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사림열전 2’

우리 곁에 되살아난 대표 사림들

  •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shinby7@konkuk.ac.kr

    입력2008-04-04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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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림열전 2’

    ‘사림열전2’ : 이종범 지음, 아침이슬, 439쪽, 1만5000원

    과거의 역사는 지금도 재현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다. 저자는 사림(士林)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500여 년 전 그들의 고민이 현재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역설한다. 시와 문장에 언뜻언뜻 나타나는 행간의 의미들을 좇으며 시대와 불화 또는 조응했던 사림들의 면면을 살펴나간다.

    저자는 무엇보다 역사가 오늘에 주는 의미를 생각한다. 그는 서문에서 “한동안 한국현대사의 희생과 유폐의 풍경을 되작거리곤 하였다. ‘사림 시대 이후의 사림’이 붕당정치로 치달으면서 전기 사림의 다채롭고 치열한 여정을 잊어갔듯이 혹여 오늘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우리가 지난 세기 침묵의 상흔을 밑그림으로 감추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반문한다. 그리고 조선전기 사림의 행적을 통해 과거와 현재 역사의 소통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

    조선대 사학과 이종범 교수는 전작 ‘사림열전 1’에서 최부, 박상, 김인후, 유희춘, 기대승, 박순, 정개청 등 15~16세기 호남지역을 주무대로 활동한 사림들의 삶과 생각을 풀어나갔다.

    또 다른 역작인 이번 ‘사림열전 2’에선 지역을 넘어 영남 쪽으로 눈을 돌렸다. 여기서 다루는 인물은 김종직, 김일손, 김굉필, 정여창 등 영남 지역 사림파가 중심이다. 생육신으로 활약한 김시습과 남효온의 행적도 등장한다. 6명의 공통점은 조선 전기 지식인의 진로에 가장 큰 고민을 안겨주었던 세조의 불법적인 왕위 찬탈을 비판하고 체제에 저항하려 했다는 점. 이들의 모습은 마치 5공화국 군사정권 시절의 반체제 지식인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사림들의 열전을 쓰면서 훈구파와 사림파의 구분 기준을 우선 과거 청산에서 찾고 있다. 즉 ‘사림파와 훈구파의 확연한 구분선은 어두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치유할 것인가 하는 역사투쟁 혹은 기억운동이었다’고 전제한 후, 세조의 즉위가 몰고 온 공포의 시대, 어두운 상흔의 기억들은 시문을 통해 때로는 ‘조의제문’과 ‘금오신화’ 등의 작품으로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15세기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

    저자는 15세기 사림과 16세기 사림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그러면서 ‘전기 사림파에 덧칠해진 16세기의 채색을 벗겨내고 그들의 치열한 삶과 다양한 생각을 15세기의 백지 화폭에 담고 싶다’고 선언한다. 서경덕, 조식, 이황, 이이 등 16세기를 장식한 사림들과는 차별되는 15세기 사림파의 면모는 어떠한 것일까? 저자는 김종직의 ‘의로운 기억과 교학활동’, 김시습의 ‘버림의 세월과 철학적 포효의 진의’, 남효온의 ‘유랑과 과거 청산의 외침’, 김일손의 ‘진실 기록과 개혁 구상’, 정여창의 ‘낮은 곳에서 찾아낸 신민(新民)의 길’, 김굉필의 ‘침묵과 함께한 소통의 꿈’ 들은 16세기 본격적인 사림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개척의 길이자 희생의 길임을 암시한다.

    이들은 훈구파라는 거대한 장막을 뚫고 솟아올라온 사림의 씨앗들 중에서 역사에 남을 만큼 뚜렷한 열매를 맺은 인물들이다. 문장과 도학으로 시대를 풍자하기도 하고, 은둔과 비판적인 처세로 저항의 씨를 뿌렸다. 직선적인 상소문을 짓고 실록의 기록에까지 저항 정신을 불어넣으려 했던 그들. 15세기 당대에 찬란한 젊음을 발산했던 그들 사림의 이야기다.

    첫 번째 등장하는 인물은 김종직. 소위 영남사림파의 영수다. 제자 김일손이 그의 작품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음으로써 사화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김종직은 세조 치세에 관직에 발을 들여놓은 인물이었고 훈구파와도 두터운 친분을 형성하였다. 김종직은 강한 저항 의식을 가진 인물로서보다는 뛰어난 문장 능력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허균도 “‘조의제문’을 지었으면 세조 치세에 벼슬에 나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시문의 경지만은 어쩔 수 없었다”고 평했다.

    김종직은 당대에는 관리와 학자로서 누릴 것을 다 누린 인물이었다. 관직에 진출해 성종의 총애를 받았고, 그가 길러 관직에 진출시킨 제자도 적지 않았다. 사림 출신의 인물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 사다리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치열하게 사림 정신을 후학에게 심어놓은 인물도 아니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김종직은 여전히 사림파의 영수로 남아 있다. ‘조의제문’ 사건으로 훈구파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했고, 당대에 사림으로서 선명한 업적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그 제자들과 사림을 계승한 후학들에 의해 정신적 스승으로 남은 경우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김종직에 대한 부제를 ‘경계인을 위한 변명’으로 달았다.

