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등 부실기업 처리에 대한 제도를 대대적으로 변화시켰다. 또 기업들도 선제적 회생에 대한 자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기업이 위기를 적시에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회생 계획을 실행하는 능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따라서 ‘좀비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좀비기업이란 이미 위기 단계에 들어섰으나 기업 여신이나 정부의 경기 부양책 등으로 일시적인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다시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들어간 기업을 가리킨다. 이러한 기업들은 국가에 사회 · 경제적 측면에서 많은 부담을 지울 수 있다.
또 하나 주의 깊게 봐야 할 분석 결과는, 부실 징후가 전 산업 분야로 넓게 확산됐다는 점이다( 참조). 2012년, 2013년에는 부실기업이 건설, 해운, 증권회사 등 몇 개 산업 분야에 집중됐다. 그러나 2014년 지표를 보면 부실기업은 전 산업 분야에 고루 분포했다. 특히 자동차(4%→8%)와 정유(8%→10%) 등 한국 경제의 대표 업종에서 전년 대비 부실화 비율이 상승했다.


이처럼 부실화가 만성적으로, 그리고 전 산업군에 걸쳐 나타나는 것은 산업 전반에 걸쳐 성장 동력이 노후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투자자본 회수율이 저하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간 생산기술 우위 및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에 기반을 둔 제품 혁신 등 코스트 경쟁력을 증대함으로써 경제가 성장해왔는데, 고비용 구조가 자리잡고 중국 기업들의 성장 등으로 코스트 경쟁력이 약화된 것이다. 이러한 요인 이외에도 기업의 경영 능력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인을 더 찾을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지금까지 고비용 저성장 환경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우리 기업들은 늘 지속적인 고성장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심지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도 정부 주도로 빠르게 극복했다. 이후 중국의 부상(浮上)에 힘입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었고, 이런 불황이 장기화한 끝에 지금은 아예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
위기에 처한 많은 기업의 리더는 고성장 시장 환경에서 ‘더하기 경영’을 기반으로 성장한 이들이 대부분이어서 고비용 저성장 환경에서의 경영에 익숙하지 않다.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기업의 ‘C레벨’ 리더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들은 과거와 너무나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기업들은 고성장 시절에 신화적 성과를 낸 ‘영웅’들에게 지휘권을 부여하며 저성장 · 저효율 환경인 현재에도 과거와 같은 성과를 거둬들이라고 주문한다.
지금은 기업의 위기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저성장 환경에 맞는 회생 비전과 성장 전략, 적정 규모화(Right Sizing)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 등을 추구할 수 있는, ‘빼기 경영’을 잘 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따라서 CRO(Chief Restructuring Officer · 최고구조조정책임자)의 역할을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CRO가 CFO(최고재무책임자), COO(최고운영책임자)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저성장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총체적인 전략을 세워야만 하는 시점인 것이다.
둘째, ‘냉정한 현실판단’의 부재다. 이는 앞서 언급한 리더십과도 연관되는데, 현재의 경영성과와 데이터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되 새로운 시각으로 자원과 채널에 접근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의 회생 계획을 보면, 시장 및 자사 경쟁력 상승에 대해 천편일률적으로 낙관적 전망을 하며 기존 자산에 대한 투자액을 늘리거나 생산설비를 현대화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단기적 효과는 볼 수 있지만, 절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시장 규모의 축소가 불가피한 산업군이 너무나 많다. 더욱이 산업의 생태 자체가 완전히 변해 멀지 않은 미래에 일대 변혁이 일어날 산업군도 있다. 단순히 근무량을 늘리고 “과거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자”고 외치는 것은 대부분 무용지물이다. 시장이 줄고 회사 매출이 감소하면 사실 할 일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