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개막 첫 두 달 승률, 끝까지 간다
5회 지나면, 1점 차도 뒤집기 어려워
5월 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22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 경기에서 관중이 응원하고 있다. [동아DB]
네, 단언컨대 올해 프로야구 순위는 이미 사실상 확정입니다.
월간지에 야구 기사를 쓰는 사람은 ‘점쟁이’가 돼야 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기도자’가 될 필요는 있습니다. 4월 말에 6월호 원고를 쓰고 있다 보면 ‘오늘 쓰는 이 주제보다 더 중요한 일이 제발 생기지 말라’고 두 손을 모아야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듯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실 5월 말 또는 6월 초가 되면 올 시즌 프로야구 순위 경쟁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정말입니다. 허문회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174경기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던 건 ‘8치올’(8월부터 치고 올라간다)처럼 처음부터 별 소용없는 목표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 SBS에서 방영한 야구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백승수 단장이 “프로야구 순위는 여름에 결정됩니다”라고 말한 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프로야구 순위가 정말 여름에 결정될 만큼 중요했다면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서머리그’를 2007년 한 해만 진행할 리는 없었을 겁니다. 이제는 이런 리그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팬조차 그리 많지 않습니다.
KBO는 2007년 초복(7월 15일)부터 말복(8월 14일) 사이에 우승 상금 2억 원을 놓고 서머리그를 진행했습니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가 이해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받아간 포스트시즌 배당금이 11억4000만 원이었으니까 적은 돈도 아니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가 14승 6패(승률 0.700)로 서머리그 우승 상금을 받아갔지만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4위였고,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반면 SK는 그해 5월 말에도 1위였고, 결국 정규리그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 정상에도 섰습니다.
프로야구 순위는 봄에 결정됩니다. ‘가을 야구’ 무대를 밟고 싶다면 일단 봄에 치고 나와야 합니다. 아니, 가을 야구 무대를 밟은 팀은 봄부터 치고 나오게 돼 있습니다. 적어도 프로야구가 10개 팀 체제를 갖춘 2015년 이후에는 확실히 그랬습니다.
5월 말 순위가 최종 순위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김애란 ‘입동’ 중자, 지금 손을 펴고 검지와 약지 길이를 비교해 보세요. 어느 쪽 손가락이 더 깁니까? 여러분이 남성이라면 약지가 더 길 확률이 높고 여성이라면 반대일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남성 독자 가운데 ‘운동 좀 한다’는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라면 약지가 검지보다 더 길 확률이 더욱 높습니다. (그리고 남성은 약지가 길수록 나타나는 신체적 특징이 하나 더 있는데 미성년자 독자도 계실 테니 일단 여기까지!)
2001년 영국 리버풀대 연구진은 상위 레벨에서 뛰는 축구 선수일수록 검지 길이 대비 약지 길이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후 농구, 럭비, 미식축구, 배구, 수영, 조정, 테니스, 펜싱, 핸드볼 같은 종목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건 이 손가락 길이 비율이 남성호르몬 분비량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변수와 다른 변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볼 때는 ‘상관계수’라는 값을 활용합니다.
예컨대 네덜란드 그로닝겐대 연구진은 오른손 검지 길이 대비 약지 길이 비율과 축구 경기 도중 레드카드를 받을 확률 사이 상관계수가 0.305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0.305는 어떤 의미일까요? 상관계수는 -1~1 사이로 나옵니다. 이 값이 양수(+)라는 건 한 변수가 늘어날 때 다른 변수도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또 통계학에서는 상관계수 절댓값이 0.3~0.7 사이일 때 흔히 ‘뚜렷한 관계’가 있다고 표현합니다. 키와 몸무게 사이 상관계수가 보통 0.6~0.7 사이입니다. 따라서 축구 선수는 오른손 약지가 더 길수록 레드카드를 더 많이 받는 뚜렷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프로야구는 어떨까요. 10개 구단 체제를 갖춘 2015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즌 개막이 늦었던 2020년을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6년 동안 5월 말 기준 승률과 시즌 최종 승률 사이 상관계수는 0.838입니다. 또 5월 말 기준 순위와 시즌 최종 순위 사이 상관계수는 0.826입니다. 상관계수가 0.7이 넘어가면 보통 ‘강한 관계’가 있다고 표현합니다.
