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어디에서나 ‘스토리텔링’이 유행이다. 스토리가 없는 콘텐츠는 소비자로부터 버림받는다는 말도 나온다. 주식시장에도 ‘테마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런데 주식시장의 테마엔 마(魔)가 끼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의 ‘시골의사’는 시장에 등장하는 테마가 대개 신기루이거나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루머에 속고 테마에 멍드는 투자자는 언제나 개미라는 것. 그는, 주식시장 영원불변의 테마는 오직 ‘실적’ 그 자체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사가 다 좋을 수는 없는 법. 인간성이 꽃피던 이 시기를 기점으로 ‘루머’라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슬 퍼런 신의 계율이 머릿속에 각인된 중세, 거짓말은 10계명 중 제8계명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사소한 거짓말도 지옥에 이르게 하는 죄악으로 생각되던 당시 분위기에서 인간성에 대한 자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벼운 거짓말’을 신성에 대한 ‘딴죽 걸기’처럼 여기는 풍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곧 시대적 유행이 됐다.
당시 이탈리아에 피에트로 아레티노라는 저널리스트가 있었다.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발달한 출판·인쇄문화를 발판으로 한 쪽짜리 ‘소식지’를 발행했다. 여기에는 궁정과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던 위선, 타락, 매수 등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그뿐 아니었다. 그는 추기경의 비행이나 추문들에 관한 풍자시를 소식지에 함께 게재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인기 절정의 존재가 됐다.
이런 대중적 지지는 초기에 그를 권력과 갈등하고 길항하는 처지에 서게 했지만, 그를 제거하기 위한 귀족의 음모와 노력이 실패로 끝나면서 소식지는 오히려 그가 권력을 잡고 귀족들과 거래를 시도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소식지를 억압했던 교황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카를 5세 황제, 프랑스 왕 프란츠 1세 등은 그가 만들어내는 가공할 정보와 전파의 힘에 굴복해 뇌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결국 그의 입을 막기 위한 소극적 대응을 뛰어넘어 대중으로부터 우호적인 평가를 얻기 위해 그와 ‘적극적 타협’까지 시도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언론의 위력을 이용한 사람이었으며, 루머의 속성을 이용하고 또 그것을 이용해 부와 권력을 축적한 최초의 사람이 됐다. 이것이 바로 루머의 효시다
뼈아픈 새롬기술 테마
주식시장의 역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식시장은 ‘루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테마’라 불리는 주식시장의 유행 역시 이런 루머의 행로를 따른다. 주가란 ‘미래가치를 현재 가치로 할인한 개념’이라는 면에서 미래가치는 원래부터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운 원죄를 안고 있다.
미국에서 제록스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장할 무렵만 해도 이들이 지금처럼 엄청난 지배력을 갖게 될지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제록스나 마이크로소프트가 테마를 이뤘을 때 그 미래가치를 과소평가한 투자자들은 땅을 쳤고, 다행히 그 가치를 인정한 투자자들은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9년 말 IT 버블이 무너진 후 사람들은 테마와 루머의 경계 사이에서 좌절했다. 테마주인 다음은 살아남았고, 루머주로 판명 난 새롬은 무너졌다. 당시 IT 테마의 핵심기업이던 ‘새롬기술’과 관련해선 이런 일화가 있다.
새롬기술에 자금을 투자한 펀드매니저가 어느 날 새롬기술 근처를 지나다 회사를 방문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의 기업탐방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정상적인 회사들은 대개 이들을 환대한다. 새롬기술은 당시 컴퓨터를 이용해 전세계의 통신망을 연결하는 인터넷 무선전화 기술을 개발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롬기술은 이 펀드매니저의 방문 요청을 완강히 거절했다. 의아하게 여긴 펀드매니저가 입구를 가로막는 수위를 밀치고 회사 안으로 들어가자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강력한 테마로 등장한 태양광 사업. 과연 ‘테마’는 얼마나 힘을 발휘할까?
