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이 말했다… People's House
‘국민의집’ 되면 자칫 마이너스 효과
어디까지나 정파성 강한 용어
구중궁궐 떠난 점은 감격스럽지만…
시범 개방 첫날인 6월 10일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을 찾은 시민들과 취재진이 대통령실 청사 앞 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4월 15일부터 한 달간 대국민 공모로 접수한 약 3만 건의 응모작에 대해 심도 깊은 심사를 진행해 위원회 만장일치로 5건의 후보작을 선정했다.”
해당 발표를 한 주체는 대통령실새이름위원회. 청와대를 나와 용산으로 이전한 대통령실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 민간 전문가, 국민대표 등 13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국민의집’ ‘국민청사’ ‘민음청사’ ‘바른누리’ ‘이태원로22’. 대통령실새이름위원회가 선정한 총 다섯 개의 새 이름 후보다. 위원회는 이 선택지를 대상으로 6월 9일까지 온라인으로 국민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와 위원회의 자체 최종 심사를 종합해 6월 중으로 대통령실의 새로운 이름을 발표할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 다섯 개의 선택지 중 무엇을 선호하시는가. 무엇이 선택될 것이라 보시는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필자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국민의집’이다.
의견 유보 응답자 비율 27%가 말하는 것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한 달을 맞은 6월 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러거나 말거나 대통령실의 새 이름은 ‘국민의집’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예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VIP’의 의중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4월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이뤄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를 복기해보자.
기사의 말미에서 기자는 ‘윤석열은 대통령 집무실을 산등성이의 청와대가 아닌 도심 속으로 옮기려고 한다’며 ‘그는 새로운 대통령실의 명칭에 대해 국민들의 의견을 모을 생각이다’라고 적었다. 그 인터뷰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인터뷰 도중 윤석열은 그가 붙인 이름을 꺼냈다: ‘국민의 집’(People's House).”
국민들이 참여한 인터넷 여론조사가 있으니, 대통령실새이름위원회가 대통령의 의중을 어겨가며 다른 선택지를 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공공기관이건 어디건 ‘명칭 공모전’은 요식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몇 개의 선택지 중 주최 측이 원하는 정답은 언제나 1번으로 제시된다. 혹은 주관식일 경우 가칭이 곧 공식 명칭으로 정해진다. 너무도 여러 차례 반복돼온 일이다.
2017년 충청남도는 태안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와 자원봉사자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을 짓고 이름을 공모했다. ‘유류피해 극복기념관’이라는 가칭이 붙어 있던 그 시설의 이름은, 공모전 끝에 ‘유류피해 극복기념관’으로 결정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공항 주변을 순환 운행하는 자기부상철도를 만들고 이름을 공모했다. 당선작은?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였다. 누리꾼들의 비난과 빈축이 쏟아졌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는 미군 기지를 반환해 만들어질 거대한 도심 속 공원의 명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용산기지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공원의 이름도 공모전에 부쳐졌다. 그리고 최종 결과는? ‘용산공원’이다. 가장 직관적이고 널리 알려진 가칭이 그대로 공식 명칭으로 낙착되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는 공공기관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신생 정당의 명칭을 붙일 때도 마찬가지다. 2002년 유시민·김원웅 등이 ‘개혁적 국민정당’을 창당하겠다고 할 때, 수많은 명칭이 제안됐지만 결국은 ‘개혁국민정당’이 된 것도 그 패턴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인터넷 설문과 여론조사 등은 그저 참고자료에 불과할 뿐이다. 이번 대통령실 새 이름 선정도 마찬가지다. 최종 당선작은 5건의 후보작에 대한 국민 선호도 조사 결과와 심사위원의 배점을 각각 70대 30의 비율로 합산해 선정하기로 돼 있다. 여러 공모전에서 수없이 반복돼온 ‘파맛 첵스 사건’의 그림자가 새 대통령실에 어른거리고 있다.
어떤 상상의 나래
청와대 본관 내부와 대통령 관저 건물이 개방된 5월 26일 시민들이 청와대를 둘러보고 있다. [뉴스1]
하지만 대통령실 이름을, 그것도 굳이 ‘국민의집’이라고 붙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긍정적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는 실책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싶다. 국민통합은커녕 정치적 갈등과 국민 분열을 불러일으키며, 외국으로부터도 조용히 빈축을 살 일이다.
