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권, 충청·강원 출신 발탁도 최고
- 역대 정권 모두 청와대는 대통령 고향출신 중용
- 내각 인선, 공천 과정에서 이너서클 권력이동
- 이재오·이상득·류우익·박영준 ‘4인방 급부상’
- 출범 한 달, 이명박 핵심 공약 줄줄이 유보·연기
- 한나라 문건 “법률 선진화 비전으로 돌파하라”
이명박 대통령이 3월8일 청와대에서 장관급 관료·처장·청장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위) 행정안전부 문건.(아래)
그러자 대부분의 손님들이 우르르 도로변으로 몰려나갔다. 이윽고 이 대통령이 승용차 지붕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어 손을 흔들면서 지나가자 손님들은 박수를 치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댔다. 사람들의 그런 기대와 관심 속에 이 대통령은 청와대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 출범 후 한 달여가 지난 지금은 어떨까.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고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5년 임기의 대통령이 국민에게 첫선을 보이는 것은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을 꾸리는 데서 시작된다. 지인들의 면면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 대통령 주변에 포진된 사람들을 보면 국정 운영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선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생겨난 ‘고소영 S라인’(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서울시청 출신 중용 인사)을 필두로 ‘강부자’(강남 땅 부자) 내각, ‘강금실’(강남의 금싸라기 같은 땅 실소유주) 내각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심지어 5대 사정기관장(국정원장, 법무장관, 청와대 민정수석,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모두 ‘영남 출신’으로 채워졌다 하여 ‘오사영’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여기에 더해 청와대 비서실을 총괄하는 대통령실장(류우익·경북 상주)과 지자체 업무를 관장하는 행정안전부 장관(원세훈·경북 영주)까지 영남 출신으로 채워져 ‘이명박 정권=영남 정권’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역 편중 인사’ 정확한 측정법
인사와 관련된 논란 중 특히 ‘지역 편중 인사’ 논란은 선거에서 무서운 ‘후폭풍’을 일으킨다. 총선을 눈앞에 둔 이명박 정권이 이런 논란을 자초했다는 것 자체가 일단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 대해 부분으로 전체의 성격을 평가한 점, 인상비평에 치우친 점은 없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인사의 ‘지역 편중도’를 정확히 측정한 다음, 그 결과를 갖고 평가하는 것이 합당한 순서다.
가장 합리적인 측정법 중 하나는 이명박 정권의 초대 장관급 이상 관료와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체를 대상으로 출생지별 빈도를 측정한 다음 이를 이전 정권의 초대 장관급 이상 관료와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체의 출생지별 빈도와 비교해 양자 간에 뚜렷한 차이점이 있는지를 파악해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신동아’는 행정안전부가 작성한 ‘대통령 비서실 수석이상 및 장관(급) 이상자 현황(제5공~이명박 정부)’ 문건을 단독 입수해 통계 처리했다. 여기서 ‘장관급 이상’이란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 등 국무위원과 대통령실장(옛 대통령비서실장), 국정원장, 국무총리실장(옛 국무조정실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등 정부 직제상 ‘장관급 이상’ 인사를 모두 포함한 개념이다. 행정안전부 자료에는 역대 정권의 초대 장관급 이상 관료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출신지역이 출생지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신동아’는 분석작업 때 이를 그대로 적용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무회의 모습.
즉, 이명박 정권은 6개 정권 중 영남 출신 관료의 비중이 가장 높은 정권으로 드러났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로 탄생한 첫 내각에서 대통령 고향 출신자들이 대거 기용됐다는 점은 정권을 잃은 편에는 소외감을 주는 일이며 국민화합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결과를 두고 이명박 정권에 대해 “최악의 지역 편중 인사를 했다”고 공격하는 것은 무리다. 왜냐하면 영남 편중 수치에 있어 1~4위인 이명박,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차이가 매우 작기 때문이다. 1위 이명박 정권과 4위 노무현 정권의 영남 출신 비중의 차이는 불과 1.9%에 불과했다. 이는 장관 한 명이 영남 출신이냐 비영남 출신이냐에 따라 1위와 4위의 순위가 뒤바뀔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차이다. 5년 전 노무현 정권 초대 내각을 두고 누구도 ‘영남 정권’이라고 규정하진 않았다.
