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어떻게 핵연료 자립을 이뤘는가. 독일 기술을 도입했다가 미국 기술로 바꾼 사연은 무엇인가. 유럽과 일본에서는 재처리를 하고 있는데 한국은 비핵화 선언에 묶여 꼼짝도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전기의 40%를 담당하는 원자력발전소를 안정적으로 가동하려면 한국은 반드시 농축과 후행 핵주기를 완성해야 한다.
1989년 한전원자력연료주식회사가 처음으로 경수로용 핵연료를 출하하고 개최한 기념식.
지각(地殼)에는 금의 약 100배, 은의 약 10배에 이르는 양의 우라늄이 매장되어있다. 광산에서 캐낸 우라늄 광석 속엔 우라늄이 0.1~ 1% 함유되어 있는데, 분쇄와 산(酸) 처리 등의 정련 과정을 거쳐 우라늄이 75% 이상 함유된 우라늄 정광을 만든다. 우라늄 정광은 노란색 가루 형태라 ‘옐로 케이크(yellow cake)’라고도 불린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연료를 만들려면 우라늄의 품위를 99.9%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우라늄의 품위를 높이는 제조공정을 변환이라 한다. 경수로용 핵연료는 우라늄 정광을 육불화우라늄(UF6)으로, 중수로용 핵연료는 이산화우라늄(UO2)으로 바꾼다.
천연 우라늄의 동위원소 함유비율은 우라늄-235가 0.71%, 우라늄-238이 99.29%인데, 이 가운데에서 핵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우라늄-235이다. 우라늄-235와 우라늄-238의 함유 비율을 농축도라 한다.
핵연료 다발이 바로 핵연료
중수로를 쓰는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는 천연 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하나, 고리·영광·울진원자력발전소에서는 우라늄-235의 농축도를 2~5%까지 높인 저농축 우라늄(LEU)을 핵연료로 사용한다. 우라늄-235의 비율을 높이는 것을 ‘농축’이라고 하는데, 우라늄-235의 농축도가 20% 이상인 것을 고농축 우라늄(HEU)이라 한다.
농축은 우라늄-235와 우라늄 -238의 미세한 무게 차이를 이용해 이뤄진다. 농축 방법에는 미국·프랑스 에서 사용하는 기체확산법과 영국·러시아·중국·일본에서 사용하는 원심분리법이 있다. 그러나 기체확산법은 에너지를 매우 많이 소비해 점차 원심분리법으로 대체되는 추세에 있다.
경수로용 핵연료는 저농축 육불화우라늄을 화학공정인 재변환 과정을 통해 이산화우라늄 분말로 바꾼다. 그리고 이 분말을 분필 모양으로 성형해 약 1700℃로 구워 ‘도자기 소결체’를 만든다. 이 소결체를 피복관에 넣어 연료봉을 만들고, 연료봉을 띠로 묶어 핵연료라고 하는 ‘핵연료 다발’을 만든다.
중수로용 핵연료는 천연 이산화우라늄 분말로 소결체를 만들고 이 소결체를 피복관에 넣어 연료봉을 만든 다음 이 연료봉을 묶어 핵연료 다발로 만든다.
핵연료 다발로 만드는 공정을 ‘성형가공’이라 한다. 성형가공한 핵연료 다발은 원자력발전소로 이송되어 원자로에 장전된다. 우라늄 정광을 확보해 성형가공 공장에서 핵연료 다발을 만들기까지 1~2년 걸린다.
사용후핵연료의 처리·처분
새로 만들어진 핵연료는 경수로에서는 4~5년, 중수로에서는 1년 정도 타고 난 후 방출된다. 타고 난 핵연료(사용후핵연료)에서는 열이 많이 나오고 높은 수준의 방사선이 나오므로 이 열을 식히고 방사선을 차폐하기 위해 10 m 이상 깊이의 물속에 저장한다.
