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음식 이름 차용한 탄산음료 ‘암바사’
고다이바 부인의 미담 담은 초콜릿 ‘고디바’
북유럽 신들의 땅, ‘바네하임’에서 마시는 맥주
오딘의 수행원 이름 딴 슈퍼카 ‘발할라’ ‘발키리’
존 콜리어의 그림 ‘레이디 고다이바’(1898). [허버트 박물관]
벨기에 초콜릿 브랜드 ‘고다이바’의 로고. 말을 탄 고다이바 부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왼쪽).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의 로고. 로고 가운데 여성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괴물 ‘세이렌’이다. [고다이바 홈페이지, 스타벅스 홈페이지]
“신화는 나에게 절망의 위기 혹은 기쁨의 순간에, 실패 혹은 성공의 순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신화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가 낳은 창작물인 ‘브랜드’도 신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신화는 브랜드를 통해 우리 생활 곳곳에 깊이 스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왜 신화 속 이야기를 차용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우선 신화 속 명칭의 익숙함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신화를 듣고 자라온 수많은 소비자는 브랜드의 이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익숙한 이름은 홍보 효과로 이어진다. 새 브랜드는 브랜드명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려면 상당한 비용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신화를 차용해 이름을 지으면 명칭이 눈과 귀에 익은 만큼 소비자가 외우기 쉽다.
익숙한 신화 브랜드, 그 자체가 이미지
브랜드가 차용한 신화는 그 자체로 브랜드의 이미지가 된다. 글로벌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 로고로 재탄생한 ‘세이레네스(Seirenes)’가 대표적 예다. 그리스 신화 속 괴물 세이레네스는 바다에서 노래를 부르는 괴물이다. 노래를 들은 선원은 세이레네스의 노래에 홀려 정신을 잃고 바다에 빠지게 된다. 노래로 선원을 홀리던 세이레네스처럼 스타벅스의 커피향에 매료된 소비자들은 자연스레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이처럼 신화 속 인물의 그리스 신화 속 행적에서 드러나는 상징적 의미를 통해 그 브랜드의 홍보 효과는 더욱 배가된다.
필자는 그동안 10여 년에 걸쳐 ‘브랜드로 읽는 그리스 신화’를 강의해 왔고, 최근 같은 제목의 책도 펴냈다. 강의가 끝나면 간혹 수강생 중 “장차 회사를 창업할 예정인데 나중에 상호 작명을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명함을 건네며 내 명함도 받아 간다. 어떤 수강생은 아예 앞으로 이른바 ‘신화 브랜딩’ 사업을 함께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치기도 한다.
신화 브랜딩은 아직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없는 블루오션이다. 그리스 신화뿐 아니라 북유럽 신화, 수메르 신화, 이집트 신화, 그리고 전설처럼 내려오는 다양한 민담까지 포함하면 신화 속 인물의 이름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는 더욱더 넓어진다. 신화 브랜딩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신화와 브랜드의 연관성이다. 가능한 한 업종의 성격과 행적이 일치하는 신화 속 인물을 엄선한 다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정확하게 고증해 브랜드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가 완벽하다면 이름은 조금 고쳐도 무방하다. 신들이 먹는 음식 ‘암브로시아(Ambrosia)’에서 탄산음료 브랜드 ‘암바사(Ambasa)’를,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에서 호프 프랜차이즈 브랜드 ‘디오니스(Dionys)’를 만들어낸 것처럼 원래 이름을 그대로 쓸 필요는 없다. ‘브랜드가 된 신화’는 이처럼 브랜드에 녹아든 신화 속 이야기를 소개한다. 코너의 마중물로 영국 전설을 소재로 한 브랜드 1개와 북유럽 신화를 소재로 한 브랜드 3개를 소개한다.
미담만큼 달콤한 초콜릿 ‘고디바’
벨기에 초콜릿 브랜드 ‘고다이바(Godiva)’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고디바’로 부른다. 이 초콜릿 브랜드는 바로 11세기경 영국 웨스트미들랜즈주의 도시 코번트리에 살았던 ‘고다이바 부인(Lady Godiva)’에게서 따온 것이다. 그녀는 코번트리의 영주였던 ‘레오프릭(Leofric)’의 아내다. 레오프릭 영주가 무리한 세금을 징수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자 남편에게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간청했다.
성격이 괴팍했던 영주는 세금 감면에 특이한 조건을 내걸었다. 세금 감면을 간청한 아내에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성을 한 바퀴 돌면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고 제의했다. 모욕적인 처사임에도 고다이바 부인은 백성들을 위해 남편이 내건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백성들은 고다이바 부인이 성을 돌 때 아무도 밖을 내다보지 않기로 결의했다.
마침내 약속 시간이 되자 고다이바 부인은 정말 옷을 벗은 채 말을 타고 묵묵히 성을 한 바퀴 돌았다. 영주는 아내의 용기에 감탄해 백성들에게 즉시 말에 대한 세금을 제외한 모든 세금을 감면해 주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678년부터 코번트리에서는 해마다 고다이바 부인의 말타기 행진이 벌어진다. 시간이 흐르자 원래의 고다이바 부인 이야기에 다른 내용이 첨가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모든 백성이 다짐한 대로 밖을 내다보지 않았지만 어떤 백성 하나가 몰래 밖을 내다보았다가 즉시 눈이 멀었다’는 내용이다. 그 백성 이름도 ‘피핑 톰(Peeping Tom)’이라고 구체적으로 거명된다. ‘피핑 톰’은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관음증 환자’, 혹은 ‘호색한’ 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초콜릿 브랜드가 하필 고다이바 부인의 이름을 차용했을까. 고다이바 부인의 미담이 주는 감동만큼이나 감동적인 맛의 초콜릿을 내놓겠다는 다짐에 가까울 것이다.
