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호

자원 패러다임 변화 읽고 ‘다음 사이클’ 준비해야

저가 수주전, 셰일 후폭풍에 휘청

  • 이상화 |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 정동익 | 현대증권 조선·기계 담당 애널리스트

    입력2015-09-18 1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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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업은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독보적 1위 산업이었다. 세계적 기업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2000년 말 현대미포조선 주식 1억 원어치를 샀다면 2007년 11월엔 100억 원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한국 조선사들의 2015년 8월 말 주가는 2007년 고점 대비 7분의 1토막이 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 조선업의 자부심은 회복할 수 없는 것일까.
    자원 패러다임 변화 읽고 ‘다음 사이클’ 준비해야

    대우조선해양이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파즈플로호가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에서 건조를 마치고 안벽으로 이동하는 모습.



    2008년 세계 신(新)조선 발주는 9447만CGT(선박 무게(GT)에 부가가치, 작업난이도 등을 고려한 계수를 곱해 산출한 단위)로 2001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그 기간 현대중공업 주가는 약 30배,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각각 13배, 21배 올랐고, 현대미포조선 주가는 무려 90배 이상 뛰었다. 전 세계 선박 발주의 35%를 한국 조선사들이 수주하면서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전설을 일궈냈다.

    조선업은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독보적 1위 산업이었고, 우리 조선사들은 세계 주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2000년 말 현대미포조선 주식 1억 원어치를 매수했다면, 2007년 11월에는 그 평가액이 100억 원에 달했을, 한국 조선업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최근 조선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주요 조선사들이 수조 원에 달하는 손실을 발표하면서 주가는 급락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이자 자부심이던 조선 분야에서 발생한 ‘사태’인 만큼 그 충격은 주가와 재무제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주요 조선사들의 2015년 8월 말 주가는 2007년 고점 대비 평균 7분의 1토막이 났다.

    한국 조선업이 호황을 누린 것은 내부적으로는 기술 축적이 잘돼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2000년 이후 ‘중국 부상→세계 물동량 급증→선박 부족→신조선 발주 급증’이라는 초호황 사이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호황 사이클 속에서 우리 조선사들은 과잉 설비투자와 저가 수주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었다. 선박 과잉공급에 따라 발주는 급감했다.



    짧은 납기, 유연한 설계

    여기에다 셰일(shale)오일·가스 개발로 저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해양설비투자 역시 급감하는 새로운 환경이 출현했다. 셰일오일과 가스는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암층인 셰일층에 존재하는데, 고압의 물을 분사해 바위를 깨뜨려 부수는 수압파쇄법, 셰일층에 있는 가스와 원유를 수평시추법으로 끄집어내는 채굴공법이 2010년을 전후해 미국에서 일반화했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예부터 바닷길을 통해 중국, 일본과 왕래했고, 한때는 해상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해상무역이 활발했다. 그만큼 조선산업도 활발했다. 조선시대에는 거북선과 판옥선이라는 독창적인 조선기술을 자랑했지만, 근대화 대열에서 뒤처지면서 한동안 조선산업은 잊힌 듯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삼성중공업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빅3’ 체제가 본격 가동됐다.

    1980~1990년대에 고속성장을 거듭한 한국 조선업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조선 수주량 1위의 조선 강국에 등극했다. 2001, 2002년에 일본에 1위를 내주기도 했지만, 2003년 이후 장기간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수주 잔량(선박 건조계약을 체결하고 아직 선주에게 인도하지 않은 물량)과 인도량은 각각 2001년과 2003년에 일본을 앞섰고, 2003년 이후에는 조선업의 3대 지표인 수주·건조·수주잔량에서 모두 일본을 넘어섰다.

    한국 조선산업의 이러한 성공은 우리의 노력과 일본의 정책적 실패가 맞물린 결과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일본은 1980년대 조선 및 해운시장에서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설비 및 인력 감축, 조선소 간 통폐합 등 고강도 구조조정과 함께 설계 표준화를 통한 원가 경쟁력 강화를 꾀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선박 수요는 급증했고, 선주들의 요구는 점점 다양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도크를 활용한 짧은 납기와 가격경쟁력, 선주들의 요구를 반영한 유연한 설계 능력 등은 한국 조선산업이 세계 1위의 입지를 굳히는 원동력이 됐다. 한국 조선산업의 신규 수주량은 1996년 330만CGT에서 2007년 3256만CGT로 약 10배 급증했는데, 이 기간 일본은 673만CGT에서 1359만CGT로 약 2배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19.6%에서 34.5%로 급등했지만, 일본은 40.0%에서 14.4%로 하락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가격경쟁력과 정부의 금융 지원을 무기로 한 중국의 공세가 거세졌고, 급기야 2007년엔 신규 수주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주게 된다. 2011년과 올해 상반기에는 다시 1위를 되찾기도 하는 등 상선(일반 선박) 부문에서는 한국과 중국 양강 구도가 안착되고 있다.

