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 정리·유은혜 | goltong93@freechal.com

    입력2009-02-10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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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을 바꾸려는 노력이 가시화하고 있는 지금, 전문성을 갖춘 건축·도시설계 전문가들과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빛나는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내가 꿈꾸는 한강’을 들었다. 진행 중인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극복과제와 대안에서부터 엉뚱하지만 신선하고 즐거운 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공존하는 ‘한강의 꿈’ 한 자락.
    짜릿짜릿 수중공원, 아기자기 수상가옥, 강물 위 펼쳐지는 영상쇼까지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일러스트레이션·임혜경

    한강을 시민공간의 네트워크로

    승효상 | 건축가·이로재 대표

    한강을 개발하겠다는 서울시의 착상 자체는 의미 있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다. 그러자면 한강의 장단점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강이 다른 도시의 강과 차별되는 점은 ‘지역을 나누는 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강의 폭은 1km로 양쪽 지역이 상당히 멀기 때문에 양안을 통합하는 것이 쉽지 않고, 이는 한강의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거대도시를 전체적으로 아우른다는 점은 한강이 지닌 최대 장점이고, 이것이 한강을 바라보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서울 시민들은 일상생활을 통해 한강을 무수히 지나다닌다. 그러나 정작 한강을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인식하고 그곳에 가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장소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강 개발의 핵심은 시민들이 가고 싶어하고 또 서울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두어야 한다. 한강만 파편적으로 잘라서 보고 개발할 것이 아니라 서울의 도시 구조 속에서 한강을 봐야 한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강 바깥이 아니라 강 안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파트와 도로 때문에 한강에 가기 어렵다면, 강에 도로가 면하게 하지 말고 강에 시설이 면하도록 하면 된다. 여기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시설을 배치하면 그곳에 가기 위한 크고 작은 접근로가 생기면서 접근성이 높아진다. 다만 대규모 시설 몇 개 만드는 것보다 작은 단위의 공원이나 문화공간을 곳곳에 점점이 포진토록 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구조를 한강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서울 전체에 거미줄처럼 퍼뜨려야 한다. 숲을 예로 들어보자. 한강 인근 몇 곳에 대규모 숲을 만드는 데서 그치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자주 찾겠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겐 여전히 먼 곳에 불과하다. 그래서 서울의 숲들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울의 숲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일종의 ‘라인’을 형성하는 것이다. 쇼핑 공간이나 역사체험 공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는 숲과 쇼핑이 만나고 어디선가는 쇼핑과 역사공간이 만난다. 이렇듯 공간과 공간이 만나는 지점에 휴식공간을 만들어 끊임없이 연계되는 도시의 네트워킹을 이뤄내야 한다. 한번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면 서울 어디에서도 숲을 산책하다 쇼핑을 할 수 있고,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다 휴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강에 접근하는 방법이 한결 수월해짐은 물론이다.

    시민의 삶에 밀착한 도시구조란 특정 시설이 어느 한군데에 집중되는 봉건적인 구조를 탈피해 이처럼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 한강 개발도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해야만 큰맘 먹어야 한번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슬리퍼 신고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시민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강과 도시와 시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관광자원이다. 진정한 관광상품은 스펙터클한 무엇이나 일회성 이벤트 공간이 아니라 그 지역의 특징인 문화 자체다.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향유하는 서울 시민의 리얼한 삶이 펼쳐지는 한강이라면 세계 어느 도시와 견줘도 차별되는 서울의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공영역의 디자인이란 간판만 예쁜 것으로 바꾼다고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시민 스스로 교통질서를 지키게 하는 도로체계를 만들고, 시민 스스로 모이는 공원과 시장 같은 ‘공간 구조’를 만드는 게 진정한 공공영역 디자인이다. 따라서 당장 눈에 보이는 현란한 장치들보다 한강이 과연 서울에 어떤 의미인가 하는 본질적인 고민이 깊어야만 한강의 미래도 열린다.

