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어디 개그 할 사람인가
시나리오 일거에 엎은 2019년 ‘8·27’
유시민이 남긴 불후의 망언
정청래 독후감의 ‘이재명 영웅화’
‘검수완박 쇼’ 주인공 문재인
“적을 미워 말라, 판단력 흐려진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3월 28일 당선인 신분으로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을 겸한 회동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 비전을 가장 뜨겁게 지지한 이는 전임 대통령 문재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매우 신중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문재인이 대통령 퇴임 후 법적 심판을 받을 수도 있는 일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언행을 보인 걸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서부터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대한 경제성 조작 혐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문재인은 무모하거나 경솔했다.
‘악마’ 필요했던 민주당 ‘20년 집권론’
물론 민주당도 다를 게 없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무슨 법을 만들건 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를 아예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20년, 50년, 100년 집권을 당연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20년, 50년, 100년 집권을 위해선 ‘대중운동’과 더불어 ‘악마’가 필요하다는 점도 간파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운동가 에릭 호퍼의 다음 진술에 깊이 공감하는 동시에 그걸 실천 강령으로 삼은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전파되려면 신에 대한 믿음은 없어도 가능하지만 악마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중운동의 힘은 대개 악마가 얼마나 선명하며 얼마나 만져질 듯 생생하느냐에 비례한다.”
문 정권이 집권 초기부터 맹렬하게 추진한 적폐청산은 문 정권의 정치적 기반을 단단히 굳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보수야당이 사실상 초토화됨으로써 민주당의 장기 집권 가능성을 현실화해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잘 진행되던 이 모든 시나리오를 일거에 뒤집어버린 사건이 터졌으니 그게 바로 2019년 ‘8·27 사태’다. 윤석열 검찰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의 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뜻밖의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윤석열을 어떻게 볼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 후 일부 외신이 표현했듯이, 윤석열은 ‘매버릭(maverick)’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매버릭은 ‘무소속 정치가’나 ‘독불장군’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기존 방식으론 유형 분류가 어려운 사람이라는 걸 시사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너무 단순 무식한 이분법을 택했다. 윤석열을 적으로 간주한 건 물론이고, 최악의 적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지지자들까지 가세한 가운데 ‘악마화’의 대상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들이 민주당의 20년, 50년, 100년 집권의 꿈에 급제동을 건 윤석열을 증오하는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런 ‘윤석열 악마화’의 비용이었다.
문재인이 윤석열에게 검찰총장 임명장을 주면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에 엄정한 법 집행”을 당부한 게 불과 한 달 전이었는데, 그 말대로 한 사람을 가리켜 악마라니, 이게 말이 되나? 수사 방식이 너무 거칠었다는 지적은 백번 옳지만, 그런 거친 방식 덕분에 적폐청산이 ‘성공’을 거두었던 게 아닌가.
이런 질문들을 건너뛴 채 밀어붙인 ‘윤석열 악마화’는 사실상 문 정권과 민주당의 내로남불과 후안무치를 폭로하는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지난 대선 결과는 2년 7개월간 지속된 ‘윤석열 악마화’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그 악마화의 콘텐츠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벌인 자해극을 감상해 보기로 하자.
유시민의 망언 퍼레이드
‘8·27 사태’에 대해 본격적으로 첫 포문을 연 이는 유시민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2019년 8월 29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악당들이 주인공을 제압 못 할 때 가족을 인질로 잡는 것”이라며 “저질 스릴러”라고 했으며, 서울대 학생들의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배후에 자유한국당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국 관련 의혹 보도에 대해 “집단 창작”이라고 일축했으며,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들에 대해서는 “조국만큼 모든 걸 가질 수 없었던 소위 명문대 출신 기자들이 분기탱천(憤氣撐天)했다”고 조롱했다.9월 24일 유시민은 조국의 부인 정경심이 검찰 압수수색 전 컴퓨터를 반출해 증거인멸 의혹에 휩싸인 것과 관련 “증거인멸이 아니라 증거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불후의 망언을 남겼으며, 이런 망언 퍼레이드는 이후로도 계속됐다. 그는 9월 28일엔 “조 장관을 넘어 대통령과 맞대결하는 양상까지 왔는데 총칼은 안 들었으나 위헌적 쿠데타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반적 여론은 문 정권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여론이 악화하면서 조국은 장관 지명 66일, 취임 35일 만인 10월 14일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조국의 사퇴가 ‘잘한 결정’이라는 긍정 응답은 62.6%로 ‘잘못한 결정’이라는 부정 응답(28.6%)을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이에 문재인 정권은 검찰 인사권이라는 비장의 무기로 대응하고 나섰다.
