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직업은 ‘대중소설가’입니다. 내 명함에도 그렇게 썼어요. 비유컨대 이문열, 황석영, 조정래씨 같은 사람들이 압구정동에 매장을 갖고 있다면 나는 좌판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내 주의를 로마 혹은 러시아
혹은 스페인의 정치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래 여기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여행 경험이 많은 사람이 있고
그리고 저기엔 읽고 생각할 줄 아는
정치가가 있지
곧 전쟁이 일어난다 어쩐다 떠드는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오, 나 다시 젊어져
그녀를 내 팔에 안았으면!
(How can I, that girl standing there
my attention fix
On Roman or on Russian
Or on Spanish politics
Yet here´s a travelled man that knows
What he talks about,
and there´s a politician
That has read and thought,
and maybe what they say is true
of war and war alarms,
But O that I were young again
and held her in my arms!)
‘주간동아’ 최근호를 뒤적거리다가 접한 윌리엄 예이츠의 ‘정치(Politics)’라는 시다. 이 작품을 고른 최영미 시인은 소개글에서 “이처럼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글로 발설하는 용기… 그래서 예이츠가 위대한 인간이며 위대한 시인인 것이다”라고 썼다.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글로 발설하는 용기라…. 그러면 이건 어떤가.
조철봉이 중국에 자주 들르면서 두 가지 습관이 생겼는데 그것은 마사지를 받는 것과 룸살롱 출입이다. 딴 사람들이야 문화유산 답사나 하다못해 골프관광이라도 하겠지만 조철봉의 낙은 딱 이 두 가지뿐이다. 마사지만 해도 발, 등, 머리, 전신으로 나누어졌고 기법이 서로 다르다보니 날마다 새롭다. 또한 분위기까지 천차만별이어서 호화로운 방 안의 침대에 홀랑 벗고 누워 TV를 보면서 역시 알몸의 미녀로부터 마사지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 미녀가 하나일 때도 있고 셋까지 덤벼드는 경우도 있었으니 가히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 불여일행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룸살롱은 어떠한가? 초대형의 호화로운 방 안에 버티고 앉아 방 안이 미어터지게 들어온 미녀를 선별할 때의 희열은 말과 글로 표현이 잘 안된다. 그 순간은 그날 부도를 맞은 사장도, 실연을 당한 사내도 잠깐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다.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 1859회에서 발췌) |
‘은밀한 욕망을 발설하는 용기’로 치면 저 아일랜드의 대(大)시인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노골적이라고? 일간신문에 실리기엔 부적절한 글이라고? 하지만 어쩌랴.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수 직장인이 오후 일과의 시작을 ‘강안남자(强顔男子)’ 읽기로 시작한다는 데야. ‘오늘은 조철봉이 어떤 엽색 행각을 벌일까’ 기대하면서.
‘은밀한 욕망’은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예술도 되고 쓰레기도 된다. 역사적으로는 쓰레기가 예술로 승화한 사례도 많다. 그러면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쓰레기인가. 그리고 누가 그걸 판정하는가. 욕망을 에둘러 표현한 예이츠나 직설적인 ‘강안남자’나 인간의 욕망을 다루기로는 다 마찬가지인데.
일각의 주장처럼 ‘강안남자’가 쓰레기이고, 그 쓰레기가 소통되는 방식이 문제라면(달리 말해, 풍기문란 소설이 남녀노소 대중이 접하는 일간신문에 실리는 것이 문제라면), 섹스를 다루는 대중소설은 도회지의 음침한 뒷골목 외에는 뿌리내릴 곳이 없다는 얘기가 되는가. 인터넷을 열고 몇 번 클릭하면 소설보다 훨씬 생생한 야동(야한 동영상)이 넘쳐나는 이 판국에?
“사람들이 좀 여유가 있어야지…”
일러스트·‘강안남자’ 삽화가 난나 제공.
그런 일 때문이었을까. 이씨와의 연락은 쉽지 않았다. 며칠간 통화 실패 끝에e메일을 통해서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만날 약속을 하는 통화에서 그는 “모르는 전화번호가 뜨면 아예 받지 않는다”고 했다. 폭력과 기업세계 등 마초적(남성우월주의)인 소재를 주로 다뤄온 작가치고는 좀 소심해 보이는 느낌….