원자로에 장전된 핵연료는 주로 우라늄-235가 핵분열을 일으키며 열을 내는데, 이때 우라늄-238 중 일부가 중성자를 흡수해 플루토늄-239로 바뀐다. 플루토늄 -239 중 일부는 핵분열을 일으키고 일부는 중성자를 흡수해 플루토늄-240이 된다. 플루토늄-240은 중성자를 흡수해 플루토늄-241이 되는데, 플루토늄-241은 다시 핵분열을 일으키고 일부는 중성자를 흡수해 플루토늄-242가 된다.
2006년 6월5일 브라질 INB사와 핵연료 부품 수출 계약을 체결한 원자력연료주식회사.
경수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에는 농축도 0.9% 내외의 우라늄이 약 95%, 플루토늄이 약 1%,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약 4% 들어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우라늄 농축도는 천연 우라늄보다 높다. 또 여기에 들어 있는 플루토늄도 핵연료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이를 화학적으로 처리해, 우라늄과 플루토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분리하는데 이를 재처리 공정이라고 한다.
재처리를 통해 회수된 우라늄은 농축, 성형가공 과정을 거쳐 원자로용 연료로 사용하고 플루토늄은 천연 우라늄과 섞어 혼합연료를 만들어 핵연료로 사용한다. 그리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유리(琉璃) 형태로 고화(固化)해 영구 처분한다.
재처리로 회수한 플루토늄은 주로 고속증식로용 핵연료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고속증식로의 상용화가 2030년대 이후로 연기됨에 따라 재처리로 회수한 플루토늄의 처리·처분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천연 우라늄에 재처리로 얻은 플루토늄을 4~12% 섞은 혼합연료(MOX)로 만들어 경수로에 사용하는 방안이 나왔다. 현재 프랑스·스위스·벨기에 같은 유럽 국가는 이 혼합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도 수년 내 사용할 전망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2003년까지 양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3분의 2를 폐기한다는 내용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서 두 나라는 해체된 핵무기에서 회수한 플루토늄 가운데 일부인 34t을 평화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폐기하기로 합의했다.
후행 핵주기 완성해야
2000년대 초까지 미국은 핵 확산 위험성을 이유로 혼합연료 사용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34t의 플루토늄을 처리·처분하기로 러시아와 합의함에 따라 이중 25.5t을 혼합연료로 만들어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은 프랑스 기술로 혼합연료 제조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나머지 8.5t은 핵연료로 사용하지 않고 폐기할 방침이다.
러시아는 34t 전량을 혼합연료로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아직 혼합연료 공장을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핵연료 제조과정은, 새 연료를 만들고 이 연료를 원자로에서 태운 후,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회수해서 다시 사용하는 순환(循環)과정을 이룬다. 이를 ‘핵연료 주기’라고 부른다. 새 연료를 만드는 과정을 선행 핵주기, 사용후핵연료를 처리·처분하는 과정을 후행 핵주기라 한다.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두 발의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조기에 종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90% 이상 고농축한 우라늄을 원료로 제작한 ‘우라늄탄’이고,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회수한 플루토늄으로 만든 ‘플루토늄탄’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강대국들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1948년 소련, 1952년 영국, 1962년 프랑스, 1964년 중국이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했다. 이 다섯 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구성한 다섯 나라와 일치하는데, 핵무기를 보유한 다섯 나라는 더 이상의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핵 비확산조약(NPT)을 제의하였다.
1970년 발효된 NPT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보장하되 더 이상 핵무기가 수평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5개 핵보유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핵무기의 개발, 보유, 배치를 금지한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감독을 받는 핵 안전보장조치를 이행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중수로용 핵연료 다발(왼쪽)과 경수로용 핵연료 다발.
그런데 NPT 발효 4년 후인 1974년, 인도가 캐나다에서 도입한 중수로에서 꺼낸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얻은 플루토늄을 원료로 원자폭탄을 만들고, 이 폭탄을 ‘토목공사 등 평화적 목적에 사용한다’는 명목을 붙여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로써 원자로가 있고 재처리 기술이 있으면 어느 나라든 ‘의지만 있으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 후 핵보유국은 핵무기 확산을 막는 조치를 강화하였다. 농축과 재처리 기술을 ‘예민 핵주기 기술’로 규정하고 기술 개발과 전수 등을 강력히 규제했다.
