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반도체界 ‘오월동주’… 삼성에 손 내민 인텔 수장 팻 겔싱어

[Who’s who] 이재용 부회장을 왜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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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2-05-31 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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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팻 겔싱어 인텔 CEO. [인텔]

    팻 겔싱어 인텔 CEO. [인텔]

    “비즈니스의 세계에 무조건적인 적(敵)과 친구는 없다. 오히려 적이면서 친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저히 이해득실에 따라 관계가 규정된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사이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접점이 많기에 협력해야 할 부분도 클 수밖에 없다.”

    30일 팻 겔싱어(61) 인텔 최고경영자(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동을 바라본 한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겔싱어 CEO와 이 부회장은 이날 양사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차세대 메모리,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등 다양한 부문에 대해 양사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인텔과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업체(IDM) 1‧2위를 다투는 숙적(宿敵)으로 5년 전부터 ‘고지전’을 벌이고 있다. 인텔이 1992년부터 2016년까지 25년간 1위로 군림했으나 2017년 처음으로 삼성전자가 1위에 올랐다. 2019년 인텔이 다시 1위를 차지했다가 지난해 다시 삼성전자가 1위에 올라섰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는 반도체에서 731억9700만 달러(약 90조6250억 원), 인텔은 725억3600만 달러(약 89조807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해 ‘백중세’를 보였다.

    인텔을 살릴 구원투수

    삼성전자에게 1위 자리를 내준 때부터인 근 몇 년 간 인텔은 위기설에 휩싸여왔다. 시가총액은 엔비디아에 추월당했고 AMD에 시장 점유율을 40% 이상 내줬다. 애플이 인텔 제품 대신 자체 개발 칩을 맥북‧맥미니에 탑재하기로 결정하면서 미래 수익에 적신호가 켜졌다. 기술 부문에서도 10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공정 전환에 실패해 2018년 파운드리(반도체 제조만 전담하는 생산 전문 기업) 시장에서 철수하는 등 TSMC 등 경쟁자에 뒤쳐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전 CEO가 과거 부하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이 밝혀져 2018년 7월 사임하는 내홍도 벌어졌다. 뒤를 이은 로버트 스완 CEO는 계속되는 인텔의 부진에 문책성 경질을 당했다.

    이러한 상황에 인텔이 택한 ‘구원투수’가 겔싱어다. 지난해 2월 인텔 CEO로 임명된 겔싱어는 1979년 18세 때 엔지니어로 인텔에 입사했다. 30여 년간 근무해 최고기술책임자(CTO) 자리까지 올라 수석 부사장 겸 디지털엔터프라이즈 그룹 총괄을 역임했다. 인텔 코어와 제온 프로세서 개발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2009년 인텔을 떠나 EMC COO를 거쳐 VM웨어 CEO를 거친 후 친정에 돌아왔다. 당시 겔싱어는 인텔 홈페이지에 “디지털화가 빨라지는 중대한 시기에 CEO로 집에 돌아온 것은 최고의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겔싱어의 목표는 인텔을 다시 반도체업계 제왕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 지난해 7월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위한 로드맵을 공개하며 “2025년까지 업계 선두자리를 되찾겠다”며 “2022년 7나노미터 반도체 ‘인텔4’를 선보인 뒤 2025년엔 1.8나노미터 반도체 ‘인텔 18A’를 생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분야는 파운드리 사업. 이에 대한 공격적 투자가 두드러진다. CEO직 수락 조건으로 파운드리 사업 투자를 내걸었을 정도다. 지난해 3월 애리조나 주에 200억 달러(약 24조7720억 원)를 투자해 신규 반도체 공장 2곳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9월엔 유럽에 최대 950억 달러(약 117조 5245억 원)를 투자해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겠다고 밝혔다. 올해 1월에도 미국 오하이오 주에 최대 1000억 달러(약 123조7200억 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만 파운드리는 설비 증설과 기술력 및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데 수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공백을 메우려면 업계 선발주자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올해 4월 겔싱어가 대만을 방문해 TSMC 경영진과 협업을 논의한 데 이어 30일 이 부회장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숙적 관계지만 인텔로선 삼성전자에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원래 반도체 사업은 한 회사가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삼성전자 또한 인텔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분간 삼성과 인텔의 관계는 서로 최대의 적이자 친구가 되리라 본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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