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법조인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크고 논쟁적인 사람 가운데 한 명인 리처드 포스너 판사는 법을 경제학의 방법론으로 이해하고 판결하는 법경제학의 거두다. 1981년부터 미 연방법원 판사로 재직하면서 미국 법조계에 시장경제적 사고가 스며들게 한 주인공이다. 그의 판결문은 유수의 로스쿨에서 교재로 다룰 만큼 명문이며, 수많은 저서 중엔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도 여럿이다.
<b>Richard A. Posner</b><br>▼ 1939년 미국 뉴욕 출생<br>▼ 예일대 졸업, 하버드 로스쿨 졸업<br>▼ 미국 법무부 반독점법국 근무,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br>▼ 現 미 연방 제7항소법원 판사<br>▼ 저서 : ‘반독점법’ ‘성과 이성’ ‘대재앙’ 등
대다수 독자에겐 낯설겠지만, 미 연방 제7항소법원의 리처드 포스너(69) 판사는 미국 법조인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의 판결문이 나오면 다음날 로스쿨들이 앞 다퉈 수업시간에 다룰 정도다.
그런 그가 대법원 판사가 아닌 것은 그의 자유주의적 태도 때문이다. 낙태도, 대리모 문제도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 정도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그래야만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렇듯 확고한 신념에 부담을 느낀 역대 대통령들은 그를 대법관으로 추천하기를 망설였다.
그 신념의 핵심에는 법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법을 경제학의 방법론으로 이해하고 판결하는 것이다. 그의 법경제학은 지난 40년간 미국 법조계의 판결 경향을 크게 바꿔놓았다. 미국 법조인들이 경제논리에 밝아진 배경에도 포스너의 법경제학이 크게 작용했다. 법경제학은 미국 법조계에 스며든 시장경제적 사고의 뿌리를 이루는 것이다. 법경제학의 개척자인 포스너 판사를 만나기 위해 시카고에 있는 제7연방항소법원을 찾았다.
법경제학 논리 뚜렷한 판결 쏟아져
김정호 포스너 판사의 사상은 법경제학이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경제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포스너 법을 일종의 경제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시장에서 물건 값이 높아지면 소비가 줄어들잖아요. 법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면 그만큼 범죄가 줄어듭니다. 또 부주의한 행동으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배상액수를 높여서 판결하면 사람들은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되겠지요. 법을 그런 시각에서 바라보고, 법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 세상을 만들지 고민하는 학문이 법경제학입니다.
김정호 한국에선 법경제학이 아직 생소한 학문입니다. 일반인은 물론 법조인들에게조차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법경제학의 논리가 실제 판결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포스너 최근 들어 그런 경향이 부쩍 짙어졌습니다. 미국에서도 판사들은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법경제학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아주 보수적이었지요. 그럼에도 최근 특히 증권법, 회사법, 반독점법, 공기업 관련법, 상거래법, 노동법, 지적재산권법 분야의 판결에서 경제학 논리가 많이 채택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액 산정 방식에도 법경제학이 큰 영향을 줬다고 봐야 해요. 그러나 불법행위법, 연금법, 헌법, 환경법 분야의 판결에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형량을 정하는 데도 법경제학의 영향이 크지 않습니다.
김정호 법경제학이 미국 판사들을 시장친화적, 기업친화적 성향으로 바꿔놓았다고 봐도 될까요.
포스너 그렇습니다. 그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정치적 환경 자체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어요. 당시 인플레이션은 심했고 성장률은 형편없었지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 완화의 필요성이 절실했습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해서 경제자유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그것이 성공을 거두자 흥미롭게도 상대적 좌파인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도 레이건의 유산인 자유시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계승했습니다. 공산주의 붕괴도 이런 추세에 일조했지요. 현재 시장경제는 북한과 쿠바를 제외한 전세계에서 지배적인 경제관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중앙통제 경제가 아닌, 규제 완화를 비롯한 시장경제가 주도적 흐름을 형성한 겁니다.
이에 따라 미국의 판사들도 판결에 경제분석을 받아들이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경제학은 중앙집권적 정책이나 전체주의적 정책을 비판하는 중요한 도구였기 때문이지요. 법경제학도 그런 시장경제를 향한 큰 흐름의 일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자유방임주의 지지”
김정호 법관이 경제학 논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미국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가 뭘까요.
