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아산시 탕정면 일대에 자리 잡은 삼성디스플레이시티 삼성단지 전경.
“포도밭이 지천이었어요. 길도 좁고 비포장이었고요. 농가도 드문드문해 밤에는 불빛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충남 아산시 탕정(湯井)면. 외지인들이 알아주는 것이라곤 ‘탕정포도’ 밖에 없었던 이 시골마을에 세계 1위의 디스플레이 기업, 삼성디스플레이가 들어오면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39층짜리 고층아파트단지가 들어섰고 충남 유일의 외국어고도 생겼다. 봄이 되면 유럽풍의 쇼핑몰도 문을 연다.
재정자립도 50% 육박
탕정에서 깨끗하게 포장된 왕복 4차로의 ‘삼성로’를 따라가면 140만여 평의 삼성디스플레이 탕정단지 ‘디스플레이시티’가 위용을 드러낸다. 단지 앞 건물 꼭대기에선 수증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 겨울 하늘로 사라진다. LCD 생산라인 내 항온항습을 유지하느라 발생한 수증기다. 여기서 연간 출하하는 물량을 TV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로 환산하면 40인치 TV 패널 6500만 개와 4인치 갤럭시S 패널 2억5000만 개를 합친 양에 달한다. 머지않아 영화에서나 보던 투명 디스플레이나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도 여기서 양산될 것이다.
탕정에서 서쪽으로 20여 km를 달리면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이른다. 아산에 ‘산업시대’를 연 것은 현대차가 삼성디스플레이보다 8,9년 앞선다. 차체공장에선 거인 팔처럼 생긴 로봇이 척척 철판을 자르고 차체를 조립한다. 생산공정이 90%가량 자동화된 덕분에 63초에 한 대꼴로 차가 완성된다. 70%는 내수용이고 나머지는 전 세계로 수출된다. 프레스공장, 차체공장, 도장공장을 거쳐 의장(艤裝)공장에 이르러 마지막 검수를 기다리는 신차마다 ‘국내’ ‘미국’ 등 최종 목적지를 표시한 딱지가 붙어 있다.
삼성은 경기 기흥에서 휴대전화용 소형 패널 생산을 시작으로 디스플레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천안에는 모니터용 패널 생산라인을 갖췄고, 이후 LCD 수요가 폭증하자 탕정 일대에 디스플레이 전용 산업단지를 개발했다. 탕정단지는 1단지(74만여 평)와 2단지(64만여 평)로 나뉘는데, 현재 조성이 완료된 1단지에 투자한 금액만 30조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삼성은 추후 디스플레이 시장 상황을 고려해 이미 부지를 확보한 2단지에 생산라인을 추가 증설할 계획이다. 천안아산복합단지장 안재근 전무는 “탕정 지역은 대규모 사업장 입지가 가능하면서도 KTX 천안아산역과 경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인접해 교통 편의성 면에서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 LCD사업부로 있다가 2012년 4월 독립법인이 됐다. 이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주)와 삼성과 소니가 합작한 SLCD(주)를 인수했다. 연간 매출액은 30조 원에 육박하고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점유율은 26%로 독보적이다.
현대차는 1996년 울산, 전주에 이어 아산공장을 준공했다. 수출용 차량 생산에 집중한다는 전략하에 평택항과 15분 거리인 아산시 인주면에 터를 잡고 8500억 원을 투자했다. 연간 중·대형 승용차 30만 대와 55만 대의 완성 엔진이 아산공장에서 생산된다. 아산의 생산능력은 울산공장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쏘나타와 그랜저의 국내 생산을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성은 가장 높다고 한다. 이성규 아산총무팀 과장은 “2011년에는 15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대대적으로 설비를 교체하고 품질 차량을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구 10만 명 이상 증가
현충사가 수학여행 코스로 각광을 받고, 마이카 붐을 타고 온양온천이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누린 건 1980년대 얘기다. 1990년대 들어 온양의 관광산업이 쇠퇴하면서 과거 16만~17만 명이었던 아산 인구는 1990년대 중반 15만 명대로 주저앉았다(온양 포함 인구. 아산군 온양읍은 1986년 온양시로 승격 분리됐다가 1995년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돼 아산시가 되었다).
그러나 아산은 삼성과 현대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온천 고장’에서 기업도시로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대규모로 조성되기 시작한 삼성디스플레이 탕정단지의 힘이 컸다. 아산 인구는 2002년 18만8000명에서 현재 29만1000여 명(2012년 11월 말 기준)으로 10년 새 10만 명 이상 증가했다. 2010년과 2011년에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수출 1위, 무역수지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