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마다 이렇다 할 원칙도 없이 단기 수익률이 높은 재테크로 몰려든다. 그러나 수익률이 높은 재테크는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나이가 들면서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최근 ‘대한민국 40대, 재테크를 버려라’를 출간한 금융 컨설턴트 조경만씨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조언한다. 재무설계를 통해 인생의 큰 목표들을 먼저 정한 뒤 공인된 재테크를 통해 작은 소득도 꾸준하게 나오도록 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는 것.
그는 서울 강북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중학생, 초등학생 두 아이를 데리고 그런대로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에서 1, 2등을 다투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좋은 학군을 찾다가 목동으로 눈을 돌렸고, 살던 아파트를 팔고 아파트 전세를 구해 이사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예상했지만 별일 없이 되기를 기대한 문제들’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았는지 반에서 10등 안팎으로 밀려났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소득의 40%를 넘나드는 높은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튼튼한 버팀목이던 남편이 “1~2년 내에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회사생활이 순탄치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말로만 듣던 명예퇴직을 하든지 아니면 지방근무를 감수하든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부유한 동네라 그런지 소비수준도 이전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직은 쓸 만한 자동차도 주위 사람들 수준에 맞추려면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고, 옷도 아무거나 입고 다닐 수 없는 분위기였다. 시댁에라도 가는 날이면 ‘대기업 부장으로 잘나가는 아들하고 살면서 왜 만날 죽는 소리만 하냐’는 식으로 눈총을 주는 시댁어른들 때문에 스트레스는 더욱 커졌다.
집값 상승은 허탈감을 더욱 크게 했다. 그동안 전체적으로 집값이 오른 탓에 강북에서 그대로 살았다면 적지 않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세인 까닭에 그마저도 그림의 떡이었다. 자녀교육, 소비 수준, 남편의 미래, 시댁의 눈치, 돈 벌 기회를 놓쳐버린 상실감 등은 이 40대 중년여성의 마음을 너무나 무겁게 짓눌렀다.
인생 꼬이게 하는 ‘철새 재테크’
이는 그런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대한민국 40대 가족의 흔한 자화상이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40대의 중심 화두는 역시 돈이다. 그러다 보니 저마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이러저러한 재테크 열풍에 편승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 단기 수익률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원칙도 없는 ‘철새 재테크’에 뛰어든다. 3~4년 전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자 열기, 최근 1~2년 간의 펀드 열풍이 그런 것들이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잘 풀리면 다행인데, 앞서 예를 든 가정처럼 자꾸만 꼬이는 수가 참으로 많다.
20, 30대는 급변하는 금융환경이나 다양한 재테크 인기상품들을 민첩하게 모니터링하면서 상대적으로 잘 따라가지만 40대 이후는 적응력이 떨어지고 자신이 ‘왕따’나 외톨이가 된 느낌을 갖기 쉽다. 한마디로 머리도 몸도 마음도 경제력도 안 따르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다.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일할 수 있는 나이다. 그동안 열심히 모아 자녀교육을 마치고 돈도 불려서, 60대 중반쯤의 실제 은퇴기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들에게 ‘10-10-10’ 전략을 제안한다. 투자 개념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연습해서 연 10%의 수익률로 자녀교육을 마치는 제1 은퇴기까지 10년 동안 돈을 모으고, 그 후 10년 동안 돈을 굴리자는 것이다. 월 30만원, 50만원을 갖고도 적지 않은 금액의 노후자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는 재무설계를 통해 구체화할 수 있다.
재테크와 재무설계를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재테크는 시대와 환경 변화에 맞춰 자주 바꿀 수 있는 테크닉이지만, 재무설계는 인생의 큰 목적이나 목표를 정하는 일이다. 즉 재테크는 단기의 효과적인 방법이나 상품을 찾는 것이지만, 재무설계는 크게 멀리 보는 것이다. 재테크는 나무를 보는 것이고, 재무설계는 숲을 보는 것과 같다.
재무설계는 건강검진과 비슷
집이 전체 자산의 80%를 넘을 경우 집보다는 자녀교육과 노후대비에 집중하는 게 좋다. 사진은 분양 중인 아파트 모델하우스.