미국은 1970년대 후반 다른 나라의 재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가 필요한 고속증식로 개발을 중단했다. 그리고 자국의 상용 재처리시설의 가동도 중단하고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지 않고 영구 처분하는 비순환 핵주기를 채택하라’고 다른 나라에 종용하였다.
그러나 자원이 부족한 영국·프랑스 등 유럽국가와 러시아 중국 등 옛 사회주의 국가, 그리고 일본은 사용후핵연료에 들어 있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회수해 활용하는 순환핵연료 주기를 선택했다. 그리하여 현재는 미국과 스웨덴 등 몇몇 나라만 재처리를 하지 않고 영구 처분하는 비순환 핵주기를 택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세계 6위의 원자력 국가인 우리나라는 1992년 1월20일 발표된 ‘한반도의 비핵화 선언’에 따라 농축과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함께 이 선언을 한 북한은 농축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연막전술을 펴고 있으며, 별도로 재처리 기술을 개발해 영변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얻은 플루토늄으로 2006년 10월9일 핵실험을 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 농축 우라늄 가격은 2중 체제
5대 핵 보유국은 농축 기술 또한 보유하고 있다. 네덜란드·독일도 농축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은 농축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핵무기를 제조하는 수단으로 농축기술을 개발했으나 ‘핵무기 포기를 선언’ 하며 폐기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남아공의 농축기술 폐기를 확인한 바 있다.
브라질은 현재 원자력발전용 핵연료 제조를 위한 농축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이란이 농축기술 개발을 시도해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현재 발전용 핵연료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농축 우라늄 공급 능력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70년대엔 미국이 자유세계의 농축시장을 독점했으나, 1980년 프랑스가 3개국 합작사인 EURODIF(기체확산법) 농축시설을 가동하고, 영국·독일·네덜란드가 합작해서 URENCO(원심분리법) 농축시설을 가동함으로써 미국 독점 체제가 무너졌다.
미국은 1973년 SWU(농축분리 작업량·농축 서비스 물량을 표시하는 단위)당 32달러이던 농축 단가를 1980년 153달러로 인상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경쟁사가 등장함으로써 자유세계 농축 우라늄 가격은 SWU 당 120달러 선을 유지하게 되었다.
과거 소련은 공산권에 대한 농축 서비스를 독점했다. 1990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독립하자, 러시아는 경화(硬貨)를 확보하기 위해 서방국가를 상대로 농축 서비스에 나서 SWU당 100달러 이하의 저가로 공급하고 있다. 그로 인해 세계 농축 서비스 시장은 러시아 공급가와 서방 공급가가 병존하는 2중 가격체제가 형성되었다.
핵무기를 해체해 회수한 고농축 우라늄은 또 다른 농축 우라늄의 공급원이 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서 핵무기를 해체해 회수한 고농축 우라늄 가운데 500t을 구입해 천연 우라늄과 섞어 5% 이하의 저농축 우라늄으로 만들어 1995년부터 원자력발전용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그 기간은 2013년까지이다. 90% 이상 고농축된 우라늄 1t으로는 한국형 원자력발전소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핵연료를 제조한다.
1970년대 중반, 영국과 프랑스는 상용 재처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두 나라는 일본·벨기에·독일·스위스 등 여러 나라와 계약을 맺었다.
주요 계약 내용은 ‘재처리시설 건설비를 발전회사에서 분담하며, 시설 운영 중 일정액의 이익을 보장한다. 회수된 플루토늄과 고준위 폐기물은 재처리를 위탁한 국가에 반환하며 계약기간은 10년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 프랑스와 영국은 이러한 계약에 따라 건설된 UP3(800t/연)와 THORP (1200t/연) 시설의 운영에 들어갔다. 상용 재처리시설을 가동한 것이다. 두 나라의 재처리 단가는 kg당 1000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도 상용 재처리 서비스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한편 일본은 1978년 도카이무라(0.7t/일) 재처리시설을 준공하고 올해엔 로카쇼무라에 800t/연 시설 용량을 가진 재처리시설을 건설해 시험 가동에 들어갔다. 로카쇼무라의 재처리시설 건설비는 영국의 THORP 시설의 3배가 넘는 200억달러로 알려졌다.