만나서 첫 화제도 ‘청와대 절독사태’였다.
“마침 그해 12월에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 후배가 있었어요. 그 친구 말이 ‘형님, 제가 들어가면 절독 끝내도록 할게요’ 이래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러지 마라, 괜히 싸우지 말고.’ 결국엔 이번에 정권 바뀌고 나서야 풀렸잖아요. 이런 웃기는 일이 또 있을까 몰라….
그 후배는 청와대에서 밤에도 곧잘 전화를 해서 흰소리를 하곤 했어요. ‘형님, 침소봉대란 말 아시죠, 침실에선 거시기가 커야 한다는…. 그 얘기 강안남자에 꼭 쓰세요’. 이런 게 보통 한국 남자들 정서 아닌가?
그래도 DJ 시절엔 괜찮았거든요. 박지원씨가 회의 시작하기 전에 ‘우리 강안남자 읽고 합시다’ 이런 적도 있답니다. 사람들이 좀 여유가 있어야지….”
이씨는 당시 일로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이원호라고 하면 “아, 그 섹스소설 쓰는 사람” 하는 식으로 낙인을 찍는 게 몹시 불쾌하고 불편했다는 것. 그래서 당시 모 일간지에 자신의 본령인 기업소설 연재를 논의하다가 막판에 포기한 일도 있다고 했다.
“‘강안남자’의 원래 의도는 문화일보가 석간이니까 나른한 오후 시간에 직장인들에게 휴식과 환상을 주자는…. 거기엔 섹스가 제일이거든요. ‘강안남자’는 성인용입니다. 그런데 이걸 자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느냐는 식으로 비판하고 나오면, 인터넷과 방송에 온갖 해괴한 것들이 나오는 판에, 그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유명인사들이 나와서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어쩌고 하면서 옹호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것도 당사자로선 참 듣기에 민망합디다. 이거야 원, 어르고 뺨치는 격인가 싶어서….”
▼ 그 일 이후 조철봉이 한동안 금욕했지요? 언젠가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사석에서 ‘요즘 조철봉이가 왜 안하지?’ 했다가 곤욕을 치른 일도 있고.
“그분에겐 제가 참말로 미안합니다. 그런 유머를 그냥 받아주지 못하는 사회가 안타까울 뿐이지요.”
2002년 1월에 시작해 6년 넘게 연재 중인 ‘강안남자’는 그동안 숱한 화제를 뿌렸다. 직설적인 성(性) 묘사로 비판도 어지간히 받았지만, 많은 직장인은 주인공 조철봉을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다. 일개 자동차 영업사원에서 출발해 국내외에 여러 기업체를 거느린 기업인으로 성공하고, 거기에 더해 작업을 거는 여자마다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는 그 절륜함! 그래서 어떤 이는 ‘강안남자’를 ‘중년 남성의 판타지’라고 부르기도 한다던가.
‘순결한 영혼’을 내세우는 소수(우리 사회에 정말로 그런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하지만)를 제외하면, 돈과 여자는 대다수 남성의 로망이다. 작가는 그런 세태를 조철봉이라는 인물을 통해 적나라하게 짚어냈다. 물론 그 과정에 크고 작은 사단이 있었다. 그건,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으로 남아야 할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를 공개적인 소설 영역으로 끌어들일 때 불가피하게 불거지는 기존 권위와의 충돌이랄까. 단적인 예로, 조철봉이 섹스 도중 사정(射精)을 참으려고 모교 교가의 가사를 거꾸로 읊은 대목이 나온다.
‘전주고 교가 사건’
▼ 전주고등학교 출신이지요? 소설에서 조철봉이 전주고 교가를 거꾸로 읊어 전주고가 발칵 뒤집혔다는 얘기도 있는데.
