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유가·원자재가 폭등으로 세계 경제가 매우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우리 수출구조로는 아무리 수출량이 늘어도 경제의 받침목이 되지 못한다.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수출보험공사 조환익 사장이 새로운 국부창출을 위한 제언을 보내왔다.
무엇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해 세계 경제상황이 매우 불안하다. 이러다 세계 공황으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까지 감돈다. 그간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하던 씨티,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같은 세계적 투자은행들이 생존을 위해 아시아 국부펀드로부터 굴욕적인 수혈을 받고 있다. 또한 달러를 빼고는 세계시장에 나오는 것은 다 오른다. 원유, 금, 구리, 철광석, 콩, 옥수수, 배추, 철근, 라면뿐 아니라 중국돈, 유럽돈, 일본돈도 다 오르고 있다. 유독 한국돈만 오르지 않고 있다.
한국 상황을 살펴보면 국내 최대 기업이 특검을 받느라 투자계획조차 못 짜고 있는 사이에 찰떡 맹세를 했던 소니가 이별선언을 해왔다. 게다가 외환위기의 구세주였고 지금도 하늘같이 믿고 있는 무역 부문도 3개월째 적자다. 주가도 그간 외국인들이 팔 만큼 팔았으니 이제 다시 사들이면서 오를 만도 한데 1700 박스권에서 답답하게 횡보하고 있다.
이륙 못하는 ‘747號’
경제 ‘747’(‘7% 성장, 1인당 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내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 빨리 창공으로 날아 순항해야 하는데, 기상도 매우 좋지 않고 ‘비행기’에도 손봐야 할 곳이 자꾸 늘어난다. 그러나 이미 새 정부의 시곗바늘은 돌기 시작했다. 지난 정부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건, 지난 정부에 없던 어떤 외부상황이 생겼건 간에 지금부터의 경제실적은 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돌아간다.
‘전봇대 뽑기’로 상징되는 과감하고 성역 없는 규제혁파와 경쟁력 있는 세제개편, 이를 통한 기업의 투자확대와 외국인 투자유치가 현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인 것 같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 747과 신규고용 60만, 양극화 해소가 가능할까.
이제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을 희생시켜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맞춰나갈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대기업 총수는 없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을 늘려나가고, 사회적 공헌도 많이 해야 하고, 회사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과 부합해야 경영을 지속할 수 있음을 모르는 우둔한 경영자도 없다.
그러나 국제시장 여건은 점점 빡빡해지고, 소비자의 주문은 까다로워지며 중국 등 신흥 경제국들이 반값으로 치고 나오는 상황이라 기업들이 협력기업 챙기고, 일자리 늘리고, 사회 공헌할 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돈을 좀 더 많이 벌어야 한다.
수출 4000억달러를 향해 가는 세계 11대 무역국, 경제규모 13위, 외환보유고 6위라지만 우리는 과연 필요한 만큼 돈을 버는 나라인가. 조선·디스플레이 세계 1위, 휴대전화 2위, 반도체 3위, 자동차·철강 5위의 산업강국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것으로 선진국이 다 된 것인가.
넘쳐나는 돈에 주목하라
현재와 같은 수출구조라면 수출이 계속 늘어난다 해도 과거처럼 수출이 경제의 받침목 노릇을 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매년 200억달러 이상인 서비스 부문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는 이미 경상수지 적자의 트랩에 빠져 있고 해외발 인플레이션 압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이제 경제 패러다임의 재구성을 생각해볼 때가 됐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선박수출만큼 잘나가는 부문도 없다. 우리 배는 평판이 매우 좋아서 선사(船社)가 배를 사서 그날 중고선박시장에 되팔아도 돈이 남는다고 한다.
산업 내 또는 사업 간 통합을 이뤄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사진은 세계 유명 디자인 브랜드와 휴대전화회사가 결합해 만든 프라다폰.