포스너 미국이 보통법 체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보통법은 판사들이 새로운 방법론을 택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반면 대륙법 국가의 판사들은 국회에서 정한 법조문을 철저히 따라야 하기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렵지요. 판사가 되는 과정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법 국가에서는 로스쿨 교수 같은 다른 직업을 가졌다가 나중에 판사가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대륙법계 나라들은 처음부터 판사로 출발합니다. 그런 차이 때문에 미국 판사들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김정호 미국은 여러 면에서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과 차이를 보이는데, 대기업 정책도 그런 것 같습니다. 유럽은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애플과 같은 대기업들에 대해 규제 지향적 태도를 보이는 반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데,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자국 기업이라서 봐주는 걸까요, 아니면 법의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까요.
포스너 그런 대기업들의 국적이 미국이라는 사실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이 유럽인들보다 확고하다는 사실일 겁니다. 그만큼 시장개입을 자제하다 보니 대기업을 규제해서 작은 기업에 이익을 주려는 시도도 드물지요.
김정호 혹자는 대기업을 적절히 규제해야만 시장에서 경쟁과 역동성이 살아난다고 주장하는데요.
포스너 저는 일반적으로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합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진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효율적이지 않고서는 대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은 실질적으로 경쟁을 해치는 행위를 할 수 있고, 그런 행위는 억제돼야 하지만, 단순히 시장점유율이 높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대기업을 규제하다 보면 싸고 좋은 제품을 공급해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는 기업의 노력도 줄어들게 됩니다.
“플리바기닝, 법정의에 어긋나지 않아”
김정호 좋은 법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은 많을수록 좋은가요. 한국에서는 활발한 입법활동을 벌이는 의원들이 훌륭한 의원으로 간주되며 인기도 높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입법활동을 하라고 부추기는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포스너 판사께서는 “의회가 제정한 법은 비효율적일 때가 많다”고 경고했습니다. 의회가 만들어야 할 법과 만들지 말아야 할 법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포스너 의회가 잘할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가령 세금과 관련된 구체적 사항들은 판사가 판결하기보다 의회가 결정하는 것이 쉽습니다. 산성비를 유발하는 이산화황 단속의 기준치도 판사가 결정하기보다 의회가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포스너 판사(오른쪽)는 법경제학뿐 아니라 사회의 고령화, 성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40여 권의 책을 펴낸 미국의 지성이다. 사진 왼쪽은 필자인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의회의 법 제정 행위를 일일이 감독하겠습니까. 유일하게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헌법적 제약을 두는 정도입니다. 미국도 헌법에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 한 시민의 재산을 수용·사용할 수 없다’는 정도로만 의회의 입법행위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김정호 미국의 사법제도로 화제를 옮겨볼까요. 제겐 미국 사법제도 중에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유죄협상제)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피고가 유죄를 인정하는 대가로 형량을 낮춰주는 제도이지요. 한국에서도 도입을 논의했지만, 법정의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폐기됐습니다. 포스너 판사께선 이 제도가 사법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포스너 일반적인 거래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법 집행에는 많은 비용이 수반됩니다. 취조 과정에서 검사와 피고 측이 서로 불리하다고 느끼면 피차 많은 비용을 낭비할 수 있다고 봐요. 유죄협상이 가능해지면 피고 측은 죄를 시인하는 대신 감형을 받을 수 있으며, 검사 측 역시 사건 처리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게 됩니다. 법적 위험성과 자원의 낭비를 고려하면 사법거래제가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사법절차를 사회적 득과 실을 따져 진행하는 것이지요. 사건 승소의 가능성과 비용, 피고가 무죄일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 거래 여부를 결정할 겁니다. 피고 역시 그렇게 하겠지요. 피고와 사법당국 양측에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된다면 유죄협상제는 법적 정의와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론자들은 피고가 무죄일 경우 이 제도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피고가 무죄라면 처음부터 협상에 응하지 않겠지요. 미국 사법 시스템에서는 무죄를 유죄로 몰아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제도의 요지는 재판 비용을 절약하는 것입니다. 이 제도를 통해 ‘거래’가 성사되면 100건의 재판이 50건으로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美 변호사 시장은 완전경쟁”
김정호 한국에서는 요즈음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움직임이 아주 활발합니다. 미국을 본받아 사법시험 제도를 로스쿨 제도로 대체하는 것도 그런 움직임 중 하나인데, 그것이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로스쿨 정원을 늘려달라고 아우성인 반면, 교육부와 법조인들은 늘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로스쿨 정원을 늘리지 않으려는 것은 변호사 자격 취득자가 대폭 늘어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로스쿨 제도의 본산지인 미국은 어떤가요. 한국처럼 변호사 합격자 수와 로스쿨 정원을 규제합니까.