신들의 땅에서 마시는 ‘여신’ 맥주
두 번째는 서울 지하철 7호선 공릉역 근처에 있는 ‘바네하임(Vaneheim)’이라는 수제 맥주 전문점이다. 이곳 메뉴판에 눈에 띄는 이름의 맥주가 있다. ‘프레아 에일(Frea Ale)’과 ‘노트 에일(Nott Ale)’이 그 주인공. 가게 이름과 맥주 이름에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바네하임’은 북유럽 신화의 9가지 세계 중 한 곳의 이름이고, ‘프레아’와 ‘노트’는 여신의 이름이다. 그중 ‘노트’는 밤의 여신인데, 절묘하게도 이 맥주 전문점은 ‘흑맥주’에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프레아’는 누구일까? 북유럽 신화에서 프레아라는 이름을 쓰는 여신은 두 명이다. 첫 번째 후보는 북유럽 신화의 신들의 왕 ‘오딘’의 아내인 ‘프리그(Frigg)’다. 가정과 결혼의 여신 ‘프리그’는 ‘프레아’로도 불렸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는 사랑의 여신 ‘프레이야(Freyja)’다. ‘프레이야’는 ‘프레아’로 불리지는 않았지만 여기서는 그 오기(誤記)일 가능성이 크다. 술은 아무래도 가정과 결혼의 여신보다는 사랑의 여신과 더 깊은 관계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바네하임’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반(Van)’ 신족이 사는 공간이다. 사랑의 여신 프레이야가 반 신족의 일원이다. 이 공간의 이름은 ‘바나헤임(Vanaheim)’인데 ‘바네하임’은 이를 조금 바꾼 모양새다. 네 번째 알파벳 A를 E로 바꾸고 ‘헤임(heim)’의 발음도 독일어 발음처럼 ‘하임’으로 고쳤다. 이렇게 고쳐서 새로운 의미도 생겼다. 독일어로 ‘하임’은 ‘집’이라는 의미여서 그 나름대로 ‘신들의 집’이라는 의미로 통하는 셈. 신들의 집에서 마시는 맥주 맛이 일품이어서 가끔 그 가게에 들른다. 이곳에서 맥주를 마실 때 마다 궁금함이 고개를 든다.
창업자는 북유럽 신화를 알고 그런 이름을 지었을 텐데, 과연 종업원들도 가게나 맥주 이름에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특히 고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알려주면 홍보 효과가 크지 않을까. 하지만 메뉴판을 아무리 뒤져봐도 신화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슈퍼카에 탄 바이킹 시대 영웅
에밀 도플러의 그림 ‘발할라에서 연회를 즐기는 에인헤랴르’(1905). [위키피디아]
오딘은 북유럽 신들 중 ‘에시르(Aesir)’ 신족이 사는 공간 ‘아스가르드(Asgard)’에 궁전을 세 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궁전은 다른 신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하는 ‘글라드스헤임(Gladsheim)’, 두 번째 궁전은 자신의 거처인 ‘발라스캴프(Valaskjalf)’, 마지막 세 번째 궁전이 바로 지상의 전장에서 죽은 영웅들과 함께 연회를 즐기는 ‘발할라’다.
특히 죽은 영웅들을 발할라로 데려오는 임무를 맡았던 게 바로 오딘의 특별 수행원 ‘발키리아’였다. 그들은 아홉 명의 처녀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이들의 정체를 두고 다양한 설이 있다. 여신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귀족의 딸 중에서 오딘의 선택을 받아 하늘로 불려왔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고, 전승마다 발키리아의 수도 들쑥날쑥하다. 발키리아의 복수는 ‘발키류르(Valkyrjur)’인데,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서 그들을 ‘발퀴레(Walküre)’라고 칭하기도 했다. 발키리아는 하늘에서 백마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전장에서 죽은 영웅들을 오딘에게 데려간다. 발할라에서 신들과 함께 향연을 즐기는 영웅에게 벌꿀 술을 따라주었다는 전승도 있다.
오딘은 죽은 영웅들을 특히 환대하고 아꼈기에 ‘전사자들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 ‘발포드(Valfodr)’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오딘은 거인들을 비롯한 악의 세력과 벌인 최후의 전쟁 ‘라그나뢰크(Ragnarök)’에 대비하기 위해 발할라에서 죽은 영웅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영웅들은 바로 발할라 궁전에서 양편으로 나뉘어 실전처럼 서로 전력을 다해 싸웠기 때문에 부상자나 전사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훈련이 끝나면 부상자의 상처는 말끔히 나았고 전사자는 다시 살아났다.
애스턴 마틴의 하이브리드 슈퍼카 ‘발할라(Valhalla)’. [뉴스1]