하지만 당시 새롬기술 주가는 그 회사가 2000년간 이익을 내야 비로소 그 회사 주식을 모두 살 수 있을 만큼 고평가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그 후에도 계속 상한가에 매수주문을 냈다. 테마주의 어두운 단면이다.
냉각캔과 만리장성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런 점이 사람들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지금 코스닥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새롬기술처럼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삼성전자나 NHN처럼 안 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투자자가 이런 꿈이 이뤄질 수 있는 종목을 발굴하려 애를 쓰고, 그런 관점에서 테마주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은 통찰력과 예지력이 뛰어난 존재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미래의 삼성전자나 NHN이 될 기업은 장래가 촉망되는 수백, 수천 개 기업 중 한두 개 정도일 뿐이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혼자 고민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마치 경마나 파친코를 하는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무작정 소문에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O, X’를 묻는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한쪽에 많은 사람이 모이면 무작정 그쪽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사람들은 다수의 쪽을 선택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 한다. 이것이 테마주의 현실이다.
문제는 이런 테마들이 모두 선의의 목적을 공유한 사람 각각의 의견이 결집돼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중에는 사람들의 기대심을 자극해 자신이 미리 매집한 주식을 비싼 값에 팔아 치우려는 불순한 무리가 섞여 있다. 루머를 이용한 작전세력이다. ‘작전’은 개인만 하는 게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관투자자들이 이런 심리를 자극하기도 한다. 특정 기관투자자가 특정 기업의 주식을 매집한 다음 개인 투자자들을 유혹해 비싼 값에 팔아넘기기도 한다. 소위 고래가 연못에서 탈출할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외국인도 있고 국내 기관투자자도 있다. 하지만 루머에 속고 테마에 멍드는 투자자는 모두 개인 투자자다.
지금껏 증권가에 회자되는 몇몇 ‘황당 테마주’를 살펴보자. 우리 증시에서 테마의 역사는 화려하다. 예컨대 ‘냉각캔’ 개발로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모 기업의 경우를 보면 우리가 루머와 테마 사이에서 얼마나 혼란을 겪고 있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냉각캔은 신기술이 아니다. 일반적인 이론으로도 생산이 가능하다. 다만 콜라 한 캔의 가격을 1만원 이상으로 잡을 때 겨우 상업적 생산이 가능하다. 그만큼 캔 생산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당시 사람들이 냉각캔 개발이라는 루머에 혹하지 않고, 이 점만 한번 짚어봤어도 큰 피해는 없었을 터이다.
테마주 생존율 1%
북방정책이 활발하게 펼쳐지던 노태우 정권 때는 ‘만리장성 테마’가 떴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만리장성 개·보수 사업에 참여한다는 루머가 돌면서 만리장성 공사에 참여할 인부들이 먹을 빵을 공급한다는 제빵회사의 주가가 급등했다. 그러고는 빵만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될 것이라며 유명 소화제를 생산하던 제약회사 주가가 난데없이 폭등했다. 또 인부들이 신을 고무신을 생산한다는 고무신 회사가, 인부들이 낄 장갑을 만든다는 장갑회사 주가가 수십 배씩 오르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됐다.
다시 생각해봐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런 루머성 테마에 열광하는 걸까. 바로 레버리지(지렛대 효과) 때문이다. 자본시장에서 기회의 크기는 곧 자본의 크기다. 예를 들어 100억원을 가진 사람이 주식을 산다면 그는 연 수익률이 10%면 만족할 것이다. 1년에 10억원 수익이 난다면 썩 괜찮은 투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살 수 있는 주식은 늘 삼성전자, 포스코와 같은 초우량회사뿐이다. 그래서 자산가는 대박은 아니더라도 주식시장에서 늘 일정액을 챙겨가는 승리자가 된다.
하지만 100만원을 들고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그의 목표는 연 10%, 즉 연간 10만원 수익이 목표가 아니다. 자본이 적은 사람일수록 위험을 부담하더라도 큰 수익을 목표로 한다. 그의 목표는 1000만원, 혹은 1억원인지도 모른다. 이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몇번씩 상한가를 칠 수 있는 대박주다. 그래서 그는 주가가 급등하고, 상한가를 거듭하며, 테마가 형성된 주식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이때 테마는 100개 중 99개가 루머에 바탕을 두고 있고, 그의 돈 100만원은 루머를 생산, 배급하는 측에 고스란히 바쳐진다.