“교가가 나오니까 모교 졸업생들이 ‘이원호가 어떤 사람이냐’ 알아봤나 봐요. 그런데 제가 지들 선배니까 말도 못하고 있었지(웃음). 한번은 총동창회장을 비롯해 쟁쟁한 선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를 부릅디다. 거기서 ‘전주고 교가를 빛낸 인물에게 표창장을 주자’고 해서 한바탕 웃고 넘어갔어요.”
▼ 아니, 당시 소문으로는 심각하게 주의를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뭐, 남자들끼리 더 할 얘기 있겠습니까.”
▼ 다른 단체에서 항의받은 일은 없었나요.
“여성단체 일을 하는 친척 누님이 계세요. 거기서 힌트를 얻어 소설에 여성단체 얘기를 넣은 적이 있죠. 등장인물과 단체 이름을 조금씩 바꾸고, 조철봉이 그 단체 관계자와 일을 벌이고 기부금도 낸다는 식으로 얘기를 꾸몄지요. 그런데 그쪽 사람들이 이걸 안 겁니다. 누님이 나한테 전화를 해서 ‘그거 당장 내리지 않으면 회원 수천명을 데리고 문화일보 앞에서 시위를 하겠다’고 난리를 피워서 며칠 만에 흐지부지 다음 얘기로 넘어가버렸어요.”
▼ 모 계간지의 봄호 특집이 ‘우리 시대의 속물주의’이더군요. 조철봉이야말로 속물의 전형이 아닌가 싶은데…. 주인공이 여성을 도구화한다는 등 비판도 많이 받았지요.
“인터넷에서 ‘이원호 아직 유치장 안 갔냐’는 글도 본 적이 있어요. 당연한 비판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동시에 격려도 많이 받았습니다. 대기업 CEO에서 아파트 경비일 하는 분까지 ‘이런 소재도 다뤄달라’ ‘조철봉이가 요즘 영 안 하던데…’ 하는 말을 들을 때 내 글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게 없었다면 지난번 절독 사태 때 더 많이 흔들렸겠지요.”
룸살롱 가는 게 낙?
기자는 모르는 것을 취재해서 쓴다. 작가도 글을 쓰기 위해 자기가 모르는 영역을 취재한다. 그러나 팩트를 다루는 기사와 달리 소설에는 작가의 경험과 인격이 녹아 있게 마련이다. 조철봉이라는 가공인물에는 작가의 경험과 인격이 얼마나 담겨 있을까.
▼ 지금까지 조철봉이 여자 몇 명과 관계했는지 헤아려봤나요?
“모르겠어요. 독자 중에는 그걸 세어본 분들도 있더라고. 몇 해 전 공직에 있는 어떤 분이 헤아려봤다고 했는데, 그 뒤로 또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 조철봉이 사기꾼이잖아요? 그런데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던가 좋은 일도 꽤 많이 하더군요.
“조철봉은 자기가 하는 거짓말을 자기가 믿는 경지에 이른 사기꾼입니다. 사기꾼들은 결정적인 거짓말을 할 때 눈동자가 흔들리는데, 조철봉은 그럴 때일수록 정색을 하고 상대를 바라봐요. 그러나 조철봉도 허점이 많은 인간이지요. 또 여자 수백명과 놀아났지만, 나쁜 여자 빼고는 여자 등을 친 적은 없어요. 그런 점에선 페미니스트라고 할까….”
▼ 글의 소재는 어떻게 찾습니까?
“예전에는 그것 때문에 카바레 같은 데도 많이 다녔어요. 요즘은 그런 곳들도 많이 양성화되어서 남편들이 차 갖고 집사람 데리러 오기도 하더라고. 여자들은 또 ‘강안남자’ 독자인 남편에게 갖다 준다고 사인해달라고도 하고.”
▼ 사실 여자한테 작업 거는 법 같은 건 작가도 웬만큼 알아야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지 않나요?
“누구는 제가 조철봉처럼 ‘도사’인 줄 아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다 꿈인 게지. 요즘엔 ‘강안남자’가 알려지니까 제가 좀 거북해지더라고. 주변에 알아보는 이도 많아지고. 또 옛날 경험만 갖고 쓰자니 좀 식상하고 해서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가끔 바람 쐬러 나갑니다.”