    다행히 서울은 산과 강이 있기에 조금만 수정하면 언제든 원형으로 복원이 가능한 아름다운 도시다. 한강을 통해 서울의 원형을 잘 살린다면, 어설프게 흉내 낸 워싱턴도 파리도 아닌 서울의 정체성이 명확해질 수 있다. 서울이 진정 건강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다.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하드웨어보다 먼저 소프트웨어를

    김원 | 건축가·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한강의 가치를 회복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강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 옛날 서울을 도읍지로 정한 사람들이 본 것은 서울을 둘러싼 산과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었다. 산과 한강이 바로 서울의 랜드마크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자꾸만 뭔가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서울을 다녀간 외국인들은 대부분 서울의 산과 한강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도심에서 바로 산에 오를 수 있고, 도심 곁에 이렇게 거대한 강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이다. 외국인들도 아는 한강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정작 우리는 잘 모르는 듯하다. 높은 건물이나 인공적인 랜드마크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나 평야에나 필요한 것이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가 시민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면 한강이 시민 전체의 생활 속에 들어오도록 만들면 된다. 시민에게 강물을 맘껏 보여주고, 강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오픈 스페이스를 조성하면 된다. 강이 편안한 산책로가 되고,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코스가 되고, 서민들이 부담 없이 소주 한잔 마시러 들르는 곳이 되고, 낚시와 수영과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되고, 그 옛날 뱃놀이하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공간이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을 설치하고 스타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세운다고 하루아침에 시민의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한강을 바꾸겠다는 작업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한강에서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만드는 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페라 같은 이른바 고급문화가 아니면 어떤가. 큰돈 들여 거창한 건물을 짓지 않아도 시민 중심의 공간을 만들 방법은 많다. 그런데 지금 추진되고 있는 관련사업은 하드웨어를 먼저 만들어놓고 여기에 소프트웨어를 끼워 맞추려는 측면이 있어 안타깝다.

    다른 한편으로는 짓는 것보다 비우고 허무는 방향에서 한강을 개발할 필요성도 있다. 아파트 일부를 허물어 강변으로 가는 길을 만들고, 쪼개진 녹지를 연결해 한강에 닿도록 해서 산과 강의 원래 모습을 회복해야만 한강이 생활 속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남산과 서촌(西村)을 언급하고 싶다. 과거 남산 제 모습 찾기 운동이 한창일 때도 지금의 남산 한옥마을 터에 아파트를 짓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그때 서울시는 남산골을 되찾는 것이 서울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라는 의견을 수렴해 아파트 대신 한옥마을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그곳에 삭막한 고층 아파트가 촘촘히 지어졌다고 생각해보라.

    서촌도 비슷한 맥락이다. 얼마 전 서울시는 ‘한옥 선언’을 통해 한옥을 소중한 문화 자산으로 보전하여 도시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했다. 한옥이 밀집된 지역은 한옥을 보전한다는 전제하에 재개발을 추진하고 시의 예산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경복궁 서쪽 일대를 북촌처럼 문화의 거리로 조성한다는 서촌 계획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곳은 수준 높은 문화를 영위하던 중인들이 살던 곳이고, 역사적 인물인 세종이 태어난 곳이고, 겸재 정선이 살던 곳이다. 이상, 현진건, 노천명 등 근대 문인들이 살던 곳도 이 동네다. 이런 곳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당장 땅값은 치솟겠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문화벨트로 조성하는 게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훨씬 가치 있는 개발이다. 이는 북촌에서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따라서 서울시의 결정은 단순히 한옥 리모델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숨어 있는 기억과 문화를 살리는 일이다. 개발 논리에 밀려 높게만 올리는 아파트가 아니라 서울이 간직한 수백년 역사의 켜를 살리는 일이기에 환영할 만하다.