    한국 조선산업의 첫 번째 위기는 2008년 리먼 사태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됐다. 2009년 한 해 동안 698만CGT의 선박 발주가 취소됐고, 이후 2013년까지 5년간 누적 취소 규모는 4152만CGT에 이르렀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발주량의 21.4%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는 별도로, 추정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수많은 선박의 인도 기일이 수개월에서 수년씩 연기됐다. 역설적으로 상선 부문에서의 이러한 위기는 해양 부문이 급속하게 성장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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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 상승에 해양 부문 급성장

    해양 부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시추설비와 생산설비가 그것이다. 시추설비는 해양유전 개발을 위해 심해지층에 구멍을 뚫는 선박으로 드릴십(Drillship), 반잠수식 시추설비(Semi-Rig) 등을 일컫는다. 생산설비는 시추설비가 뚫은 해양유전에 파이프를 연결해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해내는 해양플랜트를 의미한다. 해양생산설비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바다 아래 지층에 고정한 형태의 고정식 플랫폼, 바다 위에 선박처럼 떠 있는 부유식 생산설비다.

    한국 조선업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2006~2008년 심해 시추설비 발주가 늘어나면서 수혜자가 됐다. 2005년 12척 수준이던 심해 시추설비 발주량은 2006~2008년 연평균 28척으로 증가했고, 이들 대부분을 한국 조선소들이 수주했다. 이 시기에 수주한 시추설비는 척당 수주 단가가 6억 달러(약 6000억~7000억 원) 안팎이고, 평균 영업이익률도 7~8%(프로젝트에 따라서는 10%를 넘기도 했다)에 달해 ‘해양플랜트=고부가가치’라는 공식이 정립됐다.

    2010년부터는 해양생산설비 발주가 급증했다. 2007~2009년 한국 빅3 조선사의 해양생산설비 수주액은 연간 40억 달러 안팎에 머물렀지만, 2010년에는 80억 달러, 2011년 100억 달러, 2012년 120억 달러로 증가했다. 2011~2012년에는 심해 시추설비 발주도 2차 붐을 맞으면서 빅3 조선사의 해양 부문(시추설비+생산설비) 수주는 정점에 달했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해양플랜트 시장, 특히 심해 시추설비와 대형 생산설비 시장은 한국 빅3가 과점하고 있는데 왜 한국 조선산업이 위기를 맞았을까. 이들 기업이 독과점 아이템에서 수조 원씩의 적자를 발생시키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2013년 4분기~2015년 2분기까지 빅3 조선사의 누적 영업적자(K-IFRS 연결) 규모는 현대중공업 3조7000억 원, 삼성중공업 1조4000억 원, 대우조선해양 2조5000억 원 등 총 7조6000억 원에 달한다. 최근 문제가 되는 해양 프로젝트는 대부분 2009~2013년에 수주한 물량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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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사슬의 최정점 ‘셰일’

    2000년대 중후반 중국이 촉발한 소재·산업재의 슈퍼 사이클을 염두에 두고 우리 조선사들은 설비를 크게 늘렸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선 시장은 얼어붙었고, 이에 따라 빅3는 ‘해양플랜트 강화’라는 동일한 처방을 내놓게 된다. 처음엔 현대중공업이 생산설비, 삼성중공업은 드릴십, 대우조선해양은 반잠수식 시추설비에 강점이 있다는 ‘공식’이 어느 정도 통했다.

    하지만 각사의 해양플랜트 설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2010년 무렵부터는 치열한 수주전이 펼쳐졌다. 그 결과 저가 수주 경쟁이 발생했고, 계약조건도 발주 국가에 유리한 로컬 콘텐츠(local contents·발주국가에서 제조된 부품을 일정 비율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 비율을 받아들이면서 수익성이 악화되는 계기가 됐다.