▼ 외국에 나가면 룸살롱도 가겠네요?
“물론 가지요. 어떻게 보면 그게 낙인데….”
이 대목에서 좀 마음에 걸렸던지, 그는 자신의 생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침 일찍 일어나면 하루 집필 목표를 정한다. 그가 하루에 소화하는 양은 신문 연재소설 두 편과 별도로 집필 중인 작품을 포함해 원고지 70~100장, 한 달로 치면 평균 1500장 정도다. 이 목표를 채우려면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열흘 이상 진을 빼고 나면 주말을 잡아 1박2일 정도 바깥에 나가 술을 마신다. 아주 단순명쾌한 생활이다.
▼ 인터뷰에서 독자가 가장 흥미로워 할 부분이 집필과정의 에피소드인데….
“아이고, 그런 얘기 다 나가면 큰일 나라고(웃음).”
▼ 부인은 ‘강안남자’ 안 봅니까.
“안 봐요.”
▼ 보면서 안 보는 척하는 건 아니고?
“읽었다면 ‘당신은 왜 조철봉처럼 못 하느냐’고 했겠지(웃음). 신문이 집에 배달되자마자 내가 소설을 오려놓거든. 그러니 아마 안 볼거요.”
그래도 얘깃거리들을 조르자 그가 힘들게 꺼낸 얘기들은 이랬다.
“전에는 제가 카바레 같은 데에 좀 다녔어요. 언젠가 그런 데서 만난 여자가 괜찮길래 작업을 걸었지. 그런데 반응이 영 신통치 않더라고. 나중에 그 여자가 하는 말. ‘선생님, 저 정말 기억 안 나세요? 2년 반 전에도 파트너였잖아요.’ 이러더라고.”
“술자리에서 언론계 후배 둘이 자주 다니던 식당 여주인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얘기를 써달라고 했어요. 물론 재미로 그런 거지. 그래서 실명(實名)에서 한 글자씩만 바꿔서 얘기를 풀어나갔어요. 문제는 둘 중 하나는 여자 쟁탈전에서 패배자가 되어야 하는데 누구로 정하느냐였어요. 그런데 한 명이 패자가 되기를 자청하더라고. 왜 그러냐고 했더니, 만에 하나 집사람이 알면 자긴 죽음이라나.”
이원호씨는 원래 사업을 하던 사람이다. 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무역 일을 익힌 후 자기 사업을 꽤 크게 키웠다. 그러다가 부도를 맞은 게 1990년. 그 해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주로 중동지역에 수출을 하던 그의 회사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수십억대 부도를 낸 그는 1년 넘게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데뷔 첫해에 400만권 대박
“나름대로 화려하게 살다가 갑자기 도망자 신세가 되니까 못 살겠더라고. 부도 맞은 사람의 괴로움은 겪어본 사람만 알아. 그래서 자서전을 썼어요. 사업한다면서 20년 넘게 보낸 지난 삶을 정리해보자고 시작한 일이었죠. 그게 책으로 나오니까 출판사를 하던 후배가 저를 찾아왔어요. ‘형님, 기업소설 한번 써봅시다.’ 그래서 나온 게 ‘밤의 대통령’과 ‘황제의 꿈’이었어요.”
‘밤의 대통령’과 ‘황제의 꿈’ 시리즈는 각각 200만 권이 넘게 팔려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당시 그는 보름에 책을 한 권씩 썼다고 한다. 그렇게 써제친 책이 1년에 물경 400만권이나 나갔다. 힘 있고 간결한 문체로 써내려간 기업과 권력, 폭력 등 남성적인 이야기는 독자를 열광시켰다.
▼ 사업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소설가로 성공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글쓰기 훈련은 따로 했습니까.
“대학 시절에 단편소설 공모에서 두 차례인가 입선한 적은 있지만 자서전을 쓰기 전까진 손을 놓고 있었죠. 자서전을 쓰면서 깨달았어요.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부도 맞기 몇 해 전에 초등학교 다니던 딸이 사고로 죽었어요. 자서전에서 그 대목을 쓰다보니 원고지 50장 분량이 되더라고. 다시 읽어보니 감정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고, 영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그래서 그걸 줄이고 줄여 5장짜리로 만들었어요. 고쳐놓으니까 훨씬 낫더군.
