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성립…‘비상계엄 권한’ 없애는 방안 논의해야”

[‘내란죄’를 보는 눈 ②] 김진한 전 헌법연구관‧변호사 인터뷰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4-12-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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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 통제 시도는 반역 행위, 명백한 내란죄

    • 조직 흥망 건 검찰‧경찰‧공수처의 경쟁

    • 대통령 스스로 직무수행 불가능 선언했더라면

    • 1심 판결 단계에서 헌재도 탄핵 심판 결정 예상

    •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 사전 승인 개헌의 필요성

    • 대선 시간표만 만지작? 출마 포기 선언이 더 큰 승부수

    김진한 변호사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맞은 양당 대표의 정치력에 대해 “출마 포기를 선언하고 사태 수습에 올인한 뒤 탄핵과 별개로 개헌을 추진했다면 아마 위인전에 올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영철 기자]

    김진한 변호사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맞은 양당 대표의 정치력에 대해 “출마 포기를 선언하고 사태 수습에 올인한 뒤 탄핵과 별개로 개헌을 추진했다면 아마 위인전에 올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영철 기자]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김진한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사법연수원 29기)가 2024년 12월 3일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비상계엄을 발동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성립 여부였다. 내란죄를 놓고 다양한 시각에서 법리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김 변호사는 “내란죄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느 공화국의 자해행위’라는 칼럼(중앙일보 2024년 12월 10일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상계엄의 본질은 ‘법’과 ‘제도’를 통하여 독재정치를 허용하는 것이다. 헌정을 중단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군정을 허용하는 비상계엄은 공화국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독약’인 것이다. (중략) 평화로운 시기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독재를 시도한 행위는 그것만으로 민주공화국에 대한 반역 행위이다.”

    -‘내란죄’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뭔가.

    “일단 비상계엄을 발동할 수 있는 요건 자체가 안 된다. 헌법 제77조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계엄이 이런 요건을 갖추지 않았음은 온 국민이 알 것이다.”

    -계엄선포는 헌법적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 행사이고, 국회의 해제 요구에 신속히 따랐음에도 내란죄가 성립되나.

    “형법 제87조 내란의 구성 요건은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설령 비상계엄의 요건을 갖췄다 해도 비상계엄 시라고 해도 정당화될 수 없는 국가기관에 대한 침탈이나 침입은 내란이 될 수 있다. 우리의 헌법 구조는 정교하게 짜여 있다. 한 국가기관이 모든 권력을 갖고 있으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다른 권력으로 하여금 견제하게 한다. 수많은 장치가 권력을 서로 제한하고 견제하기 위해 관련돼 있는 시스템이다. 특히 비상계엄과 같은 극단적 독재 권력을 발령하는 시기에 대통령을 통제할 유일한 수단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다. 해제를 요구하려면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결의를 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은 무장병력을 투입해 국회가 열리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다. 심지어 ‘의원들을 다 끌어내라’는 임무를 받았다는 경찰 수뇌부와 계엄군 장군의 증언까지 나왔다. 비상계엄의 시기에 공권력이 국회를 침입하는 것은 다른 국기기관에 침입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보다 더 내란죄 구성 요건에 딱 떨어지는 행위는 없다. 전형적 내란 행위에 해당한다.”

    탄핵 소추 의결부터 5개월 이내에 끝날 것

    -야 6당이 공동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12월 14일 가결됐다. 탄핵안에는 내란죄(우두머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특수공무집행방해죄 등의 범죄행위를 저질렀다고 명시했다. 어떻게 보는가.

    “권력자가 중대한 헌법 위반을 했으니 탄핵 소추할 수 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으니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헌법재판소가 인용하면 60일 내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헌재는 최대한 빨리 심리를 진행할 것이다. 다만 현재 헌재재판소 재판관이 6인 체제여서 1명만 반대해도 탄핵 인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재판관 7명이 이상이 참여한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해야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 새로 재판관을 임명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해도 국회에서 탄핵 소추가 의결된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끝날 것으로 본다. 박근혜 대통령 때는 탄핵에서 인용까지 91일밖에 안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박근혜 대통령 때보다 더 명백하다고 보는 이유는 뭔가.

