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이면 고리원전 1호기가 가동 30주년을 맞는다. 30년은 원전 설계수명이 다하는 시기이다. 그전에 고리 1호기를 연장 가동할 수 있는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현재로서는 향후 10년 이상 계속운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리원자력발전소 전경(오른쪽 첫 번째가 고리1호기). 2007년 고리1호기는 계속운전 30년을 맞는다.
살아 있는 것에만 수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생물이나 인공 구조물에도 수명은 있다. 철(鐵)도 부식하면 제 성질을 잃어버리고, 건물도 오래되면 철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20세기 인류의 창조물 가운데 하나인 원자력발전소도 정해진 수명이 있다.
원자력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기로 나타나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결정적 구실을 했다. 그리하여 인류에게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닌 두려운 대상으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인류는 이 막강한 에너지를 평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1953년 12월,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주창하면서, 원자력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하에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원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미국은 전력 생산을 위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규제하기 위해, 1954년 ‘원자력법’을 제정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원자력발전에 투자하려는 그룹과 이에 반대하는 그룹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이 논란의 한가운데에 원자력발전소의 운영을 ‘허가할 경우, 허가 기간을 얼마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업자측에서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으니 최소한 60년의 허가기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편에서는 일반 특허의 독점적 허가기간이 20년인 만큼 그 이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처음부터 수명 논쟁이 있었다
미 의회는 입법 과정에서 양측의 주장을 중재해 ‘원자력발전소의 허가기간은 40년 이하로 하되 연장할 수 있다’고 정했다. 이에 따라 원자력발전소의 설계수명은 40년으로 맞추게 되었다. 이렇듯 원자력발전소의 설계수명은 공학적 차원이 아닌, 정치적인 차원에서 정해졌다. 그리고 그 수명 기간 안에 투자비용을 회수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세워졌다.
한편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는 ‘원자력발전소의 설계수명은 제작 시 기술시방서에 따라 기기나 설비가 적절하게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기간’이라고 비교적 폭넓게 정의하였다.
이런 정의에 따라 원전 수명을 경제적인 면에서 따져본다면 ‘원전의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는 한계비용이 이 원전 가동을 통해 얻는 한계이익보다 커지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40년의 설계수명이 다하는 39년 12개월 31일째 운전까지는 안전하다가 40년 1개월 1일째 되는 날 갑자기 위험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일정기간을 넘겨도 잘 관리될 수 있고, 기능상 안전 문제가 없으며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라면 더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의 원자력발전소는 대부분 원자력법 제정 이후인 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2010년 이후가 되면 상당수가 40년 허가기간 만기에 도달한다. 미국에서는 원자력이 전체 전력 생산의 2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2010년 이후 대체 전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정부는 40년인 허가기간을 연장해줘도 운전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떠한 근거로 허용할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그 결과 현재의 안전성이 유지된다면 원전의 운영허가기간을 연장해도 좋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96년 연방법에 ‘운영허가 갱신을 위한 규정’을 마련했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전세계 원자력발전 국가 가운데 오직 미국만이 원전 운영허가를 발급할 때 허가기간을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허가기간 만료 후 계속운전을 하려면 허가를 갱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원자력발전 국가들은 허가기간을 법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설계수명은 법적으로는 의미가 없고, 계속운전을 위한 상징적 의미만 갖고 있다.
경제성 때문에 늘어나는 원자로 수명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하더라도 설계수명 기간을 넘어 계속운전을 하려면 주기적으로 안전성 평가를 수행해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종합적인 안전성 확인을 미국은 운영허가 갱신을 통해서, 다른 나라에서는 주기적 안전성 평가를 통해서 수행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와 일본,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자력발전 국가에서는 원전을 새로 건설하지 않고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효율성을 높이고 운전기간을 연장하는 데 노력을 집중했다.
2006년 6월 현재 미국에서는 103기의 원자력발전소 중 42기에 대해 설계수명을 60년까지 연장해 운영허가를 갱신해주었다. 일본에서는 11기, 영국에서는 1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30년 이상 운전 중에 있다. 세계적으로 현재 운전되고 있는 상업용 원자력발전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영국의 던지니스(Dungeness) A 1호기로서 1965년 이후 42년째 가동되고 있다.
왜 원자력발전 선진국은 가동 원전 사용기간을 늘려 나가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바로 경제성에 있다.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기간은 다른 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2배 이상 길어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는 그간의 운전경험과 기술 발달 덕분에 정지 비율이 현저히 감소해, 전력산업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여기에 원유와 천연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의 국제가격이 급등해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추세는 더욱 확대되었다.
안전성에는 문제 없나?