    장황하게 남산과 서촌 이야기를 한 이유는, 한강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개발 마인드에서 벗어나 남산의 제 모습을 찾아주고 한옥 선언을 한 그 마인드로 한강에 접근한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시민의 공간으로 회복할 수 있다. 그러자면 개발 마인드에 익숙한 시민의 공감을 얻는 것도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한강 개발의 목표는 도시 문화수준의 업그레이드여야

    손세관 |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1960년대 한강에서는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아 올리던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시민들은 한강에서 빨래를 하고 물고기를 잡고 또 강물을 끌어다 공업용수로 사용했다. 그만큼 한강은 삶의 중심이자 ‘서울성(性)’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진행된 무절제한 개발로 인해 무미건조한 아파트 건물이 강변을 포장해버리면서 한강은 그때의 활기를 잃어버렸고, 그저 바라만 보는 강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니 이제라도 한강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한강 중심의 도시 개편이 주변 땅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만 기울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부분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한강 개발의 주요 목표는 한 도시의 문화수준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도시가 지닌 보이지 않는 문화적 가치와 질 높은 공공공간 창출에 역점을 두자는 것이다.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이런 맥락에서 랜드마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진정한 랜드마크는 높이가 아니라 강과 그 주변의 여러 건축적 특징이 어우러진 전체적인 경관에 의해 만들어진다. 고층 아파트나 특별한 건물 하나로는 도시가 업그레이드되지 않는다. 파리만 해도 특별한 건물 하나보다 강변을 따라 자리 잡은 역사적인 박물관과 다리, 낮지만 잘 관리된 아파트가 어우러진 풍경이 랜드마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에 비해 한강 주변은 기존 건축물의 퀄리티가 취약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강 주변을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해 신구 건물의 높이와 디자인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섬세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주변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는 극히 일부만 고층으로 짓고 대부분은 중저층으로 제한한다거나, 주거 지역과 다른 기능의 공간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등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공공기관이 전체 경관에 대한 포괄적인 계획을 갖고 강력하게 주도해야 가능한 일이다. 강 주변에 문화지역에 버금갈 정도로 수준 높은 주거지역을 형성한 영국의 도크랜드나 주거와 상업 및 문화시설을 통합하고 요트와 크루즈선을 개발해 국제적인 명소로 떠오른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 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한강의 물길을 도시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민할 부분이다. 물을 도시 안쪽으로 끌어들이면 주거는 물론 상업 문화 레저 등의 다양한 기능을 복합적으로 접목할 수 있다. 닫혀 있던 강을 생활에 직접 도움이 되는 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외국과 같은 수상교통 기능 도입이 보다 현실화할 수 있다. 현재 한강 수상택시의 이용률이 저조한 이유도 결국은 접근성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작은 물길을 내륙으로 돌리면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에도 마곡, 용산, 여의도 등 워터프런트 개발 계획이 있지만 물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에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동안 몇 번 한강 개발이 시행됐지만 치수(治水)와 교통망 확충에 역점을 두었을 뿐 한강을 시민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의미가 크고, 또 그만큼 어려운 과제다. 이 작업이 단순한 조경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더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20년짜리 단기 계획과 더불어 50년, 100년짜리 장기 계획도 필요하다.

    어쩌면 진정으로 한강을 회복하는 길은 이러한 밑그림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50년 후엔 한강 주변이 어떻게 바뀌고 그로 인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프로젝트의 종착점에 대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공유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강물을 캔버스 삼아 펼쳐지는영상쇼

    이상봉 | 패션디자이너

    가끔 산책이나 운동을 하기 위해 한강에 나가 보면 수영장, 산책로, 자전거도로 등 이런저런 시설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괜찮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연장이나 인상적인 건축물은 없는 것 같다. 한강 하면 몇 개의 다리 이름만 떠오를 뿐, 이거다 싶은 상징적인 공간이나 건축물은 떠오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에 비해 유럽의 도시를 관통하는 강들은 한강보다 규모는 작지만 강을 둘러싼 건축물과 조명으로 인해 낮은 낮대로, 또 밤은 밤대로 매력적인 강변 풍경을 자랑한다. 파리만 해도 오르세미술관과 루브르박물관이 있고, 바다를 끼고 있는 홍콩과 시드니에도 컨벤션센터와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물과 건축이 빚어낸 풍경이 그 도시의 상징이 된 대표적인 곳들이다.

