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은 내년에 문학관 ‘호접몽’을 지을 계획이다.
흰색 외벽을 한 두 채의 아담한 집을 배경으로 장석주(55) 시인이 서 있었다.
한 채는 살림집이고 다른 한 채는 수졸재(守拙齋)라 부르는 서재다. 수졸(守拙)은 바둑 초단의 별칭으로 ‘겨우 자기 집이나 지킬 정도’라는 뜻.
수졸재 안은 그의 손때가 묻은 2만권가량의 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높낮이가 다른 서가를 통과하면서 마치 미로를 지나는 듯했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시인은 열살 때 상경, 농촌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언젠가는 돌아가리란 귀소(歸巢)본능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 1988년에 땅을 구입했다. 그로부터 10년 남짓 지난 2000년, 출판사와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둥지를 틀었고 전업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집은 삶을 담아내는 공간이고 영혼을 만드는 곳”이라는 그는 이곳에 안착한 후 새소리에 잠을 깨고, 10년째 사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감성이 살아남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수졸재 앞 넓은 터는 장 시인이 꿈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살림집 앞쪽에는 땅을 파 만든 인공연못이 있었다. 그곳은 스쳐가는 동물들의 목마름을 적셔주며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른 한 켠은 그가 꿈꿔온 문학관 ‘호접몽’이 들어설 자리다. 내년에 착공할 문학관이 완성되면 그의 서재를 가득 메운 책들을 옮겨놓고 노자 장자 등 인문학 강좌도 계획하고 있다.
장 시인은 월세 전세를 전전하다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했을 때 비로소 실존의 안착, 떠돌이가 아닌 이 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안도감을 맛보았다고 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했다.
“집은 두드러지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그는 세월이 좀 지난 후 황토로 된 집, 어머니 자궁 속 같은 편안한 집, 자연과 하나가 되는 그런 집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