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차가 놓인 테이블 위로 뛰어오른 고양이. 지중해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조금 어두운 실내에서 몇몇 사람이 마시는 음료도 처음 보는 모로코식이라 이 도시가 무척 낯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구에게나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물론 낯선 것에 호기심이나 매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모른다는 데 대한 무서움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막상 알고 나면 별것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모른다는 데 대한 친숙함까지 갖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 나면 탕헤르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를 기대해본다.
카스바 근처의 성벽 앞에서 만난 평화스러운 모로코.
지중해와 접한 항구 곁에 800년 된 대포가 서 있다.
탕헤르에서 가장 번화한 ‘Place du 9-avril-1947 광장’.
카페 하파는 1921년에 만들어진 이후로 구조와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다.
히잡과 전통의상 차림의 모로코 여인들이 아랍어와 불어가 함께 쓰인 상점 앞을 지나고 있다.(좌) 퐁둑 쉐라에는 아직도 수공업으로 직물을 만드는 공장들이 있다.(우)
양떼가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다.(좌) 시장 골목에서 견과류와 과자를 파는 청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멋진 포즈를 취했다.(우)
모로코의 전통음료인 박하차 한 잔과 빵을 먹고 카페를 나선다. 저 멀리 지중해를 접한 항구가 보이는 작은 광장에 대포 몇 문이 서 있다. 왕가의 문양인 듯한 조각과 용 같은 동물 조각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어 호기심 어린 마음에 가까이 가본다. 포신 옆에는 서기 1200년대의 것임을 알려주는 숫자들이 보인다.
모로코를 포함해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은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800년 가까이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다. 이 대포는 그 지배기의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711년 아랍부족과 베르베르족이 이베리아를 침공하기 위해 출항한 곳이 바로 탕헤르다. 지리적으로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지척에 스페인이 위치해 탕헤르는 예로부터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중요한 무역항이었다. 그래서 여러 세력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고대에는 여느 지중해 항구도시와 마찬가지로 페니키아, 로마의 수중에 있다가 15세기말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물러난 뒤에는 스페인,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영국이 통치하는가 하면 모로코 국왕이 이들을 몰아내고 다스렸고, 20세기 초에는 국제기구의 관할 아래 있기도 했다. 이제는 녹이 슬고 여기저기 색이 바랜 큰 대포가 그 질곡의 역사를 묵묵히 보여주는 듯하다.
항구를 떠나 가까운 구시가지인 메디나로 향한다.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이색적인 풍광을 많이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시내 한가운데로 양떼가 걸어가는 광경이 인상 깊었다.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몰고 가는 모양인데, 인구가 60만 정도로 꽤 큰 도시인 탕헤르에서 이런 장면을 본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
프랑스광장 근처 퐁둑 쉐라의 위층에는 모로코에서 발달한 수공예 면직물을 직접 만드는 공장이 밀집해 있다. 실을 뽑고 큰 베틀로 베를 짜는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도 있다. 아래층 상점에선 직물들을 팔고 있으니 한번 둘러볼 만하다.
구시가지 메디나의 시장으로 장을 보러 나온 탕헤르 사람들.
메디나에 도착하니 여러 군데로 난 입구마다 2012년 세계엑스포 개최를 기원하는 표지가 보인다. 탕헤르는 얼마 전 한국의 여수와 함께 엑스포 개최 경쟁에 참여했다가 실패했다. 그래서일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로코와 한국은 친구”라는 말을 건네는데, 그게 꼭 인사치레만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이들의 친절과 정감 있는 품성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메디나에는 카페, 호텔, 카지노 등이 있는데, 무엇보다 전통의상과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줄지어 선 수크 다클리가 시선을 끈다. 다분히 이국적인 물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메디나 안에는 이슬람 사원인 그랑 모스크와 카스바도 있고, 무엇보다 오래된 골목을 끼고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있어 탕헤르 서민들의 삶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
조금은 혼란스러운 메디나를 떠나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 하파로 들어선다. 탕헤르에서 가장 유명한 이 카페는 1921년에 세워진 이후 카페의 구조와 스타일이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문필가와 가수가 이곳을 방문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들로는 비틀스와 롤링스톤즈가 있다. 사실 탕헤르는 자유롭고 모험을 자극하는 분위기로 20세기 초 많은 예술가를 매혹시켰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화가 앙리 마티스를 들 수 있다. ‘오달리스크’를 비롯한 그의 여러 동양풍 그림에서 그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하늘이 탁 트여 있다. 내부는 절벽 위에 여러 층을 만들어 층마다 일렬로 테이블을 놓아 손님들이 모두 지중해를 한눈에 맘껏 감상하도록 꾸며졌다. 그 멋진 구조가 참 마음에 든다. 여기서 차를 마시니 마치 지중해를 마시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녹색의 박하잎이 우러난 차에는 지중해의 햇살과 공기, 바다가 녹아들어 그대로 지중해의 맛이 된다. 이제 지중해를 가득 마시며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치려 한다. 당신에게도 지중해의 이 달콤한 맛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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