2020년 1월 8일 청와대는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을 앞세워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 간부 32명에 대한 인사를 강행했다. 대검 차장과 반부패부장, 공공수사부장을 비롯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유재수 비리 비호 사건 수사를 지휘해 온 윤석열의 참모들이 단 한 명 예외 없이 좌천됐다. 일부 언론은 이 인사를 가리켜 ‘1·8 대학살’이라고 했다. 문재인과 추미애는 1월 23일 차장·부장급 중간 간부 인사에서 수사팀 중간 간부들까지 쫓아내는 ‘2차 학살’을 감행했다.
이렇듯 문 정권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폭거에 대한 여론의 강한 반발은 1월 30일 세계일보 5면에 게재된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보도를 통해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윤석열이 2위로 떠오르면서 대선주자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4·15 총선 후 더 과격해진 ‘尹 악마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4월 7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한동훈 명예훼손’ 속행 공판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그 첫 포문을 연 인물은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최강욱이었다. 그는 4월 18일 검찰과 언론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그는 “한 줌도 안 되는 부패한 무리들의 더러운 공작이 계속될 것”이라며 “최소한 저 사악한 것들보다 더럽게 살진 않았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했다. 4월 27일 더불어시민당 대표 우희종은 “대중 선동을 통해 힘을 얻은 히틀러의 몰락 원인은 주어진 권력의 남용이다”라며 윤석열을 히틀러에 빗대 비난했다.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5월 31일에 출간한 ‘악마와 싸워서 이기는 정치’에서 “윤석열이라는 악마”라고 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검찰은 악마고, 언론은 쓰레기다. 악마는 퇴치해야 할 대상이고 쓰레기는 치워야 할 대상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은 박멸해야 할 박테리아이지 개화나 교화를 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2020년 내내 윤석열에 대해선 막말을 하는 게 민주당의 표준이 된 것처럼 보였다. 10월 26일 민주당 의원 윤호중은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운운하며 윤석열을 맹비난했으며, 다음 날 민주당 의원 정청래는 “(윤석열이) 제가 봤을 때는 ‘윤 서방파 두목’, 그런 느낌이 든다”고 비하했다. 11월 28일 민주당 의원 김경협은 윤석열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다”며 “동네 양아치들 상대하며 배웠는지 낯짝이 철판이다.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른다”고 비난했다.
2021년 1월 22일 유시민이 1년여 전 검찰이 재단 계좌의 금융거래 정보를 열람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한다”며 사과했다. 그는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다”며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 누구와도 책임을 나눌 수 없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다. 많이 부끄럽다”고 했다.
유시민의 이 발언은 나중에 진정성이 있었느냐는 의심을 받게 되지만,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건 분명했다.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다”는 고백만큼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었으며, 이는 문 정권 사람들 전체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문 정권과 민주당은 반성할 뜻이 전혀 없었으며, ‘윤석열 악마화’라는 광란극을 멈출 생각도 없었다.
윤석열은 신임 법무장관 박범계가 ‘추미애 시즌 2’를 본격화한 시점인 2021년 3월 4일에 사퇴했다. 정치권과 언론이 윤석열의 정치참여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자 이해찬은 3월 17일 윤석열의 언어에 대해 “검사가 아니라 깡패의 언어”라고 비난했다. 3월 29일 추미애는 윤석열을 “야당과 보수 언론이 키운 괴물이자 기획상품”이라는 원색적 표현으로 비난했다.