포스너 흥미롭군요. 미국에서는 새로 배출되는 변호사 숫자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물론 변호사 시험을 통과해야 하지만, 일정 점수만 넘으면 숫자에 관계없이 모두 변호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물며 대학이 로스쿨을 세우는 것에는 더욱 제한이 없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로스쿨도 허용될 정도인걸요. 미국의 변호사 수는 100만명에 달할 정도입니다. 인구 1000명당 3명이 넘는다고 보면 되지요. 그러다 보니 미국의 변호사 시장은 거의 완전경쟁에 가깝습니다.
김정호 자격시험 제도는 본래 무자격자를 걸러냄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도입되는데, 이것이 오히려 경쟁자의 등장을 막는 장치로 전락하곤 하지요. 미국의 변호사시험 제도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장치인가요, 아니면 변호사들 간의 경쟁을 막고 기득권을 지켜주는 장치인가요.
포스너 미국에서는 자신이 변호사 자격을 받은 주에서만 변호사 영업을 할 수 있습니다. 뉴욕 주 변호사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개업하려면 캘리포니아에서 변호사시험을 다시 봐야 하죠. 변호사 자격을 한번 받으면 어디서나 영업할 수 있는 제도와 비교한다면 경쟁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지만, 주마다 변호사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그런 것은 거의 문제가 안됩니다. 미국의 법률 서비스 시장은 그야말로 자유경쟁 시장인 셈입니다. 저는 이런 미국식 제도가 변호사 숫자를 제한하는 제도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로스쿨 정원을 제한하는 정책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변호사 숫자이든 로스쿨 학생 숫자이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되도록 놔두는 것이 좋습니다.
“배심원제는 값비싼 제도”
김정호 미국에서 빌려온 또 다른 제도가 배심원 제도인데요. 한국에서는 ‘국민참여재판제도’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배심원제와 비슷한 것이 시범 실시되고 있습니다. 배심원 제도가 미국 사법 발전에 도움이 됐습니까.
포스너 배심원 제도는 형사재판에서 피고를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그렇지만 민사재판에서도 널리 채택되고 있지요. 이 제도의 성패는 배심원들이 자기들이 평결해야 할 사건을 얼마나 제대로 알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는 재판에서는 제대로 하겠지만, 매우 복잡한 상업적 거래를 둘러싼 재판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성격에 따라서 배심재판을 할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배심원제는 매우 값비싼 제도입니다. 시간만 따져봐도 그래요. 미국의 경우 배심원이 참가하는 재판은 그렇지 않은 재판에 비해 두 배나 오래 걸립니다. 다른 비용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 사건에나 함부로 적용할 일은 아닙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시간과 돈을 아끼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정호 포스너 판사께선 노인과 고령화 문제를 다룬 전문서적을 저술하셨지요. 미국이 그런 것처럼 한국 역시 고령화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최근에는 고용연령차별금지정책이 논의 중이기도 합니다. 미국에도 비슷한 정책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포스너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의무퇴직제 폐지를 들 수 있습니다. 항공기 조종사나 기업 CEO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유를 정확히 제시하지 않고 직원을 해고할 경우 소송을 당하게 됩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직시킬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이 정책은 별로 효력이 없는데, 대부분의 미국인이 일정 연령을 넘어서면 더 이상 일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개 62~65세에서 자연스러운 퇴직 연령이 형성됐죠.