작은 소득이라도 꾸준하게 나오도록 하는 것이 재테크의 기본이다. 그러고는 가족들과 함께 합리적인 소비방법을 찾고 잉여자금을 발생시켜 적정위험-적정수익의 투자를 한다. 감수할 만한 리스크를 생각하면 큰 문제없이 목적을 달성할 것이고 은퇴시기를 전후해 행복한 인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재무설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는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과 같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의사는 몇 가지를 물어보고 엑스레이, 혈액검사, 소변검사를 해 차트를 만들고는 현재의 몸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환자의 구체적 몸 상태를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환자는 꼼짝없이 의사의 말에 복종하게 된다.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고 처방약을 꼬박꼬박 먹어야 살아갈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재무설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현재 재무상황을 재무상태표(표1)로 정리하는 일이다. 기업의 재무제표처럼 개인과 가정의 경제 사정도 이런 방식의 표현이 가능하다. 또한 1년 또는 1개월의 평균적인 수입과 지출 내용이 어떠한지는 현금흐름표(표2)로 알 수 있다.
부부나 가족이 함께 이 양식을 작성해보면 그 자체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밖에도 금융상품이나 보험, 부채, 부동산의 자세한 내용까지 확인해보면 의외로 많은 문제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40대는 평균적으로 10~20개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 가운데 해결이 가능한 문제를 선택해서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수정하면 1~2년 안에도 상황이 눈에 띄게 개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재무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혼자 힘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다양한 문제를 확인하고 우선순위를 가리는 것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집이 전체 자산의 80%를 차지한다면 이제는 집에 대한 계획은 접고 자녀교육이나 노후를 준비해야 하고, 맞벌이를 하면서도 별생각 없이 소득의 70~80%를 소비하는 사람은 소비를 통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알게 모르게 나가는 이자비용도 챙겨봐야 한다. 몇천만원을 예금에 묵혀두면서 높은 대출이자를 납입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외식이나 통신비로 소득의 30% 가까이를 지출하면서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또한 당장 자세를 고쳐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미래가 없다. 이처럼 자신의 재무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재무설계의 기본이다.
자산 | 부채 및 순자산 | ||
1. 수시입출금예금 2. 예/적금 3. 주식, 채권, 펀드 4. 보험 해약환급금 5. 받을 돈(퇴직금 등) 6. 집(주거용 주택) 7. 투자 부동산 8. 내구재(자동차) 9. 기타 자산 10. 사업용 자산 | 1. 단기부채(마이너스 통장, 카드미상환잔액) 2. 할부 3. 줄 돈 4. 주거용 대출 5. 투자용 대출 6. 기타 합 순자산 | ||
합 | 합 |
소비 및 저축 | 소득 | ||
1. 의식주 2. 교육 3. 이자 4. 교통/문화/통신/의료 5. 용돈/경조/부양/기부 6. 보장성 합 1. 단기 - 유동성 2. 중기 - 안정성 3. 중기 - 수익성 4. 장기 - 안정성 5. 장기 - 수익성 | 1. 본인 소득 2. 배우자 소득 = 수입 - 비용 3. 금융(이자/배당)소득 4. 부동산 임대소득 5. 기타소득 6. 연금소득 | ||
합 | 합 |
성공하는 재테크 5원칙
이런 문제들을 하나 둘씩 고쳐나가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가정의 재무상태가 안정돼간다. 가정의 라이프사이클에 따라서 목적자금을 산출하고 그 자금을 만들기 위한 단기, 중기, 장기 금융상품을 잘 활용하는 것도 문제해결 방법이다.
그 다음 당장 실행해야 할 재테크 다섯 가지를 짚어봐야 한다. 알고 보면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간단한 얘기지만 그만큼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첫째, 합리적 소비로 10만~50만원의 잉여자금을 만들어라.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하게 빠져나가는 돈과 ‘지름신’이 발동해 기분에 이끌려서 쓰는 돈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이 습관적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소비는 재테크의 기본이다. 10만원 쓸 때의 마음가짐은 1000만원 쓸 때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래서 가계부를 쓰고 소비원칙을 결정하는 것은 최고의 펀드를 선택하고 투자가치가 높은 아파트를 갖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매월 10만원, 30만원의 여유자금도 남기지 못하면서 좋은 재테크가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앞뒤가 뒤바뀐 행태다.