    문묘 배향된 정여창·김굉필

    ‘금오신화’의 저자로 알려진 김시습에 대해선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을 인용하면서 설명해나간다. ‘조종 제사가 뒤집힌 것이 한스럽고/ 지난 기대 저버린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 강은 언제 맑아지는지 기다린 지 오래인데/ 학이 전하는 조칙은 더디기만 하네’라는 시를 통해 김시습은 세조의 즉위가 가져온 어두운 과거를 잊지 않으려 했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죽은 단종의 복위를 기다렸다. 그는 자신의 인생은 어쩔 수 없게 되었지만 종묘의 제사가 바로잡혀야 한다는 점을 시로 표현하며 울분을 참지 못했던 저항의 지식인이었다. 그는 결국 화려한 관직 생활을 포기하고 은둔과 시로 일생을 마감했다. 저자는 이러한 김시습의 행적을 ‘올바른 역사는 아름다운 패자를 잊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이미 사망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세조에 대한 비판이 금지되던 시절 남효온은 붓을 들었다. 세조의 불의에 대해 죽음으로 맞선 6명의 순절자, 역사상 사육신으로 알려진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한 ‘육신전’을 썼다.

    ‘누가 신하가 아닐까마는 지극하다. 육신의 신하됨이여! 누군들 죽지 않을까마는 장하다 육신의 죽음이여. 살아서는 임금 사랑의 신하 도리를 다하고, 죽어서는 임금 충성의 신하 절개를 세웠도다.’

    남효온의 서사는 장렬하고 애절했다. 지금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사육신의 충신 선언. 그러나 당대에는 엄청난 금기였다. 마치 1980년대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사람을 폭도라 하지 않고 민주화 투사라고 부르는 것이 금기시된 것과 같았다. 과거와 화해할 수 없었던 남효온은 끝내 생육신을 자처하면서 먼저 간 사육신의 정신만은 몸소 계승하고자 한 인물이었다.

    정여창과 김굉필은 비슷한 사림의 길을 걸어간 인물이다. 영남 지역에서 출생해 김종직의 학문적 영향을 받았고, 16세기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림파가 역사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데 기여한 인물들이다. 사화의 희생자라는 점에서도 같고, 사후에 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문묘에도 배향된 점에서도 같다. 이처럼 사림의 대표로 족적을 남긴 데는 치열한 삶과 깊은 학문이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김일손은 직필로 사림 정신을 구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일손은 15세부터 20대 후반까지 세조의 치세를 은둔으로 저항한 노선비를 차례로 탐방했다. 그것은 순례의 길이었으며 우리 역사운동의 전통을 잉태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운동의 백미는 직언이 필수인 사관의 직책에 있으면서 적극적인 실천으로 구체화됐다.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는 그와 스승 김종직에게 역적의 올가미를 씌웠지만, 그의 사림 정신은 자계(紫溪)의 붉은빛처럼 훗날 사림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았다.

    지나치게 시문 중심

    훈구파에서 사림파로 정치세력의 이동이 점진적으로 전개되던 시절 치열한 삶을 살아간 6명의 사림. 서로 다른 선택을 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역사의 흐름을 발전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한 대표 주자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들의 행적을 지금도 역사의 거울로 삼는 이유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과거 속에만 매몰시키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적극 끌어왔다는 점이다. 저자는 ‘올바른 역사학은 한 인간의 행동과 발언, 소망과 분노, 나아가 침묵과 좌절까지도 시대의 상황과 맥락에서 관찰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단절과 배제가 아닌 계승과 전환의 궤적을 찾을 수 있어야 하며, 노선과 분파를 넘어서 교류와 소통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자가 이런 역사관을 사회경제적 변동이나 민란과 같은 저항의 역사에서가 아니라 사림파의 사상과 현실 대응에서 찾았다는 점은 역사 속 지식인들의 고민이 현대인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따라서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진단하는 데 사림파 이야기가 좋은 거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의 역사관도 책 곳곳에 투영돼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몇 가지 아쉬움도 있다. 먼저 곳곳에 배치된 도판과 친절한 설명은 역사적 현장감을 주기도 하지만 일부 도판은 책의 여백만 차지하고, 시각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도판 설명이 너무 길어 본문의 흐름을 차단하는 역효과도 있다.

    기존에 일반적으로 취해오던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지향하고 주제별로 사림들의 행적을 정리해간 점은 주제 의식을 선명히 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일상적 삶의 변천 과정이 잘 포착되지 않아 역사적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혼란을 줄 수도 있을 듯하다. 또 시문 중심으로 인물의 현실 대응을 설명해 상소문이나 잡저(雜著) 등의 글이 부족한 점도 아쉽다. 예컨대 김시습의 경우 대표작인 ‘금오신화’에 투영된 삶과 사상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고, 남효온에 대해서는 그의 최고 저작인 ‘육신전’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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