    반면 우리의 한강은 어떤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혹시 바다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하면서도 아쉽게도 그에 걸맞은 풍경은 부족하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한강은 아직 스케치와 채색이 끝나지 않은 커다란 캔버스인 셈이고 여백이 많기에 수준 높은 작품으로 완성할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그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구상하고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그중에서도 도시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한강에는 서울의 자연과 건축물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눈으로만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공연시설과 컨벤션센터, 공공도서관처럼 시민 누구나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축물이면 더 좋겠다. 한강에 예술의전당 같은 대규모 문화공간이나 국제적인 전시회가 열리는 컨벤션센터가 있다면 서울 시민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도 한결 친숙하게 한강을 찾고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멋진 건축과 한강이라는 자연이 빚어내는 풍경, 그리고 시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라면 서울의 랜드마크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한강에서라면 패션쇼를 열어도 좋겠다. 물 위에 특수한 구조물을 설치해도 좋고 한강 다리를 무대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기존의 쇼 무대와 달리 넓은 스케일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물 위의 패션쇼는 그 자체만으로도 색다른 멋과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강물을 스크린 삼아 화려한 영상쇼를 기획하는 것은 어떨까. 한강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은 불꽃놀이가 서울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강변 영상쇼는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에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어둠이 내린 강물 위에 영상을 투사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이런 이벤트는 색다른 한강 축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강 프로젝트는 소중하게 간직해두었던 옷을 리폼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이에 변화를 주거나 단추 하나 액세서리 하나만 바꿔도 스타일이 살아나는 게 리폼한 옷의 매력인 것처럼, 시대의 정신과 풍경을 간직하면서도 남다른 가치를 불어넣은 한강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나 홀로 꿈꿔보는 수중생태공원

    강주배 | 만화가

    한강을 개발한다고 하니 수준 높은 문화공간 창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그런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얼마 전 사단법인 한국잠수협회 주관으로 수중 퇴적물을 탐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화공간 못지않게 한강의 수중 자연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사 과정에 찍은 사진 속의 한강은 겔처럼 돌에 착 달라붙은 미생물과 출처를 알 수 없는 각종 생활쓰레기로 가득했다.

    너도나도 강 밖의 풍경에만 관심을 두는 동안 한강의 수중 생태에는 소홀했던 결과다. 우리는 그간 한강에서 회복해야 할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수중의 자연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일본 도쿄에서 보았던 작은 강은 정말 맑았다. 규모 면에서야 한강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자그마했지만 동화 속에 나오는 개울처럼 맑고 깨끗했다. 한강도 그렇게 깨끗해질 수는 없을까.

    자연과 물과 사람의 훼손된 관계를 되찾자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의미를 물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되면 바다를 누비듯 한강 물속을 누비며 스쿠버다이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에 빠져본다. 해저 계곡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물고기와 수중 생물의 환상적인 모습에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한강의 아름다운 수중생태를 감상하는 사람들이나 오염된 수중 사진 대신 도심에서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서울 시민의 모습을 보고 싶다.

    물론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당장 광활한 물속에 잠긴 그 많은 쓰레기를 제거하고 수질부터 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서 스킨스쿠버 다이버가 즐겁게 활보하는 깨끗한 강이 될 수만 있다면….

    한강에 내가 원하는 공간 하나를 만들라면 나는 주저없이 수중생태공원을 택하겠다. 화창한 주말 오후, 스킨스쿠버 복장을 한 시민들은 물속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고, 외국 관광객들은 그런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고래와 상어까지는 불가능하겠지만, 이름 모를 물고기들로 가득한 대한민국 서울의 한강 수중생태공원이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하다.