글쓰기도 기술입니다. 감정절제와 요약, 리듬감…. 이런 것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글을 만드는 요령이에요. 저는 그걸 ‘장사꾼 문장’이라고 표현합니다.”
▼ 돈도 많이 벌었겠네요.
“책 써서 빚을 거의 다 갚았어요. 근데 빚이란 게 참 희한해서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끊임없이 새로 나타나요. 심지어는 ‘강안남자’ 연재를 시작했을 때에도 신문사로 원고료 차압이 들어오더라니까. 나도 모르는 빚이 남아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연재 시작한 후 한 2년 동안 빚을 까나갔어요.”
“대중소설가는 좌판 행상”
▼ 지금까지 책을 몇 권이나 썼습니까.
“150권 넘게 썼어요. 1991년부터 지금까지 1년에 7, 8권씩 냈으니까.”
▼ 굉장한 다작(多作)이네요.
“뭐, 개중엔 쓰레기도 있고,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것도 있고…. 그런데‘강안남자’ 때문에 제가 쌓아올린 이미지가 다 깨져버렸어요. 그게 참 안타까워….”
내 직업은 대중소설가입니다. 제 명함에도 그렇게 썼어요. 언젠가 한 후배가 ‘형은 면허증 없는 운전사요’라고 한 적이 있는데, 어디서 추천을 받거나 정식으로 등단한 게 아니라는 뜻이죠. 비유하자면 이문열, 황석영, 조정래씨 같은 사람들이 압구정동에 매장을 갖고 있다면, 저는 좌판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 좀 심한 비유네요.
“대중소설가는 독자에게 잊히면 안 됩니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연구하고, 끊임없이 써야 해요. 개중엔 쓰레기도 있고, 짝퉁도 있고, 가끔은 괜찮은 작품도 있겠지만…. 사업을 할 때는 재산이 축적됩니다. 회사가 커지면 그게 곧 재산이니까. 그런데 소설은 옛날에 잘나간 거 있다고 해서 그게 지금 돈이 됩니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잊히지 않으려면 계속 써야 한다는 겁니다.
내 책은 공항 서점에서 가장 많이 나가요. 장거리 여행할 때 두세 권짜리 갖고 나가면 딱이거든. 어쩌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이나 파리 공항의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한국 책들 중 내 책이 가장 많을지도 몰라(웃음). 이문열, 황석영씨 작품은 서가에 꽂히지만, 내 책은 도서대여점용이고 킬링타임용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좌판 행상처럼 죽을 때까지 써야지.”
▼ 그중 가장 괜찮게 생각하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영웅 계백’이라고, 5년간 자료를 수집해서 1997년에 5권짜리로 낸 책이 있어요. 아주 공들여 썼습니다. 이건 웃기는 얘기지만, 얼마 전에도 거기서 계백이 죽는 장면을 다시 읽다가 내가 울었다니까.”
▼ 그건 얼마나 팔렸지요?
“한 10만부 나갔어요. 내가 쓴 다른 책들 기준으로 보면 100만권쯤은 팔렸어야 하는 건데…. 근데 그게 역차별을 받지 않았나 싶어…. 계백이 백제 이야기이고, 그 때 마침 호남 정권이 들어섰으니 잘 좀 팔리려나보다 은근히 기대했는데 말이야(웃음).”
▼ 몇 해 전엔 판타지 소설도 썼더군요.
“30세기를 사는 인류의 모습을 그린 ‘신의 제국’이라는 작품입니다. 그거 쓰기 위해 빅뱅이론을 비롯해 과학기술 공부 참 많이 했네요.”
“좌파 정권이 대중문학도 죽여”
다시 ‘강안남자’로 돌아가서, 조철봉의 활동 영역이 요즘 북한으로까지 확장됐다. 북한과 합작사업을 벌이는가 하면 정보기관의 은밀한 공작에도 관여하고 있으니 그냥 단순한 사기꾼이 아닌 셈이다. 대중소설가라면 온갖 세상사에 안테나를 세워놓고 있어야 하겠지만, 그가 남북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까닭이라도 있는지 궁금했다.