워낙 많은 비용이 들어가 일본 정부와 발전회사는 이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현재 일본이 보유한 것으로 보도되는 플루토늄 43t은 일본에서 생산된 사용후핵연료를 영국과 프랑스가 재처리해서 돌려준 것과 도카이무라(東海村) 시설에서 재처리한 것이다. 미국은 카터 대통령 시절 상용 재처리시설 운영을 중지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후반부터 우라늄 매장량을 확인하는 탐사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충북 괴산·옥천지구에서 평균품위 0.035%인 우라늄 광석 1억1500만t이 매장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실제 채굴하여 확보할 수 있는 우라늄 양은 약 2만5000t 수준).
그러나 국내에서 확인된 우라늄은 세계에서 채광되고 있는 우라늄광보다 품위가 현저하게 낮아 채광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국내 우라늄광을 채굴하지 않고 해외에서 우라늄 정광(精鑛)을 수입해 필요한 핵연료를 제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우라늄 정광을 공급하는 국가는 캐나다·호주·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아프리카 등이다.
한국은 아직 농축 기술을 국산화할 계획이 없다. 그러나 핵연료의 성형가공 분야 국산화를 추진하여 성공을 거뒀다. 후행 핵주기 정책을 확립하지 않은 상태로 기다리면서 관망하는(wait and see)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 기술로 만든 경수로용 핵연료
1970년대 초 한국원자력연구소는 연구 차원에서 핵연료 성형가공 기술개발을 시도한 바 있으며, 1980년대 들어 정부는 상용화를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1970년대 후반 국내의 한 민간회사가 경수로용 핵연료 성형가공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정부는 핵연료 성형가공은 에너지 안보상 중요하다는 판단하게 정부 주도로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1982년 11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원자력연구소가 공동 출자해 한전원자력연료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핵연료 성형가공은 기계적 설계와 안전성 분석, 핵연료 다발을 원자로 내에 배치하는 장전 모형의 결정, 제조를 위한 시방서 작성 등을 수행하는 설계 분야와 실제 공장에서 제작하는 제조 분야로 나뉜다.
한전원자력연료주식회사는 독일 지멘스 KWU사(社)에서 핵연료 설계와 제조 기술을 도입해 1988년 연산 200t 규모의 경수로 핵연료 가공시설을 준공했다. 이로써 국내 소요 전량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 후 신설되는 원전이 늘어남에 따라 계속 증설해 2009년이면 총시설 용량이 550t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고리 1~4호기, 영광 1·2호기, 울진 1·2호기는 웨스팅하우스형(形) 원자로이다(울진 1·2호기는 프랑스 프라마톰에서 도입한 것이나, 이 원자로도 미국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핵연료 설계기술을 지멘스 KWU에서 도입해 사용하다 보니 기술적인 문제점이 발생해, 웨스팅하우스에서 다시 설계기술을 도입해야 했다.
핵연료 피복관도 국산화
영광 3·4호기부터는 한국형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함에 따라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공급사인 ABB-CE사에서 별도로 한국형 핵연료 설계기술을 도입했다. 웨스팅하우스형 원자로는 웨스팅하우스 기술로, 한국형 원자력발전소는 ABB-CE 기술로 설계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두 기술을 통합해 하나의 기술로 설계하는 기술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 원자로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경제성이 뛰어난 핵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형 원자로를 위해서는 2006년 기존 연료의 일곱 가지 문제점을 개선한 개량연료 PLUS-7을 상용화하고, 웨스팅하우스형 원자로를 위해 만든 개량연료 ACE-7은 노(爐) 내외 실험을 거쳐 2008년부터 상용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은 기술 도입사인 웨스팅하우스사와 브라질 INB사 등에 핵연료를 수출하고 있다. 2009년 1월 질칼로이 핵연료 피복관의 국산화 사업이 마무리된다. 그에 따라 피복관 생산시설이 완공되면 핵연료 피복관도 일부 수출할 계획이다.