    그런 미래의 한강을 만화로 그려도 흥미로울 것 같다. 문득 떠오르는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환경문제가 날로 심각해져 결국 지구의 물이 모두 오염되고, 전세계 물고기들이 지구에서 물이 가장 깨끗한 한강으로 몰려든다. 이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는 비상이 걸리고,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한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니, 깨끗한 강을 가진 것도 죄란 말인가?’

    내가 꿈꾸는 한강의 미래는 다분히 만화적이고, 또 그만큼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깨끗한 물이 흐르는 한강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또한 한강에서 회복하고 창조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기 때문이다.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아기자기 수상가옥 옹기종기 마을 이루고

    김미화 | 개그우먼

    한강 근처에 살 때는 강에 나가는 것이 생활의 일부였다. 아침 일찍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 한여름에는 돗자리를 들고 나가 열대야를 피하기도 했다. 시골로 이사한 뒤로는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쉽지만, 매일 차를 타고 오가며 한강을 바라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한창 공사 중인 한강을 보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아 내심 기대가 되기도 한다.

    한강은 늘 그 자리에 있어 사람들이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참 대단한 강이다. 다른 나라에 가보면 그 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그 어느 강을 가봐도 그다지 웅장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라인 강만 해도 흙탕물에 불과할 뿐 그 유명한 인어공주 동상도 작고 초라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보면 한강은 분명 그 규모만큼이나 가능성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한강을 바꾼다니 이러저러한 욕심이 꿈틀댄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수상가옥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수상가옥이 유유히 떠 있는 한강, 상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물론 자연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추진할 일이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집과 배가 작은 동네를 이루는 이국적인 풍경을 한강에 옮겨놓으면 여름마다 한강으로 피서를 가는 진풍경도 벌어지지 않을까. 수상가옥을 서울시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의미 있는 관광상품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도시의 강과 달리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한강이기에 생각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인 듯하다.

    운치 있는 강변길을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한강 다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한강에 바로 닿게 하는 것도 좋겠지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과 더불어 걷고 생각하며 강변의 정취를 속속들이 느낄 수 있는 작은 길을 만드는 것이 내게는 더 멋져 보인다. 걸으면서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올레 같은 것을 한강에 적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강을 꼭 첨단시설로만 채울 이유는 없다. 거창한 사업 마인드보다 시민의 입장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소한 아이디어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또 하나의 바람은 나무 그늘이 있는 한강이다. 한강은 커다란 나무가 있어 언제나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는 마당 같았으면 좋겠다. 관심을 갖고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겠지만 한강 둔치에는 큰 나무가 없다. 뙤약볕이 내리쬐면 다리 밑으로 들어가 태양을 피해야만 한다.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큰 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런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강변을 따라 잎이 무성한 나무를 울창하게 심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모인 시민들을 관객으로 모시고 공개 코미디 공연을 하고 싶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웃음은 사라지고 시름만 깊어지는 듯한 요즘이다. 드넓은 한강이 시민들의 호탕한 웃음소리로 쩌렁쩌렁 울리는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유유히 흐르는 강 위에서 연주하는 피아노 소나타

    양방언 | 재일교포 작곡가

    주로 일본에 머물고 있는 나는 서울에 오면 일정이 빠듯해 한가롭게 한강을 거닐 기회가 많지 않다. 그렇지만 몇 년 전 사진촬영을 위해 강가에 나갔을 때의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도심에 이런 자연 환경이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신선한 강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강변에서 산책하고 책을 읽고 땀 흘리며 운동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일상이었다.

    이렇게 넓은 강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일까, 부러웠다. 그 느낌이 꽤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내가 자란 도쿄에도 두세 개의 강이 흐르지만 그처럼 넓은 강은 없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 다시 한강에 갈 기회가 있었다. 디자인서울과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에 관한 광고 촬영을 위해서였다. 넓고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을 무대 삼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었는데, ‘한강이 아닌 줄 알았다’는 멘트와 함께 앞으로 변화할 한강에 대한 기대와 놀라움이 음악과 어우러지는 내용이었다. 비록 연출 상황이긴 했지만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변에서 연주하는 기분은 특별했고 또 즐거웠다. 기분이 몹시 좋아 촬영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휴식시간까지 계속 피아노를 쳤다.