▼ 남북관계와 관련되는 소재는 어떻게 찾습니까.
“일차적으론 자료를 모으지요. 예컨대 평양 천리마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북한의 아파트는 어떤 구조인지를 알아야 쓸 수 있으니까. 또, 북한 기관에서 일했던 탈북자도 만나고, 중국 조선족을 통해 간접 정보를 얻기도 하고….”
▼ 남북간에 얽힌 얘기는 우리만의 소재인데, 사실 이걸 제대로 다룬 소설은 많지 않지요.
“그건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런 작품이 나올 여건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사실 중국 땅을 떠도는 탈북자라든지 흥미로운 소재가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영화만 해도 오히려 반미(反美) 코드가 담긴 것들이 히트를 했잖아요. 이건 좌파 성향의 정권이 연달아 집권하면서 생긴 현상이에요.”
그러다보니 대중문학도 다 죽게 생겼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람들은 한류(韓流)를 얘기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이 한국시장을 잠식할 호기라고 말합니다. 서점에 가보세요. 정말 별볼일 없는 일본 번역서가 얼마나 많습니까. 거기다 이젠 중국 책들도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요. 좌파 세력이 판을 치면서 적절한 소재를 찾아내지 못한 대중문학이 희생된 겁니다.”
▼ 말씀을 듣다보니 ‘청와대 절독사태’말고도 정치권과 갈등이 꽤 많았을 것 같네요.
“DJ 말년에는 ‘레임덕’이라는 제목으로 DJ 정권을 비판하는 소설을 썼습니다. 작심하고 실명으로 써버렸더니 청와대에 불려 들어가 항의도 받았고…. 지난해에는 또 노무현 정권을 세게 비판하는 소설을 실명으로 썼다가 막판에 가명으로 바꿨어요. 내가 대중소설을 쓰지만, 세상을 바꾸는 데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
▼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좀 나아질 걸로 기대합니까.
“그렇게 돼야죠. 나는 새 정권이 들어왔다고 해서 ‘강안남자’에 섹스 장면을 더 많이 넣거나 그럴 생각은 없어요. 대신 이제까지 짚지 못했던 대북관계 내용을 다뤄보고 싶어요. 국제적 축구행사가 열리는데 평양에 태극기를 내걸지도 못하게 하는 요즘 상황만 해도 그렇잖아요? 이런 걸 이슈화해서 소설에 담을 겁니다.”
“내 정신연령은 조철봉 수준”
두 시간을 훌쩍 넘겨가며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가 참 젊다는 느낌이 든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예순 살 아저씨가 아니라 옆자리에 앉은 친한 동료 같은 분위기라면 좀 과장인가. 하긴, 그런 분위기니까 조철봉 같은 ‘괴물’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몸으론 몰라도 정신연령은 조철봉과 비슷해요(웃음). 천성이 낙관적이고, 없어도 있는 척하는 게 몸에 뱄지요.
내가 나름대로 젊게 사는 방법은 꿈을 꾸는 겁니다. 예컨대 ‘대학 시절을 이렇게 보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하는 식으로 말이죠. 나이가 들면서 과거를 미화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가 앞날을 생각하면 오히려 막막해지고 우울해질 수도 있으니까. 내 말은, 30년 전의 내가 되어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밝아진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개미 이야기도 했다.
“우리가 위에서 개미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개미는 알고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내려다보는 어떤 존재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다보면 결국 열심히 공부해서 써야 할 것이 아직 너무 많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정말 오래 남을 만한 작품을 써보고 싶어요. 구상도 이미 다 끝내놨어요.”
작품이 어떻네 별별 소리를 다 듣지만, 역시 그는 천상 글쟁이다. 글로써 자기 존재를 확인받는 글쟁이.
그와 헤어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질문을 하나 빼먹었다. ‘강안남자’의 첫 회분, 첫 문장이 “빼!”였다고 하는데, 마지막 문장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이다. 참, 별게 다 궁금하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