그런데 한국 은행들은 이런 큰 돈벌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제조업 수출 지원 위주로 운영되던 우리 은행들은 더 큰 경기장(playground)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해외진출 지진아인 금융 부문의 국제경쟁력에서 비롯된다. 이게 금융만의 책임인가.
세계에 풀려 있는 돈은 160조달러 정도라고 한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돈, 즉 세계 각국 GDP의 합은 50조달러 정도다. 그러니까 110조달러 이상이 과잉 유동성이다. 불과 지난 10여 년 동안 그만큼 쌓인 것이다.
미국, 유럽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이머징 국가와 일본마저 지난 수년간 경제상황이 좋았고 많은 부가 축적됐다. 이들 넘치는 돈은 그동안 안전한 금융자산운용지대로 여겨지던 미국이나 유럽 은행에 몰렸다. 이 돈은 다시 IT 산업분야, 개도국 인프라 건설, 자원개발 등에 투자되어 자금의 선순환이 이뤄졌다. 그러던 것이 지나친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금융파생상품 투자가 번성하더니 신용불량자에 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까지 감행하는 ‘제 발등 찍기’를 하던 끝에 오늘날 세계 경제의 먹구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그 뿌리가 어디까지 내려 있는지 모를 지경이라 언제 어떻게 수습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부실 규모가 점점 커져 이제는 6000억달러에 달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세계 경제를 그들 뜻대로 끌고 가던 글로벌 부자은행들의 ‘그들만의 잔치’가 끝난 것인가.
그들은 지금까지 거대한 과잉 유동성 자금을 갖고 선박, 플랜트, 금융, 기업사냥, 에너지 곡물 투기, 금융공학상품 등을 통해 포식을 즐기면서 한국 등 제3지대의 금융세력은 넘보지도 못하게 했다. 그것이 우리가 땀 흘려 배 한 척 만들어 떨어지는 이익의 5~6배를 그들로 하여금 가만히 앉아서 거둬들이게 한 것이다. 그러니 골드만삭스 직원의 평균 연봉이 한국 톱클래스 증권회사 직원 연봉의 5배가 된 것이다.
지금의 세계 금융시장 불안은 쓰나미처럼 세계 경제에 큰 상처를 남길 테지만, 언젠가는 정상화할 것이다. 세계 금융계는 구조조정되고 재편되어 신주도 세력이 등장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처럼 투자은행들이 주도하는 사모펀드나 헤지펀드 형태이든, 아시아권이 주도하는 국부펀드 형태이든 간에.
실물경제는 위축되어도 지금 일시적으로 ‘동작 그만’ 상태에 있는 국제금융의 과잉 유동성은 그냥 남는 것이고 이는 새로운 부활을 향해 기지개를 켤 것이다. 그 시기가 올해 올지 내년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세계 금융시장 선수들은 그동안 잃은 수익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더 요란하게 작전을 개시할지 모른다. 그 경기장에 우리도 들어가야 한다.
통합 경제의 시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본이 더 커지고 더욱 공격적이 돼야 한다. 여기서 통합의 경제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엔 세계 1등이 몇 가지 있는데 최근에 한 가지가 더 늘었다고 한다. 바로 펀드 수다. 9300개가 넘는데, 그 60%가 100억원 미만 규모라고 한다. 그런데 아직 성사는 안 됐지만 BOA와 JP모건은 수천억달러 규모의 슈퍼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세계 자금시장과 우리 시장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금융이 약육강식의 금융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이 될 리 없다. 기술도 통합되고, 산업도 통합되고, 시장도 통합되고, 기업도 통합이 트렌드다. 통합하지 않으면 누구에겐가 먹히거나 지배당한다.
우선 기술면에서 한 가지 기술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10가지 기술이 있는데 1가지 기술로 상품을 만들어낸다면 10개 상품밖에 못 만들지만, 2개의 기술을 묶으면 45개 상품이, 3개의 기술을 엮으면 120개의 각기 다른 상품이 나올 수 있다.