경상도 군부 정권 성격인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의 영남 편중도가 민주화 이후 정권에 비해 확연히 낮다는 점이 이목을 끈다. 실제로 5, 6공화국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5, 6공화국은 정권의 정통성이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에 대통령들은 오히려 여론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역 균분 인사에 노력한 측면이 강했고 경제성장 등 실적을 낼 수 있는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한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대중 정권의 경우 대통령 출생지가 호남임에도 영남 출신을 중용했다. 초대 장관급 이상 관료 중 대통령 고향인 호남 출신의 비중도 28.6%에 그쳤다. 이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영남-6공 출신인 김중권씨를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에 기용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김 당시 대통령은 본인이 ‘호남색’이 워낙 강했기에 초대 내각 인사에 있어 영남을 적극 배려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탕평 그룹’과 ‘영남 그룹’
결론적으로, 6개 정권의 초대 내각을 비교했을 때 전두환·노태우·김대중 정권은 ‘지역 탕평 인사에 노력한 그룹’으로 김영삼·노무현·이명박 정권은 ‘영남 출신을 중용한 그룹’으로 분류된다.
이명박 정권 초대 장관급 이상 관료의 경우 영남 중에서도 대구·경북(TK)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전체 영남 출신 33.3% 가운데 TK 비율은 23.8%였고, 부산·경남(PK)은 9.5%였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초기 내각에서 TK 출신이 차지한 비중이 각각 7.1%와 12.5%였던 점을 감안해보면 이명박 정권에서 TK 출신이 23.8%를 차지한 것은 상당히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PK 출신 비중이 한 자릿 수로 떨어진 것도 노태우 정권(9.4%) 이래 처음이다.
충청·강원 출신이 대거 발탁된 점도 이명박 정권의 초대 장관급 인선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강원 출신의 경우 이명박 정권을 제외한 역대 모든 정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릿수였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0’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선 강원 출신의 비중은 14.3%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 대통령은 강원도 춘천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번 내각은 강원도 내각이다. 한승수 총리가 강원도 출신이고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모두 강원도 출신”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역대 정권과 비교한 수치로 보면 빈말은 아니다.
충청권의 경우도 마찬가지. 노무현 정권의 초대 장관급에서 충청 출신은 8.6%에 불과했던 것이 현 정권에서는 19.0%로 높아져 역대 정권 중 최고를 기록했다.
비중이 높아진 지역이 있으면 낮아진 지역도 있는 법. 수도권 출신과 호남 출신의 비중은 낮아졌다. 호남은 김영삼 정권 이후 줄곧 20%대 비중을 유지했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14.3%로 줄었다. 통합민주당이 ‘영남 편중’과 함께 ‘호남 홀대론’을 제기하고 나선 데에는 이 같은 편차가 빌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재오 이상득 류우익 박영주(왼쪽부터 차례로)
초대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선의 경우 전두환 정권을 뺀 나머지 5개 정권에서는 모두 대통령 고향 출신들이 대거 발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권(PK) 45.5%, 김대중 정권(호남) 42.9%, 노태우 정권(TK) 37.5%, 김영삼 정권(PK) 33.3%, 이명박 정권(TK) 33.3%, 전두환 정권(TK) 11.1% 순이었다. 한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 정치인은 “수석비서관의 경우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동향 출신이 많다는 점이 반드시 흠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反) 이명박’ 세력은 TK출신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많이 발탁됐다는 점을 근거로 ‘이명박 정권=TK 정권’이라고 공격해왔다. 그러나 분석 결과 청와대 인선에서 대통령 고향 출신이 중용되는 것은 역대 정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고향 출신 비중에 있어서도 이명박 정권은 6개 정권 중 4위에 그쳤다.