黨에 불어닥친 ‘재명학 열풍’
5월 18일 한겨레 기자 출신의 열린민주당 의원 김의겸은 ‘윤석열-전두환 평행이론’이라며 윤석열의 움직임을 ‘2단계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전두환 장군은 12·12와 5·17 두 차례 거사를 감행”해 “각각 군부와 전국을 장악”한 것처럼 윤석열은 검찰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조국대첩’을 치렀고, 이를 기회로 삼아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돌진’한다는 것이다. 조국은 5월 31일 출간한 ‘조국의 시간’에서 “윤석열 검찰은 2019년 하반기 어느 순간 문재인 정부를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라 ‘곧 죽을 권력’으로 판단했고, 방향 전환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6월 11일 추미애는 윤석열에 대해 “정치검사가 대권을 직행한다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를 악마한테 던져주는 거나 똑같다”고 주장했다. 6월 25일 문 정권은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정권 핵심이 관여한 의혹이 있는 사건들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모두 이동시킨 반면 친정권 검사들은 영전시켰다. 그럼에도 6월 28일 대선주자인 민주당 의원 이광재는 범야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윤석열과 감사원장 최재형을 겨냥해 “탱크만 동원하지 않았지 반세기 전 군사 쿠데타와 다를 바 없다”고 비난했다.
2021년 6월 29일 오후 1시 윤석열은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정청래는 “누가 써줬는지 모르지만 한마디로 태극기 부대, 극우 인사의 영혼 없는 대독이었다”고 비난했고, 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은 “이거 사실 군인으로 치면 근무지 이탈이다. 탈영병이다”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의원 이수진은 윤석열의 한일관계 관련 발언을 ‘친일’로 규정하고 “‘반문연대’의 본심이 ‘친일연대’였나”라고 비난했으며, 김어준은 윤석열이 문재인의 대일 외교를 비판하며 ‘죽창가를 부르다 경색됐다’는 취지로 말한 데 대해 “일본 극우와 결을 같이하는 시각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7월 30일 윤석열이 전격적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하자, 추미애는 페이스북에 올린 ‘정치검사 윤석열, 정치군인 전두환의 뿌리 국민의힘 접수’라는 제목의 글에서 “검찰총장의 대선 직행과 야당 직행은 민주주의에 대한 직격이며,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역사에 대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의 판단은 달랐다. PNR리서치가 미래한국연구소와 세계일보 의뢰로 7월 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은 35.3% 지지율로 1위에 올랐으며, 23.2%로 2위를 기록한 이재명을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이에 충격을 받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조국은 8월 2일 하루에만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13개의 글을 연속으로 올리며 윤석열을 비판하고 나섰다.
9월 6일 윤석열 측의 ‘고발 사주’ 의혹이 불거지자 추미애는 “총선을 앞두고 검풍을 획책한 것”이라며 “본질적으로는 검찰 쿠데타다. 사법제도를 활용해 민심을 교란시키는 연성 쿠데타, 조용한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9월 1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히자 민주당 지도부와 대선주자들은 윤석열을 향해 “조폭 두목” “정치 깡패” “괴물” “나치”라고 공격했다.
이재명은 윤석열을 나치에 빗대며 강도 높게 비난했으며, 민주당 대표 송영길은 “윤석열은 오만방자한 언행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였다”고 했고, 원내대표 윤호중은 “윤석열 게이트는 사상 초유의 검당 유착이고 국기 문란 사태”라고 했다. 최고위원 강병원은 “사죄는 없었고 ‘내가 무섭냐’고 국민을 겁박하는 괴물만 있었다”, 최고위원 김영배는 “국민들이 조폭 두목 혹은 정치 깡패의 모습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10월 10일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된 데 이어 11월 5일 윤석열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12월 들어 민주당에 불어닥친 ‘재명학 열풍’은 야당으로부터 “1980년대 운동권의 주체사상 교육을 보는 것 같다”(윤희숙)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지만, 12월 13일 정청래가 ‘인간 이재명’을 읽고 나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독후감은 ‘윤석열 악마화’와 대비되는 ‘이재명 영웅화’로 부르기에 족한 것이었다.