둘째, 간접투자-적립식 투자로 연습하라. 투자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어렵게 여기는 이도 있다. 원래 투자는 잘못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무서운 흉기이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최상의 무기다. 그래서 자신없는 이들에게는 펀드 같은 간접투자를 권한다. 그것도 목돈으로 통크게 투자하는 것보다 매월 적금식으로 3~5년 이상 투자하는 적립식 펀드를 적극 권한다. 한 번의 사이클(3~5년)을 경험하면 투자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수익 중심으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위험에 따른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볼 수 있게 된다.
셋째, 집과 자녀교육 문제를 정리하라. 매달 잉여자금을 남기고 투자를 하려 해도 급하게 써야 할 돈이 생겨난다. 바로 주택과 자녀교육비라는 ‘괴물’ 때문이다. 대한민국 40대 중에 이 두 가지 문제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서 마련하고, 그것도 모자라 부채까지 끌어와야 하는 경우엔 재테크도 남의 일이 되기 쉽다. 따라서 가족이 모여 생각을 정리해봐야 한다. 집, 자녀교육, 가족 전체의 안정 가운데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따져야 한다.
불행 막는 리스크 관리
넷째, 노후 준비는 마지노선이다. 이것을 목표로 남은 인생을 던져도 모자라다는 것을 기억하라.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집과 자녀교육 문제에 집중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해지는 게 바로 노후 대책이다. 어떤 전문가는 노후 문제를 ‘쓰나미’에 비교할 정도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40대에게는 노후 대비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다.
다섯째, 재무설계 전문가와 논의하라. 혼자서 돈 관리를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에서 이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금융의 세계를 그런대로 뒤처지지 않고 제대로 이용하는 유일한 방법은 직업적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요즈음은 나름대로 제무설계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 많아서 도움 받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명심해야 할 것은 리스크 관리다. 예측가능한 불행에 대해서는 미리 준비하고 예방하는 일이 현명하다. 쉽게 피할 수 없는 과소비 리스크, 기대한 수익만큼 손실을 볼 수 있는 투자 리스크, 높은 이자율로 인한 대출 리스크, 필요해도 쓸 돈이 없는 유동성 리스크, 사고나 질병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소득 상실 리스크, 화재 등으로 인한 재산 손실 리스크, 수명이 길어진 데 대한 장수(長壽) 리스크 등도 체크해서 대체 수단을 준비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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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반적인 재테크 유형은 이런 리스크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만약 40대인 당신이 그동안 모은 돈 1000만원으로 투자를 시작했는데 1년 만에 100% 수익률을 올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 손에 쥔 2000만원을 갖고 담보대출로 5000만원을 만들어 재투자에 나설 것이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1년 만에 기대한 100% 수익률이 되어 1억원으로 늘어났다면 자신감은 더욱 커져 친지, 친구의 돈을 모아 3억~5억원을 굴리려고 할 것이다. 그때쯤 되면 100% 수익률 뒤에 도사린 50%의 손실 가능성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 그렇게 해서 40대의 당당한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재테크 유형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다. 이렇게 위험과 수익을 무시하고, 운에 맡기는 재테크는 한 가정의 꿈을 산산이 깨뜨리는 재테크의 전형이다. 돈의 액수와 수익률에만 초점을 맞춘 재테크는 외줄을 타는 재테크다.
은행, 증권, 보험업계 영업맨들이 세일즈를 위해 재무설계를 해줄 때는 그 본질이 변질되는 수가 많다. 즉 고객의 재무 목표를 분명히 하고 가장 효과적이며 현실적인 방법을 고려해야 하는데, 다른 상품과 비교해서 상품을 선택하고 포트폴리오만 잘 세우면 미래가 잘 풀릴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산, 저축, 투자에서 부채, 소비, 소득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 통합적인 재무설계,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40대가 구축해야 할 새로운 재무 패러다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