그렇다고 대박주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이런 원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질주하는 마차가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지 직전에 마차에서 뛰어 내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두 번은 절벽에 도착하기 직전에, 또 한두 번은 절벽을 멀리 남겨두고 뛰어내리는 데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뛰어내린 후 마차가 한참 동안 더 질주하면 그는 자신의 소심함에 이를 갈며 절치부심한다. 그리고 그는 다시 6발의 탄환이 들어 갈 수 있는 탄창에 1발의 총알을 끼워넣고 ‘러시안 룰렛’ 게임에 들어간다.
시장의 테마는 이렇듯 위험하고 즉흥적이다. 세상의 모든 주식이 테마에서 출발한다 해도 살아남는 주식은 1%에 불과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우리는 테마주에 목을 내건다. 물론 한때는 아마존도, 암젠도, 마이크론도, 심지어 GE도 테마주였다. 또한 다음도, 네이버도, 인터파크도 그랬다. 하지만 그 놀라운 생존 이면에는 쓰러져간 자들의 피가 강물처럼 흐른다.
테마주엔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꿈을 공유한 주식이다. 지금은 비록 보잘것없지만 ‘미래가 창대하리라’는 믿음을 가진 기업들이다. 지금이라면 태양광 발전 관련주, 풍력에너지 개발주, 바이오, 로봇, 나노 관련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 한두 기업은 미래의 삼성전자나 포스코 같은 기업이 될지 모른다. 자신이 선택한 기업이 대박을 터뜨릴지 누가 알겠나. 하지만 이런 선택은 고도의 안목과 통찰을 필요로 하고, 엄청난 시행착오와 위험을 담보한다. 그들 대부분은 머니게임의 대상이 되고, 그들 중 극소수만 정글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우량주도 테마 거품 못 막아
두 번째 테마주는 꿈을 가장한 기업이다.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이 실체화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이를 이용하는 부류다. 사람들은 이런 기업과 맞닥뜨리면 그저 ‘스토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박을 예감한다. 이때 투자자들은 꿈을 공유한 주식들처럼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투자하진 않는다. 단지 테마주라는 이야기를 듣고 투자하고, 거기에 돈이 몰리고, 주가가 급등락하고, 달리는 마차에서 최대한 멀리 간 후 뛰어내린다는 목적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세 번째 테마주는 상식에 근거한 주식들이다. 가령 ‘니프티 50(nifty fifty)’로 잘 알려진 우량주 열풍이 그것. 대개 주식시장이 급락한 후 기초와 안정성이 없는 주식을 보유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기업에 투자하지 않고 주식에 투자한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지를 깨달은 후 이런 열풍이 생긴다. 이때는 일정한 수익을 내고(혹은 지속적으로 늘고), 기업 내용이 안정적이며, 업종대표 우량주인 기업들에만 투자하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 공감대는 곧 주식시장의 이야기거리가 된다.
위험천만! 대체에너지·자원개발 테마
하지만 이 역시 테마가 형성되는 순간, 분명한 가치를 가진 우량주들도 순식간에 광란의 파도에 쓸려들어간다. 우량주 테마는 사실 주식시장의 영원한 테마지만, 이 역시 투자자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유행을 형성시키면 거품의 크기는 대박주 못지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 우리는 기업의 자본금이 많고, 재무구조가 안정적이며, 수익이 지난 수 십년 동안 꾸준하게 안정적 증가세를 보여줬을 때 ‘우량주’라 부른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 지난 10년간 그랬다고 해서 앞으로 10년도, 혹은 20년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한번 이런 논리에 매료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여기에만 몰입한다. 이 기업은 최근 10년간 100억원의 이익을 냈으니, 앞으로 10년간은 200억원의 이익을 낼 것이라는 가정으로 주가 예상치를 두 배, 세 배로 높이고, 다시 30년, 40년 후에도 그럴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면 거기에 다시 두 배, 세 배의 가격을 매긴다.