“인간 이재명 책을 단숨에 읽었다. 이토록 처절한 서사가 있을까? 이토록 극적인 반전의 드라마가 또 있을까? 유능한 소설가라도 이 같은 삶을 엮어낼 수 있을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인간 이재명과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며 아니 흐느끼며 읽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여론조사(12월 13일 실시)에서 문 정권이 추진한 검찰개혁의 간판이었던 공수처의 중립성과 수사 효율성 모두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가 70%를 넘었다(중립성 부정평가 72.4%, 효율성 부정평가 74.8%). 그럼에도 정청래처럼 이재명에게 흐느끼는 사람들에게 검찰개혁은 무조건 추앙해야 할 종교적 상징이었으며, 이에 도전한 윤석열은 악마였으며 악마여야만 했다.
12월 25일부터 26일 오전까지 자신의 페이스북에 8개의 윤석열 비난 글을 올린 황교익은 “정치의 ㅈ자도 모르는 인간이 정치판의 물을 너무 흐린다. 국민의힘은 당장에 윤석열을 거두어들여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추미애 공개 지지 의사를 밝힌 김민웅은 12월 28일 윤석열과 김건희를 겨냥해 “이 둘은 이 나라의 재앙”이라고 비난했다.
李=이순신·안중근, 尹=원균·이토 히로부미
3월 2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선후보 초청 3차 법정 TV 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옆을 지나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선을 닷새 앞둔 3월 4일, 민주당 원내대표 윤호중은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를 두고 “외형은 합당이라든가 공동정부, 이렇게 지분을 나눈 것 같지만 사실은 안 후보의 정치생명을 놓고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든다”며 “그러니까 기획된 협박 정치 결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 정권 사람들의 눈물겨울 정도로 처절한 ‘윤석열 악마화’에도 3월 9일 대선은 윤석열의 승리로 끝났고, 일부 이재명 지지자들은 이 결과에 사실상 불복하겠다는 듯 윤석열에 대한 악담 공세를 폈다. 이재명을 공개 지지 선언했던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은 3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7년 3월 10일 전 대통령 박근혜 탄핵 선고 사진을 게재하며 “오늘은 2017. 3. 10. 5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날이다. 역사란 어떻게 또 흘러갈지 두고 볼 일”이라고 했다.
3월 11일 광주의 한 고교 교사는 수업 중 대선 결과를 언급하면서 “윤석열이 검찰 출신이니까 검찰을 동원해 보기 싫은 놈들을 조져버리면 군사 독재 못지않게 된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3월 13일 김민웅은 대선 패배 원인에 대해 “윤석열을 필두로 한 정치검찰의 쿠데타 진압에 무력했다. 촛불혁명의 대의에 충실하지 않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3월 22일 민주당 의원 최강욱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나라의 주인은 분명 국민이라는 점을, 윤석열 씨의 몸과 마음에 확실히 새겨줄 수 있도록 하겠다”며 “망나니들의 장난질에 부서지고 망가지더라도 결코 무릎 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3월 27일 배우 문성근은 브라질 정치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를 언급하면서 “윤석열 총장의 난동이 시작되자 많은 분들이 ‘법비(法匪)들의 연성 쿠데타’라며 이 다큐를 언급했다. 맞다. 검찰 쿠데타를 당한 것 같지만 우리는 브라질과 다르니 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편 신격화, 반대편 악마화’를 넘어
4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6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 속에 통과되자 민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이렇듯 ‘윤석열 악마화’가 집요하게 이뤄졌지만, 드물게나마 민주당 내에서도 대선 패배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으면서 민주당의 성찰을 촉구하는 의견도 있었다. 3월 22일 민주당 의원 이탄희는 촛불의 열망을 민주당이 독점한 데서 대선 패인을 찾았다. 그는 “다양성을 잃은 채 우리는 신격화하고, 남은 악마화한 경직된 태도”가 민주당을 민심에서 멀어지게 했다며 “(이번 대선에서) 이에 대한 심판이 이뤄진 것이다”라고 했다.