    “2016년 박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헌법 위반)과 제3자 뇌물죄와 직권남용(법률 위반) 등이다. 이는 직무유기나 개인적 비리 수준이었지 나라의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아니었다. 다만 최서원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국정을 맡기는 무능력한 사람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탄핵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실 그때 나는 박 대통령을 사임(파면)시키는 것으로 족하다, 감옥까지 보낼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 대통령이 자진 하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지지자들이 결집하니까 다음 정부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파면만으로는 미흡하다고 판단했고, 검찰이 열심히 죄를 찾아내어 기소해서 결국 감옥까지 보냈다. 그에 비하면 이번 12‧3사태는 처음부터 감옥에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안이다.”

    -대통령이 형사상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가.

    “만약 이번 일을 정치적 행위라고 해서 타협하고 그냥 넘어간다면 향후 다른 대통령도 비상계엄 선포를 쉽게 생각할 것이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독재 권력을 만들려고 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 중대한 헌정 질서 문란 행위였기 때문에 매우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번 계엄 발동의 배경에는 전례 없는 다수당의 ‘의회 독재’ ‘입법 폭주’가 있으며 입법권과 행정권 간의 정치투쟁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그것이 비상계엄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야당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항상 있어온 정치 행위다.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라고 하지만 야당이 선거를 통해 그만한 지지를 받았다면 그 존재를 인정해 줘야 한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이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법률안 거부권 행사가 아무리 대통령의 권한이라 해도 사전에 야당과 타협하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너희는 해라, 나는 거부한다!’ 식의 정치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야당의 일방적 예산안 삭감도 이유로 드는데, 미국에서는 의회에서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충돌 속에서 연방정부가 문을 닫기도 한다. 연수 중 연방정부가 셧다운되는 것을 한차례 보았다. 국민과 정부가 차분하게 그 과정을 지켜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잠시 정부가 문을 닫아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는 태도였다. 예산안 싸움은 야당의 가장 효과적인 싸움의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정부를 중단시킨 것도 아니고 특활비나 일부 예산을 깎았다고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을 국민들이 납득하겠나. 부부싸움 하다가 칼을 들고 나오는 것과 같다.”

    헌법 수호 최전선에 여야 대표 힘 합치는 건 당연

    -비상계엄 선포 직후 이재명 대표와 한동훈 대표가 만나 “계엄을 막겠다”며 손을 잡는 모습이 포착돼 일부 여당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당 대표의 처신으로서 바람직한가.

    “헌법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여야 대표가 힘을 합치는 것은 당연하다. 도저히 같이할 수 없는 정치적 원수와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정치다. 당시는 정치적 계산을 하는 게 아니라 원칙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니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영리한 정치적 계산이 되는 시기였다. 한 대표가 여당 의원들에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고,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에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 모습에 감동받은 국민도 많을 것이다. 그것은 한 대표에게 큰 정치적으로 자산이 될 수 있었다. 그 태도는 훗날 큰 변곡점을 만들 수 있었다. 다만 이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꾸 말이 바뀌었다.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 아니라 기술과 재주를 부리는 정치인으로 보였다. 국민의힘에서 만든 대통령 아닌가.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이 내란죄를 범했으면 전원 의원직 사퇴는 못하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보여줬어야 한다. 어떤 실패를 겪고 어떤 곤경에 처하더라도 ‘우리 책임’이라고 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의 의무다.”

    -비상계엄 해제 후 7일 밤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만나 “임기 및 국정 운영을 당과 정부에 일임하겠다”고 약속했고, 다음 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 대표가 발표한 국정 수습 방안이 또 다른 위헌 논란을 일으켰다.