자동차, 조선 등 기존의 수출 패러다임으로는 현재의 경제를 끌어올릴 수 없다. 새로운 국부창출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산업 내 또는 산업 간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가령 섬유와 IT산업이 합쳐져서 몸의 건강상태를 자동으로 측정해주는 기능성 섬유를 만들어내면서 섬유산업은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는 어지러울 정도다. 카메라, 휴대전화, IPTV, DVD, 인터넷 통신 등이 다 들러붙었다.
제조업과 디자인, 브랜드, 설계, 보관, 운송, 금융 등 서비스 산업이 결합된 소위 2.5차 산업도 영화를 누리고 있다. 필자가 일하는 회사 빌딩에 AIG사가 입주해 있는데 한국지점 대표가 인사하러 와서 티셔츠를 주고 갔다. 그걸 들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AIG라고 크게 써놓은 빨간 티셔츠를 누가 입느냐”면서 버리려 했다. 그런데 아이가 옷 뒷면에 적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로고를 보더니 “이걸 인터넷에 올리면 20만원은 너끈히 받는다”고 했다. 맨유 브랜드가 결합되지 않으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천쪼가리가 20만원짜리 옷이 된다. 휴대전화도 ‘프라다폰’ ‘알마니폰’ 하면서 세계 유명 디자인 브랜드가 올라타면서 고가에 판매된다. 이것이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의 융합이다.
중국의 기업 사재기 열풍
세계 교역의 50% 이상이 FTA에 의한 교역일 만큼 시장도 급속도로 통합되고 있다. 그 흐름에 끼지 못하면 경쟁이 원천적으로 안 되게 되어 있는데, 한미 FTA 비준안은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농산물 가격은 어떤 것은 전년에 비해 두 배씩 오르고, 그나마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시대가 코앞에 닥쳤다. 각국이 곡식 수출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데, 식량자급률이 겨우 28%, 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5%도 안 되는 우리가 곡식과 식품원료 수입, 그리고 FTA를 계속 반대만 하고 있어야 할까.
다음은 ‘기업의 통합’이다. 어찌 보면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트렌드다. M&A와 기업 간 전략적 제휴는 이제 기업경영에서 필수적인 것이 됐다. 과거 10년간 세계 500대 기업에 든 회사 중 M&A를 기업 경영에 활용한 경우는 58%에 달한다. 특히 금융,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 서비스업에서 상위 3개 기업의 비중이 70%를 넘어선다. 세계시장에서 승자 독식의 구조가 M&A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상품을 가지고 경쟁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던 기존 방식과는 다르게 M&A를 통해 경쟁자의 자원을 흡수, 빠르게 사세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M&A에 소홀했던 국내 기업은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글로벌 선진 과점기업의 우산 속에 편입되고 마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최근 국제 M&A 상황을 살펴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선두권을 유지하는 가운데 중국의 약진이 돋보인다. 그런데 한국은 IMF 외환위기 때 크게 혼이 나서인지 공격적인 해외 M&A는 엄두도 못 내 해외 부문 M&A 실적이 세계 38위에 머물고 있다.
가끔 조찬 강의에 가보면 많은 중소기업인이 자기 회사가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고 제품이 매우 좋은데도 국내에서 매출이 많이 오르지 않고 주가도 낮아 고민이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제발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한다. 중국 기업이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의 국외기업 사냥 규모는 지난해 164억달러로 전년 대비 2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IT, 자동차 분야의 한국 기업 ‘사재기’에 열을 올렸다. 샨다의 엑토즈소프트, 상하이차그룹의 쌍용자동차 인수가 그런 경우다.
또한 300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 국부펀드의 첫째 목표가 IT, 에너지, 자원, 금융 분야 기업사냥이다. 따라서 기술력이 있으나 시장에서 저평가된 상장기업들은 언제라도 중국 기업사냥의 1차 목표가 될 수 있다.