5월 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LG에 4-0으로 승리한 롯데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동아DB]
롯데, 올해는 다를까
이 숫자는 당연히 시즌이 흐를수록 커집니다. 월별 승률과 최종 승률 사이 상관관계는 △4월 0.639 △5월 0.838 △6월 0.874 △7월 0.917 △8월 0.964 △9월 0.993이고, 순위는 △4월 0.583 △5월 0.826 △6월 0.860 △7월 0.884 △8월 0.939 △9월 0.993입니다. 이 월별 상관계수를 전달과 비교하면 5월이 승률(0.199)과 순위(0.243) 모두 가장 크게 늘어나는 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성적은 5월에 결정됩니다.사실 이건 5월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시즌 개막 첫 두 달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50경기 정도 표본이 쌓이고 나면 그 뒤로는 승률이 잘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20년을 포함해 시즌 첫 개막 두 달 뒤 순위와 시즌 최종 순위를 비교하면 각 팀 순위는 평균 1.3위밖에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 총 70개 팀 가운데 44개 팀(62.9%)은 5월 말 기준 순위에서 1계단 오르거나(15개 팀), 제자리이거나(17개 팀), 1계단 내린(12개 팀) 게 전부입니다.
그러니 올해도 5월 말이 지나면 프로야구 순위가 거의 바뀔 일이 없다고 주장한대도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롯데가 한창 잘나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 글이 지면과 온라인에 공개될 때도 그 성적을 유지하고 있을지 아니면 올해도 그저 ‘봄데’였을 뿐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5월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에서 4-3 역전승을 거두며 3연패에서 탈출한 LG 선수들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동아DB]
9회말 역전은 거의 없다
“팬들은 져도 계속 응원한다. 아니 질수록 더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진심으로 응원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란 기대가 야구장에선 아직 작동되고 있었다.” 김유원 ‘불펜의 시간’ 중5월뿐 아니라 5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일본 야구 만화 ‘H2’에 나오는 ‘타임아웃이 없는 시합의 재미’를 사랑하는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만화 주인공 구니미 히로(國見比呂)가 저 명대사를 내뱉었던 경기에서도 야구 서클은 축구부에 7-8로 패했습니다. 그리고 프로야구에서도 5회 이후에 결과가 바뀌는 일도 생각처럼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역시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프로야구는 총 5040경기를 치렀습니다. 이 중 어느 한 팀이 앞선 채로 5회가 끝난 건 4839경기였습니다. (나머지 201경기는 동점이었습니다.) 이 4839경기 가운데 5회까지 뒤지던 팀이 역전승을 거둔 건 749경기(17.1%)가 전부입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5회까지 앞선 팀은 승률 0.826(3561승 79무 749패)을 기록했다는 뜻입니다.
5회까지 딱 1점만 앞서도 승률 0.658(730승 44무 380패)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6년간 정규리그 1위 팀 누적 승률이 0.614(608승 18무 382패)였습니다. 매 경기에 5회까지 상대 팀보다 1점만 더 앞설 수 있어도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구원투수가 세이브를 올릴 수 있는 3점 리드까지 범위를 넓히면 예상 승률은 0.751(2001승 70무 662패)로 오릅니다. 5회까지 3점 이상 앞섰을 때 승률은 0.923(2136승 14무 177패)으로 치솟습니다.
역전을 믿지 않는 야구팬은 없다
그러나 5회에 3점 뒤진 걸로 ‘오늘은 졌다’고 생각하는 팬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6~9회 4이닝 동안 이닝마다 1점씩만 따라가도 역전이니까요. 뉴욕 양키스를 10차례 월드시리즈 정상으로 이끈 메이저리그 명포수 요기 베라(1925~2015)가 뉴욕 메츠 감독 시절 말한 것처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닙니다.” (네, 많은 명언이 그런 것처럼 베라가 실제로 저렇게 말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SK 와이번스는 2013년 5월 8일 문학 안방경기에서 두산 베어스에 2-11로 9점 뒤진 채 5회말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6회말 4점을 내면서 6-11로 추격했고, 7회초에 1점을 내준 뒤 8회말 다시 5점을 뽑으며 11-12로 두산을 압박했습니다. 9회 말 선두타자 한유섬(33·개명 전 한동민)이 1점 홈런을 날리면서 12-12 동점이 됐고, 1사 만루에서 김성현(35)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결국 13-12 승리를 거뒀습니다. 비록 프로야구 40년 역사상 딱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9점도 뒤집을 수 있는 게 바로 야구입니다.
마찬가지로 올해 우리 팀은 5월 말까지는 좀 주춤했지만 여름이 오면 분명 치고 올라갈 겁니다. 2020년 개막 후 두 달 동안 승률 0.438(21승 27패)로 8위였지만 남은 기간 승률 0.632(60승 1무 35패)를 거두며 결국 2위로 순위를 6계단 끌어올린 KT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선수들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동지애’야말로 야구팬을 야구팬으로 만드는 결정적 요소입니다.
“그러니 옛날에 그랬다고 떠드는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다”고 항의하는 분이 계셔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단, 저 역시 미래를 먼저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한 번 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말이 틀리능가 봐라. 어디 내 말이 맞능가 틀리능가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