중수로용 핵연료 성형가공 기술은 원자력연구소가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개발하기 시작했다. 1978년 프랑스에서 차관사업으로 들여온 연산 10t 규모의 연구시설을 1984년 100t 규모로 증설해, 1987년부터 월성 1호기에 공급하였다. 한전원자력연료주식회사는 월성 2·3·4호기 증설에 따른 수요 증가에 맞추어 1998년 연산 400t 규모의 시설을 신설해 국내 소요량 전량을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출된 사용후핵연료는 수조(水槽)에 저장한다. 1970년대 초반 원자력연구소와 한 민간회사가 재처리시설 건설을 추진했다. 민간회사는 미국의 뉴클리어 퓨얼 서비스(Nuclear Fuel Services) 사와 3t/일(연산900t) 시설을 고리원자력발전소 인근에 건설하기로 했으나 미국 정부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원자력연구소는 1973년 프랑스 SGN 사와 재처리시설 개념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1975년 4월에는 시설 건설을 위한 기술용역과 공급 계약을 체결해 연산 4t 용량의 연구시설을 대덕연구단지(현 원자력연구소 부지) 내에 건설하기로 하고 소요자금은 프랑스 차관으로 확보하였다. 그러나 1974년 인도가 핵실험을 함으로써 ‘예민 핵주기 기술’ 전수에대한 규제가 강화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미국 등의 압력을 받아 계약이 취소되고 말았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1991년부터 DUPIC(Direct Use of PWR Fuel in CANDU) 연료를 개발하고 있다. DUPIC은 경수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에서 피복관을 제거하고 소결체를 분쇄한 후 그대로 중수로 핵연료 소결체로 만들어 중수로용 핵연료로 사용하는 개념이다. 사용후핵연료에 함유된 우라늄, 플루토늄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분리하지 않고 그대로 중수로 연료로 사용하므로 DUPIC은 핵확산 저항성이 뛰어난 연료로 꼽힌다.
한국은 1단계로 1991년부터 캐나다와 공동으로 타당성 조사를 벌였으며, 1993년부터는 미국이 참가해 3개국이 실험적 연구를 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도 이 연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농축기술 도전해 볼 만
DUPIC은 높은 핵확산 저항성 외에 경수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중수로용 핵연료로 사용하므로 핵연료 자원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제조와 취급이 매우 어렵고, 경제성이 확인되지 않아 개발 전망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전해 국내에서 소비되는 전력의 40%를 얻고 있다. 여기에 새로 6기를 더 짓고 있는 세계 6위의 원자력 강국이다. 원자력발전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핵연료의 적기 확보가 필수적이다.
다행히 핵연료 주기 가운데 성형가공 분야를 국산화해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문제가 없으나 우라늄 정광 확보와 농축 등은 해외에 100% 의존하고 있다. 우라늄 정광은 자연에서 채광하는 것이므로 해외 의존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농축은 국내에서 기술을 개발해 도전해볼 만한 분야이다.
우리나라는 16기의 경수로를 운전 중이며, 여기에 6기를 더 건설해 경수로를 22기 보유할 계획이다. 22기의 경수로에 소요되는 농축 서비스 양은 현재 URENCO사가 영국과 독일·네덜란드에 분산 운영 중인 농축시설의 용량이나, 일본이 로카쇼무라에 짓고 있는 농축시설이 처리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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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측면만 고려할 때 한국은 농축을 국산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치적인 이유로 천연 우라늄 공급이 중단된 사례는 있으나 농축 서비스 공급이 중단된 사례는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농축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나라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한국의 원전 가동은 파행에 직면할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함으로써 한반도의 비핵화 선언은 사실상 파기되었다. 따라서 핵무기 제조가 아닌,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그리고 발전용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농축기술의 국산화를 진지하게 검토할 단계이다.
경수로용 핵연료 제조공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