    치열한 수주전과 함께 미국의 셰일 개발은 한국 조선업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값싼 원재료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제조업 부흥은 자국 내 육상 물동량을 증대시키고, 해상운송을 통한 수입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만들었다. 또한 셰일오일의 채굴량 증가로 세계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하락했고, 채산성이 확보되지 않은 심해유전 개발은 감소했다. 셰일 개발은 시추선과 생산설비 발주가 줄어드는 직접적 원인이 됐으며, 따라서 해양선박 건조설비를 확대한 국내 빅3 조선사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미국은 셰일 개발로 배럴당 50달러 이하의 원유를 생산하게 됐고, 천연가스는 한국, 일본의 5분의 1 가격에 사용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미국은 값싼 에너지를 기반으로 제조업이 부흥하는 제조업 르네상스(American Manufacturing Renaissance)를 맞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제조업 유치(reshoring)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1950년 이후 처음으로 화학제품 순수출국이 됐으며, 한국, 일본, 인도, 영국 등에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국가로 변모했다. 과거 수입에 의존하던 공산품의 상당부분을 제조업 부흥에 힙입어 자체 생산,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가고 있고, 그만큼 해상수입이 줄어 결국 해상물동량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 세계 상선 발주가 감소한 원인은 다양하지만, 가치사슬(value chain·기업활동에서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과정)의 최정점에 미국의 셰일 개발이 자리한다는 사실이 주요한 원인으로 해석된다. 또한 배럴당 50달러 이하에서 개발되는 미국의 셰일오일(타이트오일)의 생산 증가로 저유가 시대가 도래했고, 손익분기점(BEP)이 배럴당 70달러 전후로 추정되는 해양자원개발 투자는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950만 배럴에 육박해 세계 1위 생산국 사우디아라비아의 1000만 배럴에 근접했다. 에너지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저유가가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조선업을 비롯한 제조업이 충격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했다.

    자원 패러다임 변화 읽고 ‘다음 사이클’ 준비해야


    자원 패러다임 변화 읽고 ‘다음 사이클’ 준비해야

    헬기에서 촬영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해양건조구역. 가운데 보이는 4개의 기둥은 장력 고정식 플랫폼의 하부 구조물로 수주액은 약 2억 달러(약 2140억 원)에 달한다.

    치요다, JGC의 경우

    한국 조선업체의 증설과 공격적 수주를 부정적 측면으로만 볼 수는 없다. 어떤 사업 분야든 초기 진입 단계에선 일정 부분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육상의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해양자원이 중요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한 상황에서 ‘수업료’를 지불한다는 자세로 수주에 임하는 것이 잘못된 경영 판단이었는지는 다각도로 따져봐야 한다. 셰일 개발로 유가가 50% 이상 하락하고, 해양투자의 채산성이 악화되리라는 것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았다.

    세계 에너지산업의 흐름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해 경영진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장 참여자 대다수가 유가 하락을 예측하고 인정했다면, 2014년 하반기에도 북해 브렌트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에서 거래됐겠는가. 세계 원유 수급을 좌우하는 오일 메이저사들도 불과 1년 전에는 100달러 유가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분간 선박 과잉 문제와 저유가 상황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조선, 벌크선 등 범용 선박에서의 경쟁력 상실은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또한 중국 경제의 하향 추세와 원재료 수입 감소는 철광석, 석탄, 구리 등 상품가격 하락을 초래한 마당이고, 셰일 개발과 이란 핵협상 타결로 유가의 반등 가능성은 낮아졌다.

    현재로서는 외부 환경의 급격한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 상황이 상승, 하락을 반복하는 산업 사이클의 문제라면, 버티고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셰일오일·가스라는 새로운 자원 개발로 세계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맞은 상황이기 때문에, 기다림보다는 적극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현재 한국 조선업이 풀어야 할 숙제는 과잉설비를 해소하고, 기술 축적을 통해 다음 사이클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잉설비를 해소하려면 업계의 노력과 정부의 방향성 설정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외부 환경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조선업은 고용창출 효과가 큰 산업이므로 국가 차원의 대승적 접근이 필요하다.

    일본은 수십 년에 걸친 구조조정을 통해 ‘치요다’와 ‘JGC’라는 플랜트 엔지니어링 부문 굴지의 기업을 키워냈다. 이 회사들도 최근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액화천연가스(LNG) 플랜트 기술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정부는 수십 년 동안 LNG 관련 플랜트 공정에 치요다, JGC를 전략적으로 투입했다.

    LNG 1위 수입국 지위를 이용해 발주자를 설득한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과 업계 경쟁업체들의 대승적 접근과 이해, 양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과정이었다. 우리나라도 LNG 수입대국에 속하지만, 이러한 전략적 접근은 미미했다. 일본 정부와 업계가 던진 메시지를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상화 |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 sanghwa.lee@hdsrc.com

    정동익 | 현대증권 조선·기계 담당 애널리스트 newday@hdsr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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