    그러는 동안 내게는 이 강에서 진짜 연주를 하면 좋겠다는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 햇살 좋은 어느 오후, 아름다운 한강에서 시민들과 가까이 호흡하며 야외 공연을 하면 어떨까. 정적이 흐르는 실내 공연과 달리 살아 있는 자연과 함께 빚어내는 선율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변화한 미래의 한강에서는 이런 연주회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가 일상적으로 열리기를 바란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한강을 찾은 사람 누구나 편안하고 자유롭게 즐기는 일상. 그 모습이 서울과 한강의 문화로 깊이 각인되었으면 좋겠다.

    미래의 한강을 내 음악으로 연주하라면, ‘Echoes’와 ‘Tea, Piano & You’로 표현할 수 있겠다. ‘Echoes’가 진화하는 미래의 도시 이미지로 스피디하게 발전하는 서울과 한강의 이미지라면, ‘Tea, Piano & You’는 우아하고 부드럽게 흐르는 감성적인 한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넓은 강폭만큼이나 다양한 감성과 가능성을 품고 흐르는 한강, 그 앞에 서면 누구라도 ‘아, 여기가 서울이구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전문가·문화계 인사 8인이 제안하는 ‘내가 꿈꾸는 한강’
    언제나 찾고 싶은 카페와 맛집이 있는 곳

    박정숙 | 방송인

    수십년 전만 해도 한강은 여름이면 모래밭에서 수영하고 겨울이면 얼음을 채취하는 생활의 공간이었다. 어쩌면 한강 르네상스는 우리가 그리워하는 한강의 기억, 잃어버린 강변의 정취를 요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되살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한강 역시 언제 가더라도 즐길거리가 풍성한 곳이면 좋겠다. 그러자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언제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일상적인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상업시설을 매개로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점에서 부러웠던 곳이 내가 2년간 생활했던 뉴욕의 허드슨 강변이다. 그곳은 강변을 따라 상업공간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강에 접근하기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관광시설이지만 강변의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강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각각의 부두에는 너른 마당 같은 공간이 있어 유명한 전시나 공연이 열린다. 밥 먹으러 강변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전시회를 감상하고 산책을 즐기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또 여름이면 부두에서 춤꾼들의 댄스파티가 한 달 넘게 이어진다. 어떤 부두에서는 플라멩코가 한창이고, 어떤 곳에서는 스포츠 댄스가, 또 다른 곳에서는 살사와 탱고 리듬에 빠진 사람들로 붐빈다. 댄스파티에 온 사람들은 처음 만난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이 부두에서 저 부두로 옮겨 다니며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행사를 찾아 일부러 오는 사람도 있지만 우연히 강변 음식점에 들렀다가 참여하는 사람도 많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한강에도 이런 광경이 자주 펼쳐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사실 한강에서도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열리지만 평소 한강에 갈 기회가 없어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만큼의 상업공간을 제대로 구축한 뒤 그 주변에 문화공간과 프로그램을 접목하는 방법을 긍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산책로와 운동시설만 있는 것보다는 괜찮은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가 함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찾을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그런 점에서 호텔이 하나 있어도 좋겠다. 한강변의 경관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잘 조성된 녹지를 산책할 수 있는 위치에 호텔이 있다면 서울 시민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충분히 어필하는 명소가 될 것이다.

    ‘한강변의 숨은 비경 찾기’ 같은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일반인이나 유명 인사가 매력적인 한강의 구석구석을 직접 찾아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한시적으로 그곳을 가꿀 기회를 준 다음, 정말 괜찮은 곳은 관광 명소로 개발해 홍보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관심 속에 한강이 시민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내일의 한강은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는 강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강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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