근원적 질문인 ‘이명박 정권은 영남 정권인가?’에 대해 이명박 정권과 역대 5개 정권의 초대 장관급 이상 관료·수석 비서관 전원을 비교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이 답변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수치상 장관급 이상 관료 인선에서 ‘영남 편중’이 역대 최고이며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보다 그 정도가 심하다. 그러나 영남 편중의 편차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과 비교했을 때 매우 작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선에서 이명박 정권의 대통령 고향 출신 편중은 역대 정권과 비교했을 때 그리 심한 편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지역균형 인사에 더 노력해야 할 필요는 있지만 ‘이명박 정권=영남 정권’이라는 도식은 과장된 것이다.”
인사는 정권 권부(權府) 내부의 권력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척도다.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만이 진정한 권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명박 정권 출범 직전과 출범 이후 한 달간 청와대와 국회는 격변의 나날을 보냈다. 청와대-내각 인선 및 총선 후보자 공천 등 굵직한 인사 현안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의 대상이 됐다”
대선 전 이명박 정권의 측근 그룹은 대략 최고의사결정 모임인 6인회(이상득 국회부의장, 박희태 선대위원장, 이재오 의원, 김덕룡 의원, 최시중 상임 고문, 정두언 의원)를 필두로 MB 측근 의원 그룹(이방호 사무총장, 박형준 대변인, 주호영 의원, 정종복 의원, 임태희 의원), 서울시청 출신 그룹, 안국포럼 출신 그룹, 전문가 출신 그룹, 언론인 출신 그룹, 고려대 인맥 등으로 구분됐다.
그런데 청와대-내각 인선 및 총선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이들 이명박 정권 이너서클의 내부 역학관계에 큰 변화가 생겼다. 대선 당시 이 대통령과 자주 독대한 모 의원은 청와대에 자신의 보좌관을 들여넣는 데에도 실패했다. 외부에 알려진 것과 실제의 힘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PK 출신 한 중진 의원의 경우 그의 영향력하에 있던 여러 인사가 대선에서 ‘의미 있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들 중 만족스럽게 발탁된 이는 한 명도 없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자존심 상하는 직급을 제의받아 당사자가 거절하기도 했다. ‘파워’와 ‘파워’가 부딪쳐 밀린 것이다. 심지어 이 의원마저 공천 탈락의 쓴잔을 들어야 했다.
MB의 측근으로 통한 다른 의원은 정부의 행정-예산을 컨트롤하는 청와대 요직에 자신과 친한 공직자를 앉혔고 자기 사람들을 일정 정도 청와대에 입성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의 청와대 내 부서 배치와 직급은 뜻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각 인선에서는 영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 기자는 “총리 인선에 대해 물으니 돌아가고 있는 것과는 다른 옛날 버전을 얘기하더라. ‘페인트 모션’을 쓰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 이명박 | ||
수도권 | 서울 | 21.5 | 25.0 | 12.9 | 3.6 | 20.0 | 9.5 | |
경기 | 7.1 | 9.4 | 6.5 | 3.6 | 8.6 | 4.8 | ||
인천 | 3.6 | 3.1 | 0 | 0 | 0 | 0 | ||
소계 | 32.2 | 37.5 | 19.4 | 7.2 | 28.6 | 14.3 | ||
충청권 | 충남 | 3.6 | 6.3 | 12.9 | 10.7 | 5.7 | 9.4 | |
충북 | 7.1 | 3.1 | 3.2 | 3.6 | 2.9 | 4.8 | ||
대전 | 0 | 3.1 | 0 | 3.6 | 0 | 4.8 | ||
소계 | 10.7 | 12.5 | 16.1 | 17.9 | 8.6 | 19.0 | ||
호남권 | 전북 | 0 | 3.1 | 9.7 | 7.2 | 5.7 | 9.5 | |
전남 | 7.1 | 12.5 | 9.7 | 21.4 | 11.4 | 4.8 | ||
광주 | 0 | 0 | 3.2 | 0 | 2.9 | 0 | ||
소계 | 7.1 | 15.6 | 22.6 | 28.6 | 20.0 | 14.3 | ||
영남권 | TK | 경북 | 7.1 | 9.4 | 12.8 | 14.3 | 5.7 | 23.8 |
대구 | 0 | 3.1 | 6.5 | 3.6 | 11.4 | 0 | ||