고용주가 직원의 평균연령을 낮추고 싶다면 조기 퇴직제와 같은 유인책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카고대의 경우 1년치 연봉을 조기 퇴직에 대한 유인책으로 제시합니다. 이 경우 교직원이 조기 퇴직 후 다른 대학에 가서 강의활동을 해도 무방합니다. 이렇듯 미국에서 정년퇴직제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의무 퇴직 연령이 55세라니…”
김정호 미국의 직장들이 부럽네요. 한국에서는 많은 기업이 55세를 의무퇴직 연령으로 정해놓았습니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은 고용연령차별금지법 도입을 원치 않습니다.
포스너 의무퇴직 연령이 55세라니 놀랍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처지에선 그런 법에 의해 간섭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생산성에 따라서 판단하겠지요. 그러니 그러한 법안의 통과로 이득을 보는 기업은 없을 것입니다.
김정호 이번에는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지요.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것인데요. 남한과 북한은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포스너 판사께선 아무리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더라도 ‘함께 은행을 털자’는 식의 선동은 언론자유에 속할 수 없다고 했는데요. 은행 강도를 공개적으로 선동하는 행위와 비교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북한 정권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포스너 미국 헌법에 이런 부분을 정확히 규정하는 조항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중에게 범죄행위를 선동하는 것은 분명히 범법행위입니다. 하지만 간접적인 경우는 제재하기가 모호해집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이슬람 테러리즘이 너무 좋다. 오사마 빈 라덴은 영웅이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처벌대상이 되지는 않아요. 반면 영국에선 테러리즘을 찬양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영국의 상황이 미국과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영국에서는 무슬림 극단주의를 매우 경계하며, 테러가 빈번하다 보니 자국 내 테러 문제에 아주 민감합니다. 미국도 영국처럼 무슬림 인구가 많았다면 비슷한 법적 조항을 마련했을 겁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도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하겠지요.
김정호 마지막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에게 한 말씀 주시죠.
포스너 한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경제대국 중의 하나가 됐습니다. 또한 상업적, 경제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진 나라입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한국의 번영도 재산권과 자유 덕분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민족도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국민 각자의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경제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은 중앙통제적 체제 때문입니다.
2만달러 수준의 소득을 두 배로 끌어올리려면 한국 정부는 개입이나 통제가 아니라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해야 합니다. 재산권을 보장하고, 범죄와 부정부패를 강력히 처벌하는 등 경제활동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보장되고 금융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다면 한국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봅니다.
“어떤 선물도 받을 수 없어”
포스너 판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미국 법원 건물에 들어가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카메라를 휴대하기 위해 특별히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대기실 사방 벽면은 역대 제7항소법원 판사들의 커다란 초상화들로 채워져 있어 권위적 분위기를 풍겼다. 그렇게 잔뜩 주눅 들어 기다리다가 한참 만에 포스너 판사를 만났다.
그런데 정작 포스너 판사 본인은 그런 분위기와는 영 딴판이었다. 족히 190cm는 되어 보이는 껑충한 키에 해지기 직전의 감색 양복을 걸쳐 입은 모습이 무척 소박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수년 전 영국 런던의 경제문제연구소에서 만난 해리스 경의 모습도 그랬다. 기사 작위까지 받은 그였지만 양복은 수십년은 된 듯한 낡은 것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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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옷은 옷일 뿐. 포스너 판사는 석학답게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조리 있게 답해줬다. 이 기사에 다 옮기지 못한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까지 조목조목 견해를 밝혔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판사들이 법경제학을 통해 시장경제 논리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 1980년대 이후 미국 사회 전반의 시장친화적 분위기 덕분이었다”는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우리 사회도 한결 시장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우리 법조계도 좀더 시장친화적으로 바뀌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의 방을 나오면서 ‘비싼’ 시간을 내 준 것이 고마워 자그마한 선물을 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선물은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판사들에게 금지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히려 그가 내게 자신의 ‘법경제학(The Economic Analysis of Law)’ 책을 선물로 줬다. 정가 110달러짜리였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그의 책 선물을 받아들었다. 미국 법원의 추상같이 공정한 판결은 이처럼 사적으로는 작은 선물조차 받지 않는 청렴한 분위기 속에서 비롯되나 보다. 법원을 빠져나와 바라본 시카고 거리가 이전과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