우리나라는 1973년 석유파동을 계기로 석유 위주의 전원(電源) 개발계획을 수정해 원자력발전소를 짓기 시작했다. 1977년 고리 1호기에 처음으로 핵연료가 장전되어 시험운전에 들어갔을 때 우리나라의 총 전력규모는 481만kW였다. 이러한 때 완공된 고리1호기의 발전용량이 국가 총 전력규모의 10분의 1이 넘는 58만7000kW였으니, 1970년대 초 고리 1호기를 짓기로 한 것은 정말 대단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1977년에 핵연료를 장전하고 1978년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간 고리 1호기가 어느덧 30년이 되어 조만간 ‘계속운전을 할 것인지’ ‘폐로(廢爐)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에 대해서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안전성에 대한 기술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사업자측은 계속운전이 가능하다는 의견이고 반핵 혹은 환경단체는 시설이 노후했으니 계속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설계수명 이후의 원전 운전을 허용한 국가들은 무엇보다 설비의 노후화로 인한 안전성 저하 여부에 신경을 썼다. 이 때문에 계속운전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 10여 년간 설비의 노후화와 그로 인한 영향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초반부터 원자력발전소 설비의 노후화에 대한 연구를 추진해왔다.
이 연구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노후된 설비가 방사성 물질의 외부방출을 막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집중 검토하고 정상운전 중에 교체하거나 보수하기가 쉽지 않은 원자로 용기, 격납건물, 원자로 냉각재 배관, 증기발생기 등 11개 기기의 노후화에 따른 영향을 평가한다.
이 연구 결과 원전은 적절한 관리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주의를 기울인다면 60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노후화의 정도를 감시하고 예방보수를 강화한다면 기술적으로는 60년간 계속운전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가장 중요한 기기는 핵연료를 담고 있는 원자로 용기이다. 그런데 우라늄-235가 핵분열을 할 때 생성되는 중성자가 원자로 용기에 조사(照射)되므로 그에 따른 손상이 누적돼 재료의 취성(脆性·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았을 때 소성변형을 거의 보이지 않고 파괴되는 성질)이 증가한다.
취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기기에 결함이 발생할 경우 파손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1970년대 초에 수행된 연구에서 이러한 현상은 중성자 조사량이 증가함에 따라 악화되는 것으로 예측했다. 따라서 운전 중에도 취성의 증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저항력이 저하된 상황을 운전조건에 반영하도록 하였다.
너무 보수적으로 잡았던 기준
그런데 지난 30년간 세계적으로 축적된 시험데이터를 분석해본 결과, 저항력이 저하되는 정도가 1970년대 초에 예측했던 것보다는 심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에 따라 새로운 조사방법으로 조사해보니 원자로 용기는 대부분 계속운전이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고리 1호기는 현재 상세평가를 받고 있으나 설계수명 이후 운전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 가동 중인 원전의 노후화에 대비해 주기적으로 안전성 평가를 수행하도록 원자력법을 개정했다. 이 평가의 주요 내용은 IAEA의 안전지침서 NS-G-2.10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는데, 원자력발전소 노후화에 대한 평가, 안전성 평가 등 11개의 인자로 구성되어 있다.
1999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주기적 안전성 평가제를 도입했는데, 그 결과는 계속운전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데 참고만 하도록 제한하였다. 이 때문에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주기적 안전성 평가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기본틀은 주기적 안전성 평가를 활용하되 계속운전에 대한 안전성을 평가할 때에는 허용기준을 보다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계속운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세부 기술기준이 이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첫째, 계속운전 기간의 안전수준이 현행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둘째,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안전수준 이상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방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미국의 운영허가 갱신에 적용되는 기준을 대부분 우리에게도 적용하고, 원자로 안의 핵연료가 용융하는 사고에 대비한 보완시설을 추가하도록 하였다.
관련 법령 및 세부 기술기준은 2005년 말 완성돼 현재 시행되고 있다. 이렇게 기준을 강화한 것은, 안전성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하겠다.
계속운전이 적절한 것으로 평가되어 허용된다면, 향후 10년간 더 운전할 수 있다. 이후에는 다시 계속운전 안전성 평가를 받아 타당성을 확인받아야 한다.
이렇게 10년마다 안전성을 확인해가면서 계속운전을 하지만 결국 오래된 원자력발전소는 언젠가 문을 닫아야 한다. 폐로 결정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는 사업자 스스로 계속운전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때, 둘째는 안전성 평가결과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여 계속운전이 허용되지 않을 때이다.
원자로의 영구정지라 함은,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완전히 제거해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에 보관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 시점부터는 원자로의 안전성 확보에 필수적인 안전설비들이 대부분 필요 없게 된다. 핵연료 건물 등 일부에 대해서만 안전설비의 성능을 유지하고 나머지 구역에서는 방사선 안전관리만 하면 되는 상태가 될 것이다.
한국,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전도 요구
사용후핵연료를 저장조에 보관하는 기간은 대략 10년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에는 사용후핵연료 폐기물의 처리방침에 따라 이송처분하고, 원자로·격납건물 같은 시설은 해체단계로 들어간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아직 원자력발전소의 해체를 본격적으로 진행한 곳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기준은 미흡한 상태이다.
|
미국의 원자력법은 원자로 영구정지 후 60년 이내에 모든 해체작업을 완료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계속운전 평가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60기 이상에 적용되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이뤄질 것이다. 고리 1호기의 안전성 평가를 위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현재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결과는 2007년 중반에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