‘국민의집’은 정말이지 황당한 이름이다. 집권 여당의 이름이 ‘국민의힘’인 상황에서 대통령 집무실에 ‘국민의집’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그 어떤 ‘꿈보다 해몽’을 가져다 붙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윤석열은 20대 대선에서 승리했고 뒤이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대승했으나,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야당을 지지하는 수많은 국민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입장을 바꿔놓고 이해하기 위해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2017년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공약으로 밝힌 ‘광화문 시대’가 여의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실을 옮겼다. 순조롭게 이사가 마무리된 후 대통령의 새로운 집무 공간이 되는 건물에 붙일 이름을 공모한다. 그런데 대통령 본인이 어떤 이름을 언론 인터뷰에서 슬쩍 흘리더니,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첫 번째 선택지로 이런 이름이 떡하니 등장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국민과 함께, 우리 민족과 함께. 더불어하우스.’ 황당한 마음에 다른 선택지를 보니 이런 것도 있다. ‘있을 재在, 사람 인人, 사람이 있는 곳. 재인관.’ 그렇게 다섯 개 정도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끄트머리에는 그나마 중립적이고 마치 영국 다우닝가 10번지를 연상케 하는 ‘이태원로22’가 알리바이처럼 적혀 있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 눈으로 이 이름들을 보면 어떨까. 너무도 현 정권을 심판하고 싶은 나머지 다음 선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대통령 집무실을 옮긴 것도 당혹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판에, 그 이름을 이토록 여당 중심으로 붙인다는 건, 야당 지지자 혹은 무당층의 눈으로 볼 때 도저히 용납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이정도 역지사지조차 안 해봤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국민 전체 대표자
대한민국은 대통령제 국가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무소속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는 특정 정당 내에서 경선을 통해 선출된 대선후보가 선거를 통해 당선돼 뽑히는 자리다. 즉 대통령은 정파성을 지니는 정치인이다. 동시에 대통령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최대한 정치색을 배제하고 중립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 뿐 아니라, 뽑지 않았고 심지어는 반대하는 사람들마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포용하고 인도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는 것이 대통령이다.대통령실에 ‘국민의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부적절한 또 하나의 이유다. 대통령의 주거 및 집무 공간에 특정 정파성이 도드라지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대통령 스스로의 명예도 깎아먹는 일이다. 대통령을 ‘국민 전체의 대표자’가 아닌 ‘특정 정당과 지지자들의 대표자’로 강등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정치적 입지를 한껏 끌어올려줬던 바로 그 명연설의 문구를 떠올려 보자.
“흑인의 미국도 아니요, 백인의 미국도 아니요, 라틴계의 미국도 아니요, 아시아계의 미국도 아닙니다. 이 나라는 미합중국입니다.”
대통령실에 '국민의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그런 식이라면 보수 정당 지지자들의 대한민국만 남을 뿐 민주당 혹은 더 왼쪽 정당 지지자들을 위한 대한민국은 사라지고 만다. 물론 보수 우파의 지지층은 ‘저 놈들은 우리 국민이 아니야’라는 식으로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인식에 힘을 실어주는 결정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의집’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옹호하는 이들은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 집’이란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이 1928년 총선을 앞두고 내걸었던 구호인 ‘folkhemmet’를 빌려온 것인데, 그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folkhemmet’는 ‘국민의 가정’ ‘국민의 집’ 등을 뜻하는 말로 본디 우파의 세계관이 담긴 표현이었다. 지금도 스웨덴 복지국가를 상징하는 표현이며 따라서 대통령 집무실에 ‘국민의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는 대통합의 의미를 지닌다.”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설령 ‘국민의집’에 그런 맥락이 있다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 이야기다. 한국어로 ‘국민의집’은 당연히 ‘국민의힘’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정파성 강한 용어다. 게다가 좀 더 본질적 문제도 있다. 한국인들은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건설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전형적인 ‘고부담 고복지’ 국가로, 사회 안전망이 튼튼한 대신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특히 사회적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사실상 박탈된 나라다. 반면 한국인들은 정부 수립 이후 70년 넘게 ‘저부담 저복지’ 상태에서, 개인의 노력을 통한 사회적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소외 계층에 대한 복지 측면에서 한국이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예산을 쓰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복지국가와 계급사회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역동성을 잃은 나라, 가재 게 붕어에게 따뜻한 개천을 만들어주면 된다는, 복지국가의 탈을 쓴 계급사회가 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필자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한 표를 준 사람들 중에도 동의하지 못할 사람들이 상당할 듯하다. 스웨덴 사민당의 선거 구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이름으로 쓰이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 가능하지 않다.
尹의 ‘뚝심’과 주변인들의 ‘충심’
이 글의 논의는 세 가지 가정에 기대고 있다. 첫째, 대통령실의 새 이름 짓기 사업은 끝까지 추진될 것이다. 둘째, 그렇게 뽑힌 새 이름은 ‘국민의집’이 될 것이다. 셋째, 대통령실에 ‘국민의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단기적으로건 장기적으로건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이 세 가정이 모두 틀리기를 바란다. 기왕 틀릴 거라면 첫 번째 가정부터 오류로 밝혀지기를, 즉 대통령실에 새 이름을 붙이는 사업이 아예 취소되기를 희망한다. 물론 지금까지 이야기했듯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윤석열의 ‘뚝심’과 주변인들의 ‘충심’이 서로를 보완할 테니 말이다.
청와대 개방과 대통령실 이전은 역사적 사건이다. 대통령이 출근하며 매일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나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약속했던 ‘소통’의 횟수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두 달째에 이미 훌쩍 넘겼다. 구중궁궐 청와대에서 벗어나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향하는 모습이 감격스럽다.
하지만 걱정을 거둘 수가 없다. 욕심이 과하기 때문이다. 굳이 대통령실에 작위적 이름을 붙여야 할까. 꼭 작명을 해야 한다면 민주당이 아니라 그 어떤 야권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 지금 떠올릴 수 없다면 차라리 공란으로 남겨두는 편이 낫다. 윤석열 정권이 성공적으로 그 역사적 소임을 다한다면 국민들이 먼저 나서서 아름답고 친숙한 애칭을 선사할 것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