4월 18일 전 민주당 최고위원 김해영은 민주당에서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는 데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 배경에는 ‘악당론’과 ‘지키자 프레임’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악당론은 국민의힘이나 검찰 등을 악당으로 규정하면서 악당은 궤멸시켜야 한다는 논리이고, 지키자 프레임은 진영 내 특정 인물을 성역화하면서 누구누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4월 19일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 입법을 “굉장한 졸속”이라며 공개 반대했다. 그는 “저도 민주당원이기는 합니다만, 아마 대선에 지고 보니 (민주당이) 심리적 균형을 좀 잃고 있는 것 같다”라며 “언제부터인가 민주당에는 극히 독선적이고 전투적인 강경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생각만 절대 옳고 합리적인 토론은 거부하면서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심지어는 같은 당 사람이라 하더라도 악마화한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무소속 의원 양향자가 조선일보(4월 21일) 인터뷰에서 민주당 쪽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며 소개한 내용이다. 그는 “정치를 안 하더라도 국익을 위해, 양심을 믿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민주당의 ‘검수완박 쇼’에 참여하는 걸 거부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쇼’는 온갖 편법과 꼼수가 총동원된 가운데 5월 3일 주연을 맡은 문재인의 법안 공포로 끝을 맺었다. 야권에선 문재인을 향해 “영락없이 겁먹은 도둑의 모습”(김근식) 등과 같은 독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문재인과 민주당에 일관성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와 검수완박에 집착한 이유는 똑같은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건 바로 ‘윤석열 악마화’였다.
“이 세대는 몰락해야만 한다”
영화 ‘대부 3’에서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는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했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시종일관 이 경고에 반하는 방향으로만 행동했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윤석열을 미워하는 수준을 넘어 악마로 간주함으로써 스스로 자해(自害)를 일삼는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들은 패닉 상태에서 윤석열의 권력욕과 사악함에 대한 극단적인 과대평가와 윤석열의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극단적인 과소평가를 저지름으로써 윤석열보다는 자신들의 그늘과 어두움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걸 폭로하고 말았다.그 폭로의 핵심은 ‘우리 편 신격화, 반대편 악마화’로 요약할 수 있는 부족주의적 정파성과 원리주의적 탈레반 기질이다. 이게 바로 지난 5년간 문재인 정권의 국정 운영을 지배한 기본 원리였다. 문 정권 사람들은 여전히 윤석열과 그 일당이 얼마나 사악하고 무능한지를 폭로하는 일에 집착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부족주의적 정파성과 원리주의적 탈레반 기질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더 많았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문 정권이 신봉했던 부족주의와 원리주의의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던 김어준은 3월 하순 “윤석열의 유효기간은 선거와 함께 끝났다”고 주장했다. 윤석열은 “정권교체라는 프레임, 비호감 선거라는 프레임, 여론조사 가스라이팅 등 때문”에 당선된 것일 뿐, 사실상 몰락을 향해 나아가리라고 본 셈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윤석열 정권에 이렇다 할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매우 적은 반면 윤 정권의 몰락을 위해 목숨 걸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 탓에 김어준의 그런 진단이 실현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닐 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문 정권 사람들의 부족주의와 원리주의의 폐해가 다시 한번 부각돼 양쪽 모두가 공멸한다면 국가적 차원에선 슬퍼할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칼 마르크스의 다음 말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모세가 사막으로 이끈 유대인과 마찬가지다. 이 세대는 새로운 세상을 정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몰락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알맞게 성장한 새로운 인간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