소계 | 7.1 | 12.5 | 19.3 | 17.9 | 17.1 | 23.8 | ||
PK | 경남 | 17.9 | 9.4 | 6.5 | 10.6 | 14.2 | 9.5 | |
부산 | 0 | 0 | 6.5 | 3.6 | 0 | 0 | ||
소계 | 17.9 | 9.4 | 13.0 | 14.2 | 14.2 | 9.5 | ||
소계 | 25.0 | 21.9 | 32.3 | 32.1 | 31.3 | 33.3 | ||
강원 | 강원 | 7.1 | 3.1 | 3.2 | 0 | 5.7 | 14.3 | |
제주 | 제주 | 0 | 3.1 | 0 | 0 | 2.9 | 0 | |
이북 | 이북 | 17.9 | 6.3 | 6.4 | 14.2 | 2.9 | 4.8 | |
계 | 100.0 | 100.0 | 100.0 | 100.0 | 100.0 | 100.0 |
‘권력 이동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라고 느끼게 한 백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6인회 멤버인 박희태 의원의 지역구 공천 탈락. 박 의원은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서 ‘이명박 경선 승리’의 1등 공신이었다. 한 여권 인사는 “신문 1면에 실린 ‘박희태 공천 탈락’ 기사를 보고 놀랐다. 사전에 각본이나 시나리오가 있었다면 박 의원은 그 각본이나 시나리오의 ‘주체’가 아닌 ‘대상’인 셈이었다. 박 의원 본인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각종 인선과정의 흐름을 추적하다보면 이명박 권부의 수많은 명망가 중 이재오 의원, 이상득 부의장, 류우익 대통령실장,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등 4인방이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했음이 드러난다”고 밝혔다. ‘전통적 MB 2인자’인 이재오 의원은 대선 후반 “좌시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박근혜 전 대표 측의 집중 공세를 받아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는 등 2선으로 퇴진했으나 각종 인선과정에서 그 파워를 급격히 복원·강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부의장과 그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비서관은 청와대-내각 조각을 사실상 주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대선 당시 전국 광역시도별로 전문가, 교수, 지역 여론 주도층을 중심으로 이명박 지지 포럼을 결성하는 등 ‘조직’을 맡았던 박 비서관은 청와대-정부-국회-공기업을 망라하는 이명박 정권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인사는 “서울대 교수 출신인 류우익 실장은 대선 전에는 이명박 후보의 자문 교수 그룹 일원이었으나 대통령실장에 임명된 뒤 청와대에 대한 장악력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이명박 정권 내 권력 구도는 다시 요동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적도, 변화도, 감동도 없다
‘이명박 정권의 한 달’에 대한 여론의 대체적 평가는 그리 후한 편이 못된다. 다소 성급한 얘기이긴 하지만 ‘실적’도 없고, ‘변화’의 모멘텀도 없고, ‘감동’도 없다는 것이다. ‘전봇대’ ‘어륀지(오렌지)’ 류의 ‘레토릭 정치’에 국민은 슬슬 식상해하고 있다. 오히려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에 이들이 기상천외한 비유로 대응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첫인상은 구겨졌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이다”, “여의도가 사람이 살기에 그리 좋은 지역은 아니다. 살 만한 곳이 아니라서 송파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 “(논문 중복 게재) 썩 잘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부부 교수 재산 30억은 다른 사람에 비해 양반인 셈이다”, “(골프 회원권) 4000만원 주고 산 것이라 싸구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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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답변들은 다수 국민의 보편적 가치판단과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저하시켰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서 입증됐듯 ‘상식에 반(反)하는 정권’만큼 위태로운 정권은 없다.
