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오빠는 풍각쟁이’ 듣다가 만요(漫謠)에 심취
‘전국 트롯체전’에서 얻은 별칭 ‘인간 축음기’
7년 무명생활, 물리치료사 ‘알바’하며 견딘 사연
축음기의 매혹적 콧소리…유튜브 구독자 급증
“올해는 일주일에 하나씩 일거리 있었으면…”
지난해 12월 ‘전국 트롯체전’을 통해 트로트 샛별로 떠오른 신미래. [지호영 기자]
중학교 때부터 키운 각별한 ‘만요’ 사랑
지난 2월 종영한 KBS 경연 프로그램 ‘트롯 전국체전’에서 열창하는 신미래. [포켓돌스튜디오 제공]
지난해 12월 12일 KBS 경연프로그램 ‘트롯 전국체전’에서 노래의 길을 가야할지 고민하던 신미래는 ‘마지막 기회’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 석 자와 얼굴을 널리 알린 것은 물론이고 ‘인간 축음기’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1940년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그것과 흡사해서다.
콧소리마저 사랑스러운 그의 독특한 음색은 중독성이 강하다. ‘신미래의 노래를 한 번도 못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히 ‘꽃마차’나 ‘오빠는 풍각쟁이’ 같은 만요(漫謠·1930~40년대를 풍미한 유머러스한 가사의 풍자곡)와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는 평을 듣는다. 신미래는 만요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1990년생이 만요를 좋아하는 것을 신기해하자 그가 말했다.
트로트 좋아하는 건 아버지 유전자
“아버지가 나훈아 선생님의 노래를 좋아하셨어요. 그 덕에 어릴 때부터 트로트에 친숙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풍각쟁이’를 들었는데 귀에 쏙쏙 꽂히더군요. 중학생 때부터 만요를 찾아 들으며 트로트 가수를 꿈꾸게 됐죠.”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서야 꿈은 이뤄졌다. 2013년 JTBC 예능 프로그램 ‘미라클 코리아’에 ‘21세기 만요 소녀’로 출연한 그의 재능과 스타성을 지금의 소속사 대표가 알아본 것이다. 이듬해인 2014년 ‘당신이 필요합니다’라는 싱글 앨범을 내며 가요계에 데뷔한 그는 수입도, 일거리도 일정치 않은 무명생활을 견뎌야 했다.
“고향인 강원도 춘천 방안에서 일이 없어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가장 속상했어요. 나 자산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느낌이랄까요.”
힘든 시간을 견디며 쌓인 내공 덕일까. 그는 ‘트롯 전국체전’에서 결승을 눈앞에 두고 탈락했는데도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떨어진 것을 속상해하는 팬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준결승에 오른 것만도 감사해요. 팬들이 제 탈락을 많이 슬퍼하셔서 더 잘하지 못한 게 송구할 뿐이에요.”
팬카페에 매일 출근…情을 나눈다
신미래는 팬들과 소통 공간인 유튜브 채널 ‘미래테레비’ 방송을 다시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그는 “‘트롯 전국체전’에 출연하느라 한동안 ‘미래테레비’ 방송을 중단했는데 다시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주시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매사 최선을 다하는 가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또 “올해는 일주일에 하나씩 꼭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덧붙였다.
이날 신미래는 인터뷰 외에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했다. ‘꽃마차’와 ‘오빠는 풍각쟁이’를 무반주로 맛깔나게 열창하는 모습, 무대 위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 신미래의 재치와 순발력을 확인하는 ‘신미래 사전 초성퀴즈’, 자신의 대표곡을 직접 선보이는 ‘즉석 노래방’은 ‘신동아’ 유튜브 채널과 네이버TV, 카카오TV에서 동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보다 자세한 인터뷰는 ‘신동아 5월호’에 실린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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