도구처럼 보이고, 삶은 관리 가능한 대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선택이 반복될수록 하루의 성격이 달라진다. 팀은 하루를 살아내기보다 하루가 어떻게 끝났는지 먼저 확인하는 사람이 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되돌아가고, 괜찮으면 그 버전을 남긴다. 현재는 점점 ‘사는 시간’이 아니라 ‘점검하는 시간’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팀이 언제나 결과를 본 뒤에야 판단한다는 점이다.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이미 벌어진 일에서만 선택을 수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런던의 법률사무소 장면에서 또렷해진다. 팀은 시간을 되돌려 상사의 질문에 더 나은 답을 내놓을 수 있고, 회의에서 좀 더 영리한 태도를 연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률의 세계는 개인의 순발력이나 기지로 움직이지 않는다. 판결이 내려지는 구조, 제도의 논리, 조직이 유지되는 방식은 팀의 시간 여행과 무관하게 제자리를 지킨다. 이곳에서 시간은 개인의 감정과 관계엔 개입할 수 있지만, 이미 굳어버린 질서 앞에선 더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의 선택, 이미 시작된 관계, 가족이 겪는 삶의 흐름은 수정의 대상이 아니다. 시간 여행은 오직 자신의 삶에 대해서만, 그것도 아주 제한적으로 작동한다.
이런 태도는 연출과 각본을 맡은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세계관과 닿아 있다. 그는 시간을 조작하는 쾌감을 오래 끌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통제되지 않는 순간들을 반복해 보여준다. 관계는 어긋나고, 선택은 겹치며, 결과는 늘 예상을 벗어난다. 시간은 다루는 대상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흐름으로 남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하루를 남길 것인가에 대한 태도라는 사실을 팀에게 조용히 전하는 아버지. IMDB
아버지와 아이, ‘과거의 윤리’와 ‘미래의 윤리’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다시 아버지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아버지는 팀에게 또 하나의 ‘시간 사용법’을 건넨다. 시간을 더 멀리 가는 법이 아니라 같은 하루를 다르게 통과하는 법이다. 하루를 두 번 살아보라는 제안. 첫 번째 하루는 늘 하던 대로 흘려보내고, 두 번째 하루는 걸음을 늦춰 주변을 바라보며 살아보라는 것이다. 이는 시간을 되돌리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연습에 가깝다.아버지는 과거를 고치지 않는다. 대신 과거를 현재의 삶 속으로 조용히 불러온다. 지나간 일을 지우지 않고, 그것을 안고 하루를 살아간다. 후회를 밀어내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아버지는 영화에서 ‘과거의 윤리’를 살아내는 인물로 남는다. 그러나 이 윤리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시간의 규칙은 돌이킬 수 없이 바뀐다.
현실에서 아버지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팀은 그리움이 밀려올 때마다 과거로 돌아간다. 함께 탁구를 치고, 산책을 하고, 특별한 말 없이도 같은 시간을 나눈다. 이 만남들은 분명 위로가 된다. 동시에 현재를 유예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팀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반복해서 더듬는다.
그러던 중 팀의 셋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 순간 이후 팀은 더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아버지가 살아 있던 시간엔 셋째 아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전으로 돌아갔다가 현재로 돌아오면 아이는 달라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
이 설정에서 시간은 하나의 책임이 된다. 아이는 미래를 떠맡게 만드는 존재이며, 시간을 함부로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기준이다. 되돌릴 수 있는 시간과 되돌려서는 안 되는 시간이 이 지점에서 또렷이 갈라진다. 아버지가 과거를 정리하는 윤리라면, 아이는 미래를 떠안게 만드는 윤리다. 팀은 이 둘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 아버지를 계속 만나는 선택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되고, 아이를 선택하는 일은 현재와 미래를 감당하는 일이 된다. 이 선택은 잔인하지만, 영화는 이를 피해 가지 않는다.
팀과 아버지는 인생에 대해 길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날씨를 이야기하고, 길가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란히 걷는다. 마지막 만남에서도 카메라는 이별을 강조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시간을 되돌리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산책의 감각을 충분히 느끼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아버지는 더는 과거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스스로 과거가 되는 자리로 물러난다. 그래서 이별은 비극이 아니라 한 세대의 시간이 다음 세대로 건네지는 순간으로 남는다.
팀은 더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다. 이미 아버지를 통해 시간을 대하는 다른 방식을 배웠고, 이제는 그 태도로 현재의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루를 두 번 사는 대신 하루를 한 번 제대로 살아가는 선택. 이것이 영화가 시간 여행이라는 장치를 통해 도달하는 최종적인 삶의 태도다.
‘어바웃 타임’은 시간을 여행하는 영화가 아니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 영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되레 현재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다. 오늘 하루를 좀 더 천천히, 좀 더 성실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조용한 마음가짐이다.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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