한나라당 전략 문건은 대선 승리 직후인 2007년 12월 중순 이명박 당선자 측에 “국무총리-장관 인사청문회에 철저히 대비하여 ‘야당의 도덕성 공세’를 차단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다음은 ‘신동아’ 2008년 1월호에 보도된 이 문건 내용 중 일부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한 장상 전 총리서리에 대해 위장전입을 이유로 국회 인준을 거부한 바 있고 총리서리 제도도 헌법 취지에 맞지 않다고 비판한 바 있다. 통합신당은 총리 인사청문회 및 장관 인사청문회를 18대 총선 전략의 핵심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총리 지명자의 도덕성 문제가 불거질 경우 총리 인준을 반대해 새 정권을 부패정권으로 낙인찍고 이 정권에 대한 견제심리를 확산시키려 할 수 있다. 통합신당이 이명박 당선자의 도덕성 문제를 집중 공격하는 데 이어 총리 및 장관들에 대해서도 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탈세, 병역 등에서 의혹이 제기될 경우 한나라당의 총선 구도가 불리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인사검증 시스템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인수위에서 총리 지명자와 신임 장관 후보의 인사검증을 제대로 하기 위한 특별팀 구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 ‘전략 문건’
문건은 2~3월에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마치 본 것처럼 족집게처럼 정확하게 예측했고 그 대비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검증 시스템은 거의 가동되지 않았다.
대선 직후 작성된 한나라당의 또 다른 전략 문건은 세 가지 제안을 담고 있었다. 이 문건은 우선 이명박 당선자 측에 “국정의 헤드쿼터인 ‘청와대’를 가장 우선적으로, 확실하게 장악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대통령직인수위는 정반대로 갔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설전 이후 정부 부처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청와대만 빼버린 것이다. 이 당선자 측은 취임일이 가까워져서야 청와대 업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노무현 대통령 측은 주요 인물 데이터베이스, 인터넷 국정관리시스템(이지원) 등 청와대의 핵심 기능을 정부기록보존소로 보내 봉인해버리거나 폐기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측은 장관 내정자 인선이나 도덕성 검증에 이들 기능을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일의 선후를 바꾼 것이다. 3월 중순에도 청와대 업무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했다. 정권 초기 불안한 모습이 자주 나타난 원인이다”라고 했다.
문건은 이어 “인수위 가동 직후부터 노무현 정권이 임명한 정부산하기관·공기업 임원들에 대해 강도 높은 퇴진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관련 내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산하기관의 기관장, 임원, 감사 등의 임기를 법으로 보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즉,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하여 발효시킴으로써 반대 정파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자신이 임명한 낙하산 인사들을 퇴출시키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노 대통령 측은 심지어는 임기가 남은 일부 인사들을 퇴임하게 한 뒤 다시 그 자리에 재임용함으로써 이들이 3년 임기를 더 누린 뒤 2009~2010년이 되어야 퇴임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새 정부가 산하기관 인사권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20여 개에 불과하다. 인적 교체의 당위성을 강력하게 설파하는 방식으로 정권 인수 초기 반드시 가시적, 대대적 인적 교체 분위기를 만들어둬야 한다. 인적 교체 없는 정권 교체는 그 기반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통령이 인사권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으면 총선 공천 과정에서 낙천자 배려가 어렵고 이는 계파 간 갈등 격화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제안 역시 실행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의 ‘노무현 사람들 퇴진 공세’는 4월9일 총선에 임박한 3월 중순이 되어서야 본격화됐다. 실기(失期)로 인해 ‘선거를 앞둔 정치공세’로 받아들여져 그 명분이 퇴색됐다. 힘을 얻은 민주당의 거센 반발을 초래함으로써 실제 퇴진 효과도 크게 떨어졌다. 정권 초기부터 권부의 의중이 국정에 반영되지 않고 말이 먹혀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문건의 앞선 두 제안은 실행에 옮길 때를 이미 놓쳐버린 것이지만 마지막 제안은 이명박 정권에 기회를 주고 있다.