지식경제부의 임무
포스코 간부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것은 세계 최대 철강회사 미탈스틸의 잠재적 M&A 위협 때문이다. 미탈은 인도의 아주 작은 회사로 출발, M&A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다. 1995년에만 해도 글로벌 500대 기업에 속하지 않았으나, 지난 10년간 미국 ISG, 덴마크 아르셀로 인수 등 수차례의 M&A를 거치면서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가 됐다. 이런 합병은 기본적으로 자기 돈으로 하는 게 아니다. 차입을 통해, 즉 LBO(Leveraged Buyout) 방식으로 한 것이다. 좋은 사냥감을 선정한 다음 세계 곳곳에 넘쳐나는 유동성을 활용해서 인수합병해 산업을 지배하는 것이다.
미탈에 “이제 당신들의 다음 목표는 포스코나 신일본제철 아니냐”고 물으면 물론 절대 아니라고 한다. “포스코는 이미 주가도 오를 만큼 올랐고, 우리는 아시아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데, 절대 믿을 수도 안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최근 국내에서 잘나가는 기업은 두산, STX, 금호 등인데 모두 M&A로 성공했다. 흥미로운 것은 국내 기업 간 M&A뿐만 아니라 해외기업 인수합병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산의 잉거솔랜드사 밥캣(Bobcat) 인수, STX의 노르웨이 여객선 제조사 아커야즈(Aker Yards)사 인수, SKT의 미국 스프린트 넥스텔(Sprint Nextel) 인수 추진 등은 합병의 전략적 의미도 크지만 규모면에서도 거액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례가 계속 나와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흘러간 어록이지만 지금은 이것이 화두다. 경제의 모든 부문에 이 개념이 걸려 있다. ‘주식회사 일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세계 경제의 불안상황에서 위기를 강조하며(다소 과장된 면도 있겠지만) 경제산업성 주도로 위기 탈출을 위한 통합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소니는 차세대인 10세대 LCD사업에서 삼성과 결별하고 샤프와 같이 가자고 한다. 경쟁력이 떨어진 마쓰시타는 휴대전화에서 철수하고, 도시바 HEC, 후지쓰 반도체 3사도 제휴를 통해 삼성과 하이닉스를 공략하고 있다. 대만은 대만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국가적 산업전략이 있다.
시장에서 칸막이를 없애 통합의 걸림돌이 되는 제도는 과감히 없애야 한다. 그리고 통합과 제휴가 필요한데, 스스로 못하는 경우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산업 관련 부처를 통합해 만든 지식경제부의 활약이 기대된다.
지식경제부가 나서서 김대중 정부 초기의 맹목적 빅딜의 망령을 되살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과잉 유동성의 세계에서 선진국은 물론 중국과 중동까지 나선 기업사냥 전쟁터에서 우리 기업들이 잘 대응하고 나아가 우리도 해외시장에서 M&A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무게 있는 조언’과 ‘설득력 있는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국제적으로 개념조차 실종되어가는 ‘시장경제로의 방임’은 극도로 험해져가는 세계 경제전쟁에서 현명한 길이 아니라고 본다.
새로운 국부 원천을 찾자
우리에게는 잘만 맞춰나가면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국부를 창출할 새로운 트렌드가 이외에도 많이 있다. 고령화사회로 넘어가면서 생기는 트렌드, 즉 안정과 안락함에 대한 추구는 금융상품, 유통업, 전자제품, 자동차, 건설업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다. 또 중국과 신흥개도국의 산업화에 따른 에너지 고갈은 우리에게 공격적인 자원외교와 대체에너지 개발노력을 요구한다. 시베리아, 몽골, 마다가스카르 등 석유와 자원이 묻혀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뛰어가야 하고, 라오스와 인도네시아에서 ‘자트로파’를 경작해 바이오 에너지 원료로 공급해야 한다.