    “총리와 당대표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려한 것은 이해하지만 과연 헌정 질서에 맞는 내용인지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대통령이 여당 대표와 적당히 타협해서 ‘내가 이제부터 권한 행사 안 할 테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라고 할 수 있겠나. 대통령의 권력은 헌법과 국민의 선거를 통해서 정당성이 부여된 것이다.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 헌법에 의해 정해진 지위를 사적 약속으로 주고받을 수 없다. 헌법적 혼란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독단적이었다. 이런 발표를 하기 전에 최소한 야당하고 협의했어야 한다. 비상계엄을 한 대표 혼자 막아낸 것이 아니지 않나. 같이 극복하지 않으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위기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협력하고 양보하는 게 좋은 정치다. 그런데 여당 대표는 위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단지 ‘야당 대표에게 대통령이 되게 할 수는 없어. 어떤 기회도 주어서는 안 돼. 그러니까 우리끼리 수습해 보자’ 하는 생각만 한 것이다.

    -한 대표가 ‘질서 있는 퇴진’을 꺼냈지만 국정 수습 절차가 잘못됐다는 말인가.

    “이 사태를 헌법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궐위(闕位)’인가. 대통령이 임기 중 죽거나 사퇴하거나 탄핵으로 파면돼야 궐위인데, 아직은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사고(事故)’인가. 사고는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잠시 의식이 없거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라면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궐위는 60일 이내에 선거를 해야 하지만 사고는 그럴 필요가 없다. 만약 대통령이 구속된다면 ‘사고’에 가깝다. 또는 대통령이 자신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하다면 직무집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선언하고, 회복할 때까지 권한대행 체제로 가야 한다. ‘사고’는 대통령이 결심하고 정치권이 인정한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야당과 국민이 내란죄를 저지른 대통령에게 ‘사고’를 인정해 줄 것이냐는 별개 문제다. ‘사고는 무슨 당장 하야하라’는 목소리가 높겠지만 사고라고 선언하고 공식 권한대행 체제로 갔다면 적어도 헌법적 공백 상태를 막을 수 있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탄핵 소추 의결이 되지 않는 이상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막을 방법이 없다.”

    공수처-경찰-국방부가 공조 조직 만든 것 ‘긍정적’

    -탄핵안 가결과는 별개로 ‘내란죄’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12‧3 비상계엄 태 주동자(내란 중요 임무 종사,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됐고, 윤 대통령은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검찰이 선수를 쳤지만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긴급체포하고,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대통령에게 출국금지조치를 하고 긴급체포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경쟁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미래 권력을 염두에 두고 이번 수사를 자기 조직의 흥망과 연결하는 것 같다. 검찰은 경찰에 주도권을 뺏기면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불안감도 있고, 이번에 제대로 수사해서 국민에게 ‘역시 검찰이다’라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내란죄가 검찰의 수사권 범위에 들어 있는지 의문이 있다. 대통령 집권 중 대통령과 그 부인에게 부당하게 굽어져 있던 검찰 권력이 갑자기 대통령을 향해 정의의 칼을 드는 모습도 어색하고 낯 뜨겁다. 수사는 경찰이 하고 기소는 검찰이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기왕에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해 놓은 법률 취지에도 맞는다. 수사에서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기소 단계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맡아도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보는 이유는 사안이 너무 명백하고 증거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사기관들이 서로 경쟁하다가는 증거도 못 찾고 증거가 인멸돼 버리면 낭패가 될 수 있다. 공수처-경찰-국방부가 함께 이번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공조 조직을 만든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협력이 잘 이뤄질까 걱정도 되지만, 서로의 부족한 능력을 보완한다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이 자신만이 최고라는 자만심을 버리고 이 공조에 참여한다면 더욱 이상적일 것이다.”

    -대통령이 내란죄로 기소되면 헌법재판소에 탄핵 심판 중단을 요청할 것이라고 한다.

    “헌법재판소법 제51조에 ‘탄핵 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는 경우 심판 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물론 ‘할 수도 있다’이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아니다. 이 조항이 있는 이유는 탄핵 소추된 공직자에 대해 위법의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고, 이미 형사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법원에서 그 사실이 인정되면 헌법재판소가 그것을 받아서 사용하면 되므로 효율성 차원에서 심판 절차를 중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장관이나 검사 등 일반 공무원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절차를 그런 이유로 중단시키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공정하고 신속하게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사명이다. 이미 두 번의 대통령 탄핵 심판을 진행해 본 경험이 있는 헌법재판소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형사절차와 탄핵심판절차는 별개로 진행되는 것이 맞다.”