“법률 선진화는 총선 승리 전략”
문건은 “국민은 ‘경제 살리기’ ‘국가 선진화’에 대한 기대 때문에 이명박 정권을 선택했다”고 전제한 뒤 “이런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정권 인수 직후 국가 선진화 목표 달성을 위한 ‘매우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건은 “그 실행 계획은 바로 ‘법률 선진화’”라고 밝혔다. 문건은 “‘법률 선진화’는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이명박 정권은 ▲대운하, 여론 수렴 이후로 연기 ▲7% 경제성장 목표 하향조정 ▲부동산 거래 활성화 조치 연기 등 핵심 공약을 줄줄이 뒤로 미루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으며 국민에게 경제 살리기를 위한 구체적 ‘액션 플랜’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다음은 문건의 관련 내용이다.
“구체적 실행 계획이 제시되지 않는 ‘경제 살리기’ 비전은 공허하다. 김영삼 정권은 집권 직후 국민에게 ‘신경제 100일 계획’이라는 ‘경제 살리기’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단기적 경기 부양책’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2008년 집권 직후 ‘경제 살리기’의 최초 실행 계획으로 ‘법률 선진화’가 국민에게 제시돼야 한다. 새 정권은 규제 완화 및 개혁을 통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고 대규모 외자를 유치해 성장과 고용을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도 규제 완화 및 개혁을 적극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그 이유는 기존의 법률은 그대로 둔 채 그 법의 시행령, 규칙만을 정비하려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행령을 줄이고 뜯어 고쳐도 근본적으로 법이 잘못되어 있으면 행정부는 법률에 의해 집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규제 개혁은 한계에 직면한다. 시행령은 공무원의 행정편의주의에 의해 언제든 임의로 부활한다.
국내에는 현재 5000여 개의 법률이 있다. 그중 경제활동 관련 법률의 대부분은 1960~70년대 만들어져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땜질해온 것들이다. 말하자면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소득 100달러 나라를 1000달러 나라로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놓은 법률을 가지고 지금 국민소득 2만달러 나라를 4만달러 나라로 성장시키려 하니 현실과 안 맞는 것이다. 한국이 두바이나 싱가포르가 되려면 먼저 한국의 경제 법률이 두바이나 싱가포르의 경제 법률 정도로 선진화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경제 살리기의 첫 단계인 규제 완화 및 개혁은 현실에 맞지 않는 경제 법률을 과감하게 폐지하고 세계 각지의 선진 법률을 참조하여 국가 선진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법률을 대폭 정비하는 근본적인 방식이 되어야 한다. 법률 선진화는 한국 경제를 산업화 시기의 족쇄로부터 해방시켜주는 확실한 방법이다. 이렇게 법적으로 완벽히 보장되어야 기업도 본격적 투자를 하게 된다. 입법기관인 국회 내에 ‘법률 선진화 특위’를 구성하여 전담토록 할 필요가 있다. 법률 선진화는 경제 살리기의 매우 구체적인 액션 플랜으로 국민에게 각인될 수 있다. 또한 ‘이 같은 법률 선진화를 위해서는 이명박 정권의 총선 과반의석 확보가 절대 필요하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득하면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가 가능하다.”
MB, 공직 수임 초기 항상 위기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흥미로운 점은 공직 수임 초기엔 예외 없이 위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현대건설에서 나와 1992년 국회의원이 된 직후 재산공개 파동에 휘말려 이명박 의원은 당시 신한국당 지도부에 의해 ‘의원직 사퇴’ 압박까지 받았다. 2002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직후에는 ‘서울시 봉헌’ 발언, ‘히딩크 사진’ 파문, 버스 대란 등으로 정신없이 난타당했다. 이번 인수위 과정 및 대통령 취임 초기의 진통도 그 때와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이 대통령의 한 측근은 낙관론을 편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어제의 MB와 오늘의 MB는 다르다. MB는 매일 ‘진화’한다. 그는 놀라울 정도의 학습력을 갖고 있다. 공직 수임 초기에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시행착오를 겪지만 자신을 향한 비판의 핵심을 재빨리 간파하고 수정하여 정상궤도에 오른다. 그 때부터는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