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재벌개혁론자→시장교란자’ 구속된 장하원 디스커버리 대표

[Who’s Who] 진보 경제학자의 거대한 역설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2-06-09 15: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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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가 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가 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2500억 원대 환매 중단으로 투자자에게 피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 디스커버리자산운용 장하원 대표가 8일 경찰에 구속됐다. 이날 서울남부지법 권기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장 대표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도주와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장 대표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와 자본시장법 위반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펀드에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투자자들에게 펀드 상품을 판매하고, 신규 투자자가 낸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으로 지급하는 이른바 ‘폰지 사기’ 수법을 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디스커버리펀드는 2017년부터 하나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시중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판매됐고, 2019년 4월 환매가 중단됐다.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국내 투자자의 피해 규모는 지난해 4월말 기준으로 2562억 원이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는 장 대표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날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디스커버리펀드의 설계·설정·운용과정에서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장하원은 반드시 구속돼야 한다”면서 “사모펀드 쪼개기와 펀드 돌려막기(폰지 사기) 혐의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추가 고소고발을 사법당국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이야 시장교란자 취급을 받지만, 장 대표는 한때 저명한 진보 경제학자였다. 1959년생인 그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1996년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재직했고 2002년 제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를 도왔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자문위원을 거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을 지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경제참모 그룹에서도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였다. 장 대표는 2003년 9월 25일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 나와 “외자(外資)와 외국기업이 우리나라를 떠나는 이유를 노동시장 불안으로 들고 있지만, 기업의 지배구조와 투명성이 확립되지 않은 원인이 더 크다”면서 “향후 과제는 가족주의나 연고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규범의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는 차세대 경영자 계층을 발굴·육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장 대표는 2006년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 정책실장에 임명됐다. 당 정책위의장과 함께 여당의 정책기조를 총괄하는 요직이다. 재벌개혁론자라는 규정이 부담스러웠던지 그는 임명 직후 가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재벌 해체에는 절대 반대한다”면서도 “급격히 무너져 가는 분배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하성 현 주중대사와 김상조 전 대통령정책실장도 디스커버리펀드에 거액을 투자했다. 장 대사는 장 대표의 친형이다. 김 전 실장 역시 장 대표와 마찬가지로 재벌개혁론자로 꼽혔다. 경찰은 장 대사와 김 전 실장을 직접 조사하는 방안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피해대책위원회 측은 “가입 당시 기업은행 직원들이 전국적으로 ‘장하성 동생이 운영하는 상품’이라며 피해자들을 안심시키고 판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족주의·연고주의에 반대하고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던 진보 경제학자가 가족과 연고를 통해 다수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니 거대한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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