중국이 이제 겨우 1인당 국민소득 2000달러 정도인데 15년 전에 비해 육류소비가 2.5배나 늘었다. 육류 1kg을 더 만들어내려면 8kg의 곡식이 더 필요하다. 거기에다 세계에 돈은 얼마든지 있다. 금융시장이 꽁꽁 막히고 부동산시장도 얼어붙으니 실물부문에 불을 붙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밀 가격을 두 배 이상 뛰게 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해 선진국 경기가 둔화된다 해도 이미 오른 에너지값, 곡식값, 육류값은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투자의 경색과 투기의 부활’이 공존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세계적으로 돈이 많은 시대다. 우리는 이 돈을 차지해야 한다. 여기에 맞춰 국가전략이 수립돼야 한다. 한국 경제가 재구성돼야 한다. 통합과 융합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 다양한 전략으로 대처해나가야 한다.
해외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제조업 수출만이 아니다. 가장 강력한 방법은 무엇보다도 금융의 해외 진출이다. 즉 돈도 수출해야 한다. 잘만 되면 나라의 팔자를 고치는 길이다. 우리 은행의 해외수입은 전체 수입의 3%가 조금 넘는 수준이고, 그나마도 교포 관련 비즈니스가 대부분이다. 해외 지점수가 200여 개 되지만, 씨티은행의 경우 전체 지점수가 9000개가 넘는다.
세계적 금융기업들도 해외진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1980년대 후반부터다. 우리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토종 은행은 외국에 다 넘어가는 상황이었으니 국제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말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제라도 은행들이 해외법인 개설, 현지금융기관 흡수합병 등 현지화 노력을 시작했고, 증권사들도 해외펀드 등을 통해 공격적 해외 진출을 하고 있다.
한국투자공사가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우리의 국부펀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금융의 해외 진출 실적은 네트워크나 리스크 관리 등에서 미흡한 점이 많고, 국제금융시장 자금조달 금리 면에서도 경쟁력이 약하다. 그런 의미에서 금산분리 규정의 과감한 완화가 필요하고 금융기관 해외진출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수출보험공사의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기업이 할 일, 정부가 할 일
금융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가볍게 보아온 부문에서도 국부를 창출할 경쟁력을 찾아볼 수 있다. 의료 기술도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우리의 성형, 치과, 안과 분야 의술과 한방 등은 얼마든지 동남아 환자를 유치할 수 있는 실력이 되며 실제로 최근 수년간 외국 환자의 방한이 급증하고 있다. 교육시장 개방과 외국학생 유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터키 다음으로 외국학생 비율이 낮다고 한다.
기술도 브랜드도 디자인도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부문은 다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도록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대만에 대한 하이닉스의 기술지원이 ‘수출이냐, 유출이냐’ 하는 논란을 낳은 것은 냉정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일개 벤처기업이던 퀄컴이 CDMA로 끊임없이 로열티를 가져가서 4조~5조원의 돈을 벌어가는 것을 남의 일처럼 봐서는 안 된다. 세계 10대 규모의 무역대국이며 13위의 경제대국 중 기술부문의 역조 현상이 이렇게 심각한 나라가 몇이나 될까.
마지막으로 경제의 재구성을 위해 기업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고 세일즈 방식이고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전략이다. 사회적 지출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삼성이 왜 지금처럼 곤욕을 치르고, 왜 한국의 반기업 정서가 세계적으로 가장 높고, 갈수록 악화되는지 깊이 생각하고 이를 경영의 한 부문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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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수년간 세계 경제에는 과거에 상상도 못한 변화와 질서의 전환이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위기와 기회를 함께 맞게 될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은 역시 100조달러가 넘는 세계적 과잉 유동성이다. 그 시장의 플레이어들이 바뀌고 있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에게 우리가 과잉 유동성으로 먹힐 수도 있고 플레이어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변화하는 세계 경제 트렌드에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지는 정부와 기업과 시민이 함께하는 새로운 ‘글로벌 주식회사 코리아’가 지혜를 모아 해결할 과제다.
이명박 정부 시계의 시침과 분침, 초침이 숨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장 급한 물가불안, 무역수지, 규제개혁 등을 해결하기 위한 초침도 부지런히 돌아가야겠지만 우리의 변화된 경제 패러다임을 나타내는 시침도 정확하게 큰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 여기에 정부가 할 일은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