    -향후 탄핵의 시간표는 어떻게 예상하나.

    “일단 내란죄 혐의로 기소가 돼야 하는데 아직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개별적 증언만 나올 뿐이다. 그들을 직접 소환해서 진술을 받고 증거 서류도 받고, 대통령도 직접 수사해서 증거가 모이면 그다음 기소할 것이다. 기소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는 있겠지만 수사기관의 결단에 달린 문제다. 법률가로서 볼 때 기소 후 1심 판결이 나오는 단계, 또는 그 이전에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 결정을 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부통령제’ 도입의 필요성도 나오고 있다.

    “미국식 부통령제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제도이고 평소 아무런 권한 없이 놀고먹는 자리라는 야유도 있지만, 우리 정치 환경에 맞는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고 유사시 민주적 정당성의 공백을 메우게 한다면 고려해볼 만한 제도다.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국정에 공백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잔여 임기를 채우기 때문에 60일 만에 조급하게 재선거를 치러야 하는 문제도 해결이 된다. 사실 임명직인 국무총리는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기 때문에 60일 이상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는 힘들다.”

    권력의 궤도 이탈, 경고가 현실로

    -지난여름 ‘신동아’와 인터뷰(2024년 6월호)하면서 “권력의 궤도 이탈을 막을 개헌 논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했는데, 이제 현실이 됐다.

    “권력은 지속적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최고 권력이 추락과 부상을 반복하는 현상은 헌법의 권력 장치가 고장 났다는 의미이고, 헌법은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 못지않게 대통령이 부여받은 권한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대통령 중임제를 주장했다. 대통령 중임제는 독재 가능성을 차단하면서도 국가정책의 연속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와 함께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현 정부가 이런 개헌안을 추진해 주기를 바랐지만 당장 탄핵소추안 의결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여당이 ‘임기 단축 개헌’ 카드를 꺼내봤자 누가 관심을 갖겠나.”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개헌의 필요성이 더 강해지지 않았나.

    “우리 헌법에 ‘결함’이 너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만약 여소야대가 아니라 여대야소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가 이루어졌을까. 여대야소의 여당에서 해제 요구를 못 하겠다고 하면 계엄이 유지될 것이다. 과연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 조항을 계속 두는 게 맞을까?’라는 근본적 의문이 들더라. 이 조항은 항상 독재의 도구로 사용됐지 진짜로 나라를 지키는 데 사용된 적이 거의 없지 않나. 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전시 상태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비상계엄의 조항이 불가피하다면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토론한다면 여대야소의 구도하에서라고 해도 함부로 비상계엄 승인이 나오기 어렵다. 지금은 사후 해제 요구인데, 대통령이 제멋대로 발령하지 못하도록 국회에서 사전 동의를 하는 절차를 넣는 것이다.”

    -비상계엄 포고령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들도 많다.

    “비상계엄이 발동되면 모든 기본권이 포괄적으로 박탈되고 오로지 계엄사령관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진다는 것도 문제다. 계엄사령부 포고령만 봐도 무시무시하지 않나. 이번에 특별히 더 겁을 주려고 한 게 아니다. 군부독재 때 포고령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계엄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아무리 계엄이라 해도 국가권력의 행사이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행사해야 한다. 난동이 나서 질서 회복에 병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 일만 하면 될 것이지 왜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는 법원과 언론사에 군대를 투입하고 시민들의 자유를 박탈하나. 지금까지는 계엄이 거의 사문화된 법이나 마찬가지여서 아무도 이런 부분을 고민하지 않았다. 적어도 헌법의 계엄 조항과 계엄법 전체를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김진한 변호사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거대 양당 대표의 정치력에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만약 두 대표가 대선 시간표만 바라보지 않고 차라리 출마 포기 선언을 하고 오로지 이 사태 수습에 ‘올인’하는 승부수를 두었다면, 대통령 탄핵과는 별개로 진지하게 개헌을 추진하자고 했다면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랬다면 위인전에 오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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