최근 유행한 중국 관련주 역시 이런 테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거래소에 상장된 모 지주회사의 경우 그 회사가 400년간 낸 이익을 모두 모아야 겨우 현재의 시가총액에 해당하는 금액이 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열광했고, 또 어떤 조선업체는 시장에서 자산의 20, 30배 가치로 거래됐다. 이럴 때 사람들은 최근 3년간 조선 경기가 해마다 두 배씩 좋아졌으니, 앞으로 3년, 혹은 6년 후에는 그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논리가 시장에서 먹혀들면 주가는 거품 구름을 만들어 하늘높이 둥둥 떠다닌다. 결국 테마주의 거품은 루머 수준의 정보에 투자자들이 열광해도 만들어지지만, 뚜렷하게 가치평가가 가능한 주식에도 투자자가 일거에 러브콜을 보내면 언제든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시장에서 강력한 테마를 형성하고 있는 대체에너지 관련주와 자원개발주도 아찔하기 그지없다. 먼저 태양광 발전은 유가가 지금보다 3배 이상 오르지 않는 한 경제성이 없다. 그럼에도 태양광 관련 기업의 주가가 하늘 높이 춤추고, 심지어 D기업은 한 자산운용사가 공개 매집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한전은 왜 태양광 사업을 직접 하지 않고 비싼 값에 태양전기를 사들이고 있을까. 만약 그 사업이 타당하고 성장 가능성이 크다면 한전이 가장 먼저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사업에 나서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다면 한전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전이 태양전기를 구매하는 이유는 할당된 지원금을 쓰면서 고유가에 대응하는 대체에너지 사업에 참여한다는 명분을 세우기 위함일 뿐이다. 한전은 태양전기에 설비투자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이 점을 간과한다. 그래서 태양광 관련주들의 질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원개발주는 또 어떤가. 해외 유전에 투자하는 기업이 나오면 그 기업은 자원개발주 테마라는 이름으로 주가가 폭등한다. 그러나 이 경우도 찬찬히 뜯어보면 납득하기 어렵다. 유전 보유국은 황금알을 낳을지도 모를 유전을 왜 다른 나라 기업에 팔아버릴까. 답은 간단하다. 유전 개발은 성공률이 낮고, 기존 유전은 값이 비싸다. 만약 그것이 다른 나라 기업에 팔린다면 이유는 두 가지뿐이다. 그것을 파는 나라가 당장 먹고살 돈이 없거나, 유전의 경제성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전략적으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한 나라가 국가적 사업으로 다소 비싸더라도 유전을 사들이고 자원개발에 나서는 것은 나름대로 바람직하다. 하지만 시장의 논리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내가 지금 사는 가격이 비싸다고 여기기에 파는 것이다. 즉 우리는 제 가격에 전략 프리미엄을 더해서 사들이는 것이라 국가적으로는 이해득실을 따지기 어렵지만, 투자기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언젠가 석유가격이 하락할 때 그 피해는 치명적이다.
영원불변의 테마는 ‘실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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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 관련 테마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유전자조작 옥수수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옥수수 농장의 질소비료 수요량이 늘고, 비료사업을 하는 회사의 주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질소비료를 대량으로 공급해야 할 거대 농장이 없고, 기껏해야 쓰고 남은 비료를 북한에 지원할 뿐이다. 그나마 북한에서도 토양이 척박해질 것을 우려해 이제 유기농 비료를 지원받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우리는 미국의 옥수수 농장처럼 거대한 기업농이 드물다. 더욱이 경작지는 점점 줄어들고, 비료 수요는 유기농이나 친환경농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 곡식 가격의 상승과 함께 미국 증시에서 비료회사와 곡식 메이저 주가가 오른다고 한국 증시에서도 같은 테마가 형성될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투자자들은 늘 테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 테마에 담긴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함정은 없는지, 그리고 그 논리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그래서 건강한 투자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식시장에서 영원불변의 테마는 실적 그 자체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